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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외전(오메가버스 ver.) 16 (32/41)

#IF 외전(오메가버스 ver.) 16

같은 시각. 화장실 밖에서 기다리는 남자는 초조함을 숨기지 못했다.

“……선배. 괜찮아요?”

노크 소리에 놀랄까 봐 두드리지도 못하고 속삭이듯 물었다. 무슨 소리라도 들릴까 싶어 화장실 문에 귀를 딱 붙였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무슨 일 생긴 거 아닌가? 여차하면 화장실에 들어가려고 결심한 찰나, 문이 열리며 기다리던 사람이 나왔다.

“아, 깜짝아. 왜 이렇게 가까이 서 있냐? 화장실 가고 싶어?”

햇볕에 잘 그을린 밀 색 뺨이 발갛게 물들고, 살짝 젖은 앞머리가 이마에 달라붙어 전체적으로 무척 상기된 표정이었다.

“선배. 전 다 받아들일 수 있어요. 부담 갖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주세요.”

임성은 제 눈앞에 있는 남자를 새삼스럽게 살폈다. 표정 변화는 없는데 목소리는 조심스럽고, 주먹을 둥그렇게 말았다가 펴기를 반복했다. 꼼지락대는 손가락을 보는 걸 느꼈는지 김희도가 등 뒤로 손을 휙 감췄다.

저 어린애 같은 행동은 뭐야. 되게 귀엽잖아. 좀 더 놀려 줄까 하다가 쟤도 2주 동안 속이 말이 아니었겠다 싶어 진실을 털어놓기로 했다.

“한 줄.”

“한…… 으음.”

한 줄. 즉, 임신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알파가 히트 중인 오메가에게 노팅을 하면 임신 확률이 현저히 올라갔다. 특히 노팅 중인 알파가 러트인 경우 페로몬 덕인지 정액의 점도가 올라가 체내에 머무는 시간이 보통 때보다도 훨씬 길어졌다. 당연히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놀랍게도 자신과 김희도는 모든 가능성을 충족했다. 오히려 한 줄이 나온 게 의외라고 할까.

“둘 다 처음이라서 그랬나 봐. 아니라서 다행이지?”

당연히 안도할 줄 알았던 남자는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렸다. 기분 탓인가, 왠지 실망한 것처럼 보이는 건.

“줘 봐요.”

갑자기 마주친 시선에 임성이 상체를 살짝 물렸다.

“뭘?”

“테스트기. 저도 확인해 보려고요.”

혹시 팀 닥터에게 제출할 일이 있을까 봐 투명 비닐에 넣어 놓은 테스트기를 건넸다.

“흐음.”

그는 빨갛게 한 줄로 그어진 테스트기를 뚫어지게 보다가 다시 돌려줬다.

“잘못 나왔을 확률은요? 한 번 해서는 정확히 모르는 거 아니에요?”

김희도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재차 물었다.

“음.”

불안한 건지, 실망한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주방으로 향했다. 등 뒤로 발소리가 따라붙는 걸 들으며 물을 벌컥 들이켰다. 다 마시기가 무섭게 한 잔 더 따라 마셨다.

“갑자기 물은 왜 마셔요? 배고프면 뭐 좀 만들게요.”

“소변이 바로 나오진 않으니까 마시는 거잖아. 결과 못 믿겠다며.”

2L 물 한 통을 다 비우고 나서야 다시 신호가 왔다. 화장실로 향하는 임성의 뒤로 김희도가 따라왔다. 같이 확인해 봐야겠다는 김희도를 겨우 말리고, 화장실 문을 살짝 여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이게 무슨 수치 플레이야. 얼굴이 달아오르다 못해 머리가 핑 돌았다.

여전히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한 줄인 테스트기를 살짝 흔들며 웃었다.

“책임질 일 없어서 다행이네. 이젠 너도 안심하고 야구에 전념해.”

“그럼 선배가 저 책임지세요.”

뭐? 임성이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지금 제가 들은 게 맞나 싶어서.

