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시 후 엘리엇은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몸이 뜨겁고 가랑이가 뻐근했다.
“이게 무슨….”
나른한 열기는 주로 사타구니에서 가랑이 구멍으로, 그리고 등줄기를 타고 전신으로 퍼졌다.
“후우.”
뭔가 이상했다. 정도에 있어서 훨씬 약하긴 하지만 꼭 아편 팅크를 마셨을 때와 같았다. 그때 엘리엇은 제가 마시고 남은 두통약 병을 들어 다시 냄새를 맡았다.
“빌어먹을.”
익숙하다 싶었더니, 아편 팅크와 향기가 비슷했다. 그러자 아서 놈이 했던 야릇한 말도 이해가 갔다.
‘내 방은 복도 반대편 끝이야.’
“개자식!”
사기꾼 자식이 어떤 짓을 한지 몰라도 약병을 바꾼 게 분명했다. 그리고 마시지 않겠다는 말로 엘리엇을 부추겼다. 마시라고 권했다면 절대로 마시지 않았을 텐데.
“젠장! 젠장!”
화를 내도 이미 늦었다. 사타구니는 눈에 띄게 부풀었고 가랑이 속에 자리 잡은 은밀한 입구는 벌써 간질거렸다. 혼자서 해 봐야 소용없음을 두 번의 달갑지 않은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서성이던 엘리엇은 창밖에 시선을 던졌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늦은 오후였다. 사람들은 아직 한창 야외 만찬을 즐기고 있었고 수시로 새 음료와 음식을 채우는 하인들의 분주함으로 보아 만찬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그래도 서둘러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
이를 박박 갈면서 엘리엇은 벽장에서 실내용 상의를 급하게 꺼내 걸쳤다. 벌써 나른하고 걸음이 휘청거렸다. 사타구니 사정은 더했다. 상의로 가리지 않으면 지나가는 하인들에게 다리 사이의 사정을 들킬 게 분명했다. 이런 상대로 저녁 만찬에 참석할 순 없었다.
급작스러운 감기 핑계로 방에서 쉬어도 좋겠지만, 노스필드 백작의 성정을 미루어 보건대 그것도 위험했다. 분명히 의사를 불러서 자세한 진단을 받게 할 터였다. 그러면 아랫도리의 사정이 의사를 비롯한 백작, 혹은 집사 등 여러 사람에게 알려질 공산이 컸다.
“지금 빨리 풀어야 해.”
자지만 잡고 흔들어서 해소하기 힘든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아마도 구멍을 쑤시면서 난잡한 짓을 해야 간신히 풀리리라. 스스로 구멍을 만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이런 쪽의 자위 도구가 방에 있을 리 만무했다. 혼자 한다손 치더라도 뭐를 어떻게 쑤셔야 할지도 막막했다. 잘못하다가 더한 참사가 일어나서 모든 사람에게 끔찍한 몰골로 구경 당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했다.
초조하게 방을 서성이는 와중에도 사타구니는 더욱 뻐근해졌고 이윽고 허벅지 근육에 부딪히는 이물감과 함께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거칠게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욕설을 뱉었다. 급한 김에 욕실과 화장대를 대충 뒤져 봐도 적당한 길이와 굵기를 가진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신속한 해결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아까 머리통을 날려 버렸어야 했어.”
당장이라도 놈의 멱을 따고 싶지만, 아무리 음탕한 성향이 있다고 해도 시체에 올라타는 건 싫었다.
일단은 하고 난 뒤에 목을 졸라 버리겠다고 다짐하면서 놈의 방으로 향했다.
아서가 사용하는 방의 문은 약간 열려 있었다. 놈은 분명히 이 상황을 예측했다. 문을 박차고 들어간 엘리엇은 꽤 강한 어조로 놈을 불렀다.
“아서, 이 빌어먹을 자식아!”
“음?”
막 사냥용 외출복 벗고 있던 놈이 돌아봤다. 막 셔츠를 훌렁 벗은 아서는 제 물건만큼이나 흉악스러운 상체 근육을 드러냈다. 차라리 잘되었다. 처음부터 목적은 명확했다.
탕.
문을 후려쳐서 닫자마자 엘리엇은 곧장 그에게 달려들었다. 떠밀려 균형을 잃은 놈은 두 팔로 엘리엇을 잡은 채로 뒤로 쓰러졌다.
“엇! 엘리엇?”
털썩.
바로 뒤에 있던 침대가 두 사람을 받아 냈다. 엘리엇은 손으로 놈의 어깨와 흉근을 긁으면서 위협했다. 손에 점점 힘이 빠졌기 때문에 아서의 질긴 가슴 피부 위엔 흔한 손톱자국도 남지 않았다. 시시각각 약효가 강해졌다.
“개자식아. 이럴 줄 알고 있었지?”
“뭐, 어느 정도는.”
“약을 바꿔치기하다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결백해.”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거지?”
“이렇게라니?”
알면서도 놈은 얄밉게도 모르는 척했다. 빙글빙글 돌려 봐야 입만 아플 뿐이었다. 엘리엇은 놈의 손을 잡아다 제 사타구니에 대었다. 놈의 손이 딱딱한 성기에 닿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이것 말이야, 아서.”
낮게 신음하면서 다리를 벌린 엘리엇은 제 사타구니가 아서의 사타구니에 닿게 했다. 그 사이를 가르는 건 아서의 손뿐이었다. 갈퀴처럼 단단한 손아귀가 제 성기를 비틀어 짜 주길 바랐지만, 아서는 그러지 않았다.
“그 약도 백작의 특제 두통약일 거야. 로드니아에 있는 의사들은 두통약에 아편을 섞거든.”
“또 사기꾼처럼 거짓말만 해 대는군.”
“못 믿겠으면 하인을 불러서 확인해 줄까?”
아서는 침대 곁에 늘어진 줄을 잡아당기려 했다. 하인에게 신호를 보내는 종 줄이었다.
쭉 뻗은 팔을 다급히 쳤다. 그러면서 엘리엇은 제 밑에 있는 아서의 배를 제대로 깔고 앉아 양손으로 그의 두 손목을 구속했다.
“알고 있었다면 미리 말했어야지.”
“난 분명히 말렸어.”
“너라면 마시지 않겠다고? 훨씬 더 수상하잖아.”
“나를 그렇게 못 믿으니 이런 꼴을 당하잖아. 어쨌든 난 바쁘니 이만 돌아가.”
“뭐?”
이번에는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당연히 좋다고 제 가랑이를 쑤시려 들 줄 알았다. 하지만 아서는 냉랭한 눈빛으로 엘리엇을 옆으로 밀어 냈다.
“우리 거래는 끝났어. 이웃에게 보내는 내 선의의 선물을 넌 모조리 짓밟았어. 그런데 내가 네 부탁은 왜 들어줘야 하는 거지?”
멍한 채로 놈을 바라보았다. 뭔가 받아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난 더럽고 냄새나는 수퇘지일 뿐이잖아. 사생아였다가 오늘부로 주정뱅이의 아들로 격상하긴 했지만. 뭐, 별반 다르진 않군.”
침대에서 엉덩이를 뗀 놈은 화장실로 향했다.
“네가 이렇게 만들었잖아.”
문을 연 채로 수도꼭지를 열어 물을 흘리면서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편은 이성과 감각을 누그러뜨릴 뿐이야. 네가 드러낸 본성은 어디까지나 네 탓이지. 그리고 마시지 말라고 했던 내 말을 무시하고 아편이 든 약을 먹은 건 그쪽일 텐데.”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침대에 누운 채로 엘리엇이 그를 향해 물었다. 수건에 물을 적신 그는 그걸로 제 얼굴과 목, 상체를 꼼꼼히 닦더니 뒤를 돌아봤다.
“정중하게 부탁해 봐.”
“뭐라고?”
“네 처지에 맞게 무릎 꿇고 간절히 애원하면 생각해 보지.”
차라리 몸싸움하고 강압적으로 다리를 벌리는 편이 나았다. 빌어먹을 개자식에게 예의 바르게 부탁하라니. 죽었다가 살아나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그럴 것 같아? 순순히 하기 싫다면 싫다고 해.”
“맞아. 네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 않아. 네가 내게 퍼부었던 갖은 모욕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 아닌가.”
역겨운 조건이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안 하고 돌아가기도 싫었다. 엘리엇은 성적 쾌락에 놀랄 만큼 약했다. 본인도 최근에야 깨달았다. 아편 약간만 있으면 어디서든 음마로 돌변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어쩌길 바라는 거지? 무릎 꿇고 빌라고?”
수건은 세면대에 처박은 아서는 돌아서서 세면대에 엉덩이를 기댔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사타구니가 앞으로 돌출되었고 특별히 발기하지 않아도 우람한 형태를 자랑하는 음경이 강조되었다.
