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외전(오메가버스 ver.) 3
김희도가 끌고 온 차는 외제 차였다. 모 영화에서처럼 저러다 갑자기 로봇으로 변신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의 외관이었다.
자동차엔 그다지 관심이 없어 정확한 가격은 모르겠지만, 아마 전세 보증금 값은 족히 나오지 않을까.
문제는.
“짐 실어도 괜찮아?”
가방이 아니라 캐리어를 끌고 와서 트렁크에 실어야 하는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차체에 흠집이라도 내면 어떡하지? 내 연봉의 1/3은 수리비로 날아가는 거 아닌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리 주세요.”
옆에서 뻗어 나온 손이 어정쩡하게 방황하는 캐리어를 번쩍 들어 트렁크에 실었다. 터엉! 캐리어를 내려놓는 손은 조심스러운데 트렁크를 닫는 손길은 거침없었다. 뒤이어 조수석 문을 열고 옆으로 한 발짝 비켜섰다.
“됐죠? 타요.”
“어? 어. 고맙다.”
누가 조수석 문을 열어 준 건 처음이었다. 매너 좋네. 상체를 구부리며 차 안에 들어갔다.
비싼 차 내부는 이렇구나.
“성아, 1군에서도 잘해라. 여기서 하는 것만큼 하면 성공한다.”
매니저 형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동안 이것저것 챙겨 주셔서 감사했어요. 도착하면 연락하겠습니다.”
“그래. 다시는 이천에서 다시 보지 말자. 알지?”
2군 매니저를 만나려면 컨디션 저하나 부상 등으로 말소돼야 하니까. 나름의 격려에 씩 웃으며 손을 마주 흔들었다.
“매니저 형이야말로 저 없다고 울지 마십쇼. 그리고 예준이…….”
“안 가요?”
살짝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말을 끊었다. 임성은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하곤 안전띠를 내리기 위해 고개를 위로 비스듬히 들었다. 길고 매끈한 안전띠를 붙잡으려는 순간, 짙은 그림자와 함께 살짝 더운 체온이 다가왔다.
한 손으로 의자 옆을 짚은 김희도가 상체를 깊게 숙였다. 헉. 당황스러울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임성은 턱을 안쪽으로 당기며 최대한 등을 붙였다.
평소라면 시답잖은 소리라도 술술 뱉었을 말문이 꽉 막혔다. 입을 열면 김희도의 뺨에 닿을 것 같아서.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러갔다.
딸깍.
“출발할게요.”
갑자기 다가왔던 것만큼이나 금세 멀어졌다. 임성은 어느새 제 상체를 가로지른 안전띠를 두 손으로 꼭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로 향하는 차 안은 침묵으로 가득했다.
곁눈질로 본 김희도의 옆모습은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무척 화사했다. 여백 하나 없이 꽉 찬 이목구비, 개중에 길게 뻗은 눈꼬리와 도톰한 아랫입술이 오묘한 느낌을 자아냈다. 같은 남자가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잘 생겼다.
운전하는 모습조차 한 장의 화보처럼 멋져 연예인이라고 해도 믿겠다.
앗, 아니지. 무심코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운동선수는 실력으로 평가해야지, 외모로 판단하는 건 상대방에게 실례였다.
임성이 시선을 내리며 혼자 반성하고 있을 때 김희도는 백미러를 통해 그 모습을 지켜봤다. 살짝 찡그린 미간이라든가, 높은 콧대, 꽉 다문 입술. 살짝 각져서 더 매력적인 턱. 곧은 목에 불거진 울대뼈를 훑다가 그가 고개를 들자 모른 척 눈동자를 돌렸다.
“너 이천에 자주 왔었지? 나 너 여러 번 봤었거든.”
“네.”
단답형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민망하진 않았다.
“근데 차 안에 방향제 뿌렸어? 아니면 네 향수 냄새?”
“둘 다 아닙니다.”
그럼 이 좋은 냄새는 뭐야? 어디서 나는 거지? 목을 살짝 내밀고 집중해서 코를 킁킁댔다. 차 안을 꽉 채운 달큼한 냄새가 조금 더 짙어졌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짧게 내뱉기를 여러 번.
“오늘따라 덥지 않냐? 나만 이래?”
코끝에 살랑거리는 향기보다 더위가 더 신경 쓰였다. 배 속에 불덩이가 떨어진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에어컨 틀까요?”
“어. 고마워.”
4월 말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땀이 뻘뻘 났다. 단순히 덥기만 한 게 아니라 마치 작열하는 태양 아래 벌거벗은 채 서 있는 것처럼 후텁지근했다.
기분 탓인가 싶었는데 김희도의 뺨도 발그스름한 걸 보니 더운 게 맞는 것 같다.
곧 앞에서 찬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앞머리가 팔락거릴 정도로 바람 세기가 강한데도 차 안을 꽉 메운 더위는 식을 기미가 안 보였다.
에어컨이 고장 났나? 조금 더 온도를 내리려는 손을 김희도가 제지했다.
“감기 걸려요. 콜업 받자마자 다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죠?”
“그건 알겠는데…… 너무 덥잖아. 거의 사우나에 있는 것 같은데.”
“창문 열게요. 그걸로 좀 참아 봐요.”
곧 에어컨이 꺼지고 차 창문이 내려갔다. 그 틈 사이로 한창 무르익은 봄바람이 살랑살랑 스며들었다.
에어컨보다 훨씬 따뜻한 바람인데 식은땀이 날 정도로 무덥던 기분이 점차 잦아들었다.
