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3 (16/41)

#외전 3

딱히 원인은 없었다. 키가 훌쩍 큰 사람, 피부가 좋은 사람, 머리카락이 유난히 곱슬인 사람처럼 그저 남들에 비해 후각이 뛰어나게 태어났을 뿐. 세상엔 일어나는 수많은 알 수 없는 일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큰 병이 아니라 다행이지 않습니까.”

안경을 추켜올리며 사무적으로 말하는 의사에게 더는 희망이 없다고 느낀 부모님은 다른 병원으로 자신을 데려갔다. 물론 그곳에도 이렇다 할 병명은 찾지 못했지만.

부모님은 자신의 체질을 고치기 위해 나름 노력하셨다. 부모님은 잘산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잘사는 편에 속했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위해 돈 쓰는 걸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원인이 분명치 않았기에 그럴듯한 치료 방법 또한 없었다.

“힘들겠지만, 익숙해지는 것밖에 없습니다.”

13번째 의사를 만나고 나서야 부모님은 받아들였다. 그리곤 아직 어린 아들의 어깨를 붙잡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래도 어렸을 땐 남들과 크게 부딪힐 일이 없어서 견딜 만했다. 때때로 불쾌한 냄새를 맡기도 했지만, 아무도 없는 곳에서 가만히 호흡을 가다듬다 보면 가라앉았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인생은 빠르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숨을 쉴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마다 온갖 냄새가 날카로운 칼이 되어 자신을 공격했다.

공격.

그만큼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한껏 예민해진 신경을 다른 쪽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어머니의 언니, 즉, 이모가 넌지시 야구를 권유했다. 운동을 하다 보면 면역력이 강해질 거고, 또래와 부대끼다 보면 후각도 무뎌지지 않겠느냐고.

“희도야. 야구 엄청 재밌어.”

하겠다는 말도 안 했는데 어린이용 배트를 비롯한 글러브, 스파이크, 보호대 등 온갖 야구 물품들이 집에 도착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신의 운동 신경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공이 오는 타이밍에 맞춰 배트를 휘두르면 되니까 딱히 어려울 것도 없었다.

야구를 시작한 걸 보고 가장 좋아한 사람은 외할아버지였다.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처음 야구를 접한 외할아버지는 한국에 들어와서도 야구를 향한 애정을 계속 이어 갔다. 한창 사업을 키우며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양반이 허구한 날 야구장에 출몰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한국 프로야구 리그가 출범하며 기업들이 하나둘 야구단 운영에 뛰어들었다. 외할아버지의 회사 역시 개중 하나로 기업명인 ‘HR’과 승마 좋아한다는 이유로 ‘유니콘즈’를 더해 구단명은 HR 유니콘즈가 되었다.

HR 유니콘즈는 훗날 단 한 번도 모기업과 구단명이 바뀌지 않은 팀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외할아버지의 야구 사랑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과열됐다.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손주에게 야구 배트와 글러브부터 쥐여 줄 정도로.

하지만 안타깝게도 재능이 있는 건 자신밖에 없었다.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본 할아버지는 몹시 기뻐하며 유니콘즈 구단 견학은 물론이요, 1군 코칭 스태프, 심지어 주전 선수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지금은 공식적인 자료조차 남아 있지 않은 실업 야구 시절 경기나 프로야구의 전설인 황용철, 박재이 등의 투구 폼을 분석한 영상 역시 개중 하나였다.

야구가 재미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크게 재밌지도 않았다. 그게 티가 났는지 좀처럼 팀에 섞이지 못하고 겉돌았다. 섞일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으니 타격은 없었다.

타인의 냄새에 익숙해지면 후각이 무뎌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말 그대로 기대에 지나지 않았다.

코트를 쉴 새 없이 누비는 농구나 축구에 비하면 야구는 호흡이 다소 느린 편이지만, 야구 역시 스포츠였다. 온몸에 힘을 주고 공을 던지는 투수도, 배트를 휘두르며 그라운드를 전력 질주를 하는 타자도 경기가 끝나면 모두 땀범벅이었다.