“그게 다가 아니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구음을 해 봐. 입에 넣기 전에 제가 글래스턴 씨의 사타구니를 빨아도 되겠습니까? 라고 묻는 것도 좋군.”
“변태적인 망상이 지나쳐.”
너무 황당한 얘기를 들으니 화도 나지 않았다. 아편 효과 덕분이기도 하지만 엘리엇은 그저 평온하게 미소 지었다.
“잘난 로드니아의 의사들은 아편을 먹일 줄만 알고 고객의 정신 상태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없나? 아무래도 정신이 이상한 것 같은데.”
엘리엇이 덤덤하게 대꾸하려고 애썼다. 이미 누운 침대에선 익숙한 남자의 냄새가 났고 그것이 지난 경험을 자극하면서 기분을 더욱 고양시켰다. 엘리엇은 천천히 구두와 바지를 벗어 던졌다. 누운 채로 꿈틀거리면서 속옷마저 벗어 던진 다음 다리를 아서를 향해 벌렸다.
“구음 대신 이건 어때?”
한껏 부푼 성기를 한 손으로 배 쪽에 착 눌러 붙였다. 제가 만지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보다는 난폭한 남자가 필요했다. 거칠고 사납게 자신을 몰아붙일 수 있는 개자식이.
“아서.”
고환이 위로 올라붙었다. 회음이 당기는 기분이 짜릿했다. 다른 손으로는 엉덩이 한쪽을 잡아당겼다. 간질간질한 부위가 공중에 드러나면서 솜털이 바짝 섰다.
“애석하게도 난 이가 멀쩡하거든. 네 자지를 입에 넣었다가 깨물어 버리지 않을 자신이 없어. 하지만 이쪽은… 훨씬 얌전하고 귀여운데.”
경악을 금치 못할 저질스러운 말을 하면서도 엘리엇은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아편은 절제력을 느슨하게 풀면서 동시에 수치심을 없애버렸다. 보란 듯이 구멍 언저리를 손가락으로 덧그리자 그 광경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상대가 손을 들어 제 입을 가렸다. 눈썹이 꿈틀거렸고 검은 눈에 위험한 빛이 감돌았다. 과감한 유혹이 효과가 있었다.
“넌 정말… 못 말리는 악마야. 엘리엇.”
“그거 기분 좋은 찬사로군.”
엘리엇은 제 음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가 풀기를 반복하면서 손가락으로 땀으로 습해진 회음을 쭉 그어 내렸다. 검지로 몇 번이고 드나들었던 입구를 긁어 대자 아서는 더는 참지 못했다. 아까부터 부푼 사타구니가 당장 터질 기세였다.
“연고는?”
그런 건 없다고 딱 그으려던 아서는 결국 세면대 곁에 붙은 작은 벽장을 열었다. 그 안에 적당한 연고가 있었다. 그걸 본 엘리엇이 입술을 비틀었다.
“처음부터 그럴 속셈이었군.”
“사냥 대회잖아. 숲과 풀밭을 뒹굴다 보면 생채기가 생기기 마련이야.”
“숲 입구에 서서 몰이꾼이 날려 보낸 새를 향해 엽총만 쏘면 되는 줄 알았는데.”
핀잔에 답하기 위해 아서는 제가 이것을 챙긴 이유를 떠올렸다. 아니, 떠올리려고 했는데 논리적 근거를 찾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상처 입을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 약통을 꺼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연고를 따로 준비한 의도만큼은 분명히 숲을 돌아다니면서 입을 상처를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배에 있을 때야말로 매번 밧줄에 손에 물집이 생기곤 했는데 그때는 약을 딱히 챙기진 않았다. 왜 이걸 챙겼던 거지?
“음흉한 놈.”
약에 취한 엘리엇이 음탕한 자세로 아찔하게 웃었다. 그는 이미 제 음경을 쓰다듬다 못해 기어이 덜 젖은 구멍에 검지 하나를 집어넣었다.
“입구가 쓰라려.”
“연고를 바르지 않은 채로 쑤시니까 그렇지.”
뚜껑을 열면서 다가간 아서는 검지와 중지를 모아 연고를 듬뿍 떴다.
“손 치워.”
엘리엇은 몹시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아름답고 순진한 용모 아래 사악하고 이기적이고 음탕한 영혼이 도사리고 있다니. 이건 분명히 신의 장난이었다.
“흐윽!”
연고를 치덕치덕 바른 손가락을 쑤셔 박는 것만으로도 엘리엇은 목을 뒤로 꺾으며 잘게 떨었다. 스스로 위로하고 있던 음경이 움찔움찔 움직였다. 약을 먹은 후 오래 방치된 게 아니어서 당장 절정에 이르진 못했다. 혹은 두통약에 섞인 아편이라 그렇게 약효가 세지 않든가.
매트리스가 두 겹인 침대는 꽤 높아서 아서가 무릎을 매트리스 옆구리에 대자 엘리엇의 구멍 언저리에 제 음경이 닿았다.
“다리를 활짝 벌려. 그래야 내 자지를 네 벌름거리는 구멍에 쑤셔 넣지.”
“흐읏.”
한 손으로 구멍을 쑤시면서 다른 손으로 허벅지를 꽉 잡아 누르자 엘리엇은 미간을 구기면서 한숨을 토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엽총을 쥐고 아서의 턱을 겨냥했던 나른한 손가락이 핑크색으로 물든 음경에 들러붙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깨끗한 진주색 손톱으로 달뜬 귀두를 긁어 댔다. 음경에 손독이 오를 것 같았다.
아서는 엘리엇의 두 손을 모아 머리 위에 고정했다. 그러자 자세가 더 낮아졌다. 벌어진 허벅지는 아서가 눌러놓은 그대로였다.
“못 참겠어.”
“아플 거야.”
“좋아… 그게… 더 좋아.”
“빌어먹을.”
낮게 욕설을 지껄이면서 아서는 구멍에서 손가락을 뺐다. 제대로 풀리지 않은 구멍에 제 음경의 끝을 맞추고 엘리엇의 허리를 단단히 틀어잡았다.
“큿!”
단숨에 꿰뚫자 엘리엇이 입술을 터트리며 몸을 뒤로 휘청 꺾었다. 부릅뜬 눈에서 충격이, 바들바들 떨리는 턱에서 전율이, 그리고 아서의 어깨를 더듬는 손끝에서 욕망이 느껴졌다.
“아… 아….”
엘리엇이 뭐가 말을 하려고 들었지만 아서는 듣고 싶지 않았다. 지저분한 외설이든 혹은 짜릿한 독설이든 지금 순간에는 방해만 될 뿐이었다.
철퍽. 철퍽. 철퍽.
“큭! 아파… 아프다고! 헉! 아윽! 흑! 아… 서! 흑!”
말 그대로 아파서 더욱 기분이 좋았는지 엘리엇은 딱정벌레처럼 제 상체에 들러붙었다.
“내 것도… 큭! …만져.”
“후… 내가 왜?”
사납게 하체를 흔들면서 엘리엇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러자 입술을 깨문 엘리엇은 직접 제 음경을 만지려 들었다. 아서는 그의 손목을 내려찍어 그러지 못하도록 했다.
“아서… 큭!”
“음탕한 구멍을 쑤셔 주길 바랐잖아.”
“흑! 으윽!”
제대로 풀리지 않은 구멍에서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연고를 많이 쓰긴 했어도 대부분 구멍 안에 발랐을 뿐, 아서의 음경에는 바르지 않았기에 양이 모자랐다. 분명히 찰과상을 입을 터였다.
“아프다고… 아프… 헉!”
아프다고 호소하면서도 엘리엇은 좋다는 듯이 아서의 허리에 감은 다리를 바짝 조였다. 나가는 것도, 들어가는 것도 더욱 힘이 들었고 그만큼 구멍은 빠르게 혹사당했다.
어느 음경이 게걸스러운 구멍을 드나드는 사이 방치당한 음경은 아서와 엘리엇의 배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갔다. 단단하게 힘이 들어간 복근에 툭툭 부딪힐 때마다 달아오른 구멍이 덩달아 움찔거렸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엘리엇은 아서의 목에 이를 세웠다. 이가 깔짝이는 감각이 더욱 김장감을 더했다. 혀끝으로 엘리엇의 경동맥 언저리를 핥다가 이내 귓불을 입술로 빨아들였다.
철퍽. 철퍽. 철퍽.
음란한 소리를 맛있게 빨아들이는 귓구멍에 혀를 집어넣자 엘리엇이 소스라쳤다.
“흑!”
“큭.”
강력한 조임에 아서는 눈앞이 아찔했다.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은 엘리엇은 욕정에 물든 아찔한 눈빛으로 아서를 응시했다.
