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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악마(2) (6/21)

6장 악마(2)

똑, 똑.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온몸에 얼얼하게 올라오는 알싸한 고통에 눈을 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타인의 신체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사람이 사방에 빼곡했다. 비현실적인 광경에 눈을 비볐다. 하지만 수없이 비벼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게…… 뭐지?”

강한 힘에 의해 물에 끌려간 그때, 나는 정신을 잃었다. 갑작스럽게 물속에 처박히느라 숨을 쉴 수 없었고 몸을 칼로 에는 듯한 추위에 고통스러웠다. 나를 끌어온 그 하얀색의 손. 그것은 뭘까. 물귀신인가? 그럼 여긴 귀신의 식량 창고인가?

주변을 다급하게 다시 둘러보았다. 먼 수평선까지 사람이 쌓여 있었다. 심지어 멀리에 있는 사람들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마네킹 같아 보였다. 머리 위를 올려다보자 일렁이는 수면이 보였다. 이곳은 호수의 아래일까. 하지만 그 호수는 이렇게 넓지 않았다.

이곳은 대체 어디지?

“안녀어엉?”

어깨를 툭툭 치는 차가운 손길. 유쾌한 목소리. 나는 고개를 팩 돌려 뒤를 보았다. 부디 나와 같은 생존자이길 바라며.

그러나 반가운 빛을 띤 내 얼굴은 곧 두려움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

그것은 해초처럼 너울거리는 녹색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따개비가 붙은 푸른 피부를 가지고 있었으며 동공이 없는 눈은 노란색의 토파즈와 비슷했다. 하반신은 인간이 아닌 흐늘거리는 물고기의 지느러미였다. 동화 삽화에서 보던 아름다운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내 눈앞에 있는 건 인어였다. 한마디로 인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허공에 부유하고 있었다.

“안녀엉?”

아무 말 못 하고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자 둥둥 떠 있던 그가 손을 흔들었다. 친근감이 넘치는 그 행동에 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심호흡을 했다. 심호흡하는 내내 몸이 떨렸다.

“누, 누구세요?”

“내가 보이긴 하는구나아아. 안 보이는 줄 알았지이.”

키득거리는 모습은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함이 있었다. 허공을 헤엄치듯 부유하는 그는 신비로웠다. 바닥에 미동도 없이 쓰러진 사람들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는 죽은 듯이 쓰러져 있는 사람들과 명백하게 연관이 있을 터였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을 힘껏 부여잡고 말했다.

“누구…… 세요?”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겁먹은 모습을 온전히 숨기기엔 어려웠다. 필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느끼는 두려움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인어는 키득거리며 주변을 부드럽게 유영했다. 내가 겁에 질린 것도 그에게는 즐거움인 것이 분명했다. 발등이 따끔거리며 아파왔다.

“재미있는 플레이어네.”

“플레이어……?”

플레이어라는 말을 한 자는 단언컨대 꿈속의 그 기괴한 자가 유일했다. 그렇다면 눈앞의 이 인어는 그 이상한 존재와 연관이 있는 걸까. 하지만 영문을 모르겠다. 머리가 뒤죽박죽으로 혼란스러웠다.

“있잖아. 내가 뭐로 보여?”

“네?”

“세이렌, 인어……. 음, 또 뭐가 있었지?”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의 모습이 뭔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황당하게 바라보자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쩔 수 없다구우. 오류 때문에 역할이 헷갈린단 말이야. 스크립트도 훼손돼서.”

“…….”

“하여튼 뭐로 보여? 응?”

얼굴이 부딪칠 정도로 가까이 들이댄 그는 내가 말해주기 전에는 멀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심지어 그 억세고 차가운 손으로 내 어깨를 강하게 틀어잡았다. 손톱은 마치 갈고리처럼 날카로웠다.

부서질 듯 아픈 어깨에 나는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사실 못 말할 것도 없었다. 보이는 그대로 말하면 되니까.

“인, 인어요. 인어.”

“아하. 인어구나아?”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지 그는 미련 없이 나를 놓았다. 거세게 잡기는 했지만 해치려는 의도는 없었던 것 같다.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계속 이어지는 통증에 아직도 내가 저 손아귀에 잡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런데…… 스크립트라니.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게임을 만들 때 필수인 그 스크립트를 말하는 걸까? 한데 그것을 갑자기 왜? 인어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그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네가 찾는 것이 이것이냐?]

인어의 목소리가 마치 동굴에서 울리는 듯 웅웅 울렸다. 인어가 손짓하자 거대한 비눗방울 같은 것이 허공에 나타났다. 그 안에는 집사님과 울리세가 한곳에 엉망으로 뒤엉켜 있었다. 발치에 쓰러져 누워 있는 사람들같이 정신을 잃은 채로. 이 공간에 갇힌 것은 나뿐이 아니었다. 패닉에 빠진 나는 발치의 사람을 살피지도 못하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울리세! 집사님!”

[하하, 불쌍하게도.]

아까의 어리바리한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그는 기품 있는 귀족 같았다. 인어는 손가락을 까딱했다. 이리저리 거미줄처럼 엉겨 있던 사람들이 조금 밀려나 동그란 자리가 만들어졌다. 인어는 비눗방울을 그곳에 내려놓았다.

퐁, 경쾌한 소리를 내며 방울이 터졌고 집사와 울리세가 떨어졌다.

“정신 차려요!”

다급하게 다가가 살펴보았다. 그러나 울리세는 장밋빛처럼 사랑스러운 볼이 창백해진 채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집사님 또한 그 찬란히 빛나는 푸른빛을 내보이지 못한 채 눈을 감고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나를 위험에서 몇 번이나 구해준 집사님이었기에 지금의 모습은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샅샅이 살펴보자 그들의 몸에는 다행히 생채기 하나 없었다. 그저 인형처럼 잠들어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깨어나지 못할 거야.]

“왜, 왜요?”

발등이 심하게 아파왔지만 그것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내 정신은 쓰러진 울리세와 집사님, 그리고 인어에게 향해 있었다. 정신이 뾰족하게 달궈져 나를 몰아붙였다. 마치 송곳이 나의 뇌를 쿵쿵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그들에게 깨어날 의지가 없으니까.]

“네?”

[여기 있는 인간들이 왜 여기서 이렇게 자는지 아느냐?]

당연히 모른다. 나는 갑작스럽게 이곳으로 끌려왔으니까. 인어는 딱히 대답을 바라지 않았는지 자애로운 성모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 미소는 바닥에 쓰러진 인간들과는 어울리지 않은 이질감을 지니고 있었다.

[삶에 대한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에게 좋은 꿈을 꾸게 해주고 있지.]

“……꿈?”