한 경기당 최소 8명, 많게는 10명이 넘어가는 또래의 땀 냄새는 고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차라리 코가 마비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만둘까, 그만둬야 하나? 고민할 즈음 처음으로 추계리그에 출전하게 되었다. 연습도 고역이었지만, 타 팀 선수 체취까지 맡아야 하는 경기는 더 최악이었다.

배트를 휘둘러 공을 때리고 점수를 내도 기쁘지 않았다. 가끔은 다음 베이스를 향해 뛰면서 나는 자신의 냄새까지 불쾌하게 느껴지곤 했으니까.

조금은 귀찮고 지루한 경기를 하는 중 상대 학교 투수가 교체됐다. 체격이 좋은 선수들 사이에서도 우뚝하게 큰 키에, 남색 유니폼을 입은 어깨가 각진 늘씬한 남자였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어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유난히 목이 곧고 길었다.

짐짓 여유롭게 걸어온 투수는 봉긋하게 솟은 마운드에 섰다. 흙을 고르고 모자챙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늘져 있던 얼굴 위로 가을 햇볕이 내려앉으며 모습을 드러났다.

3학년인가, 입을 꾹 다문 데다 눈꼬리가 길게 뻗어 차가워 보였다. 투수의 생김새가 어떻든 상관없지만.

늘 그렇듯 칠 수 있을 것 같을 때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배트에 밀린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새파란 가을 하늘을 날았다.

천천히 베이스를 밟으며 도는데, 순간 눈이 마주쳤다. 좀 전까지만 해도 감정 없어 보이던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젓고선 로진백을 매만졌다.

깡!

두 번째 홈런이 담장을 넘어가는 순간, 투수는 고개를 살짝 떨구며 모자를 벗었다. 차가운 계절이 무색하게 땀으로 흠뻑 젖은 채였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뱉으며 포수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자신은 홈플레이트를 막 밟은 참이라 투수와의 거리가 가까웠다.

가파르게 흐르는 바람을 타고 희미한 냄새가 스몄다. 평소 느끼는 텁텁한 것과 다른, 한마디로 꼬집어 말하기 힘든 향. 땀 냄새라는 걸 알겠는데도 묘했다.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투수와 같은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이 모두 튀어나와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승: 문일 중학교.

김희도는 그제야 경기가 끝나고 자신의 학교가 이겼다는 걸 깨달았다.

끝난 건가? 벌써? 시선은 여전히 눈썹을 내리고 웃는 얼굴에 머물렀다.

‘그 투수’와의 첫 만남이었다.

아마 야구는 인기가 없었다. 고교리그도 인기가 바닥인데 중학리그는 말할 것도 없었다. 관중이 거의 없다시피 해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누가 왔는지 구별이 가능했다.

오늘도 왔네.

그 투수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학부모, 코치, 스카우터 등 누가 봐도 관계자 티가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난히 튀는 남자를 고르면 되니까.

처음 한두 번 그 투수를 봤을 땐 본인 학교 후배들을 보러 온 줄 알았다. 하지만 소명중과 맞붙지 않을 때도, 그는 종종 얼굴을 비췄다. 앉는 자리도 매번 비슷해 더 찾기 쉬웠다. 아주 가끔 눈이 마주치기도 했는데, 모른 척 먼저 고개를 돌리곤 했다.

그즈음엔 자신도 고교야구를 보러 다녔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투수가 나오는 구장을 찾아 일부러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고 마운드에 선 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또 저러네.”

그 투수는 무표정하게 공을 던지다가도 아주 가끔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스트라이크가 깔끔하게 들어갔을 때도, 아웃 카운트를 두 개 잡았다가 투런을 맞고 역전당했을 때도.

웃음이 나오나 싶은 상황에서도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변태 같네.”

입매를 살짝 올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쉬는 투수를 보며 중얼거렸다.