“선배는 쿨해서 아무렇지 않나 본데요, 전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선배가 저 책임져요.”

턱을 살짝 들고 눈을 내리깐 당돌한 표정으로 김희도가 말했다.

* * *

임신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정밀 검사를 할 수 있었다. 기본적인 피 검사 후 형질 감별 전용 기계로 전신을 꼼꼼히 스캔했다. 구단과 연계된 병원이라 일반 사람들보다 결과를 빨리 받아 볼 수 있었다. 비록 충격적인 결과였지만.

“선생님. 아무래도 다른 사람 거랑 바뀐 것 같은데요.”

「이름: 임성 (남성. 22세)

형질/수치: 열성 오메가/ 98.99%

상태: 비활성/안정(0%)」

열성 오메가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으니 새롭진 않았다. 하지만 옆에 98.99%라는 숫자를 보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페로몬 수치 0.1%가 고작 몇 달 사이에 98%로 변하는 게 말이 돼? 여태 멀쩡하다가 갑자기? 왜? 뒤늦은 사춘기라고 하기엔 벌써 스물둘이었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의사 생활 30년 만에 이런 일은 처음이야. 진짜.”

어이없다는 듯 말하는 팀 닥터를 보며 저도 마찬가지예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다.

다음 날 아침, 모자를 푹 눌러쓰며 나오던 임성은 집 앞에서 떡하니 존재감을 드러내는 외제 차를 보고 멈칫했다.

범상치 않은 굴곡을 그리는 외제 차에 그와 꼭 어울리는 남자가 기대어 서 있었다. 저번엔 검은색 무광을 끌고 오더니 지금은 청색에 가까운 짙은 파란색이었다.

쟤 올해 스무 살 아닌가? 아무리 집이 잘살아도 억 소리 나는 외제 차를 골라 탈 정도인가. 이번 계약금이 얼마였지? 역대 야수 최고를 갱신했다는 것만 어렴풋이 떠올랐다.

“좋은 아침. 잘 잤어요?”

김희도는 임성을 보며 아침 인사를 하곤 조수석 문을 열었다. 매너라는 걸 알면서도 이럴 때마다 기분이 이상했다.

“구단 갈 거죠? 타요.”

“너도 단장님께 연락받았냐?”

“그건 아니고요.”

어딜 가나 나타나는 김희도 덕에 운전대를 잡아 본 게 언젠지 모르겠다. 하지만 본인도 연관된 일이니 궁금할 수도 있겠다 싶어 동행하기로 했다.

단장실에는 단장과 1군 투수코치, 팀 닥터 세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인사를 꾸벅 하고 자리에 앉으려는데, 한발 앞서 김희도가 의자를 뒤로 뺐다. 임성을 포함한 네 사람의 시선이 테이블 아래에서 빠져나온 의자로 향했다.

“여기 앉아요.”

지금 내 의자 빼 준 건가? ……솔직히 당황스러웠지만, 뭐라 말을 할 상황이 아니라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단장은 지난번에 이어 지금도 ‘잘들 논다’ 하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보다가 병원 로고가 찍힌 파일을 꺼냈다.

저 안에 자신의 검진 결과가 들어 있겠지. 입 안이 바짝 말랐다.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기던 손은 특정 페이지에서 멈췄다.

“98.99%면 99%…… 거의 우성 오메가잖아.”

나 참. 어이가 없네. 검사지를 내려놓은 단장이 팔짱을 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요 며칠 새 얼굴이 푸석푸석해진 걸 보니 민망함과 미안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여태 멀쩡하다가 갑자기 발현한 이유가 뭐야? 뭐 예상되는 거라도 있어?”

“저도 알고 싶습니다. 당장 올해 검진 결과도 0.1% 열성으로 나왔습니다. 억제제를 안 먹어도 되는 수준이라는 소견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이유를 알고 싶고 궁금한 건 자신이었다.