[그래. 꿈. 저들은 꿈속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단다. 괴로운 현실과는 다르게.]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아주 어린 아이도 매우 늙은 노인도, 그들 모두 현실에서 달아나 버렸다. 그것은 행복한 것일까. 내가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지만 무섭다고 생각한 이 공간이 어쩐지 서글퍼졌다. 그와 동시에 인어의 말이 뜻하는 바를 이해해 버려 마음이 옥죄이듯 아파왔다.

“못…… 일어나요? 왜? 울리세랑 집사님이 왜?”

집사님과 울리세는 내가 이 세계에 발을 디딜 수 있도록 해주는 닻, 온기다. 그들은 나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으며 내가 마음을 준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이 삶에 대한 의지가 없다니.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겠는가. 이미 그들은 잠들어 깨어나질 않는데.

공포에 슬픔이 뒤섞였다. 내가 그동안 울리세에게 한 행동이 도움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깨어나 주기만 한다면 나는 더한 노력을 할 텐데. 어떻게든 삶이 즐거울 수도 있다는 것을, 행복하게 가꾸어 나갈 수 있음을 알려줄 수 있을 텐데…….

“일어나게 해줄까? 응?”

슬픔과 막막함에 잠식하니 인어가 고아했던 기품을 벗어던지고 도로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중인격처럼 바뀌는 성격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꿈속에서 보았던 그 기괴한 존재와 닮아 보이기까지 했다. 성격은 일관되게 산만했지만 몸은 시도 때도 없이 바뀌었다.

“응? 해줄까아?”

“네, 네……. 제발.”

비루먹은 생쥐처럼 벌벌 떨며 고개를 숙였다. 저 인어가 대체 무슨 변덕을 부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변덕에 기대지 않으면 나는 이 장소에서 나갈 수 없을 거란 직감이 들었다. 발등에서 번지는 고통이 발목을 사납게 타고 올라와 서 있기도 힘들었지만 꿋꿋이 버텼다.

“제발…….”

“좋아. 플레이어야아 나는 말이야아, 기억을 좋아해!”

“기억……?”

인어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굽이치는 머리카락이 촉수처럼 흔들렸다. 아이 같은 행동이었음에도 오히려 더 괴물처럼 느껴졌다. 그는 은연중에 천진함과 함께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마치 기차에 있던 그것처럼.

“……!”

그래, 악마. 이 모든 것이 악마와 관련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내가 여태껏 보았던 괴물은 모두 생김새가 흉측했다. 눈앞에 있는 인어는 흉악하기는커녕 신비롭게 생겨 괴물과 같은 선상에 두는 것이 미안할 지경이다. 하지만…….

하지만 내 안의 무언가가 속삭였다. 이것은 악마와 관련이 있다고. 고상하게 말하는 이것은, 순진하게 웃는 이것은 괴물이라고.

“너는 말이야아. 재미있어 보여.”

“재미?”

“응. 너의 기억에서 상처가 보인다고오.”

차가운 손이 내 이마를 톡 하고 쳤다. 장난감을 건드는 듯한 그 손짓에는 어떠한 악의도 없었다. 그저 호기심과 즐거움이 담겨 있었을 뿐. 다만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 공포를 주었다. 내가 그들에게 어떠한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 확실하게 느껴졌기에.

“어차피 이 공간은 내가아 내보내 주지 않으면 못 나가아. 그러니까아.”

“제, 기억을 드리면 됩니까?”

“똑똑한 플레이어네에.”

기특하다는 듯 보는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인어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를 관찰하는 시선에 마치 사육장에 갇힌 짐승이 된 기분을 느꼈다. 발등에서 시작된 고통은 어느새 무릎까지 올라왔다. 눈앞의 괴물을 향한 공포심과 등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에 제정신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이 장소는 말이야아. 아주, 아주우우우 오랫동안 있었어.”

“…….”

인어는 갑자기 이 장소의 유래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을 사항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끊을 자격이 내게는 없었다. 사냥당하는 입장의, 아니, 고작 장난감인 나는 얌전히 그 말을 경청했다.

“악마는 말이야. 신의 종이야.”

“네?”

“신은 아름다운 것을 보는 걸 좋아해애.”

고통도 공포도 잊고 눈앞의 괴물을 빤히 쳐다보았다. 천진함도 기품도 없는 인어는 낡고 어딘가 망가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어쩐지 언젠가의 집사님과 닮아 있었다. 겉모습도 성격도 전혀 다름에도 그렇게 느껴졌다.

“플레이어야아 네가, 클리어해 줬으면 정말 좋겠네에.”

곧이어 정신이 급격하게 흐려졌다. 이유를 모르겠으나 몸의 힘이 풀렸다. 꺾인 몸이 바닥으로 풀썩 쓰러졌다. 시야에 보라색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울리세와 집사님의 옆에 쓰러진 모양이다.

멀어지는 정신으로 노래하듯 낭랑한 인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꿈속의 꿈은 재미있겠지이?”

* * *

“아.”

얕은 잠에서 깨어나듯 물속에 잠겨 있는 것 같은 정신이 깨어났다. 어딘지 익숙한 천장이 나를 반겼다. 옅은 크림색의 천장. 팽그르르 돌아가는 실링팬. 눈알을 굴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짙은 갈색의 가죽 소파. 이제는 보기도 힘든 두꺼운 티브이. 손때가 탄 탁자.

“…….”

그제야 나는 이 장소가 어딘지 알 수 있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재차 확인했다. 깔끔하게 치워진 단정한 집. 아름드리 늘어진 옅은 녹색의 커튼. 베란다 한쪽에 널린 세탁물. 탁자 위의 수많은 액자.

“집…….”

내가 떠나온, 어린 시절을 보내온 부모님의 집이었다. 이제는 흔적조차 남지 않은 너무나 오래전의 공간. 이곳에서 나이가 많은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늦둥이로 태어난 나는 두 분의 사랑을 듬뿍 받았었다. 모자랄 것이 없었던 어린 시절. 돌아올 수 없는 그 시절.

“왜, 여기에…….”

도대체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내 기억이란 것이 이 장소에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현실에 돌아온 걸까.

하지만 곧 그 멍청한 생각에 피식 웃고 말았다. 과거에 스러진 장소가 어떻게 현실이 될 수 있는가. 그는 기억을 원한다고 했으니 이곳은 내 기억 속이겠지.

“……그런데 집에 이렇게 문이 많았나?”

기억 속의 집은 떠나온 지 20년 가까이 지났다. 그럼에도 내가 이 집을 뚜렷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하지만 일단 내 기억 속의 집은 이렇게 문이 많지 않았다. 보이는 문만 해도 7개가 넘었다. 7개의 방을 둘 정도로 우리 집이 부유하지는 않았다.