거친 숨을 쉰 엘리엇은 새빨간 혀로 제 입술을 적셨다. 그리곤 멍청한 질문을 하려는 아서의 입술도 저와 같은 색깔로 물들도록 혀로 적셨다.
“무슨.”
갑자기 멈칫한 아서가 멍하니 엘리엇을 내려다봤다. 꽉 다물린 입술이 꼭 정조대를 한 정숙한 자의 그것 같았다. 엘리엇은 아랑곳하지 않고 혀를 내어 아서의 입술을 갈랐다. 붉은 혀가 이를 훑은 다음에야 아서는 거친 음성을 뱉었다.
“키스… 나와는 안 하는 거… 아니었나?”
“뒷구멍에… 네 자지를 끼우고 있는 상황에… 그게 무슨 상관이야.”
아서는 갑자기 로드니아 의사가 특별히 지어 준 특제 정력제라도 들이마신 것처럼 사납게 허리를 쳐올렸다.
“아앗… 미쳤… 아… 흡!”
느끼는 중에도 너무 고통스러워 항의하고 싶었다. 그러나 엘리엇은 어떤 말도 뱉지 못했다. 입술을 점령한 아서의 뜨거운 혀가 제 혀를 감싸 올렸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위와 아래 모두 아서 글래스턴이었다. 망할.
뜨거운 키스와 함께 정사가 계속 이어졌다. 엘리엇은 타인의 저택에서 다른 남자와 열정적인 항문 성교를 하는 이 상황이 무척이나 부도덕하고 음탕하다는 걸 알았지만, 그 깨달음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커튼을 반쯤 친 채로 열린 창문 사이로 다른 사람의 웃음소리가 들릴 때면 두 사람의 몸은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엘리엇… 이 망할 음마 놈아.”
“닥치고… 더… 아!”
충격적일 만큼 천박한 제 본성에 충분한 고찰을 해 보기도 전에 엘리엇은 아서의 말에 동의하고 말았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역겨운 놈과 뒹구는 것이 이다지도 황홀하다니.
엽총 소리는 한참 전에 끊겼으나 사냥감을 두고 나누는 대화가 길게 이어졌다. 사냥 대회의 진정한 주인공인 백작의 기세를 세워 주느라 찰리는 내내 그의 곁을 지켜야 했다. 백작이 흥이 오른 덕분에 사냥 대회는 저녁노을이 짙게 깔릴 무렵에야 끝났다.
“이제 슬슬 돌아가지.”
하인들은 야외로 가지고 나온 집기들을 정리했다. 귀부인들은 저녁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이브닝드레스로 갈아입어야 했으므로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워낙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자란 찰리는 낯선 사람과의 대화가 쉬웠다. 그들은 약간 엉뚱한 농담을 늘어놓으면 좋다고 박장대소했고 아주 사소한 논란거리를 던지면 열띤 토론을 이어 갔다. 예를 들자면 우유에 차를 부을 것인가, 차에 우유를 부을 것인가 같은.
대신 정치와 경제 얘기는 삼가야 했다. 다들 진심으로 싸우거나 지루하다는 듯이 자리를 뜨곤 했다. 그럴 때면 흩어지는 무리에 끼어야 했고 그건 원치 않는 무리에 끼여서 온갖 바보 같은 막말을 견뎌야 함을 의미했다. 찰리는 그것이 끔찍했다.
적당한 거리, 적당한 농담, 적당한 토론이 좋았다. 속 깊은 말을 털어놓아서 괜찮았던 사람은 엘리엇 데일뿐이었다. 물론 찰리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그의 입담에 넘어간 사람들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
찰리는 다른 남성들과 함께 천천히 저택으로 향하면서 문득 아서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서는?”
“글래스턴은 아까 저택으로 갔어. 뭘 두고 왔다나.”
“그래?”
그에게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다. 하지만 사냥 대회는 앞으로 며칠 더 이어질 예정이었고 시간은 충분했다. 그보다는 아까 속이 좋지 않아 먼저 돌아갔던 엘리엇이 걱정이었다.
“만찬에는 참석할 수 있을까?”
혼자서 만찬장에 있는 것보다는 엘리엇과 함께 참석하는 쪽이 여러모로 덜 부담스러웠다. 시선을 나눌 수도 있고 달갑지 않은 사람과의 대화를 피할 핑계도 되었다.
엘리엇은 상당히 좋은 친구였다. 매력적인 용모에 재치 있는 말솜씨를 지녔다. 신분도 썩 나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야망이 있었다면 찰리에게 부탁해 타운 하우스에서 같이 지낼 수도 있었을 텐데.
“사교 시즌에는 친구 집에서 지내는 사람도 많은데 말이지.”
엘리엇은 지나치게 자존심이 강해 누군가에게 신세 지는 법이 없었다. 제가 누릴 수 있는 삶의 범위에 단단하게 울타리를 치고 그것을 넘어가지도 타인이 침범하게 두지도 않았다.
“이번 시즌에도 초대를 거절할까.”
사냥 대회가 끝나고 겨울 동안 조용한 휴식기가 지나면 2월부터 바로 사교 시즌이었다. 딱 알맞은 결혼 적령기에 이른 찰리는 그때마다 어떻게든 만남을 성사시켜 보려는 초대에 시달려야 했다.
엘리엇이 사교 시즌 동안 같이 어울려 준다면 그런 시시콜콜한 초대를 거절하거나 혹은 조금 더 생산적인 방식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터였다.
“아서 글래스턴, 그 사람도 사교 시즌에는 로드니아에 머무나? 셋이서 같이 어울리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러기엔 아까 야외 만찬에서 둘 사이에 기르는 기류가 묘했다. 독설가인 엘리엇과 만만찮아 보이는 아서의 어린 시절에 뭔가 안 좋은 기억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둘 다 이젠 성인이 아닌가. 게다가 돌아가신 엘리엇의 외숙부가 아서의 양부였다니.
“사이 나쁜 사촌.”
제가 말하고도 찰리는 그럴싸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문득 지루한 사냥 대회에 몰두할 좋은 목표가 떠올랐다. 찰리는 두 사람을 이번 사교 시즌 동안 제 무리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사생아로 낙인찍혔던 아서 글래스턴이 이제는 대단한 거부가 되어서 나타난 시점 아닌가. 악연으로 보이지만 아서 글래스턴은 엘리엇에게 그다지 유감이 없어 보였다. 주로 불쾌감을 드러내는 건 엘리엇이었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둘 사이에 오고 간 시선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둘의 어색한 사이를 잘 해결하면 찰리에겐 좋은 무리가 생길 터였다.
“당장 알몸에 수건 한 장만 두르고 스칸디안 사우나에 들어갈 수 있는 친밀한 관계까진 힘들어도 적어도 같이 차를 마시면서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까진 되겠지. 일단 엘리엇부터 수를 써야겠어.”
찰리는 즐거운 듯 손바닥을 비비면서 엘리엇의 방으로 향했다.
똑똑.
반응이 없었다. 다시 노크해도 조용하기에 조심스럽게 방문을 살짝 열어 보았다. 어두운 방 안에서는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디에 있지?”
노스필드 백작의 저택은 대단히 넓었다. 말이 저택이지 사실상 성에 가까웠다. 어딘가를 산책한다면 찾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터였다. 만찬까지 여유가 좀 있었으나, 찰리도 씻고 쉬어야 했다.
“그럼 일단 아서부터.”
엘리엇과 먼저 의견을 교환하는 편이 좋겠지만, 다시 나타난 옛 동거인을 향한 태도가 좀 냉랭했기 때문에 오히려 아서와 먼저 말을 터놓는 쪽이 빠를지도 몰랐다.
아서의 방은 마침 만난 하인에게 물었다. 방을 찾은 찰리는 이번에도 조심스럽게 노크했다.
“아서? 혹시 방에 있나?”
아까와 달리 안에서 선명한 반응이 있었다.
우당탕 쿵!
“누구지?”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대단히 요란한 소음이 들렸다. 뒤이은 침묵에서는 문밖에 있는 찰리에게까지 당황한 기색이 전달되었다. 쿵쿵 발 구름 소리가 들렸다. 뭔가 느낌이 한 명이 아닌 것 같았다. 먼저 사라져서 이상하다고 여겼는데 혹시?
“찰리 윔즈일세. 혹시 내가 방해한 건가?”
“아니. 잠시만.”
저택에는 매력적인 하녀도 많고 또 손님 중에 열정적인 아가씨가 있을 수도 있었다. 벌써 며칠 머무르는 사이에 손님들 사이에 풋풋한 기류가 흐르기도, 뜨거운 열정이 싹트기도 했다. 그러라고 있는 사냥 대회가 아니었나. 막상 밀회의 순간을 방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좀 머쓱했다.
