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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외전(오메가버스 ver.) 23 (39/41)

#IF 외전(오메가버스 ver.) 23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를 끝내고 가게를 나왔다. 막걸리는 대부분 권재영의 배 속으로 들어갔다. 그 독한 막걸리 한 병을 혼자 마신 것도 모자라 추가 주문까지 했다. 이른 저녁부터 얼큰하게 취한 남자는 2차를 부르짖으며 임성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쌉쌀한 술 냄새가 확 풍겼다.

“재영이 형.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괜찮아요?”

임성이 휘청거리는 그를 얼른 부축했다.

“그러엄. 물론이지. 우리 선유고 후배들이 잘하니까 형이 너무너무 기분 좋아서 그래. 2차 가자! 오늘은 형님이 확실하게 쏜다.”

권재영이 손을 번쩍 들며 또다시 2차를 외쳤다. 목소리가 워낙 커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 곁눈질했다.

야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관심이 없어도 네 사람은 꽤 눈에 띄었다. 이목이 끌리는 이유 중 가장 많은 지분은 아마 김희도였다. 후드 티와 면바지라는 단순한 차림도 맞춘 듯 잘 어울려 자꾸 눈길이 갔다. 확실히 잘생긴 걸 넘어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때 김희도가 고개를 돌렸다. 훔쳐보고 있다가 걸린 게 못내 머쓱해 괜히 권재영의 어깨를 더 깊게 끌어당겼다. 김희도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더니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당장 손 놓고 떨어져요. 차라리 내가 부축할게요.”

권재영의 팔을 잡아당긴 김희도가 인상을 팍 찌푸리며 흐느적대는 권재영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재영이 형 집까지 모셔 줘야겠다. 택시 부를게.”

“이미 불러 놨어요. 차 번호 2779. 마침 저기 왔네요.”

김희도가 “여기요.” 하며 손을 들었다.

김희도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권재영을 먼저 택시에 쑤시듯 밀어 넣었다. 임성이 뒤이어 타려는데 김희도가 잠시 나오라고 손짓했다. 택시에 반쯤 들어갔던 몸을 빼냈다.

“네가 데려다주게?”

“무슨 헛소리예요. 내가 왜.”

뚱하게 대답한 김희도가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휴대폰을 보는 조예준을 불렀다.

“안 타고 뭐 해. 사이판 같이 간다면서 이 정도 수발은 해야지.”

조예준은 순간 발끈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얌전히 택시에 올랐다.

“예준아. 괜찮겠어? 나도 같이 갈까?”

권재영의 안전띠를 대신 매 주느라 정신이 없는 조예준에게 물었다. 옆에서 “됐어요.” 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술 취한 사람한테 몇이나 달라붙습니까? 한 명이면 충분하지.”

지잉- 뒷좌석 문이 내려가며 땀이 송골송골 맺힌 조예준의 얼굴이 불쑥 떠올랐다.

“주장, 재영이 선배는 제가 책임지고 집 앞까지 데려다줄게요. 다음에 봐요. ……야, 싸가지. 우리 주장 잘 모셔라.”

“우리 주장이라고 한 번만 더 지껄여 봐. 그리고 난 원래 내 거 잘 챙…….”

흠칫 놀란 임성이 김희도의 옆구리를 빠르게 찔렀다. 윽! 김희도가 억눌린 신음을 뱉어 내며 허리를 구부렸다.

“예준아. 조심히 가라. 도착하면 연락하고.”

서둘러 두 사람이 탄 택시를 보내고 김희도를 살폈다. 그는 옆구리를 한 손으로 감싼 채 움직이지 않았다. 급소에 맞았나? 덜컥 걱정됐다.

“괜찮아?”

“진심을 다해 쳤네요. 아무래도 갈비뼈 부러진 것 같아요. 부축해 주세요.”

“옆구리가 언제 갈비뼈가 됐냐? 아무튼 때린 건 미안하다. 좀 걸을래?”

네에. 착하게 대답한 김희도가 상체를 바로 했다. 자세가 워낙 반듯해서인가, 걷는 모습도 우아했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꽤 추워 패딩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오늘따라 바람 엄청나네.”

옆에서 나란히 걷던 김희도가 투명한 비닐에 포장된 일회용 마스크를 건넸다.

“쓸래요? 덜 추울 거예요.”

“이것도 나중에 네가 가져가려고?”

마스크 끈을 귀에 걸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드러나는 부분이 가려져서인지 확실히 조금 전보다 따뜻했다.

“알면 마스크 입술에 딱 붙이고 숨 많이 쉬어요. 흔적 많이 남게.”

자연스럽게 걷던 발걸음이 멈칫했다.

“무슨 농담을…….”

“농담 아닌 거 알면서. 나 선배 체취에 환장하잖아요.”

살짝 뜨악한 표정으로 옆을 돌아봤다. 깜짝 놀란 자신과 달리 뭐가 문제냐는 듯 덤덤한 표정을 한 김희도가 보였다. 요즘 애들은 다 이래? 아니면 얘가 유난히 특이한 거야.

곰곰이 생각하다 문득 본질적인 의문이 들었다.

“희도 넌 내가 오메가라서 잘해 주는 거야? 만약 그때 네가 우리 집에 가방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달라졌을까?”

“지금 그게 뭔 개소리예요?”