“그립네…….”

기억을 찾아야 한다는 일이 남아 있지만 나도 모르게 추억에 빠졌다. 벽과 바닥에 낙서하고, 빵에서 나온 스티커를 붙이고. 그것들을 보니 울컥 그리움이 솟구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과거니까. 꿈속에도 나타나지 않는, 그립고 달콤한 나의 집.

계속해서 집의 구석구석을 미련하게 보려고 하는 나를 달래며 문을 살폈다. 본래의 기억에는 없는 문. 확실히 이 집과는 이질감이 있었다. 어떠한 문은 철로 만들어졌고, 어떠한 문은 평범한 나무로 만들어졌다. 또 다른 어떤 문은 유리로 만들어져 있었다. 식당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문들이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의문을 가진 채 안쪽으로 걸어갔다. 안쪽에는 다른 것이 없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저 문을 열고 들어갈 필요도 없이 내 기억이란 것을 주워 갈 수 있으면 더 좋고 말이다.

하지만 안쪽에는 다른 문보다 더 큰 문이 있을 뿐이었다. 그 어떠한 문보다 이질적인 문.

“……저택의 문이잖아?”

저택의 1층 입구인 그 문. 검은색에 가까운 고풍스러운 문은 현대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낡게 퇴색되었지만 세밀한 문양이 음각되어 있는 것이 너무나 돋보였다. 하지만…… 너무 뜬금없지 않나?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나도 모르게 그 문을 당겼지만,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돌같이 무거웠다.

나는 움직이지 않는 발을 애써 옮겨 문을 뒤로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문이 계속해서 신경 쓰였다. 심지어는 발등까지 심하게 쑤셔왔다. 이놈의 발등은 왜 계속 아픈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곳에 오기 전 인어의 앞에서는 발등을 자르고 싶을 정도였는데 그때보단 나았다.

멀쩡한 발로 내 발을 간간이 꾹꾹 누르며 집 안을 돌아다녔다.

집을 다 뒤졌는데도 얻은 것은 없었다. 애초에 인어가 말했던 기억이라는 것이 어떤 모양인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사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 심지어는 돌아다닐수록 잊어버린 줄 알았던 추억들이 슬금슬금 튀어나왔다. 반갑기도 했지만 괴로웠다.

“결국 들어가야 하나…….”

나는 수많은 문 앞에서 서성였다. 다른 곳에는 없으니 분명 이 문안에 기억이란 게 있겠지. 무슨 모양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거다. 그래야 한다. 생기 없이 쓰러진 울리세와 집사님이 뇌 내에 맴돌았다.

“그래. 별거 있겠어.”

뭐 이상한 괴물 같은 게 또 나오지 않겠지. 기차 안에 있었던 괴물 기관장. 숲에서 날 공격했던 괴물. 그리고 아까의 인어까지. 그런 것만 아니라면 정말이지 뭐든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기합을 넣고 문을 벌컥 열었다.

“요셉아, 천천히 먹어야지.”

“그래. 형하고 누나가 밥을 굶기는 것도 아닌데.”

“어?”

그리운 목소리다.

“영양소는 잘 챙긴 식단이지?”

“물론이지. 영양사한테서 받아 온 그대로 만들어주니까 걱정하지 마.”

무뚝뚝하지만 걱정스럽게 나를 보는 눈길. 이제는 성인이 된 나와 닮은 어른들.

“누나! 형!”

거의 일 년 가까이 보지 못한 나의 가족이었다. 나는 모든 현실을 잊고 달음박질쳐 그들에게 달려갔다. 반가움과 그리움에 이곳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조차 잊은 채. 그러나 그들에게 닿기도 전 내가 모를 수 없는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맛있다…….”

잡곡밥에 미역국을 함께 꼭꼭 씹어 먹는 어린아이. 조금은 말라 불쌍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그 모습은 바로, 나였다. 너무 오래전의 과거, 지나가 버린 나.

“다행이네. 꼭꼭 씹어 전부 먹어야 해. 다 정해진 분량으로 만든 거니까.”

고개를 끄덕이고 볼이 터져라 먹는 내 모습을 보고 나는 뒷걸음질을 쳤다. 마주치면 안 되는 것을 본 것 같은 거부감. 그때, 형과 누나가 내게로 다가왔다. 내가 보이는 걸까? 나를 알아보는 걸까?

“혀엉…….”

“요셉, 학원은 어떻게 할 거야?”

하지만 그들은 나를 그대로 쑥 통과했다. 마치 유령처럼. 그들이 신경 쓰는 것은 배부르지만 어떻게든 밥을 위 속에 욱여넣는 어린 시절의 나였다. 그들이 이제 막 책임지게 된 게걸스러운 모습의 어린 나. 내가 미래의 유령인 걸까, 저들이 과거의 유령인 걸까.

“일단 애가 배우던 건 그대로 둘까 해.”

“나중에 요셉이랑 잘 얘기해 봐.”

“그건 내가 맡은 거니까 알아서 할게.”

육아 방법을 이야기하는 그들을 보고 나는 도망치듯 문을 나섰다. 분명 과거의 내가 겪었던 일임에도 방해물이 되어버린 기분을 느꼈다. 꽁지에 불이 붙은 쥐처럼 도망친 나는 거실에 주저앉았다.

드디어 저 문의 정체를 알았다. 이 공간의 정체도. 이 공간은 내 기억의 중심인 모양이다. 저 문은 각각의 다른 기억으로 연결되어 있을 거고. 그런 것이 분명했다.

“젠장…….”

대체 인어는 무슨 기억을 내게 바라는 것일까.

‘너의 기억에서 상처가 보인다고오.’

“상처…….”

인어가 말한 그 한마디. 그러나 아까의 기억은 힘들고 상처가 되어 도망친 기억이 아니었다. 그저 그 자리에서 내가 유리되어 버린 것이 너무나 힘들었을 뿐. 기억은 빌미고 인어가 원하는 것이 저런 상황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내 모습은 아니겠지. ……아니길 바랐다.

아직도 남아 있는 문은 많았다. 그중에 내가 상처받았던 기억을 빨리 찾기를 바랄 뿐이었다. 심장이 불안과 공포로 두근거렸다. 하지만 이대로 멈춰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한시라도 빨리 울리세와 집사님을 데리고 산장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잠시 실소가 나왔다. 울리세의 걱정이 맞았다. 여행 중 이런 일이 생긴 게 벌써 세 번째다. 두 번이면 아직 우연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세 번이면 어떤 문제가 있는 게 맞다. 안전히 되돌아가면 바로 저택으로 가 여행의 이응 자도 보지 않는 게 좋겠다.

“후…….”