‘밀회는 밤에만 이루어지는 줄 알았는데. 이제 노을이 짙어지는 시점이니. 꽤… 문란한 친구군그래.’
“아… 이따가 오지.”
막 돌아서려는 찰나 문이 열렸다. 완전히 열린 것도 아니고 한 뼘 정도만 틈이 벌어졌다. 그 사이엔 바지 외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아서가 서서 교묘하게 방 안을 가렸다.
“무슨 일이지?”
“아, 내가 개인 시간을 방해한 것 같군. 별일 아니야. 그저….”
엘리엇과 셋이서 의기투합할 생각인데 동참할 의사가 있냐고 묻기에는 너무나도 ‘그 행위’ 도중에 방해받은 티가 났다. 찰리는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내게 용건이 있으니 찾아온 게 아닌가?”
“어, 음. 중요하진 않은데. 혹시 엘리엇 봤나?”
순간 아서의 눈꼬리가 씰룩했다. 안에서 부스럭대는 인기척도 났다. 침대 시트가 끌리는 소리가 분명했다.
“아니 모르겠는데. 그런데 엘리엇은 왜 찾지?”
“중요한 할 말이 있어서.”
“만약 만나면 내가 전해 주도록 하지.”
빨리 대화를 끝내고 문 앞에서 꺼지고 싶었다. 그러나 찰리는 어쩐지 아서의 눈빛에 압도되어 그러지 못했다. 이글이글 타는 눈빛에는 선명한 적의가 느껴졌다. 찰리 본인에게 원한을 가질 이유는 없으므로 아마 엘리엇에 관한 얘기를 꺼냈기 때문이리라. 야외 만찬에서 둘 사이에 오고 갔던 날카로운 입담에 아서도 열 받은 게 분명했다.
“아니야. 늘 하던 얘긴데. 내가 하지.”
“내게는 말할 수 없는 건가?”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엘리엇을 사교 시즌에 타운 하우스로 초대할 생각이라서 말이야. 급할 건 없으니 천천히 설득하지.”
“그렇군.”
용건 아닌 용건을 얘기한 후 찰리는 어색한 발걸음을 돌리다가 다시 멈췄다.
“음. 저녁 만찬에 올 텐가.”
“그래.”
“음, 그럼 이따가 보자고.”
“그래, 친구.”
씩 웃으면서 아서는 문을 닫았다. 하지만 찰리는 문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험악하게 굳는 아서의 눈빛을 보았다.
“괜히 방해했나 보군.”
타이밍이 나빴다. 자신이라도 정사 도중에 방해를 받으면 기분이 상할 터였다. 물론 찰리는 늦은 밤도 아닌 시간에 침대에서 뒹구는 성미는 아니지만.
‘낮에 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찰리는 제 방으로 돌아가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
문을 닫자마자 엘리엇은 뒤집어썼던 이불을 확 걷었다. 그리곤 침대에서 넘어지듯 내려왔다.
“바지, 망할 바지가 어디에 있지?”
바닥에서 구겨진 바지를 막 들어 올리는 엘리엇의 손목에 아서의 손이 감겼다. 그러면서 아서는 엘리엇을 침대로 도로 밀어붙였다. 쓰러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통에 힘겨루기가 되었다. 하지만 말로는 아서를 이겨도 힘으로는 한 번도 그를 이겨 보지 못했던 엘리엇이 결국 밀렸다. 도로 침대 위로 밀리지 않기 위해서 엘리엇은 툭 솟아오른 두껍고 무거운 침대 원목 프레임을 잡았다.
“다 했잖아.”
“아직 덜 했어.”
이미 한 번의 절정을 맞고도 모자라는지 아서는 거대한 음경을 꺼떡거렸다. 사실 찰리가 문을 두드린 시점은 막 두 번째 절정을 느끼는 엘리엇의 경련하는 구멍 안에서 아서가 마지막 피치를 올릴 때였다.
노크가 천둥처럼 울리자마자 엘리엇이 별안간 그의 배를 차 버리지 않았다면 그대로 두 번의 정사를 완수할 수 있었을 터였다.
원치 않게 방해받아서 부아가 많이 치민 아서는 버티는 엘리엇을 다시 밀어붙였다. 그러나 엘리엇의 힘도 만만찮았다. 아서보다 작은 체격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월등히 우월한 아서에 비해서였다. 엘리엇은 평범한 성인 남성 체격이었고 안간힘을 쓰면 쉽게 쓰러트리긴 힘들었다.
두통약에 든 아편은 엘리엇의 방어선을 완전히 무너뜨리기엔 너무 적었다.
“그만 포기해.”
엘리엇이 재차 말했지만, 아서는 물러서지 않았다.
“침대가 싫다면 이대로 하지.”
아서의 손이 엘리엇의 양쪽 장골에 닿았다. 네 손가락으로 장골 언저리를 단단히 틀어쥔 아서는 양 엄지로 엉덩이를 벌렸다. 그리곤 꺼떡거리는 흉악한 자지를 한 번에 처박았다.
“큭! 아… 서!”
엘리엇은 눈가를 찡그리며 이를 갈았다. 얼마나 세게 쳐올렸는지 양 발꿈치가 들렸다.
퍽. 퍽. 퍽. 퍽.
다시 정사가 시작되었다. 뒤에서부터 거칠게 박아 대면서 아서는 손으로 엘리엇의 등을 더듬었다. 구겨진 셔츠가 스르륵 풀리면서 흔들렸다.
“흑… 읍… 큭… 핫.”
“후우… 아까보다 훨씬 더 조이는데.”
“빌어먹을… 개자식아… 사람들이… 흣… 돌아오고 있다고.”
창밖에서 들려오는 뚜렷한 인기척이 엘리엇을 더욱 부채질한 건 사실이었다. 이제 그만하자는 뜻을 비춘 건 두 번의 절정으로 아편이 몰고 온 정욕이 씻겨 내려간 뒤에 그 빈자리를 슬그머니 차지한 수치심과 양심 때문이었다.
얼굴에 떠오른 홍조는 단순히 느껴서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부끄러워서만도 아니었다. 그저 난처한 동시에 미치도록 짜릿했다.
철퍽, 철퍽, 철퍽, 첩, 첩, 첩.
바지춤 사이로 성기만 내어놓은 아서의 동작이 점점 빨라졌다. 그러면서 엘리엇 안에 도사리던 열기에 풀무질을 해 댔다. 은근한 불길은 삽시간에 거대한 화재로 번졌다.
“하앗! 큭! 아아… 아서!”
침대 프레임을 단단히 잡았음에도 엘리엇의 상체는 점점 아래로 가라앉았고 덩달아 아서의 배와 가슴이 엘리엇의 허리와 등에 겹치기 시작했다.
발정 난 짐승처럼 달라붙은 자세가 되자 아서의 우람한 자지가 내면에 깊은 곳을 무참히 쑤셔 댔다. 등줄기가 오싹하고 눈앞에 불이 튀었다.
“…거기! 그곳!”
“빌어먹을 엘리엇. 넌 남자를 부추기는 데 탁월한 선수야.”
커튼처럼 흘러내린 셔츠 사이로 엘리엇의 음경이 꺼떡거렸다. 만져 달라 말하기도 전에 아서는 알아서 그것을 잡고 아프게 비틀었다. 발꿈치의 도움 없이 몸무게를 지탱하느라 하얗게 변한 열 발가락이 더욱더 오므라들었다.
“흐윽!”
짜릿한 통증에 눈을 찡그린 엘리엇은 뇌가 터질 것 같은 환희 속에서 경련했다. 아서는 점점 속도를 올렸고 뜨거운 정사는 다시금 절정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야외 연회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의 인기척을 실은 옅은 바람이 열린 창문을 넘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신선한 바람은 두 사람의 몸에 흐르는 땀을 식혀 주기는커녕 더욱더 몸을 달굴 뿐이었다.
자리가 영 불편했다. 각각 오른쪽과 왼쪽으로 두 자리씩 건너 대각선에 앉은 찰리와 아서가 번갈아 엘리엇을 쳐다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젠장.’
진짜 허리와 엉덩이가 아팠다. 하필이면 만찬장의 의자는 딱딱한 나무 의자였다. 최고급 원목을 인체에 딱 맞게 조각하여 고급스러운 칠로 마감한 예술품에 가까운 의자였지만 그래도 딱딱하다는 점에서는 스툴과 다를 바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허리에 긴장을 늦추면 엉덩이가 풀어지고 부어오른 입구가 의자에 짓눌렸다. 그때마다 엘리엇은 제 몸을 유린한 굵은 음경의 존재감을 느껴야 했다. 보이지 않은 유령의 그것이 아직도 은밀한 부위를 들쑤시는 기분이었다.
스륵.