* * *

중학교 3학년이 되자 야구 강호 고등학교에서 몇 군데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3년 동안 부비 면제, 학기 초반 스타팅 멤버 고정, 장학금 등 야구선수로서 혹할 만한 조건도 많았다.

하지만 야구에 관한 호감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호감이랄 게 있었나? 벌써 3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재미없잖아. 앞으로 더 한다 해서 달라질 수 있을까.

선유고등학교를 택한 건 아주 약간의 호기심과 알 수 없는 충동이었다. 굳이, 정말 굳이 이유를 찾자면 그 학교 이름이 익숙하다는 것 정도일까.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당장 며칠 전에도 선유고 이름을 보지 않았나.

그 투수는 대부분 평상복 차림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구장을 찾았지만, 가끔 고등학교 유니폼을 입고 올 때가 있었다. 저 딴에는 패딩처럼 두꺼운 겉옷으로 감추려는 듯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바로 눈에 띄었으니까.

“와, 미쳤다. 저 공을 친다고? 대체 얼마나 힘이 좋은 거야.”

슈퍼 플레이라도 나오면 흥분을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곤 했는데, 그때마다 옷깃이 벌어지며 가슴팍에 찍힌 ‘선유고’가 그대로 드러났다.

“예준아. 방금 힘으로 넘긴 거 봤냐?”

“방금은 뽀록 아니에요?”

“아니라는 데 한 표 건다. 쟤 저렇게 치는 거 벌써 몇 번이나 봤어.”

김희도는 옆에 꼭 붙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두 사람을 보다가 더그아웃으로 갔다.

고등학교 입학 후 며칠이 지난, 어느 봄.

약간의 호기심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건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여러 명의 손이 닿아 살짝 미지근하고 낡은 문고리를 돌리는 순간, 후텁지근한 공기와 함께 양파가 썩는 냄새가 코를 찔러 댔다. 또래 남자애들이 모이면 지독한 냄새가 난다는 걸 감안해도 지나쳤다.

이 사람들은 아예 안 씻는 건가? 숨을 목구멍에 가둔 채 빠르게 부실 안을 훑었다. 땀에 전 옷을 벗고 있던, 혹은 이미 웃통을 깐 남자들의 시선이 단번에 모였다.

“누구? 신입생이야?”

“어, 쟤 김희도잖아. 문일중 김희도.”

“그 재수탱이가 우리 학교 왔다고? 주강고에 간 줄 알았더니.”

누군가 말했고 또 누군가 대답했다.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궁금하지도, 관심도 없던 김희도는 제게 향한 눈동자를 모조리 무시하고 부실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이것도 알 수 없는 호기심에 속하는 건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돼지우리 같은 공간을 살펴보는 도중 누군가 어깨를 짚었다. 텁텁하고 기분 나쁜 온기가 살갗을 파고들었다.

“문일중 김희도 맞지?”

“냄새나. 역겨워.”

생각하기도 전에 역겹다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시끄럽게 얘기하다가도 갑자기 정적이 찾아올 때가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역겨워.

조용해진 공간에 억눌린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한쪽에서 조용히 단추를 풀던 사람까지 손을 멈춘 채 김희도를 쳐다봤다.

정적, 그다음은 거친 고성이 오가는 소란이었다.

야, 지금 이 새끼가 뭐랬냐? 박종열, 너도 똑똑히 들었잖아. 이 새끼가 나보고 역겹다고 한 거. 숨 돌릴 틈도 없이 쏟아지는 욕설과 함께 교복 앞섶이 붙들렸다. 주름 하나 없이 빳빳하던 셔츠가 마구잡이로 구겨지며 남자의 손에 배 있던 땀이 얼룩으로 남았다.

부실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마치 벽을 쌓듯 겹겹이 둘러쌌다.

가뜩이나 좋지 않던 기분이 바닥을 쳤다. 자신의 침묵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몰라도 남자를 비롯한 사람들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내가 왜 여길 와서. 뭘 기대한 건지. 스스로의 행동이 짜증 났다.