일단은 지금 이 상황의 타개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성을 굳게 무장하고 문을 열어젖혔다. 그곳에는 역시나 잊을 수 없는 다정한 추억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행복한 나날. 안전하게 보호받던 나날.

그러나 대부분의 문 안에는 내가 찾는 것이 없었다. 기억, 그것이 도대체 어떠한 형상으로 있는지는 모르겠다. 수많은 기억에 괴로워하는 와중에도 무언가 눈에 띄는 게 없었다.

“요셉, 우리가 너를 보호할 거야. 우리는 네 형, 누나고 너를 보호할 책임이 있어.”

“…….”

“걱정하지 마. 이제는 우리가 있으니까.”

나는 괴롭게 눈가를 찡그리며 몸을 돌렸다. 병원의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나는 볼품없었다. 방치된 어린아이는 울듯이 웃으며 새로운 보호자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간절히 바랐지만, 바랐던 사람은 그들이 아닌 부모였기에 기쁨과 절망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도망치듯 밖으로 나온 나는 토하듯 크게 기침했다.

“콜록, 콜록. 켁, 케헥.”

눈물이 찔끔 나온 것을 문질러 닦았다. 거실의 거울에 비친 내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두 개의 문이었다. 저택의 문과 평범한 나무로 만들어진 문. 나는 뒤늦게 저 나무 문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극렬한 거부감에 손이 떨렸다. 그 안에 뭐가 있을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끼이이.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렸다. 손을 대자마자 얼른 들어오라는 듯, 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는 듯, 늦게 돌아온 나를 탓하듯. 도살장에 끌려가는 동물처럼 비틀비틀 문 안으로 들어갔다.

퀴퀴한 냄새. 어두침침한 방. 아이를 위한 작은 침대.

“……으.”

그곳에 웅크려 있는 지쳐 보이는 어린아이. 초췌한 그 몰골은 어린아이에게서 보이면 안 되는 비정상적인 모습이었다. 그리고 내가 도망쳤던 과거의 기록과 놀랍게도 흡사했다.

“엄마……. 아빠…….”

그것은, 나였다. 일주일간 홀로 집에 남았던 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방치한 것이 아니었다.

사고였다. 부모님은 잠시 나를 두고 외출했다. 두 분은 사이가 좋았고 그저 잠시 물건을 사러 갔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차가 왜인지 통째로 귀신처럼 사라진 것이다.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몰랐고 그렇게 어린아이는 방치되었다.

사람이 드문 산길 아래로 추락한 차는 그로부터 일주일 후 발견되었다. 물론 내 부모님 또한 추락의 충격으로 돌아가신 채 그 차 안에 방치되어 있었다.

나는 운이 정말 좋지 않았다. 그 일주일은 학원도 학교도 쉬는 방학이었다. 형과 누나는 이미 독립해 서울에 있었고 연락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었다. 부모님은 이웃과 자주 교류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렇게 어린 나는 집에 방치되었다. 나는 형, 누나의 전화번호를 몰랐다. 119나 112에 신고라도 했었으면 좋았을 텐데 어린 나에게 그것은 다치거나 무서운 사람이 오면 전화하는 번호였다. 오지 않는 부모님을 찾을 때 거는 번호가 아니었다.

그 당시의 나는 하루하루 부모님을 기다리며 말라갔다. 말을 잘 듣는 소심한 어린아이란 그렇게 멍청했다.

“배고파. 언제 와…….”

갑작스러운 허기짐이 내 배를 잠식한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가, 아가리를 벌리고 나를 집어삼킨다. 극심한 외로움, 고통, 자책. 음울한 기운이 떨어지지 않고 나를 스멀스멀 녹여 소화한다.

“내가 잘못했어…….”

어린 내 목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온다.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갔다. 나는 거의 기듯 어린 나에게 다가갔다. 그 누구도 탓하지 않는 과거의 나에게.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가장 위로가 필요한 나를 껴안는다. 내가 가장 원했던 말, 가장 갈구했던 말.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그러자 굳게 닫혔던 방문이 환한 빛을 뿜으며 열렸다. 그곳에는 익숙한 형과 누나가 있었다. 내 뇌리에 박힌 말이 그들의 입에서 다시 한번 흘러나왔다.

“네 탓이 아니야. 그냥…… 두 분은 운이 나빴던 거지.”

어느새 내 품 안에 있던 어린아이는 사라지고 그들의 앞에 훌쩍이는 어린 내가 있다. 나는 누나와 형에게 구조되어 지낸 이후로도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 누구도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말을 하지 않았기에.

“맞아, 요셉. 아무도 너를 탓하지 않아.”

“너는 어서 건강하고 튼튼하게만 자라줘.”

“그래. 그러니까 우리가 있는 거지. 괜찮아.”

그들의 표정은 부드러운 말과는 달리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어릴 때는 그런 모습에 겁먹기 일쑤였다. 하지만 점점 자라고, 의지하고 지내면서 그들이 나를 그들만의 방법으로 사랑하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내게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을 알았다.

어린 내가 형과 누나에게 달려든다. 그들은 조금 당황하면서도 나를 어색하게 껴안아 준다. 그들은 애정 표현에 어색했다. 하지만 내가 먼저 하면 절대 거부하지 않았다.

“형, 누나…….”

어린 내 목소리가 아스라이 사라져 갔다. 누나와 형도 연기처럼 점점 흐릿해져 사라지려 했다. 나도 모르게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두고 사라져 버렸고, 그 자리에는 동그란 진주가 한 알 남아 있었다.

메추리알만큼 큰 진주알. 그것을 보자마자 바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찾고 있었던 기억이라는 것을. 인어가 원하는 기억이란 이것이었던 모양이다.

옅게 반짝이는 진주에 손대길 몇 번이나 주저했다. 그 시리도록 빛나는 진주는 내 아픈 기억이었기에.

떨리는 손으로 겨우 잡은 진주는 손이 얼어버릴 듯 차갑기도 했고 훈훈하게 열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진주를 손에 대자 익숙한 아이템 창이 떠올랐다. 평소와 같이 무시하려고 했으나 씌어 있는 내용에 인상을 구기며 볼 수밖에 없었다.

[기억의 진주를 얻었습니다!]

[기억의 진주 스트레스: 특정 기억을 저장한 눈물. 상처에서 자라난다. 사용 시 저장된 기억을 감상할 수 있다.]

[기억의 진주 스트레스 +100]

감상할 수 있다고? 카메라 같은 건가? 내 기억을 달라고 하기에 통째로 주나 했더니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상처에서 자라난다니 좀 기분이 이상하네. 그런데 왜 스트레스가 100이나 올라가는 걸까? 왠지 기분이 나빴다.