아서가 흘끗 곁눈질하며 두툼한 살코기에 칼집을 넣었다. 넓은 만찬 테이블 위에는 장식용 꽃이 빼곡하게 놓였지만 하필이면 아서와의 사이에는 와인 잔과 물 잔 몇 개가 다여서 그의 움직임이 세세히 보였다.
“데일 씨,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아요.”
옆에 앉은 귀부인이 걱정스럽게 속삭였다. 실제로 이마에 식은땀이 약간 났다.
“아닙니다. 그저… 약간 덥군요.”
“괜찮으시다면 다행입니다.”
상냥한 여인에게 미소로 답했다. 그러자 남편이 있는 중년 여성이 수줍은 듯 입꼬리를 올렸다. 붉은 피와 똑같은 색의 소스를 듬뿍 바른 고기 조각을 입에 넣어 천천히 씹는 아서의 따가운 눈빛이 엘리엇의 뺨에 그대로 꽂혔다.
“아까 어디 갔었나?”
“뭐?”
이번엔 반대편 찰리가 물었다. 아서와 세 칸 떨어진 자리에 앉은 그는 와인으로 입을 헹구면서 다시 물었다.
“아까 찾아갔더니 없던데.”
“음… 산책을 좀 했어.”
“기분은 좀 나아졌어?”
“아니.”
“왜?”
“도중에 못된 짐승을 만나서 말이야.”
“짐승?”
“그래. 말을 듣지 않는 반항적인 개 같은 것이 나를 덮치더군.”
“여우?”
“여우라기엔 너무 크고 사나웠어.”
“늑대? 승냥이?”
그 말에 다른 사람의 시선이 둘 사이에 꽂혔다.
“근방에 늑대가 나오나요?”
놀란 여자가 물었다. 멀리 상석에 앉은 백작이 끼어들었다.
“늑대가 있긴 하지. 산이 가까우니까 말이야. 하지만 인가까지 내려오진 않는데.”
“엘리엇이 늑대를 본 것 같습니다.”
“뭐라? 어디서?”
순식간에 화제가 이상한 곳으로 튀었다. 엘리엇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답답해서 저택 뒤편에 난 오솔길 쪽으로 산책을 하다가 만났습니다. 늑대인지는 분명하지 않아요. 그만큼 멋진 생물은 아니었거든요. 좀 비열한 눈빛에 남루한 외양에… 뭐 그랬습니다.”
“다치진 않았나?”
“지루할 만큼 끈질긴 놈이라… 쫓아 버리기까지 시간이 걸려서 조금 짜증이 났을 뿐입니다.”
“큰일이 아니라서 다행이네. 하긴 늑대를 만났으면 무사하지 못했을 걸세. 여기까지 내려온다는 건 지독히 허기졌다는 얘기거든. 앞으로 조심해야겠는걸.”
백작이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늑대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때 아서가 식기를 놓고 입을 냅킨으로 닦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꽤 소리를 지르지 않았나?”
“뭐라고?”
백작의 반문에 아서가 대답했다.
“엘리엇 말입니다. 저도 마침 그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거든요. 대단히 놀라서 마구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는 꼴을 봤거든요.”
“잘못 봤겠지. 나는 비명을 지른 적 없어.”
엘리엇이 바로 반박했다.
“그럼 내 착각인가? 하지만 네 안색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데.”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엘리엇에게 꽂혔다. 찰리도 미간을 찌푸렸다.
“아까부터 창백해 보이긴 했어. 식은땀도 조금 나고 말이야.”
“제가 살았던 대륙에선 저런 증상을 두고 호랑이를 만났다고 하더군요.”
“호랑이?”
“네. 맹수 중의 맹수지요. 사자에 버금가는.”
그러면서 놈은 느긋하게 와인 잔을 기울였다. 엘리엇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호랑이의 안광은 실로 대단하다고 합니다. 포효는 더욱더. 단지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얼어붙는다고 하지요. 그런 사람을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금방 죽는다고 했습니다. 뭐 이교도 주술사의 얘기지만.”
“음. 내 집 근처에 호랑이나 사자가 있지는 않네만.”
그러자 한 중년 부인이 걱정스럽게 말을 꺼냈다.
“하지만 곰은 있잖아요. 그것도 큰 갈색 곰.”
“그렇지만 곰은 산 밑으로 내려온 적이 없어.”
“혹시나 모르지요.”
“이제 늦여름이니까 한창 살을 찌우려고 들 시기긴 하지. 조심해야겠는걸.”
사람들이 걱정을 감추지 못하고 웅성거렸다. 개중에 심약한 몇몇은 벌벌 떨기도 했다. 앞으로는 저택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속삭임도 들렸다.
엘리엇은 두려움이 가득한 분위기에 책임감을 느꼈다. 게다가 스스로를 호랑이에 비견하는 개자식도 못마땅했다.
“그런 커다란 맹수는 아니었습니다. 고작 새끼손가락만도 못한 어금니를 가지고 으르렁대는 하찮은 생물이었죠. 오소리나 너구리 같은. 혹은 스컹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아서의 얼굴이 험악하게 굳었다. 엘리엇은 그를 싹 무시했다. 갑자기 엉덩이의 아픔이 한결 덜했고, 음식이 굉장히 맛있게 느껴졌다.
“스컹크라… 그건 그거 나름대로 문제로군.”
“혹은 새로운 괴물일지도 모르지요. 요즘 새로운 생물이 속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찰리가 끼어들었다. 정치학을 공부하면서도 한편으로 꾸준히 생물학을 공부하기에 그는 동물 얘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특징이 어떻던가? 털 색은? 크기는?”
“음흉하게 뒤에서 덮쳤다가 사라져서 제대로 보질 못했어. 어쨌든 예쁜 색은 절대로 아니야.”
“그래? 그래도 새로운 생물이라면 그 자체로 가치가 있지. 이따가 오솔길을 제대로 살펴봐야겠는걸.”
“말리진 않겠으나, 나를 끌어들일 생각은 말아 주게.”
찰리가 무슨 말을 꺼낼 줄 알았기에 엘리엇은 바로 선을 그었다. 그러자 찰리의 시선은 아서에게로 향했다.
“아서, 자네는 흥미 없나? 같이 가 보는 게 어떻겠어?”
“나도 딱히.”
“왜, 같이 가 보지? 저택 구경도 하고 말이야. 좋지 않겠어?”
엘리엇이 부추기자 아서는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그보다는 내 방에 숨어든 생쥐를 쫓아내는 게 급선무라. 못된 녀석이 제멋대로 휘젓고는 달아나서 말이지. 잡아서 혼쭐을 내야겠어.”
“뭐, 쥐?”
그 말에 다른 사람들이 또 호들갑을 떨었다. 문명에 길든 사람에겐 집 밖에 출몰하는 맹수 같은 미지의 생물보다 제 침대 밑을 돌아다니는 생쥐가 더 끔찍한 법이었다.
“쥐라니! 집사!”
백작도 다급해졌다.
“네, 주인님.”
“당장 하인들을 모아서 손님들 방을 청소하게. 쥐가 나타나다니. 용납할 수 없어! 객실은 물론 주방, 지하실, 창고, 와인 창고와 식료품실도 모조리 청소하게. 자네들 숙소까지. 모든 방의 구석구석까지 모조리 확인하기 전까지는 자러 가지 못한다고 엄포를 놓게.”
“네.”
집사가 당장 나갔다.
“설마 만찬장에 들어오진 않겠지요?”
“여긴 새로 지은 곳이라 아직 벽을 뚫지 못했을 겁니다.”
사람들은 괜히 발을 움찔거리면서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여자들은 드레스 안으로 쥐가 기어오를까 봐 두려워했고 남자들은 제 부인이나 에스코트가 난처한 일에 처했을 때 바로 조치할 수 있도록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런 주변의 술렁임에는 아랑곳없이 엘리엇과 아서는 서로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쥐라니. 그런 건 본 적이 없어.”
“나도 너구리나 스컹크는 본 적이 없는데.”
험악하게 오가는 으르렁거림과 눈빛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다. 자세한 설명이 없이도 어린 시절부터 악연이었던 두 사람의 사이가 대단히 나쁘다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
만찬이 끝나고 아직 한창 쥐 색출 작업이 이루어지던 때에 사람들은 중앙홀에 몰려들었다. 중앙 홀은 원래 무도회로 쓰던 곳이라 공간이 탁 트여 있어서 생쥐가 출몰하면 바로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벽을 따라서 쭉 나열된 의자는 대화용으로는 별로였다. 대신에 홀 한쪽에 피아노가 있었고 누군가 제 레슨 실력을 보여 주기 위해 그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발랄한 곡이 시작되자 즉석 무도회가 열렸다. 하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발포 와인을 가져왔고 즐거운 음악과 맛있는 음료에 고무된 사람들은 곧 생쥐를 잊어버리고 분위기를 즐기기 시작했다.