“귓구멍을 처닫았냐? 뭐라고 지껄였냐고 묻잖아.”

“역겨우니까 손 놓으라고. 나갈 거니까.”

허. 어이없다는 듯이 웃은 남자가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쿵! 등이 낡은 로커에 강하게 부딪히며 삐그덕 소리가 났다. 어설프게 닫혀 있던 로커 문이 열리며 축축한 수건이 팔꿈치에 닿는 순간, 김희도는 불현듯 결심했다.

지금이야말로 야구를 그만둘 때라고.

애초에 애정이 없었으니 미련 또한 없었다. 당장 오늘부터 배트를 휘두르지 않는다 해도 전혀 아쉬울 것 같지 않았다.

그 당시의 내게 야구란 고작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만하기로 결정하고 불쾌한 손을 떼어 내는 순간, 입구가 소란스러워지더니 앞을 막고 있던 사람들이 물러섰다. 마치 길을 터 주는 듯한 행동이었다.

꽉 막혀 있던 시야가 트이며 활짝 열린 문과 그 너머로 쏟아지는 햇살이 보였다. 부실 조명이 어두워서인가, 오늘따라 햇볕이 더욱 밝게 느껴졌다.

김희도는 오랜만에 해를 본 사람처럼 한쪽 눈을 살짝 찡그린 채 앞을 주시했다. 천천히 걸어오는 남자가 보였다. 어쩌면 빨리 걸어왔을지도 모르지만, 체감은 슬로모션을 건 것처럼 무척 느리게 느껴졌다.

“김희도?”

이른 겨울처럼 낮은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김희도는 살짝 감았던 눈꺼풀을 치켜뜨며 제 이름을 부른 남자를 쳐다봤다.

3년 전, 추계리그에서 처음 만난 이후, 스친 적은 많아도 마주 보고 대화하는 건 처음이었다. 보지 못한 새 키가 컸는지 턱을 살짝 들어야 시선이 맞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발뒤꿈치도 조금 들어 올려야 겨우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남자는 제 교복을 움켜잡고 있는 남자의 팔을 내리고 한 발짝 걸어왔다. 어느새 두 사람의 거리는 고작 한 걸음밖에 남지 않았다.

“내 이름은 임성이고, 주장이다. 앞으로…….”

길게 뻗은 눈을 연신 깜빡이던 남자가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가까이서 본 손은 멀리서 볼 때보다 손바닥이 넓고 손가락이 길어 전체적으로 크다는 느낌이 강했다.

내 손이랑 엇비슷하려나? 체격에 비해 손 크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으니까. 직접 대보면 정확히 알 것 같은데.

“잘해 보자.”

움찔. 무심코 뻗어 가던 손이 순간 멈칫했다. 방금 뭘 하려 했던 거지? 스스로의 행동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내렸다.

제 앞에 선 남자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 투수.

임성.

코끝이 간지러워졌다.

* * *

“선배. 성이 선배.”

“그렇게 불러도 안 돼. 내가 널 모르냐?”

임성이 고개를 옆으로 틀며 말했다. 입술이 아니면 키스 못 할 줄 아나?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선배는 아직 자신을 잘 모르는 것이다.

김희도는 그가 고개를 돌리며 드러난 목덜미에 입술을 내렸다. 코끝을 파고드는 땀 냄새는 입 안에 사탕을 굴리는 것처럼 짙고 달큼했다. 금세 혀 아래에 고이는 타액을 삼키며 목 위로 입술을 짙게 뭉갰다. 달아오른 살갗은 체취만큼이나 달았다. 목덜미가 파드득 떨리며 억눌린 숨이 흘러나왔다.

“오늘따라 왜 이럴까? 경기 끝나자마자 다짜고짜 화장실에 끌고 오고…….”

“오늘 따라가 아니라 오늘도겠죠.”