인상을 찡그리며 기억의 진주를 주머니에 단단히 챙겨 넣고 문을 열어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어떻게 돌아가야 하지?”

기억, 그러니까 진주를 얻었으니 이 장소에는 그만 머물러도 괜찮은 거 아닌가? 하지만 나는 여전히 거실에 있었다. 아직 모든 문을 다 열지 않아서 그럴까. 열리지 않아 들어가지 못했던 저택의 문이 생각났다.

“안 열렸었는데…….”

진주를 얻기 전, 저택의 문에도 여러 번 들어가려고 했었다. 그러나 맨 처음과 같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지금 당장 그 문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강렬히 들었다.

나는 터덜터덜 저택의 문 앞으로 걸어갔다.

여전히 문은 웅장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나는 별 기대를 하지 않은 채 신중히 문에 손을 올렸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문에 접촉하려니 매우 조심스러워졌다. 맨 처음 아무렇지 않게 손을 올린 내가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어?”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처음과는 달리 기름칠이 된 듯했다. 문 안쪽은 어두컴컴해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이제 남은 문은 여기밖에 없었다. 홀린 듯 발걸음이 안쪽으로 향했다. 검고 일렁이는 길. 안개 속을 지나가는 듯했다.

한참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아니, 앞으로 나아간 게 맞을까? 사방이 어두우니 엉뚱한 곳으로 나아간 것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

그래도 다행히 앞에 빛이 살그머니 보였다. 눈이 아프지 않을 정로도 약했던 빛은 어느새 쨍해졌고, 결국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눈꺼풀 뒤로도 비치는 강렬한 빛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살랑이는 바람이 내 볼을 간지럽혔다. 눈을 떠도 괜찮다고 달래는 듯한 그 느낌에 눈을 살며시 떴다.

“와아…….”

그곳에는 너울거리는 푸른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알록달록한 야생 들꽃과 청명하고 높은 하늘까지.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리고 과거에는 본 적이 없는 광경이기도 했다.

감탄을 금치 못하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아주 익숙한 보라색의 머리칼이 보였다. 반가운 모습이었지만 그것이 환상이란 것을 알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기로 결정했다. 내 몸을 뚫고 나간 형과 누나는 정말이지 끔찍한 기분을 들게 했으니까.

“누구지?”

하지만 예상과 달리 천천히 다가가자 집사님이 날카로운 기세를 내뿜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당황해서 내 뒤를 보았지만 이 아름다운 풍경에 있는 존재는 나와 집사님뿐이었다. 의아한 채로 다시 집사님을 보았는데 그는 계속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누구냐고 물었다.”

차가운 목소리는 분명 누군가를 향해 묻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누구에게? 내가 보지 못하는 무언가가 이 자리에 있는 걸까. 나는 의아함에 내 말을 듣지도 못할 집사님에게 중얼거렸다.

“집사님?”

“집사? 누굴 부르는 거지?”

“내 말이 들려요?!”

집사님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았다. 정말 내 말이 들리는 모양이다. 나는 황급히 뛰었다. 빼곡한 수풀이 발을 옮기기 힘들게 만들었지만 나를 멈출 수는 없었다.

후다닥 다가가자 집사님이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더 가까이 다가가 그의 팔을 덥석 잡았다. 내 손은 통과되지 않았다.

“진짜 잡히네!”

“무례하군! 놓아라!”

마치 벌레를 털어버리듯 팔을 휘두르는 집사님은 너무나 낯설었다. 그가 나에게 온갖 나쁜 말을 하며 험하게 굴었을 때도 이런 식으로 취급하지는 않는데. 심지어 내가 그에게 상처를 입었던 그때도 그는 나를 이렇게 취급하지 않았다.

“……집사님 아니에요?”

“네가 말하는 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집사 같은 것이 아니다.”

그의 눈에는 경멸과 혐오가 깃들어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꿈속의 그 사람일까. 집사님과 똑같이 생겼지만 전혀 다른 위치에 있던 그 사람. 후보자라고 불리는 그 사람.

“그, 그럼 혹시 후보자…… 님이세요?”

“……그래.”

자신의 옷을 툭툭 터는 이름 모를 후보자님을 뚫어져라 살폈다. 무례인 것은 알았지만 너무나 신기했기 때문이다. 집사님과 놀랍게도 흡사한 모습. 머리카락, 눈동자 색을 비롯해 생김새까지. 모든 것이 똑같았다.

다른 것은 성격뿐인가. 아니, 어떻게 보면 집사님도 성격이 좋다곤 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도플갱어 같은 걸까? 그보다 애초에 이 사람은 내 꿈에서만 나오는 사람이었는데. 지금 이 상황은 뭐지?

“무례하기 짝이 없군.”

“아, 죄송해요.”

인상을 찡그리는 모습까지도 집사님과 판박이였다. 하지만 더 살펴보면 기분 나빠하겠지. 나는 시무룩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가 집사님이 아닌 것을 알지만 역시 기분이 이상했다. 집사님은 나에게 얼굴을 보아도 괜찮다고 했기 때문이다.

“제가 아는 사람이랑 닮아서…… 신기해서 그랬어요. 죄송해요.”

“……닮았다고? 그 사람이 혹시 집사인가?”

“네.”

후보자님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어색함에 주절주절 이야기를 시작했다.

“집사님은 요리도 잘하고, 청소도 잘하고, 옷도 잘 만들고요. 심지어 치료도 잘하세요. 얼마나 능력이 좋은지……. 게다가 마법도 잘하는 것 같고 아마 검도 잘 다룰 거예요. 진짜 왜 집사를 하는지 모르겠다니까요?”

“…….”

“심지어 생긴 것도 너무 엄청나요. 그…… 후보자님하고 완전 똑같이 생겼는데 본인 얼굴 잘 아시죠? 거울로 볼 테니까. 정말 잘생겼어요. 맨날 나갈 때면 선글라스를 끼지만. 그걸 껴도 잘생긴 게 가려지지 않아요.”

한참을 집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중얼거렸지만 후보자님은 안색 하나 바뀌지 않았다. 결국 어색한 공기는 나아지지 않았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 이 공간에 남아 있을 필요는 없다.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는 것 같지도 않았다. 자리를 뜨기 위해 뒤를 돌아보니 내가 들어온 문이 멀쩡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이름이 뭐예요?”

마지막으로 내 꿈에 자주 나온 이 후보자님의 이름을 좀 알고 싶었다. 언제나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떠받들어지면서 이름을 불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신문도 안 보는 건가?”

“보는데요?”

그는 마치 멍청한 존재를 보는 듯한 얼굴을 했다. 그 얼굴은 한심하게 나를 쳐다보던 집사님과 한 치도 다르지 않아서 이제는 반갑기까지 했다. 지금 집사님은 창백하게 잠들어 있다. 어서 돌아가서 집사님과 울리세를 구해줘야 하는데.

