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외전(오메가버스 ver.) 1
“쟤 알파래.”
“그래요?”
글러브를 닦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실제로도 크게 관심이 없었다. 알파가 드물긴 해도 아주 보기 힘든 건 아니었으니까. 당장 여기, 이 구단만 해도 3명의 알파가 있었고, 다른 9개의 구단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3명으로 제한한 이유는 알파의 운동 능력이 베타나 오메가보다 월등히 뛰어나서였다. 대부분의 구단은 조금이라도 더 등급이 높은 알파를 원했고, 평균적으로 체격이 뛰어난 외국인 용병으로 구성됐다.
권재영 말처럼 올해 갓 입단한 신인 선수가 알파라면 확실히 특이하긴 했다. 국내파는 팀 경기에 잘 뛰지 않았으니까.
“쟤 너희 고등학교 출신이잖아. 둘이 만난 적 없어?”
“형 후배이기도 하잖습니까?”
“인마, 나랑은 까마득하고 너랑은 두 살 차이잖아. 같이 안 뛰었어?”
입단 전부터 온갖 이슈를 몰고 다닌 슈퍼 루키는 스무 살이었다. 임성의 나이가 22세였으니 활동 기간이 1년이 겹치는 것이었다.
흠, 이 정도면 괜찮나. 임성은 손질한 글러브에 손을 끼우고 구부렸다 펴기를 반복했다.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사용하던 글러브는 작년 시즌을 기준으로 완전한 안녕을 고했기에 시즌 개막 전 조금이라도 길을 더 들여 놔야 했다.
“이름이 김희도였죠? 야구부 명단엔 있었는데 나오진 않았어요. 예준이 말론 3학년들 은퇴 후 나왔다던데요?”
1년 후배이자 중고교 시절 함께 배터리를 이뤘던 조예준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그때 예준이가 또 뭐라고 했더라? 전화 와서 한참 투덜거렸는데.
‘그 새끼 진짜 싸가지가 바가지예요. 사람을 아예 공기 취급 한다니까요? 에이씨. 생각하니까 또 열받네.’
그냥 예의 없는 앤 줄 알았는데 알파라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사회 기득권 중에선 알파가 많았다. 아니, 알파가 사회 기득권이 된다는 쪽이 더 맞으려나. 그들은 머리, 외모, 체격, 권력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었다. 부족함이 없어서일까, 본인이 최곤 줄 아는 이기적이고 오만한 알파들이 많았다. 모든 알파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아주 높은 확률로. 그나마 팀 스포츠엔 열성 알파가 많아서 팀원들과 나름 잘 어울렸다. 참 다행이지.
“알파라는 얘기 못 들었는데요. 진짜 알파 맞아요?”
알파들은 자랑스러운 자신의 형질을 숨기려 하지 않아서 금방 소문이 퍼졌다.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고등학교 다닐 때도 전교에 소문이 쫙 퍼진 알파가 있었다. 주변에서 하도 많이 듣다 보니 얼굴은 몰라도 이름은 대충 알았다. 그때 1학년 중에도 두엇 있다는 것 같았는데 김희도의 이름은 듣지 못했다. 조예준도 딱히 별말 하지 않았고.
“코치님께 직접 들었으니까 맞을걸. 김희도가 알파라서 이번에 우리 용병 한 명은 베타로 데려왔잖아.”
“그래서구나.”
보통 용병은 알파로 데려오는데 올해는 두 명밖에 없어서 의아했었다. 이상하다 싶더니 이렇게 된 거군.
“김희도랑 만난 적은 있지만, 고등학교는 아니고…… 중학생 때 맞대결했어요. 한 경기에서 홈런 두 개나 맞았거든요.”
다시 생각해도 심장이 덜컹하는 기억이었다.
“한 게임에 두 개나? 너 강판 안 당했냐?”
권재영이 으하하하 소리 내 웃으며 등을 퍽퍽 쳤다. 윽. 리그에서 손꼽히는 강속구 마무리답게 팔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토닥임을 받을 때마다 딸꾹질하는 어린 애처럼 몸이 들썩였다.
“어? 김희도잖아. 쟤도 양반은 못 되네.”
화제의 대상이 웨이트실로 천천히 들어왔다. 딱히 욕을 한 것도 아닌데 괜히 찔끔해 모른 척 고개를 숙이고 글러브 손질에 집중했다.
“야, 김희도. 운동하러 왔냐? 아직 개막 전인데 열심이네.”
머쓱해하는 임성과 달리 권재영은 모른 척할 생각이 없는지 큰 목소리로 김희도를 불렀다. 마스크를 끼고, 목에는 구단 로고가 찍힌 수건을 건 남자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역시 알파.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고 할까. 체격이 막 우락부락하진 않은데도 이상하게 주변을 압도하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표정이 없어서 더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다.
6년 전엔 덜 자란 새끼 고양이 같았다면 지금은 바위에 앉아 아래를 느긋하게 내려다보는 호랑이처럼 보였다. 낯 간지럽긴 한데 그것만큼 어울리는 표현이 없달까.