쪽. 불거진 울대뼈를 혀로 덧그리다가 양 볼이 홀쭉해질 정도로 깊게 빨았다.

“누가 이렇게 좋은 냄새 나래요?”

“땀 냄새가 뭐 그리 좋다고. 이러는 건 너밖에 없을 거다.”

웃고 있는지 입술에 닿은 울대뼈가 움직였다.

맞닿은 육체 또한 뜨거울 정도로 달아올라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임성은 오늘 시즌 처음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선배는 좀처럼 제 실력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전문가는 물론이고 타 팀 팬들마저 인정하는 유망주였다.

좆같은 고등학교 감독만 아니었다면 좀 더 빨리 실력을 꽃피웠을 텐데. 그러면 선배가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았을 지도 몰라.

아니다.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뭐든 혼자 삭였을 가능성이 컸다. 전혀 괜찮지 않은 것도 괜찮다고 자신을 속이며 살았겠지.

그게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지도 모르고.

“앗. 야. 아파.”

“아프라고 한 거예요. 속으로 삼키지 말고 지금처럼 말하라고.”

올 시즌 처음 마운드에 올라 첫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선배는 2, 3 번째 타자에게 안타를 맞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 과정에서 비록 한 점을 내줬지만, 추가 실점 없이 5이닝을 채우고 내려왔다.

공 던지는 내내 긴장했는지 얼굴이 땀범벅이었다. 당연히 모자챙과 허벅지는 로진으로 엉망이었고.

마운드에서 내려온 선배는 한껏 붉어진 얼굴로 “김희도, 파이팅! 페어리즈 이기자.” 하고 소리쳤다.

열심히 응원하는 선배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냐고? 누가 보든 말든 당장 뺨을 움켜쥐고 입술을 빨고 싶다는 생각.

한 손으로 임성의 등허리를 휘감으며 다른 손으론 그의 뒷 목을 받쳐 올렸다.

입술이 좀 더 깊이 맞물리도록 고개를 옆으로 틀고 임성의 턱 끝을 밀었다. 서로의 콧날이 스치며 입술이 완전히 겹쳐졌다.

혀를 내어 핥는 대신 입술을 벌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땀 냄새와 뒤엉킨 선배의 체취가 혀끝에 끈끈하게 달라붙었다. 코점막이 뜨거워지고, 배 속이 울렁거렸다. 강렬한 쾌감이 다가오는 감각은.

“희도야?”

제 이성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입술을 맞대고 가만히 있는 게 이상했는지 임성이 나직이 이름을 불렀다.

언제부터 이 남자의 체취를 맡으면 정신을 못차렸더라. 답은 어렵지 않게 나왔다.

처음부터.

* * *

우웩, 웩.

야구부와 그리 거리 멀지 않은 수돗가, 수도꼭지를 꽉 움켜쥐며 허리를 굽혔다. 한참 동안 헛구역질을 하다가 물을 틀었다.

콸콸콸. 쏟아진 물줄기가 사방으로 튀어 오르며 교복을 적셨다. 김희도는 그대로 고개를 들이밀고 쏟아지는 물을 맞았다. 손끝이 오그라드는 차가운 물을 끼얹어도 얼굴에 번진 열기는 쉽게 가시질 않고, 멀미를 하는 것처럼 속이 메슥거렸다.

냄새, 체취. 임성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가 그 때문이란 걸 부정하진 않겠다. 아주 오랫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사막을 헤매다가 오아시스를 발견한 여행자의 기분이었으니까.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집요하게 들이켠 체취는 목구멍을 뜨겁게 달구고 온몸의 감각을 일깨웠다.

단순한 냄새일 뿐인데 어째서 혀 아래 침이 고일까. 오랫동안 자신의 상태를 지켜본 담당 의사에게 넌지시 물었더니, 후각이 예민한 이유가 없듯이 특정 냄새가 좋은 이유 또한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왜 하필이면 두 살 많은 남자 선배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의 옆에 있으면 지독히 괴롭던 공간조차도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뿐.