살짝 무표정하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완전히 임성 쪽으로 몸을 돌린 김희도가 그의 어깨를 짚었다. 움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차갑게 느껴지던 공기에 열기가 확 실렸다.

그는 임성이 흠칫하는 모습을 보며 사납게 일렁이는 페로몬을 가라앉혔다.

김희도, 침착해. 선배가 무서워하잖아.

“날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선배의 선택이지만, 내 마음을 의심하진 마세요. 내가 선배 집에 안 갔다면요? 진심으로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개소리도 작작 해야지.”

임성은 김희도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웃거나 흥분한 건 봤어도 이렇게 분노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신기했고, 한편으로는 이 심각한 상황에서 김희도의 새로운 모습에 신기해하는 자신이 이해가 안 됐다.

“궁금하면 다른 오메가 데려와 봐요.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여 줄 테니까. 그래도 못 믿겠으면 기다려요. 평생에 걸쳐서 증명할 테니까요.”

“뭘 그렇게 흥분해?”

“지금 흥분 안 하게 생겼어? 씨발, 내가 얼마나 당신을…….”

“그러니까 네 말은 내 형질이랑 상관없이 날 좋아한다는 거잖아.”

“오메가가 다 뭐야. 베타, 아니 같은 알파라도 상관없어요. 선배는.”

거기까지 말한 김희도가 잠시 멈칫했다. 마치 무슨 말을 해야 임성이 알아들을까 고민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어떤 단어로도 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내 유일이에요. 선배만 있으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다고요.”

김희도는 고개를 숙이며 살짝 울적하게 말했다.

“너 나한테 페로몬 샤워 했지? 그것도 꽤 진하게.”

페로몬 샤워는 일종의 소유권 주장이었다. ‘이 사람은 내 거니까 건드리지 말고 꺼져.’라는 경고.

발정기를 같이 보내거나 자주 붙어 있으면 서로의 페로몬이 묻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 김이설은 제게 ‘알파냐?’고 물었다. 오메가인 임성을 알파로 착각할 정도로 페로몬을 쏟아부었단 얘기였다. 그것도 당사자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교묘하게. 작정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동의 없이 한 건 미안해요. 선배가 기분 나쁘대도 이해해요.”

“기분 나쁘다면 안 할 거야?”

“…….”

김희도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앞으로 계속하겠다는 거네. 거짓말 안 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내가 그렇게 좋아?”

“매일 선배를 보면서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모를걸요? 너무 좋아서 고통스러운 게 어떤 건 줄 알아요? 선배 때문에 내 머릿속은 엉망이에요. 선배를 어딘가에 가둬 두고 혼자 독점하고 싶은 본능과 매일 싸운다고요.”

김희도가 눈꺼풀을 내리깔며 자조적인 미소를 흘렸다. 가느다란 달빛이 그의 눈두덩에 내려앉으며 길게 뻗은 속눈썹이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 김희도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기분 안 나빴어.”

바닥을 보고 있던 김희도가 고개를 들었다. 심연처럼 까만 눈동자가 제게 향했다. 예상대로, 아니 예상보다 더 예쁘네.

“네가 나한테 페로몬 덮은 거, 하나도 기분 안 나빴다고.”

처음 좋다고 했을 때, 마지막 홈런을 치고 활짝 웃으며 제게 달려오는 순간, 어쩌면 수첩에 빽빽하게 적힌 자신의 이름을 본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온몸으로 고백해 오는데 어떻게 넘어가지 않을 수 있겠어.

“네가 되게 귀엽고, 같이 있으면 즐겁고, 더 알고 싶고…… 아, 나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거 다 때려치우고 그냥 말할게.”

“…….”

“너 좋아하는 것 같다. 아니, 좋아해.”

세상에서 제일 단순하면서도 무거운 한마디였다.

“나도 형질이랑 상관없이 네가 좋아.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

이거 생각보다 되게 쑥스럽네. 넌 어떻게 매일 말했냐? 머쓱하게 중얼거리는데, 어깨가 붙잡히더니 그대로 강한 힘으로 안겼다. 동시에 김희도의 페로몬 향이 폭발하듯 퍼졌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뒤덮는 짙고 강렬한 향이 숨 막힐 듯 넘실댔다.

임성은 그의 목덜미에 코를 묻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지하철역에서 마주한 델리만쥬처럼 달콤한 향이 목구멍을 간질거렸다.

지금 김희도의 기분은 이렇구나. 날 보면 이런 페로몬 향이 나는구나. 말하지 않아도 그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이거 하나는 편해서 좋네.

“참고로 홈런 1위는 그냥 한 말이었어. 설사 하나도 못 쳤더라도 내 대답은 같았을 거야.”

미소 짓다가 문득, 맞닿은 어깨가 떨리고 있는 걸 느꼈다.

“웃어? 그렇게 좋냐?”

“네. 좋아요.”

아, 어쩌면 웃는 게 아니라.

“우는 거야?”

“……안 우는데요.”

물을 잔뜩 머금은 코맹맹이 소리였다. 티 나는 거짓말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자꾸만 올라가는 광대에 힘을 준 채 둥근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그는 임성의 어깨에 턱을 올린 채 목덜미에 뺨을 비비적댔다.

와, 진짜 귀엽잖아. 마음을 자각해서일까 오늘따라 미치게 귀여웠다.

상대방이 귀여워 보이는 순간 끝이라면, 자신은 아마 아주 오래전부터 김희도를 좋아한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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