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외전(오메가버스 ver.) 8
“희도야. 너 있잖아.”
“네.”
“흥분되지 않아? 심장이 미친 듯 뛴다든가, 갑자기 말 못 할 욕구가 느껴진다든가.”
“네?”
조금 전까진 멀쩡해 보이던 모습은 어딜 가고 김희도는 한껏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욕구요? 갑자기 그건 왜 묻는데요.”
목소리 끝이 뒤집혔다.
영향을 받은 거 맞지? 역시 의무실에 오메가가 있다는 걸 알려 주면 안 되겠어.
자신도 모르게 의무실을 힐끔 곁눈질한 걸 봤는지 김희도가 들어가야겠다고 말했다. 평소엔 말 잘 듣는 자식이 오늘따라 왜 이리 고집을 부리는지 모르겠네.
“안 돼. 절대 못 들어가.”
“그러니까 왜요? 갑자기 이상한 질문 하질 않나, 못 들어가게 막질 않나. 대체 뭐예요?”
도무지 순순히 돌아설 것 같지 않았다. 임성은 “일단 가면서 얘기해. 여기 나가면 말해 줄게.” 하며 김희도의 팔을 두 손으로 붙들었다. 여차하면 붙잡고 늘어질 작정이었다.
움찔, 맞닿은 팔이 크게 흔들렸다.
“……우선 가긴 가는데, 얘기해 줘야 합니다. 난 꼭 알아야겠으니까.”
마지못해 어울려 준다는 듯한 말투였다. 의무실에서 조금 떨어진 곳까지 끌고 간 후에야 진실을 밝혔다.
“갑자기 히트 온 직원이 있어.”
“아하.”
못마땅하게 솟은 눈썹 앞머리를 내린 김희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흥분 어쩌고 한 거예요? 의무실에 있는 오메가 때문이면 괜찮아요.”
보다시피 아무렇지 않아요. 덧붙인 김희도는 마치 결백을 증명하듯 양팔을 벌렸다.
유난히 하얗고 예쁜 얼굴도, 고요한 숨소리도 그대로였다. 조금 전 실핏줄을 터트리며 흥분해 날뛰던 쉐먼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이번 1차 지명, 알파라며?’
권재영의 말대로라면 김희도는 지금 흥분하다 못해 어떻게든 의무실에 들어가려고 발악을 해야 했다. 이렇게 침착한 게 아니라.
“너 혹시……아니다. 이따 다시 얘기해.”
이럴 게 아니라 홍윤현에게 억제제를 갖다 줘야 한다는 게 문득 떠올랐다. 임성, 이 멍청한 놈아. 지금 홍윤현 씨가 얼마나 무서워하고 있겠냐.
마케팅 사무실로 빠르게 뛰어가며 혹시 김희도는 우성이 아니라 열성 알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페로몬 수치 0.1%의, 베타에 가까운 열성 오메가이듯 그 역시 수치가 낮아 오메가에게 반응하지 않는 건 아닐까?
홍윤현에게 무사히 억제제와 소취제를 건네고 김희도와 라커룸으로 가는 중이었다. 조금 전 봤던 쉐먼의 표정과 팽팽한 고간, 그리고 주변을 빡빡하게 채우던 페로몬이 잊히질 않았다. 그리다 문득 궁금한 게 떠올랐다.
“너 오메가 페로몬 맡아 본 적 있어?”
“네. 있어요.”
“어떤 느낌이야?”
음. 김희도가 손바닥으로 매끈한 턱 날을 감싸며 생각에 잠겼다.
“배 속이 간질간질하면서 묵직하고, 손발이 배배 꼬여 어쩔 줄 모르겠는 거요. 주변 사람과 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사람밖에 안 보여요. 아, 저 사람은 내 거구나.”
“본능 같은 건가. 으음, 너무 원초적인 거 아니냐?”