“백작님, 여전히 정력적이세요.”
“아주 매력적인 분이시지.”
매력적인 중년 부인을 상대로 중앙 무대를 휘어잡고 있는 백작을 보며 사람들이 웃었다. 몇몇 무리를 지어 선 남자들은 다른 편에서 무리를 지은 아가씨를 보며 서로 속삭였다.
“눈치만 보지 말고 가서 춤을 청해 보지그래.”
“그녀가 거절하면 수치스러워서 죽어 버릴 거야.”
“그럼 우리가 위로해 줄게. 하지만 저 아가씨도 자네에게 흥미가 있어 보이는걸.”
찰리가 어느 청년을 격려하며 어깨를 툭툭 치더니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엘리엇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서는 반대편에서 나이가 있는 남성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지루한 투자와 돈 얘기일 게 뻔했다.
“이젠 기분이 어때?”
“한결 나아졌어.”
손에 든 발포 와인이 든 잔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찰리가 빈 옆자리에 앉아 느긋하게 다리를 꼬았다. 저절로 그의 몸이 엘리엇 쪽으로 기울었다.
“아서랑 왜 그렇게 사이가 나쁜 거야? 아까 야외에서도 그러더니 만찬장에서도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걸?”
“티가 많이 났나?”
“당연히 안 날 리가 없지.”
“그렇다면 내가 당연히 저 개자식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알아주지 그래?”
“그러니까 왜?”
“왜라니? 말했잖아. 내 동생에게 추잡한 짓을 하려던 놈이라고.”
“그 덕에 쫓겨나서 심한 고생을 했잖아. 지금은 멋진 젠틀맨이고 부자야. 성격도 시원하고 사교적이고 말이야. 크게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겉모습은 멀쩡하지. 속은 악의가 독버섯처럼 올라오는 음흉한 작자야. 게다가 얼마나 추잡하고 끈질긴지. 폭력을 동반한 협박도 서슴지 않는 범죄자라고.”
“그건 우리는 모르지.”
“나는 알아.”
“자네가 어떻게?”
대답하는 대신 남은 와인을 입에 가져갔다. 놈에게 협박당해서 다리를 벌렸고 그 과정에 아편을 섭취하는 바람에 이상한 성벽에 눈을 떴으며, 그게 분통 터지고 화가 나서 놈을 몰래 교살하려다가 더 심하게 당했다는 말은 이 자리, 이 친구 앞에서 할 말이 못 되었다.
“나만큼 저 작자의 실체를 아는 사람은 없어.”
“그래? 하지만 둘이 다시 만난 건 얼마 되지 않다고 그러던데. 아서가 자네 동생의 결혼식에 갔다고 하더군.”
“초대도 안 했는데 말이지.”
“초대받았다고 들었는데.”
“잘못 보낸 거야. 저놈인 걸 알았다면 안 보냈어.”
찰리가 어리둥절한 사이에 아까부터 이쪽을 자꾸 흘끔거리던 아서가 기어이 들러붙은 중년 남성들을 떨쳤다. 실망스럽게도 그는 곧장 둘을 향해서 다가왔다.
“둘이서 뭘 그렇게 다정하게 속삭이고 계시지?”
“네놈 험담.”
“아닐세. 둘 왜 이렇게 사이가 나쁜지 물어봤을 뿐이야.”
찰리의 말에 아서는 “훗.” 하고 짧게 웃었다.
“그럼 내 험담이 맞겠군. 엘리엇은 결코 나를 좋게 말하지 않을 테니까.”
“잘 아는군.”
“나만큼 널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난 네 감춰진 속을… 다 알지.”
앉아 있는 엘리엇이 시선을 들어 앞에선 아서를 바라보자마자 뜨거운 불꽃이 튀었다. 곁에 찰리가 없었더라면 아주 낮은 목소리로 서로에게 쌍욕과 저주를 퍼부었을 것이다.
“둘이 사이가 나쁜 건지 친한 건지 모르겠군.”
찰리의 의문이 더욱 커졌다.
“그런데 아서, 만찬 전에 오솔길을 산책할 여유가 있었나?”
“그건 왜 묻지?”
“아니, 그게. 아니, 실언일세.”
매서운 아서의 눈빛에 찰리는 입을 다물었다. 제 입장에서는 여유가 없어 보이지만, 아서의 방은 오솔길 입구에 있기도 했고 뭐 사람마다 시간을 보내는 방식과 속도는 다른 법이니 굳이 그런데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그때 만났으면 내 말을 전달했나?”
“아, 엘리엇이 너무 기겁하면서 소리치기에 말을 하지 못했네.”
“기겁한 적도, 소리친 적도 없어. 그리고 내게 전하는 말을 왜 제멋대로 무시하는 거지? 아주 무례해.”
“무시한 게 아니라 네 덕분에 잊어버렸다고.”
으르렁대는 두 사람을 말리면서 찰리가 말을 이었다.
“어차피 직접 말하려고 했던 거야.”
엘리엇이 시선을 찰리에게 던졌다.
“이번 사교 시즌에 우리 가문의 타운 하우스에 자네를 초대하고 싶은데.”
“매년 지치지도 않는군.”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야. 어떻게 한 번을 오지 않지?”
“겨울의 장원은 바빠.”
“하인에게 시켜.”
“주인이 없으면 게으름을 피우니까.”
“주인이 어설프니까 그렇겠지.”
아서가 끼어들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려는 엘리엇을 찰리가 재차 말렸다.
“이번에도 안타깝지만 찰리. 난 내 집에서 조용한 봄을 맞이하고 싶어.”
“아서도 같이 타운 하우스로 가지 않겠나? 셋이서 재미있을 거야.”
“그렇다면 더더욱.”
딱 잘라 긋자 아서가 덩달아 너스레를 떨었다.
“성격 나쁜 촌뜨기와 함께 다니고 싶은 생각은 나도 없어.”
“뭐? 다시 말해 봐.”
“말 그대로야. 성격 나쁜 촌뜨기.”
그건 참지 못했는지 엘리엇이 아서의 멱살을 잡았다. 두 사람이 싸움을 벌여 기분 좋은 무도회를 망치는 일이 없도록 찰리는 안간힘을 써야 했다. 아서를 등으로 밀면서 엘리엇의 어깨를 손으로 밀어 냈다.
“빌어먹을 개자식이.”
“망할 쥐새끼가.”
“자자. 두 사람 다 진정해. 진정하라고. 내가 잘못했어.”
두 사람 사이에 낀 찰리는 싸움을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찰리의 고민은 깊어졌다. 엘리엇과 아서의 나쁜 관계를 누그러뜨려 멋진 독신 남성 클럽을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애초에 잘못된 생각 같았다.
둘을 어떻게든 붙여 놓으면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고, 때때로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사라졌다.
“아니, 이 친구들이 왜 이러지?”
처음 사귄 아서야 그럴 수 있었다. 게다가 과장을 좀 보태서 대낮부터 밀회에 몰두하던 카사노바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엘리엇은 이해 불가였다.
사냥 시즌마다 찰리와 단짝처럼 붙어 다니던 그가 수시로 훌쩍훌쩍 사라질 때마다 찰리는 어디서 그를 찾아야 할까 도무지 알지 못했다. 방에는 분명히 없었다. 혹시나 아서는 한가한가 싶어서 가면 항상 그는 은밀한 밀회 중이었다.
“둘 다 바쁘군. 좀 외로워지려 하는데.”
엘리엇이 들었으면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인기 독신남이 무슨 약한 소리를 하느냐고 비웃었을 터였다. 하지만 실제로 한가롭게 여유를 즐기고 곤충을 관찰하고 대화 없이 햇볕을 같이 쬐어 줄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사실상 엘리엇이 유일했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이 녀석.”
아서의 침대 한가운데 꽂힌 채 그와 한창 섹스 중이던 엘리엇은 너무 놀라 심장이 폭발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음흉한 아서 놈의 눈썹만 약간 꿈틀했을 뿐 놀라지 않았다.
엘리엇은 치가 떨려 이를 악물었다. 원래 이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어제 일어났던 불상사만으로도 살의는 충분했다. 놈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밀고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충동이 컸지만, 아서 놈은 마치 예상했다는 듯이 밤늦게까지 노스필드 백작과 다른 신사들과 함께 담소를 나눴다.
피로를 핑계로 먼저 자리를 뜨는 엘리엇을 야릇한 눈빛으로 훑은 놈은 기어이 다시 본색을 드러냈다.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막 야외로 나가는 엘리엇을 다짜고짜 낚아채 제 방으로 끌어들인 것이었다.