“됐다. 원인을 안다고 결과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의외로 간단히 얘기한 단장은 결과지를 파일에 다시 끼워 넣으며 김희도를 힐끔 곁눈질했다.

“그동안 구단 회의도 많이 하고, KBO 측에도 문의했어. 오메가 관련 규정은 아예 없어서 그쪽도 많이 놀란 것 같더라. 어젯밤에 결과가 나왔어.”

저절로 허리가 펴지고 몸에 힘이 들어갔다. 임성은 양손을 무릎 위에 얹으며 단장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알파들도 억제제 먹으면서 경기 뛰는데 오메가라고 못 할 게 뭐 있겠냐? 대신 관리 철저히 해. 매달 꼬박꼬박 검사받고. 피임도 빼먹지 말고.”

“네. 명심하겠습니다.”

피임이라는 단어에 살짝 멈칫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 생기면 제일 먼저 너한테 영향 가는 거 알지? 아마 매스컴에서도 난리 날 거다.”

“압니다.”

“이건 네가 단순히 오메가라서가 아니라 혼자라서야. 쪽수에서 밀리니까. 알파는 팀마다 셋인데 오메가는 전 구단 통틀어서 너 한 명이잖아. 이런 건 상대적으로 타격을 덜 받는 쪽을 덜어 내는 거라고. 반대 상황이었다면 알파를 내보냈겠지.”

이해하지? 단장이 덧붙였다.

“주의하겠습니다.”

당장 방출하지 않은 게 어디냐 싶었다.

야구를 다시 할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내내 돌덩이를 얹은 것처럼 무겁던 가슴이 뻥 뚫리며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었던 어깨가 내려앉았다.

“아, 그리고 이건 내 개인적인 궁금증인데. 불편하면 대답 안 해도 상관없어. 너희 둘이 막, 그런…… 사이냐? 애인 같은 거.”

“네?”

“네.”

말꼬리가 올라가며 의문형을 띄는 임성과 달리 김희도는 확신에 찬 대답을 꺼냈다. 왜 둘이 말이 달라? 단장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이 갈리는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우리가 사귀는 사이야?”

“그럼 섹파예요? 한 번 했으니까 더는 필요 없다, 이런 거?”

김희도의 눈매가 고양이처럼 새초롬하게 올라갔다. 섹파. 올해 들은 말 중 가장 충격적이었다.

단장을 비롯한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게 느껴졌지만,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당장 김희도의 오해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섹……, 야. 너 그게 무슨 말이야. 뭘 한 번 하니까 필요가 없어.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이놈이 큰일 날 소리를 하네. 임성이 드물게 정색했다.

“그럼 필요해요?”

필요하냐 물으면…….

“당연하지.”

당연히 필요했다. 김희도의 루틴은 더는 그 혼자만의 루틴이 아니었다. 손을 잡는 행위에서 안정을 느끼는 건 자신도 마찬가지였으므로.

“잘됐네요. 저도 선배가 필요하거든요.”

“어?”

“필요하다면서요. 아니에요? 바로 말 바꿉니까?”

“필요해, 한데…….”

“한데는 무슨 한뎁니까. 빠져나갈 생각은 하지도 마세요.”

어째 대화를 하면 할수록 말려드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그때 단장이 파일로 테이블을 탁, 치더니 “야. 사랑싸움은 나가서 해. 솔로 앞에서 웬 염장질이야?” 하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두 사람은 단장에게 쫓겨나다시피 사무실을 나왔다. 문 앞에 덩그러니 서서 김희도를 쳐다봤다.

“네 머릿속 한번 열어 보고 싶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어차피 열어 봐도 하나밖에 없을걸요.”

그는 제 머리를 톡톡 치더니 순하게 웃었다.

“선배요.”

당돌한 발언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책임이고 뭐고 그냥 선배가 좋아요. 그것뿐이에요.”

이건 직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 같은데. 괜찮은 거 맞지?

아니. 문제는 저 모습까지도 귀여워 보이는 제 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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