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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외전(오메가버스 ver.) 19 (35/41)

#IF 외전(오메가버스 ver.) 19

빤히 쳐다보는 눈동자가 부담스러웠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찌릿한 뜨거움이 일었다. 임성은 축축해진 손바닥을 말아 쥐고선 숨을 들이마셨다. 기다렸다는 것처럼 달큼한 공기가 유혹하듯 밀려왔다.

“내가 싫어요?”

“인마. 이렇게 갑자기 대답할 문제가 아니…….”

“성이 형.”

성이 형, 성이 형, 성이 형…….

머릿속에 종이 울리는 것처럼 김희도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남동생 둘에 야구부 후배들까지. 형이라는 소리는 귀가 닳을 만큼 들었는데, 왜, 이렇……게.

딸꾹. 갑자기 딸꾹질이 나왔다.

“저 형 좋아해요. 알잖아요.”

딸꾹. 다시 한번 어깨가 들썩였다.

“알파나 오메가랑 상관없이 형이 좋다고요.”

그렇다기엔 지금 너한테서 나오는 페로몬은 지나칠 정도로 달큼하지 않냐? 눈앞이 핑 돌잖아.

“그, 시, 신인왕, 아니 홈런왕 타이틀 따면 생각해 볼게.”

시야가 핑글핑글 돌면서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그 와중에도 이 페이스면 신인왕은 따 놓은 당상이라 그나마 어려운 조건을 내걸었다.

“와, 여기서 야구 얘기를 하네? 뭐, 좋아. 알았어요.”

그는 가뿐히 고개를 끄덕이며 임성의 목에 걸린 수건을 가져갔다. 당사자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아, 목이 탄다. 목이 타.

임성은 남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남은 물을 모두 비우고 나서야 딸꾹질이 겨우 멈췄다.

잘 몰랐는데 사실 자신은 시각적인 것에 엄청 약한 게 아닐까? 이번 건 청각이 약한 쪽에 가까운 건가.

“저번에 히트 온 오메가 앞에서 어떻게 멀쩡했는지 물은 적 있죠?”

시각과 청각 중 어느 쪽이 약한가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즈음 김희도가 말했다. 코와 입술은 여전히 수건에 묻은 채였다. 민트색 수건 위로 드러난 뺨이 평소보다 발그스름했다.

“그랬지.”

우성 오메가의 히트에 반응 없는 김희도의 모습을 보며 베타에 가까운 열성 알파라고 예상했다. 사람에 따라선 민감한 사항이라 직접 묻진 않았지만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었다.

“각인하면 그 사람을 제외한 페로몬 냄새는 못 맡아요. 수치가 아무리 높아도요. 오직 각인한 오메가의 향만 느끼는 거죠.”

그거야 알파 오메가 수업에서 배우는 내용이 아니던가. 그땐 제가 오메가란 자각도 없었기에 스치듯 넘겼었다.

“수건은 제가 가져갈게요. 형 대신에 이걸로 열심히 가라앉혀 볼게요.”

김희도가 땀으로 흠뻑 젖은 수건을 흔들며 라커룸을 나갔다.

뭘 가라앉힌다는 거야. 차마 묻지 못했다.

* * *

천재. 김희도를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단어였다. 스윙은 유연하되 위력은 절대 약하지 않아 치는 족족 장타로 이어졌다.

“와, 쟤 미쳤네. 저렇게 당겨 치기가 가능하다고? 저러다 진짜 홈런 1위 먹는 거 아니야?”

박태영이 질렸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현재 김희도는 두 경기 연속 홈런포를 쏘아 올리는 중이었다. 특히 어제 담장을 넘긴 공은 팀이 영봉패(*상대 팀에게 한 점도 얻지 못하고 패배하는 것)를 당하기 직전 터진 것이라 더욱 귀했다.

“아무리 알파라도 솔직히 저건 개사기지. 다른 팀 알파 타자들이랑 비교해도 심하게 잘하잖아.”

김희도는 투런에 이어 상대 팀의 안타를 앗아 가는 호수비를 펼쳤다. 공수 양면으로 뛰어나네. 타고난 재능과 빛나는 센스, 최근엔 갈고닦는 노력까지. 그 모든 것이 김희도를 돋보이게 했다. 기특해 죽겠다니까.

“네가 쟤 낳았냐?”

“그게 무슨 소립니까?”

펜스에 달라붙어 있던 임성이 최희탁을 돌아봤다.

“네가 낳은 자식도 아닌데 뭘 그렇게 흐뭇하게 봐. 광대 터지겠다. 아주.”

“제가요?”

다른 사람이 지적할 정도라고? 상상도 하지 못한 말이었다.

* * *

올 시즌 정규리그 순위 싸움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치열했다. 혼돈의 중위권과 다르게 일찌감치 가을 야구 진출을 확정 지은 페어리즈는 좀 더 높은 순위를 위해 고군분투했다.

정규 리그 마지막 시리즈는 유니콘즈 홈구장에서 열렸다. 이번 시즌 유니콘즈와의 전적에서 한 경기 뒤지고 있어 오늘 경기에 따라 5할을 맞추느냐 마냐가 달려 있었다.

빠른 템포로 공수가 오가며 어느새 7회가 됐다.

『자, 지금 시점에서 김희도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요새 홈런 페이스가 장난 아니죠? 올해 데뷔한 신인이 맞는지 의심될 정돕니다. 투수는 임성, 타자는 김희도. 페어리즈 미래를 이끌어갈 영건들이에요.』

올 시즌 슈퍼 루키라는 타이틀을 달고 시작했던 김희도는 시즌이 거의 끝나 가는 지금은 그냥 ‘몬스터 요정’으로 불렸다. 그 무슨 혼란한 별명이란 말인가.