“내 이름은 울리세다. 신문만 보아도 알 수 있을 텐데.”

“네?”

울리세?

“울리세라고요?”

“무슨 문제라도?”

나는 당황해서 그를 보았다. 하지만 그 태연한 얼굴은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울…… 리세라는 이름이…… 흔한가요?”

“하.”

그는 크게 분노하며 노기 띤 웃음을 뱉었다. 노여움 가득한 얼굴에 나도 모르게 한 발자국 그에게서 떨어졌다.

“흔할 리가. 너는 나를 우롱하기 위해 그러는 건가?”

“제가 왜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하, 그럼 그 멍청하고 조그마한 머리통에 똑똑히 새겨 넣어라.”

뚜벅, 그가 걸어와 내 이마를 툭툭 쳤다.

“울리세란 증오받는 자라는 뜻이다. 흔할 리가 없지.”

그럴 리가. 그런 이름을 아이에게 줄 사람은 흔하지 않다.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 울리세는, 눈앞의 남자는, 울리세와……?

[너무 많이 봤네에.]

물속에 울리듯 윙윙거리는 인어의 목소리. 흐려지는 눈앞. 눈앞의 남자가 조금 당황해하는 것이 부연 시야로 보였다. 왜 당신의 이름이 울리세지? 당신은 현실의 내 아이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하지만 그 모든 의문은 입 밖으로 내뱉어지지 못했다. 눈을 깜빡이자 인어를 만났던 그 공간이었다.

“으…….”

현기증이 이는 머리를 쥐어 잡고 흐린 눈으로 다급하게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직 자신을 울리세라 말하는 후보자님과 이야기할 것이 있었기에. 하지만 이리저리 엉켜 살아 있어 보이지 않는 사람들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왔구나아.”

인어는 흐물거리며 나를 반겼다. 하지만 후보자님의 이름을 들은 충격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무슨 일인 거지. 대체 나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걸까. 내가 도대체 무엇을 모르고 있는 걸까. 이 세계의 비밀은 대체 뭐지?

“우수 플레이어니임?”

“아.”

내 어깨를 쿡쿡 누르는 인어의 손가락 때문에 따가웠다. 그의 손에는 날카로운 손톱이 비죽 나와 있었다. 그 아픔 덕분에 나는 상념에서 깨어 나올 수 있었다. 인어는 부루퉁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보았다.

“미, 안해요.”

“기억은?”

나는 주머니에 얌전히 있던 진주를 건네주었다. 인어는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쁨을 드러내며 진주를 양손으로 조심스레 가져갔다. 그러곤 신나게 그것을 보더니 사탕처럼 꿀꺽 삼켰다. 어쩐지 그 모습이 기분 나빴다.

“맛있다, 맛있어어어. 역시 네게 말하길 잘했어어.”

“그보다…… 그, 아까의 그건…….”

“네가 원하는 건 저 둘이 깨어나는 거지?”

인어는 내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울리세와 집사님을 가리켰다. 그랬다. 일단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울리세와 집사님이었다. 꿈에서 자신이 울리세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아니라. 나는 둘을 잊어버린 것에 큰 죄책감을 느끼며 고개를 흔들었다.

“자, 여기 있어.”

인어의 눈에서 커다란 눈물이 굴러떨어지자 그가 그것을 손으로 받아냈다. 액체라고 생각한 눈물은 손에 떨어지자 진주로 굳었다. 내가 준 것과는 다른 평범한 크기의 진주였다. 건네받자 아이템 창이 떠올랐다.

[하수인의 눈물 x1

: 권태와 고독으로 지친 하수인의 눈물. 사용 시 대상자의 상태 이상을 회복할 수 있다. 사용하면 사라진다.]

“잠깐, 이건 한 명한테만 사용할 수 있잖아요!”

“응. 괜찮아.”

“괜찮긴 뭐가요! 울리세랑 집사님은 두 명인데!”

버럭버럭 화를 내자 인어는 느긋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무슨 문제가 있냐는 듯한 그 태평한 모습에 부글부글 화가 끓었다. 내가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자 인어가 나긋나긋하게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아. 깨어날 거야.”

“그걸 어떻게 믿어요!”

“안 깨어나면 내가 하나아 더 줄게에.”

진작 그렇게 말할 것이지. 나는 겨우 진정하고 눈물을 손에 들었다. 그런데 인어의 눈물이 아니라 하수인의 눈물이라니. 이 아이템의 설명대로라면 저 인어는 악마는 아닌 것 같다. 하수인이라고 써 있으니 악마의 하수인인가?

그런데 권태와 고독이라니. 아이템의 설명이 어딘가 조금 쓸쓸했다.

하지만 그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나는 아이템을 고민 없이 울리세에게 먼저 쓰기로 했다. 모든 위급한 상황은 노약자가 우선으로 구출되어야 하니까. 집사님에게 죄책감이 들었지만 깨어나지 않는다면 인어가 하나 더 주기로 했으니 괜찮을 거다.

[아이템을 ‘울리세’에게 사용합니다.]

환한 빛이 울리세에게 깃들었다. 손에 있던 눈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울리세가 깨어나지 않을까 초조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며 한참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걱정이 무색하게 울리세의 손이 까딱였다.

“으…….”

그런데, 집사님 또한 신음을 흘리며 정신을 차리는 듯했다. 인어의 말이 맞았다. 나는 아이를 챙길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울리세와 집사님이 눈 뜨는 모습을 보았다. 인어를 뒤돌아보자 그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거봐, 한 개면 충분하다고 했잖아아.”

인어의 말이 귓가에 계속해서 맴돌았다. 어째서, 어째서? 왜 울리세에게 쓴 아이템이 집사님에게도 적용이 되는 거지? 하지만 생각은 길게 이어나가지 못했다. 울리세와 집사님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급하게 뛰어가 그들을 부축했다.

“울리세, 집사님. 괜찮아요?”

그들의 이마에 손을 올려 온도를 확인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가질 따스한 온기를 점차 되찾고 있었다. 다행이다. 나는 복받쳐 오는 감동을 이기지 못하고 그들을 껴안고 말았다. 양팔에 가득 들어오는 그들이 너무나 고맙기 그지없었다.

“요셉…….”

“요셉 님?”

둘은 내 갑작스러운 포옹에 놀란 듯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세게 껴안은 후 놓았다. 그들이 잠에 죽은 듯이 잠겨 있던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수많은 세월이 지난 기분이 들었다. 나를 보며 싱글거리는 인어는 만족스러워 보이기도 했고 어딘지 기대 어린 모습이기도 했다.