“그게 알파와 오메가잖아요. 어디에 있든 기어코 찾아내서 가장 밑바닥까지 드러내는 것. 참아 보려고 해도 결국은 참지 못하는 본능이요. 오히려 참은 만큼 더 오래, 지독한 쾌감과 해방감을 느끼겠죠.”
김희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웃는 건가? 대화의 내용보다 그걸 설명하는 표정이 더 인상 깊은데.
“열성…… 음, 난 열성 오메가라서 여태 한 번도 못 겪어 봤거든. 알다시피 이쪽이 워낙 페로몬 관리에 철저하잖아.”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요?”
“아주 조금은?”
조금 전 같은 상황은 곤란하지만, 대체 페로몬이 뭐길래 멀쩡한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 궁금했다.
“네. 그렇군요.”
그래요. 작게 중얼거린 김희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3승. 오늘 경기에 승리하면서 임성은 3승 투수가 됐다. 불펜에서 선발로의 성공적인 전환이었다. 뒤늦게 합류하긴 했지만, 구위가 워낙 좋아 이 페이스면 두 자릿수 승리도 충분히 노려 볼 만했다.
“선발승 축하해요. 오늘 공 엄청 좋네요.”
“이상하게 요즘 몸이 가볍네. 그러는 너도 오늘 타점 올렸잖아.”
임성이 상대 팀 타자를 차례대로 돌려세울 동안, 김희도는 연속 안타를 때리며 2점을 뽑았다. 기분 탓인지 자신이 선발로 설 때마다 김희도는 유독 좋은 모습을 보였다. 방망이뿐 아니라 수비에서도 슈퍼 플레이를 보였다. 기특한 녀석 같으니.
“아까도 빠질 뻔한 공 잡아 줬지? 그대로 떨어졌으면 최소 2루타였을걸.”
“잡아서 고마워요?”
“말이라고 해? 엄청 고맙지. 팀원들이 뒤에서 버텨 주는 게 얼마나 든든한데. 큰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니까.”
“큰절은 됐고, 다른 거 주세요. 물질적인 거요.”
김희도가 손을 내밀었다.
“밥 사 줄까? 이 근처에 삼겹살 가게 오픈했더라. 오픈 기념 서비스로 돼지 껍데기 준대.”
“밥은 내가 살게요. 질리도록 사 줄 테니까, 선배 물건 줘요.”
장갑, 모자, 양말, 지금 막 벗은 이너 셔츠, 경기에 신고 나갔던 스파이크. 그동안 김희도가 가져간 제 물건만 해도 4개였다. 지금 기세를 보니 기어코 다섯 개를 채울 모양이었다.
“이번엔 뭐 갖고 싶은데? 뭔지 몰라도 내가 그거 하나 못 들어주겠어?”
“팬…….”
“펜? 볼펜?”
“팬티.”
뭐? 방금 이상한 단어를 들은 것 같은데.
“패, 팬티? 속옷? 나 지금 제대로 들은 거 맞냐?”
“표정 보니까 맞네요.”
생각지도 못한 단어에 할 말을 잃고 입만 뻐끔댔다. 대체 팬티를 왜. 그걸로 뭐 하려고?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둥둥 떠다녔다. 벌어진 입을 겨우 다물며 김희도의 표정을 살폈다. 일자로 다문 입이나 쭉 뻗은 눈매 등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아무래도 농담은 아닌 것 같았다.
“S대 붙은 사람이 쓰던 볼펜, 가방, 속옷까지 다 털어 가는 거 몰라요? 좋은 기를 받고 싶은 거.”
그렇게 따지면 자신이 김희도의 속옷을 받는 게 더 맞지 않나? 그렇게 반문하려다가 괜히 더 어색해질 것 같아 내뱉지 않았다.
팬티, 팬티라……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좀. 눈까지 질끈 감으며 생각을 거듭하다가 “내일 갖다줄게.” 하고 말했다. 설마 지금 입고 있는 걸 갖고 싶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까.