아차 하는 사이에 손 빠른 작자는 엘리엇을 발가벗겼고 구멍에는 어느새 오일이 묻은 손가락이 드나들었다. 어제 몸을 겹친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터라 엘리엇은 저항할 틈도 없이 다시 열이 오르고 말았다. 구멍으로 느끼는 난잡한 쾌락은 엘리엇의 이성을 금방 마비시켰다. 벌써 세 차례 깨닫는 바였다. 굵은 자지가 구멍을 후벼 파는 순간의 짜릿함이 기분 좋았다.
“놔.”
“아직 멀었어.”
“그때 대가리를… 큭… 쏴 버렸어야… 하는데.”
바깥에서 느껴지는 찰리의 기척에도 아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엘리엇의 젖꼭지를 씹어 댔다. 놓으라고 몸부림을 쳐 봐야 제 젖꼭지만 더 아팠고 그 덕에 더욱 격렬하게 느껴야 했다.
“흐읏! 미친… 새끼… 큭!”
앞니로 젖꼭지 뿌리를 잘근잘근 뭉개던 아서는 엘리엇이 고통에 찬 환성을 터트리자 만족스럽다는 듯이 입술을 모아 유륜부터 세게 빨아 들었다. 그 와중에도 엘리엇의 구멍 안에서는 성난 황소 같은 기둥이 들락거렸다.
아플 만큼 가슴을 빨아 댄 아서는 대흉근에 기어이 제 잇자국을 내고 나서야 입술을 떼었다. 그리곤 다른 쪽 유두를 엄지와 검지로 슬금슬금 비비면서 물었다.
“찰리 윔즈가 나타날 때마다 네 안쪽이 경련하는군.”
“당연하지.”
사람이 나타나는데 어떻게 긴장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아무리 난잡한 성벽을 깨달았다고 해도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윤리 의식이 아예 망가진 건 아니었다.
“윔즈와 무슨 사이지?”
친근하게 찰리라고 부르던 아서가 갑자기 그의 성을 꺼내 들었다. 위에 올라탄 작자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머물러만 있는 덕에 엘리엇은 안타까워 죽을 지경이었다. 찌푸린 눈을 간신히 떴다. 개자식이 이상하게도 진지한 태도였다.
“뭐? 큭! 왜 그런 걸 물어?”
“그야 서로가 너무 의식하니까?”
“가까운 친구니까. 친한 친… 아!”
안에 든 자지가 위험한 부위를 꾹 눌렀다. 엘리엇은 발끝에 힘을 주면서 엉덩이를 들었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데 불가능했다. 빌어먹을 아서 ‘변태’ 글래스턴이 타이로 제 음경을 꽁꽁 감싸 묶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길게 이어지는 정사 내내 엘리엇은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전신이 마비된 듯 찌릿찌릿하고 뇌가 반쯤 녹아 버린 것도 그 탓이었다.
“흐앗! 아!”
분명 절정을 느끼는데 사정을 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웠고 너무나도 황홀했다. 목을 뒤로 꺾으면서 부들부들 떨자 아서의 이가 이번에는 엘리엇의 목젖을 노렸다.
뜨끈한 혀가 예민한 피부를 훑었다. 감각이 무뎌진 엘리엇의 손끝이 아서의 머리카락 사이를 누볐다. 그의 굵은 목과 굳건한 어깨. 드넓은 등을 더듬던 손이 이윽고 그의 뺨에 닿았다.
“빌어먹을… 죽을 것 같아… 아서 빨리… 빨리.”
“재촉하지 마.”
어떻게든 해 보라고 종용하는 엘리엇을 무시하고 그는 제멋대로 굴었다. 밖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이 기를 바짝 세우며 대립하던 두 사람이었지만, 침대에서는 종종 승패가 가려졌다. 오늘은 아서의 승리였다. 그가 엘리엇의 음경을 타이로 묶기에 성공하는 순간, 그렇게 정해졌다.
무자비한 폭군으로 변한 아서는 엘리엇을 아주 정성스럽게 고문했다. 젖꼭지를 비틀고 팔뚝 안쪽과 허벅지 안쪽 여린 살을 멍이 들도록 깨물고 또 비명이 나올 만큼 난폭하게 구멍을 쑤셔 댔다. 그러는 내내 엘리엇은 단 한 번도 사정을 허락받지 못했다.
“아… 서.”
고통에 겨워 전신을 뒤틀면서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금방 아서에게 잡혔다. 그리고 엉덩이를 잡힌 채로 무참하게 당했다.
“찰리 윔즈와의 관계는 말하지 않을 셈이군.”
“아무… 그냥 친구라니까.”
“그냥 친구가 왜 사사건건 널 찾아 대는 거지?”
“그야! 아윽! 하! 안 돼! 거긴! 아!”
지독한 놈이 자꾸 약점을 찔러 댔다. 눈앞에 불꽃이 튀었다. 엘리엇은 어느새 아서의 허리에 다리를 감았다. 그리고 허벅지를 내리눌러 더는 안쪽으로 침범하지 못하게 막았다. 도발은 번번이 더한 응징이 되어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왜 이렇게 된 거지?’
낯짝을 보는 것만으로도 화가 나서 두통이 이니까 당장 눈앞에서 꺼지라는 욕설을 퍼부었다. 아서는 사라지는 대신에 말없이 백작의 두통약을 내밀었다. 어차피 자신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 차라리 조금이라도 기분 좋은 편이 좋지 않겠느냐며 어처구니없는 도발을 감행했다. 짜증 나는 두통 때문인지는 몰라도 제법 일리 있게 들렸다. 멍청한 착각이었다.
놈의 손에서 약병을 낚아채 한 번에 입에 털어 넣은 엘리엇은 그대로 아서를 놈의 침실로 끌고 가 패대기쳤다.
‘빌어먹을. 멍청한 짓을 하다니.’
초반 싸움에서 주도권을 잃었다. 승자로서의 우위를 즐기던 놈이 이제는 괜한 참견까지 하고 나섰다.
“대답해.”
“허억… 알고 있잖아… 친구라고.”
“무슨 어미 잃은 오리 새끼처럼 저렇게 쫓아다니는데 그걸 믿으라고?”
“너야… 말로….”
찰리 이전에 아서가 있었다. 매번 엘리엇을 귀찮게 하면서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놈이 하는 말치고는 아주 우습지 않은가.
“질투라도 해? …큭! 아서!”
“질투라니….”
짙은 눈썹이 사납게 구겨졌다. 가늘어진 두 눈동자가 이글이글 타올랐다.
“내가? 너와 찰리를? 왜?”
“그럼 찰리가 나를 찾든 말든 신경… 꺼. 윽.”
아서가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기세는 여전히 죽지 않았다. 아니, 더욱 강해졌다. 잘 발달한 근육으로 뒤덮인 전신이 꿈틀거렸다.
“좋아.”
대답은 잘해 놓고도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아서는 엘리엇을 거의 반으로 찢어 버릴 기세로 몸을 움직였다.
“큭! 앗! 아아! 아윽! 아!”
이젠 엘리엇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폭풍우가 세차게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서 고작 뗏목 하나만 붙잡고 표류하는 기분이었다. 아서는 그를 무참하게 몰아세웠고 엘리엇은 작렬하는 신경을 견디지 못하고 기어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아! 아서! 아아아! 아서! 아서!”
허우적대며 그를 끌어당겼다. 두꺼운 몸통을 두 팔로 와락 끌어안고서야 엘리엇은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엘리… 엇.”
벌어진 채로 바르르 떨리는 입술에 아서의 이가 닿았다. 아프게 깨물었다가 이내 혀끝으로 상냥하게 훑는 태도가 굉장히 혐오스러웠고 동시에 대단히 안심되었다.
또르르.
질끈 감은 눈가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직도 정사 중이라 눈물은 대부분 관자놀이를 타고 내려 베개를 적혔다. 아서는 때때로 입술을 가져다 대서 눈물 줄기를 핥았다. 따뜻하고 역겨웠다.
지독한 정사는 이내 아서의 절정과 함께 끝났다. 그는 늘 그랬듯이 엘리엇의 구멍 안에 제 모든 정욕을 털었다. 황홀한 감각 속에 휩싸였으면서도 엘리엇은 그가 몸에 힘을 주면서 제 안에 흰 정액을 싸는 걸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후우.”
만족스러운지 아서가 길게 한숨을 쉬며 엘리엇 위로 쓰러졌다. 몸 안에서 커다란 성기가 천천히 빠져나갔다.
“허억. 허억. 허억.”
엘리엇 또한 탈진해서 축 늘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정신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제 욕심을 다 채운 아서가 뒤늦게 엘리엇의 음경을 묶은 리본 타이를 풀었다.
단단히 묶었던 리본이 스르륵 풀리는 순간 엘리엇의 음경은 바로 폭발하고 말았다.
푸슛. 풋.