나는 바들거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이제 만족했으면 우릴 내보내 주세요.”

“흐음, 어떻게 할까아.”

인어는 손톱을 틱틱 튕기며 고민하는 듯했다. 그냥 내보내 주면 될 것을 왜 이렇게 붙잡고 있는 거지. 아마도 그의 눈에는 내가 재미있는 장난감으로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가 원하는 것을 주었다. ……나에게 저 인어가 재미있다고 느낄 기억이 또 있는 걸까. 아니라고 믿고 싶다. 아니길 바란다. 과거의 기억을 유령처럼 지켜보는 그 기분은 가장 최악의 경험으로 자리 잡았으니까.

“좋아, 내보내 줄게.”

인어는 웃으며 박수를 한 번 쳤다. 그러자 그의 옆에 동그란 문이 생겼다. 기차에서 괴물이 빈사 상태에 빠진 후 나타났던 문과 흡사했다. 그러나 나는 기억의 진주를 얻기 위해 하나하나 열어봤던 그 문들이 먼저 생각나 잠시 거부감이 들었다.

기차의 문과 같은 것이라면 아마 밖으로 나가는 문이겠지. 어쩐지 나는 아직도 제정신을 못 차린 울리세와 집사님을 부축해서 문으로 향했다. 인어는 그런 나를 빤히 보며 손을 흔들었다.

“잘가아.”

“…….”

인사에 마주 대답할 힘은 없었다. 사람 두 명을 부축하며 가는 건 많은 체력을 소모했다. 낑낑거리며 문을 통과하기 직전, 인어가 순식간에 다가와 속삭였다. 나만이 들릴 아주 자그마한 속삭임이었다.

“일기장을 보는 걸 잊지 마.”

“어?”

내가 돌아보기도 전 인어가 내 등을 세게 밀었다. 집사님과 울리세를 부축하느라 그들을 붙잡고 있던 나는 문 너머로 떠밀렸다. 우리는 젤리처럼 물컹하고도 기묘한 감촉의 통로에 파묻혔다. 아니, 파묻혔다고 생각했다.

느리게 쓰러진 우리는 호숫가의 차가운 눈 더미 위에서 눈을 떴다.

“어라.”

내가 호수에 끌려가고 얼마 지나지 않은 듯했다. 점심쯤에 고기를 구워 먹고 산책을 나왔는데 해는 아직도 중천에 떠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옆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나기 위해 애쓰는 울리세와 집사님을 부축했다.

“괜찮아요? 빨리 집으로 되돌아가요.”

“네, 죄송…….”

“아니에요.”

그래도 처음 쓰려졌을 때보단 다리를 더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인지 부축하기가 좀 수월했다. 하지만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것은 여전했다.

호숫가로 올 때 걸었던 길은 분명 짧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천 리 길과도 같았다. 두꺼운 옷을 입은 탓에 비지땀을 주룩주룩 흘리며 겨우겨우 산장에 도착했다.

집사님과 울리세를 벽난로 앞에 나란히 눕혔다. 몸을 조금 더 따뜻하게 하면 나아질까 싶어서였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맞았는지 집사님과 울리세의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후우우.”

“요셉…….”

“응?”

울리세가 드디어 기운이 났는지 내게 말을 걸었다. 쓰러져 있을 때와는 달리 생기 있는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창백했다. 나는 벽난로에 땔감을 더 던져 넣었다.

“집에…… 가자.”

극심한 피로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호숫가에 가기 전까진 즐겁기 그지없었는데. 악마의 하수인과 악마를 향한 원망이 커졌다. 대체 그놈들은 왜 우리가 여행만 가면 훼방을 놓는 걸까.

빨리 악마가 퇴치되었으면 좋겠다. 무릇 악마라는 것들은 영웅들이 물리치게 마련이지 않는가. 이 세계에도 영웅이 있지 않을까. 좀 더 세계가 엉망진창이 되면 영웅이라는 것이 생길까. 어쨌든 앞으로 악마가 퇴치되기 전까진 여행은 금지다.

“응. 집에 가자.”

울리세는 안심한 듯 눈을 감았다. 집사님은 몸이 회복된 것인지 아까보다 안정적인 자세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나는 그를 저지하고 말했다.

“집사님, 조금 더 쉬세요.”

“아닙니다. 제가…….”

“조금 더 쉬어야 해요. 아까 얼마나…….”

죽은 듯이 쓰러져 있던 둘의 모습이 아직도 망각에 새겨진 듯 선명했다. 다시 공포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들이 죽었다면, 깨어나지 못했다면 나는 이 세계에서 어떻게 지내야 했을까. 부평초처럼 이리저리 헤매거나 혹은 목숨을 끊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내가 이 세계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했다. 내가 버틸 수 있는 것은 울리세와 집사님 덕분이었다. 그들만이 나에게 현실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요셉 님이야말로 쉬셔야 합니다.”

“……전 괜찮아요. 마실 거라도 가져올게요.”

나를 붙잡은 집사님의 손에는 평소와 같은 힘이 없었다. 덕분에 수월하게 손을 빼낼 수 있었다. 집사님은 텅 빈 손을 조금은 황망하게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자신이 정말 멀쩡해졌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그에게 그것 보라는 듯이 웃어주며 자리를 떴다.

* * *

“코코아……. 코코아…….”

기력이 떨어진 사람에겐 단것이 최고다. 다행히 코코아 가루는 찬장에 있었고 나는 냄비에 우유를 부어 끓이기로 결정했다.

“…….”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상념이 내 머릿속을 잠식했다. 꿈속의 그 남자. 자신을 울리세라고 말했던 그 남자. 한 명만 깨울 수 있는 아이템으로 깨어난 두 사람. 분명히 나는 울리세에게 아이템을 사용했다. ‘울리세’에게.

“……그럴 리가 없지.”

우유는 금방 끓어올랐다. 보글보글 우유 끓는 소리가 부엌에 가득 찼다. 하지만 나는 불을 끌 정신이 없었다. 머릿속에 말도 안 되는 가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럴 리가…… 없지.”

울리세에게 사용한 아이템이었는데 울리세와 집사님이 함께 깨어났다. 어째서일까. 그 아이템은 일인용이었다. 어째서 일인용인 아이템이 두 명에게 작용되었는가. 아이템의 오류? 하지만 오류라면 오류 창이 떠올랐을 거다. 자꾸만 머릿속에 일어날 수 없는 가설이 맴돌았다.

두 명이 동일인이라면, 집사님이 울리세라면.

꿈속의 후보자가, 어린 울리세와 동일 인물이라면.

그 후보자와 얼굴이 똑같은 집사님이 동일 인물이라면.

“하하. 요셉, 김요셉아. 정신 차려.”