그는 뭐라고 대답할까 고민하는 것처럼 임성의 아랫도리와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요.”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휴우.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 * *
순조로운 출발이라고 생각한 것이 무색하게 영문 모를 컨디션 난조가 찾아왔다. 속이 얹힌 것처럼 답답하고 이유 없이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마를 짚으면 멀쩡한데 눈두덩과 목구멍이 특히 뜨거웠다. 체온은 정상과 미열을 오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몸 상태가 좋았단 걸 믿을 수 없었다.
마운드엔 꾸역꾸역 올랐지만, 말 그대로 정말 꾸역꾸역이었다. 딱 2군에 내려가지 않을 정도의 아슬아슬한 투구.
“몸살 걸리기 직전 같아요. 목구멍이 간질간질하고 머리는 묘하게 어지럽고. 뭔가 되게 기분 나쁘다고 할까.”
임성이 팀 닥터에게 투덜거렸다. 같은 ‘임 씨’인 페어리즈 팀 닥터는 임성을 유난히 신경 썼다.
“검진 결과 별다른 이상은 없다면서? 로테 계속 돌 거야?”
“코치님께선 이번 주까지 지켜보고 결정하재요. 컨디션이 계속 안 좋으면 검진받자고요. 근데, 이상하게 몸은 안 좋은데 입맛은 왕성해요.”
침대에 걸터앉아 어깨를 늘어트렸다. 어깨나 팔꿈치가 아픈 것보단 낫지만 미열이 지속되는 것도 썩 좋진 않았다.
“뭘 새삼스럽게. 너 원래 잘 먹잖아.”
“체력 유지 때문이지, 음식 자체에 욕심이 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요새는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다고 할까. 특히 초콜릿이나 젤리 같은 단 음식이 계속 당겨요.”
지금도 먹고싶네. 쩝, 입맛을 다셨다.
【α+deodorant】 라벨이 붙은 스프레이를 챙기던 닥터가 문득 임성을 돌아봤다.
“임성. 너 호르몬에 이상 있는 건 아니야? 마지막 검사 언제 받았냐?”
“이번 스캠 때요. 아시잖아요. 저 수치 0.1%인 거. 베타보다 더 베타 같은 사람이 접니다.”
“히트 온 적은…….”
“없어요. 여태 단 한 번도.”
아무리 히트 주기가 길어도 20살이 넘은 오메가가 한 번도 히트가 오지 않은 건 말이 안 됐다. 확신이 담긴 대답에도 코치는 그래도, 하더니 알파용 소취제를 내려놓고는 서랍을 열었다.
“이거나 받아라.”
곧 허공을 날아오는 것을 임성이 낚아챘다.
“이게 뭡니까?”
주니까 받긴 했는데 용도를 모르겠다. 영양제인가? 동그란 통을 위아래로 흔들자 잘그락 소리가 났다.
“오메가 억제제. 당장 얼마 전에도 일 있었잖아.”
“그분은 우성 오메가였다면서요? 히트도 원래는 엄청 주기적이었다던데.”
홍윤현에게 억제제를 건네고 그가 좀 진정됐을 즈음 들은 말이었다. 오메가로 발현하고부터 주기가 일정했고 특히 요 몇 년간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나. 히트까지 2주 넘게 남아서 미처 상황을 대비하지 못했다고.
“그러니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뜻이잖아. 토 달지 말고 받아 둬.”
쓸 일이 없을 텐데. 속으로 중얼거리며 억제제를 가방 깊숙한 곳에 넣었다.
임성이 미묘하게 저조한 컨디션으로 억지 투구를 하는 사이 김희도의 타율도 바닥을 기었다. 늘 좋을 수만은 없는 게 타격이고 오르내리는 게 정상이라지만, 이 경우엔 수직으로 내리꽂는 수준이었다. 김희도의 주간 타율을 본 최희탁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폭락하는 타율 그래프 마치 내 주식 차트 같네.” 하고 자조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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