내내 억눌렸던 음경은 기다렸다는 듯이 진득한 정액을 공중으로 뿜었다. 그건 누워 있던 엘리엇의 배와 허벅지, 그리고 리본을 풀던 아서의 손을 더럽혔다.
“아아아아.”
무한한 해방감. 그건 단순히 짜릿한 정도가 아니었다. 전신이 구름처럼 흩어지는 감각이었다. 이대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한다고 해도 믿을 만큼.
하얗게 작렬하던 시야가 이내 천천히 회색으로, 그리고 완전한 어둠으로 변했다.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달달 떨리는 제 입술 위에 겹치는 아서의 입술과 혀였다.
***
사냥 대회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초반에는 아주 명사수로 순위권을 달리던 아서 글래스턴은 중반 이후부터 아예 사냥감을 잡지 못해 중위권 이하로 떨어졌으며 찰리는 초반에 기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예년과 비슷한 성과를 올렸다.
탕! 탕! 탕!
마지막 날.
분노에 찬 엘리엇은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것은 무엇이든 쏘아 댔다. 뇌조와 꿩이 우수수 떨어졌고 나중엔 장난삼아 찰리가 던진 사과마저 산산조각 냈다.
“워후. 엘리엇. 갑자기 왜? 혹시 간밤에 살육자의 악령에 홀렸나?”
전날 밤 아서 놈에게 꽁꽁 묶인 채 혹사당했던 음경이 아직도 아팠다. 구멍은 더욱더 쓰라렸다.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지만 오기로 엽총을 들어 조준했다.
“실제로는 따로 쏴 버리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그럼 쏴.”
“다 보는 곳에서 아서 ‘개자식’ 글래스턴의 이마에 바람구멍을 낼 순 없잖아.”
철컹. 철컹.
엘리엇은 탄피를 버리고 다시 탄약을 채워 장전하면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아서를 노려봤다. 아무 사이 아니라는데 자꾸 이상한 쪽으로 상상력을 동원하는 게 보여서 더욱 혐오스러웠다.
“또 사이가 나빠졌군.”
“원래대로 돌아간 거지.”
엽총을 제대로 견착한 엘리엇은 몰이꾼이 몰고 오는 새를 기다렸다. 그리곤 온갖 혐오와 저주를 함께 담아 방아쇠를 당겼다.
탕!
“오. 우리 게으른 미남자 엘리엇 데일이 마지막에 힘을 냈군. 고작 하루 만에 꼴찌에서 4위에 오르다니.”
백작이 살육의 결과를 보고 아주 기뻐하며 손뼉을 쳤다. 하인들은 잡은 새를 들고 가 손질해서 훈제 햄으로 만들었다. 몇 마리는 저택에서 일하는 고용인끼리 나눠 먹고 나머지는 근처 마을 사람들에게 제공할 예정이었다.
사냥 대회의 주요 일정은 막을 내렸다. 조금 더 여유를 즐기고 싶은 사람은 저택에 머무르고 다른 일이 있는 사람은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엘리엇은 지체 없이 짐을 쌌다. 더는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았다. 노스필드가 싫은 게 아니었다. 가까운 곳에 있는 망할 자식의 존재가 불편했다.
“초대장 보낼게.”
“소용없을 거야. 찰리.”
찰리가 끝까지 초대의 뜻을 고집했다.
“무료한 겨울을 보내고 나면 또 생각이 바뀌겠지. 이젠 릴리벳도 없잖아.”
“조용해서 좋을 것 같군.”
“나중에 마음을 바꿔도 비난하지 않겠어. 친구니까.”
그러면서 찰리는 제 방으로 돌아갔다. 그도 이제 슬슬 본가로 갈 때였다.
똑똑.
열린 문에 누군가 노크했다. 이번엔 아서 놈이 나타났다. 짐을 꾸리던 하인이 고개를 들자 아서는 그에게 손짓했다. 하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갔다.
어제 지독하게 당한 데에 울분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엘리엇은 그를 노려볼 뿐 말도 걸지 않고 싹 무시했다. 벽장을 열어 제 셔츠와 상의를 꺼내서 침대에 올렸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군.”
순간 주먹이 나갈 뻔했다. 하지만 하인이 가까운 곳에 있을 게 분명했으므로 엘리엇은 계속 그를 무시하는 편을 택했다. 아서는 침대 근처에 서성이면서 계속 말을 붙였다.
“곧 추수철이야.”
“…….”
“만약 네 물건을 도로 사고 싶다면 언제든지 연락해. 사냥 대회 동안 쌓인 정을 고려해 네게 팔 용의가 있어.”
막 사용하던 면도기와 각종 남성용 화장품을 상자에 정리하던 엘리엇은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봤다.
“그럴 필요 없어. 그건 네 물건이야. 네 멋대로 얼마든지 팔아 치워.”
냉랭하게 답했다. 그러자 아서는 진의를 의심하듯 눈을 가늘게 떴다.
“계약을 되돌리고 싶은 줄 알았는데.”
“그랬지. 하지만 이제 그럴 마음이 사라졌어.”
“왜 생각을 바꾼 거지?”
“외숙부의 물건이야. 아예 모르는 사람보다는 네가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게 다가 아닐 텐데?”
아서가 다가와 엘리엇과 시선을 마주쳤다. 짙은 눈빛에는 약간의 의문과 함께 옅은 비아냥이 깃들었다. 달가울 리 없는 관심도.
“아서 글래스턴. 도대체 내게 원하는 게 뭐야?”
“뭐?”
“곧 릴리벳과 윌리엄이 돌아와. 네 말대로 우리 거래는 끝났다는 말이야.”
상대의 표정이 설핏 굳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티를 내면서도 그는 침묵을 선택했다. 모호함을 철저히 배제하고 확실히 매듭지어야 할 문제였으므로 엘리엇은 명백하게 선을 그었다.
“아편에 중독되어 난잡한 성벽을 계속 이어 갈 순 없어.”
“오전까지만 해도 내 침대에서 뒹굴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니군.”
“그래. 그랬지. 하지만 사냥 대회는 이제 끝났어. 부적절한 외도는 그만둘 때야.”
“부적절하긴 하지만, 외도는 아니지. 네겐 특별한 상대가 없잖아.”
“있든 없든 너와 더는 얽히기 싫어.”
엘리엇은 화장품 상자를 탁 닫았다. 그것을 침대 위에 올려놓은 다음 아서를 똑바로 응시했다.
“넌 내 친구와의 관계를 추궁했어. 내내 찰리와 함께 있기만 해도 불편한 기색으로 노려보더군.”
“그게 뭐?”
“릴리벳의 결혼을 망치려 들더니 이어 이제는 찰스에게 괜히 호전적이야. 우연의 일치인지 혹은 내가 너무 미운 나머지 내게 소중한 이들을 괴롭히고 싶은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전자라면 오늘로 그 불쾌한 우연을 끝내고 싶어. 후자라면… 지금껏 실컷 풀었잖아. 그걸로 부족해?”
순간 아서는 입술을 비틀었다.
“아주 쉽게 정리하는군.”
“복잡할 게 뭐가 있어? 우리가 무슨 특별한 사이도 아니잖아.”
“하긴. 가볍게 몸만 겹친 사이지.”
제가 먼저 시작했는데도 엘리엇은 이상하게 명치에 얇은 바늘이 비집고 들어오는 감각을 느꼈다. 근육이 뭉친 듯 뻐근한 느낌은 대단한 고통은 아니어도 아예 무시하기에는 조금 성가셨다. 잠시 숨을 참았다가 이윽고 낮고 긴 한숨을 토했다. 안면 근육을 풀고 무표정을 가장했다.
아서는 위험했다. 그와의 관계를 조기에 정리하지 않으면 자칫 동생과 친구에게 여파가 미치도록 질질 끌려갈 공산이 컸다. 동생을 두고 지저분한 협박을 한 작자가 친구를 두고 협박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어제 갑자기 만났음에도 금방 휘말려 다리를 벌리는 순간, 엘리엇은 변태적 쾌락에 대해 제가 얼마나 취약한지 깨달았다. 유혹을 거부할 수 없다면, 애초에 유혹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네가 요구한 계약은 이행했어. 이곳에서 있었던 사건은… 피치 못할 사건으로 여기겠어. 내가 아편 증상 해소에 너를 이용한 만큼 너도 내게 강압적인 관계를 얻어냈으니 비긴 것으로 하지. 이걸로 너와 나 사이에 계산은 끝난 거야. 아편도 망할 두통약도, 그리고 마주칠 일도 없길 바라. 동의하지?”
흥분이 가신 차분한 음성으로 묻는 말에 아서는 뭔가 못마땅한 듯이 곧은 시선으로 엘리엇을 관찰했다. 하지만 엘리엇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결별의 악수.
그것으로 늦여름의 사냥 대회가 끝이 났다.
<다음 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