나는 애써 웃으며 코코아 가루를 냄비에 투척했다. 흰색의 우유가 혼탁한 갈색으로 점점 어그러졌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 둘이 동일 인물일 리가 없다.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망상이었다. 아니, 애초에 한 사람이 둘로 분리되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것도 한쪽은 성인의 모습이고 한쪽은 어린아이의 모습이다. 그런 마법 같은 일이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이 세계는 마법이 현존하는 세계다. 상식 밖의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하, 하하.”

다행히 우유가 넘치기 직전에 냄비의 불을 껐다. 향긋한 코코아 향기가 내 코를 간지럽혔다.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달콤한 냄새였다. 조금 정돈이 된 머리로 다시 한번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꿈속의 그 후보자가 내 작은 울리세와 동일인이란 건 말도 안 됐다. 내가 꿈속에서 보았던 그 모습은 지금과 너무나 달랐다. 못된 시종에게 얻어맞은 처참한 모습의 울리세는 분명 그 후보자의 모습일 거다. 하지만 현실의 울리세는 그 못된 시종에게 얻어맞지도 않았다. 아이의 곁에는 집사님이 있었다.

모든 것이 내 가설과 달랐다. 게다가 아무리 판타지 세계에 마법이 있다고 해도 동일인이 동시에 같은 공간에 있는 건 말도 안 됐다. 차라리 쌍둥이라고 하는 게 나을 것이다.

나는 그제야 안심하고 코코아를 머그잔에 따랐다.

“그래. 아니겠지.”

코코아를 따르며 주변에 튄 방울을 닦아내고 집사님에게 잔을 들고 갔다. 마음속 한구석이 아직도 복잡하게 술렁거렸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계속 생각해 봤자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이었다.

그렇게 나는 상념을 중단했다. 언젠가는 다시 결론을 내야 할 문제인 것을 알지만 지금은 그만 생각하고 싶었다.

* * *

다그닥거리는 소리가 일정하게 들려왔다. 떠나기 전의 마을은 어쩐지 소란스러웠지만 저택에 가기 위해 서두르는 탓에 살필 기력은 없었다.

집사님이 큰돈을 줘 빌린 마차는 돈값을 하지 못했다. 많이 덜컹거렸고 좌석의 재질은 딱딱했다. 평소에 타고 다녔던 것과는 품질이 어마어마하게 차이 났다. 덕분에 엉덩이가 아팠지만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여전히 기차는 운행을 중지한 상황이었고 이 정도를 구한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었으니까. 집사님의 솜씨였다.

“울리세, 엉덩이 아프니?”

“……괜찮아.”

“요셉 님이야말로 괜찮으십니까?”

집사님과 울리세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몇 번쯤 크게 다쳐 쓰러지긴 했어도 그 정도로 약골은 아닌데…….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들은 믿지 않는 눈초리였다.

“얼마나 가야 도착할까요?”

“밤늦게는 도착할 겁니다.”

밤까지는 아직도 까마득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나마 저번의 경험 덕분에 읽을거리라도 챙겨 온 것이 다행이었다.

“어?”

마차에 타기 전 호외라고 나누어 주길래 받았던 신문을 펼치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흑백사진임에도 왜인지 반짝거리는 머리칼을 가진 마태오의 모습이었다. 그는 수심에 빠진 사람들을 향해 자애롭게 웃고 있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기사를 읽었다.

[마태오 후보자의 놀라운 행보! 울펜스 지방의 악마를 물리치다!

울펜스 지역의 호수는 크고 아름다워 사람들의 산책 경로로 유명하다. 다만, 그 누구도 그 호수의 바닥에 잠든 실종자가 있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호수의 바닥에 있는 악마는 희생자들을 불러 모았고 그들을 잠에 빠지게 만들었다. 희생자들의 나이대는 다양했고 숫자는 수백에 가까웠다.

‘모두 신의 도우심이 분명합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마태오 후보자는 그 어떠한 자랑도 하지 않고 덤덤히 말했다. 그야말로 사제에 가까운 경건한 모습이라고 모두가 입을 모았다.

마태오 후보자는 그 악마를 신성력으로 퇴치한 후 희생자들을 기적적으로 도왔다.

희생자 중에는 매우 오랜 시간을 잠들어 있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을 보살필 보호자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교단은 그런 사람들을 모두 책임지고 보살피겠다는 성명을 냈다.]

“……악…… 마.”

떠나기 전 마을이 소란스러웠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마태오가 물리친 악마라는 것은 아마 하수인을 말하는 거겠지. 대체 어떻게 그 호수에 있는 하수인을 안 걸까. 대체 어떻게? 소년이 울펜스 마을에 온 것은 이 일 때문이었던 걸까? 그 아이 또한 나처럼 그 공간으로 끌려갔던 걸까.

소년은 나와는 달리 하수인을 물리칠 능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벌벌 떨면서 울리세와 집사님을 깨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다였는데…….

나는 마법을 쓸 수 있단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또, 사실 힘을 쓸 수가 있다고 해도 그들이 깨어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게다가 조절 안 되는 내 힘으로 인어를 죽일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다시 생각해 보면 공격하려다가 제압당할 것이 뻔했다. 다음에는 어떻게든 공격할 수 있게 훈련을 해야겠다. 어쨌든 모두 잘 해결되어 다행이었다.

혹시 몰라 다른 페이지도 살피자 흐말렌이라는 도시는 출생신고가 없어 아이가 울지 않는 도시라는 내용이 있었다. 나와는 별 관련 없는 곳이기에 신문을 접었다.

“하아아…….”

그러나 어쩐지 조금 혀끝이 씁쓸했다. 그들은 모두 현실에 절망해 환상 속으로 도피한 사람들이었다. 하수인에게서 구출은 받았지만 그것이 그들의 행복일지는 조금 의문이다. 현실을 마주하는 것도 그들에게 그럴 힘이 남아 있을 때의 이야기니까.

“왜 그러십니까?”

맞은편에 앉은 집사님이 내 모습을 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뇨. 그냥…… 이거요.”

집사님에게 신문을 건네주었다. 기사를 읽는 집사님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러고 보니…… 요셉 님에게 말씀하지 않았던 것이 있군요.”

“네? 뭐가요?”

집사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내 손을 부드럽게 쥐었다. 그 손을 옆에 있던 울리세 또한 함께 잡았다. 그 둘은 꼭 닮은 다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고마워…….”

“뭘, 뭘요.”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손을 빼려고 했다. 그러나 집사님은 전처럼 나를 쉽게 놔주지 않고 진득하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나는 그들의 손에 잡혀 새빨개진 채로 가만히 있었다. 참으로 기뻤지만 낯 뜨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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