못 본 새 엄청 컸구나. 역시 남의 집 애는 빨리 큰다니까.
“인마. 너 운동장에서 안 굴렀냐? 피부가 왜 이렇게 뽀샤시해? 얼굴은 또 이렇게 잘생겼는데?”
“재영이 형…….”
그만 하세요.
칭찬인지 시비인지 모를 말을 하는 권재영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그 순간, 듣는 시늉조차 하지 않고 서 있기만 하던 김희도가 고개를 돌렸다.
미처 피할 사이도 없이 눈이 마주쳤다. 하나하나 공들여 그린 그림처럼 화려하지만 무표정하던 얼굴에 처음으로 변화가 생겼다. 슥 올라갔던 한쪽 눈썹이 금세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대신 마주한 것은 뱀 같은 시선이었다. 유난히 반질반질한 눈동자며 왠지 모르게 눈빛이 선뜩했다. 임성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와 마주 봤다.
붉고 도톰한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단지 달싹이는 형태만 보일 뿐.
‘찾았다?’
지금 찾았다고 한 건가? 뭘?
시선의 온도를 버티지 못하고 먼저 고개를 돌렸다. 가죽 글러브가 찌그러질 정도로 손에 힘을 준 채였다. 김희도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선 웨이트실을 나갔다. 그가 것과 동시에 기침을 하듯 거친 숨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왔다. 알파라서 그런가, 압박감이 장난 아니구나.
“페로몬 수치가 낮다더니, 아무것도 안 느껴지네.”
“네?”
쟤가요? 아무것도 안 느껴진다고요? 베타 권재영의 말에 깜짝 놀랐다가 가만 생각해 보니 분위기는 있지만, 페로몬 냄새는 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당사자의 상황이나 기분에 따라 알파, 오메가는 특유의 체취를 풍겼다. 적어도 웨이트실을 가득 채운 더운 땀 냄새와는 다르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 조금 전 그 시선은 뭐였을까? 그냥 쫄았던 건가.
“성이, 너 오메가잖아. 뭐 느끼는 거 없어?”
“에이, 형. 저 열성이에요. 열성 중에서도 극극극극열성이요. 아마 형이랑 다를 거 없을걸요?”
알파 오메가는 페로몬 수치에 따라 우성, 열성으로 등급이 나뉘었다. 우성과 열성 안에서도 수치 0%에서 100%로 구분됐다. 무슨 고기 등급도 아니고,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형은 제 페로몬 냄새 맡아 본 적 있어요?”
“땀 냄새라면 질리도록 맡았지.”
“그것 보세요.”
임성은 중학교 3학년 겨울 즈음 오메가로 뒤늦게 판정을 받았다. 베타로 태어나 앞으로도 쭉 베타로 살 줄 알았던 그에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제가 오메가라고요? 그럴 리가 없는데 결과가 잘못된 거 아닙니까? 다시 보세요.’
‘가족 중에 알파나 오메가는 없어요?’
의사의 말에 가계도를 뒤져 겨우겨우 찾아낸 게 증조할아버지의 누나가 열성 오메가였다는 이력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쭉 베타만 태어나서 유전이라기엔 다소 뜬금없었다.
야구는? 야구는 어떻게 되는 거야.
갑자기 오메가가 됐다는 충격보다 야구를 그만둬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과거엔 사회생활을 하는 오메가가 드물었고, 알파에게 소유물 취급을 많이 당했다지만 그동안 오메가 인권 운동 등으로 제약이 많이 없어졌다. 오히려 화가, 피아니스트, 발레 등 예술적 재능을 필요로 하는 분야엔 오메가들이 많이 포진해 있었다.
하지만 수영이나 럭비처럼 체력이 있어야 하는 스포츠엔 알파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특히 축구와 야구 같은 팀 경기엔 오메가가 없다시피 했다. 법으로 정해진 건 없지만, 모두…… 특히, 오메가들이 무의식중에 피하는 것이었다.
나 야구 그만둬야 하는 건가. 이렇게 갑자기? 어이없고 허무했다.
정밀 검사를 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의 그 며칠이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검진 결과 자신의 오메가 수치는 0.1%이었다. 1%도 아닌 0.1%.
‘가임기의 베타 여성보다 수치가 낮네요. 억제제는 안 먹어도 될 것 같지만, 호르몬 변화가 있을지 모르니 스무 살까진 지켜봅시다. 약은 꼭 챙겨 다니시고요.’
사무적인 의사의 말투가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처음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억제제를 손에서 떼놓지 않았지만, 1년짜리 유통 기한이 3번이나 지날 때까지 쓰일 일은 없었다. 주변 사람들도 자신이 오메가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열심히 그라운드를 구른 덕인지 이솔 페어리즈에 지명받았다. 지명 당시 구단에 제 형질을 조심스레 알렸지만, 메디컬 테스트 결과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나이답지 않게 몸 관리 잘했단 칭찬만 받았지.
지금은 매년 하는 건강 검진이 아니면 스스로 오메가라는 걸 잊고 살 정도였다.
임성은 주름진 가죽을 탁탁 펴며 김희도가 사라진 방향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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