『김이설과 김희도, 김희도와 김이설. 현재 두 사람 홈런 개수는 38개로 같습니다. 시즌 마지막 경기, 얄궂게도 두 선수가 맞대결을 펼치네요. 과연 이번 경기에서 홈런왕이 결정 지어질 수 있을까요? 김희도 타격 자세를 취합니다. 정기성의 첫 구, 낮게 떨어집니다. 김희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원 스트라이크.』

김희도가 배트를 쥔 손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루틴 없이 바로 타격 자세를 취하던 평소와 다른 행동이었다. 그리곤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려 더그아웃을 쳐다봤다.

언뜻 보이는 눈꼬리가 얄궂은 선을 그리며 휘었다.

『낮게 걷어 올린 공 좌측 담장을 향해 빠르게 날아갑니다. 아, 넘어가는 넘어, ……넘어갑니다아아아! 이야, 저걸 힘으로 넘기네요. 김희도 솔로 홈런. 팀 승리의 쐐기를 박는 묵직한 한 방입니다. 올 시즌 최고의 요정이 오늘도 마법을 부립니다.』

어어, 어. 고개를 쭉 빼고 웅성대던 관중들은 공이 담장을 넘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마지막 경기라고 원정까지 따라온 페어리즈 응원단 단장이 김희도의 응원가를 목청 터져라 불렀다. 민트색 유니폼, 혹은 요술 봉을 든 팬들이 벌떡 일어나며 일제히 환호했다.

임성은 할 말을 잃고 공이 날아가는 동안 멈췄던 숨을 탁 내뱉었다.

“후.”

배트를 던진 김희도가 빠르게 베이스를 밟았다. 홈으로 돌아오는 내내 임성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였다. 뭔가 묶인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금세 눈앞까지 뛰어온 남자가 활짝 웃더니 저를 와락 껴안았다. 더운 공기와 함께 혀끝이 아리는 달큼한 냄새가 확 끼쳐 왔다. 새카만 축복처럼, 혹은 매력적인 재앙처럼.

손끝이 찌릿찌릿 떨렸다.

“이제 선배는 내 거네.”

흙냄새가 섞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 * *

프로 야구 10개 팀은 낙엽이 비처럼 쏟아지는 가을, 총 144경기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페어리즈는 정규 시즌 최종 2위로 마무리 지었다. 순위도 순위지만, 앞으로 팀을 이끌어 갈 신인들이 선전했다는 점에서 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부산 L호텔. 그곳은 페어리즈가 부산 원정에 올 때마다 머무는 숙소였다. 원래라면 다음 경기장으로 곧장 이동해야겠지만, 시즌 종료로 더는 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오늘은 휴식을 취하고 내일 출발하기로 했다.

주장 최희탁 방에 팀원들 모두 모여 간단한 축하를 했다. 서로 고생했다고, 올해는 진짜 일 한번 내서 팬들께 보답하자고 다짐이 왁자지껄 오갔다.

“성이 없어? 화장실 갔나. 아까부터 안 보이네.”

분위기 메이커인 임성의 부재는 곧바로 드러났다.

“없습니다.”

권재영의 질문에 다른 후배가 얼른 대답했다.

“10승 투수라고 우리랑 겸상 못 하겠다는 건가? 짜식이. 기강 한번 잡아야지 안 되겠네.”

올 시즌 세이브 1위를 기록한 권재영이 농담을 뱉었다. 팀원들이 소리 내 웃었다. 술은 한 방울도 안 마셨지만, 경기의 여운이 남은 것이었다.

“김희도도 없는데요. 불러올까요?”

조금 전 임성의 부재를 알렸던 후배가 손을 번쩍 들었다.

“놔둬. 한 놈은 10승 달성에, 한 놈은 첫 시즌에 홈런 1위고. 드라마도 이렇게 쓰면 설정 과다라고 욕먹을걸.”

“김희도 알파라면서요? 애초에 알파랑 어떻게 경쟁합니까?”

“인마, 다른 팀에는 알파 없냐? 타 팀 용병 알파 포함해서 1등 먹은 거잖아.”

“들리는 소문으론 페로몬 수치도 낮다던데 대단하긴 하죠. 후반기에는 거의 한 경기 걸러 한 경기 홈런이었잖아요.”

다들 한마디씩 거들고, 최희탁이 잔을 들었다.

“오늘은 탄산에 맘껏 취하자.”

최희탁에 말에 다들 페어리즈 파이팅!을 외치며 콜라와 사이다가 든 종이컵을 높게 들었다.

같은 시간, 최희탁을 비롯한 선수들이 모인 바로 옆 방.

임성의 상체는 거울이 달린 테이블에 눌리듯 엎드린 채였다. 맨살에 닿는 차가운 테이블에 젖꼭지가 짓눌리며 목이 움츠러들었다.

“으읏.”

뜨거운 혀가 땀범벅인 등줄기를 따라 길게 핥았다. 혀가 미끄러질 때마다 허벅지에 자꾸 힘이 들어갔다.

어흐, 윽. 지금 내가 뭘 하고 있지. 뭘 하고 있었더라. 눈앞이 흐리고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김희도는 마치 임성의 생각을 알아챈 듯 엉덩이를 양쪽으로 잡아 벌렸다. 탄탄한 엉덩잇살이 손바닥에 눌려 벌어지며 구멍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엄지 손끝이 주름진 곳을 덧그렸다. 구멍이 반응하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야, 김희도…… 거긴 왜 만져.”

앓는 듯한 목소리로 김희도의 이름을 불렀다. 김희도 앞에서 아랫도리를 깐 채 구멍을 만져지고 있는 상황이 믿을 수 없었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부끄러운데, 부끄러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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