방금 그건 뭐였지? 시즌 첫 1군이라 들뜬 건가? 손등으로 젖은 턱을 닦으며 창문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한층 집요한 김희도의 시선이 고민에 빠진 얼굴을 핥듯이 응시했다.
이상한 더위가 가시고 나자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징-. 침묵을 깬 건 문자 알람이었다.
-조예준: 주장. 지금 서울 가는 중이에요?ㅠ
-조예준: 인사도 못했네요ㅠㅠㅠㅠㅠ
응. 지금 가는 중이야. 답장하려는 순간, 옆에서 김희도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 좋아해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휴대폰 자판을 두드리던 움직임이 멈췄다.
“어, 나?”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얼빠진 얼굴로 되물었다. 김희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야구.”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생각보다 본능에 가까운 대답이었다.
“……선배는 좋아하는 마음을 주체 못 할 땐 어떻게 해요?”
처음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몇 번을 곱씹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야구를 잘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을 하는 게 바람직하냐는 내용의 질문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나는 메모해. 그날 훈련 내용이나 선배들 조언. 경기하면서 느꼈던 감정, 생각. 나중에 돌아보면 꽤 도움이 되거든. 특히 슬럼프 왔을 때 읽으면 ‘내가 이렇게 야구를 좋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
“아하.”
‘아’와 ‘하’, 아하. 부드러운 음절로 이뤄진 소리였다.
“그리고 이건 나도 재영이 형한테 들은 조언인데 멘탈 흔들릴 땐…….”
어느새 조예준에게 보내는 답장의 존재는 잊은 후였다.
40분 남짓 걸려 익숙한 현관 앞에 도착했다. 임성이 1년째 살고 있는 자취방이었다. 휴대폰을 챙기고 차에서 내렸을 땐 이미 김희도가 캐리어까지 꺼낸 후였다.
“여기까지 운전한다고 고생했다. 고마워.”
“그게 답니까?”
이게 다가 아니면 뭐가 더 필요한데?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김희도를 보니 농담으로 한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덕분에 편히 왔으니 기름값은 챙겨 줘야겠지. 잠깐만, 지금 내가 현금이 있던가? 점퍼 주머니를 뒤적여 봤지만, 급하게 챙긴 장갑 말곤 없었다.
“잠깐만. 지갑 캐리어 안에 있나 봐.”
반듯하게 선 캐리어를 바닥에 눕히고 막 지퍼를 열려고 할 때였다.
“그거 주세요.”
머리 위로 무심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허리를 반쯤 구부린 자세로 고개만 살짝 들어 올렸다. 삐딱하게 선 채 손을 내민 김희도가 보였다. 누가 보면 강탈이라도 하는 줄 알겠네.
“지금 선배 주머니에 있는 거 달라고요.”
“지갑 캐리어 안에 있다니까. 금방 꺼낼게.”
“아니요. 장갑 주세요.”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며 “이거?” 하고 물었다. 김희도의 고개가 위아래로 천천히 끄덕였다. 쓰다 만 장갑을 왜? 손에 맞지도 않을 텐데. 일단 뭔갈 달라고 했으니 받긴 해야겠고. 구색 맞추는 건가.
“오늘은 그거면 충분해요. 오늘은.”
김희도가 다시 한번 또박또박 말했다.
* * *
지난 시즌까지 임성의 보직은 불펜이었다. 고등학생 때 꽤 이름을 날리던 선수답게 시즌 첫해는 추격조로, 작년엔 필승조로 활약을 했다. 비록 팀 순위는 미미했지만, 개인 성적만 따지면 유의미한 결과를 냈다. ‘신인치고’라는 타이틀을 떼도 준수한 성적이었다.
마무리 캠프 때 감독으로부터 선발로 전환하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딱히 거절할 명분이 없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선발로 도전해 보고 싶었기에 바로 받아들였다.
“컨디션 체크 겸, 내일 상황 보고 던져 볼래?”
내일 나오는 투수는 1선발 오웬 엘리오스였다. 만약 큰 점수 차로 지고 있거나, 반대로 크게 이기는 중이면 불펜으로 나가 보자는 코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 날 설레는 마음으로 구장에 발을 내디뎠다. 땀 냄새 섞여 묘하게 텁텁한 이 공기. 역시 이거지. 가슴이 빠르게 뒤엇다.
“안녕하십니까! 임성, 지금 막 돌아왔습니다.”
모자를 벗으며 선배들에게 90도 가까이 인사했다.
“어어, 성이 왔냐? 이천 밥 먹고 왔으면, 밥값 해야지?”
“밥값만 해서 되겠습니까? 후식까지 풀코스로 쏘겠습니다.”
“하, 저 넉살 좋은 놈.”
넉살 좋게 말하는 임성을 보며 선배들이 호탕하게 웃었다.
임성은 땀을 흡수해 줄 수건을 목도리처럼 둘둘 감고 구석에서 아령을 잡았다. 스피커에선 선배들이 즐겨 듣는 노래가 신나게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미리 정해 놓은 세트를 모두 끝내고 얼굴과 목을 흥건히 적신 땀을 닦았다.
다음 운동을 하려는 찰나, 입구 쪽이 조금 시끄럽나 싶더니 땀 냄새로 범벅된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멀끔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눈동자만 굴려 주변을 훑더니 임성을 발견하고 곧장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희도 넌 컨디션 어떠냐?”
“좋습니다.”
다른 때보다 더. 덧붙인 김희도가 옆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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