양호실에서 처음 그의 목을 물었을 때, 미친놈을 보는 듯한 표정은 아직도 생생했다. 하긴 스스로도 미친 것 같았는데 당사자는 오죽할까.

‘남들보다 후각이 좀 예민합니다.’

사정을 들은 임성은 무척 미심쩍어하면서도 어떻게든 수긍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누구나 원하는, 이상적인 주장에 맞는 성격이라 할 수 있겠다.

팀을 위해선 본인의 희생도 마다치 않았다. 일주일에 세 번, 자신의 냄새를 맡게 해 달라는 미친 제의도 순순히 받아들일 만큼.

그 정도로 야구가 좋나? 그 이상한 얘기를 수용 할 정도로? 이상하고 신기했다.

임성은 야구 하는 것을 좋아했다. 자신의 외할아버지가 야구에 열광했다면 이 남자는 공을 던지는 행위가 재밌어서 어쩔 줄 모르는 듯했다.

자신은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감정이었다. 분하다거나 아쉽다거나, 승리의 기쁨조차도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 남자와 같이 야구 하면 나도 저렇게 재밌어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약간의 호기심과 충동. 분명 그것뿐이었는데, 언젠가부터 그런 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그 남자밖에 보이지 않아서, 제게 존재하는 모든 신경이 그에게 쏠린 기분이었다.

그의 몸에 밴 냄새가 다른 사람들처럼 불쾌해진다고 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 * *

“원래 첫 경험이 강렬하다고 하잖아요. 맞는 얘기 같아요. 저도 양호실에서 돌아 버리는 줄 알았거든요.”

낮게 웃으며 목을 깨물었다. 이미 흔적이 빽빽한 곳에 새로운 것이 더해졌다. 잇자국만 보면 미친 것 같긴 해.

김희도는 자신의 성향에 순순히 수긍하며 뚜껑을 닫은 변기 위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임성의 옆구리를 잡아 제 허벅지 위에 올려놨다. 놀라 버둥대는 다리를 효과적으로 짓눌럿다.

“무거우니까 내려놔.”

“안 무거워요. 이러려고 운동하는 겁니다.”

김희도는 임성의 상의를 잡아 뜯듯 우악스럽게 빼내며 말했다.

“그렇게 세게 당기면 옷 찢어져. 오늘 처음 입고 나간 유니폼이다.”

“얼마든지 사 줄게요. 운동은 이러려고, 돈은 그러려고 벌 거든요.”

유니폼 같은 건 넘치다 못해 파묻힐 정도로 사 줄 수 있었다. 유니폼 따위가 다 뭐냐. 선배가 원하는 건 뭐든 다 줄 수 있어. 그러려고 돈 번다는 건 농담이 아니었다.

제 어깨를 밀어내려는 팔을 잡아 내리며 그의 등 뒤로 결박하듯 움켜잡았다. 맞닿은 몸이 움찔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 상태로 고개를 숙인 김희도는 유니폼과 이너 티를 이로 물고 위로 들어 올렸다. 상의가 둘둘 말려 올라가며 근육이 촘촘하게 올라붙은 상체가 드러났다.

선배의 유니폼 핏이 좋다는 팬들의 칭찬은 그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이 남자는 벗겨 놓은 게 제일 예쁘거든.

소리 없이 웃은 김희도가 가슴을 길게 핥았다. 한껏 긴장해 있던 등허리가 잘게 흔들리며 흥분하는 게 느껴졌다.

“시즌 땐 못 하게 하니까, 싫지만요.”

아드레날린이 폴폴 날리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살짝 사나운 눈매가 발갛게 익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물고 있던 유니폼을 뱉어 낸 김희도가 꼿꼿하게 선 젖꼭지를 빨았다. 작은 살덩이를 어금니로 짓씹고 끝부분을 혀로 살살 핥았다.

“흐.”

임성이 견갑골을 젖히며 허벅지에 힘을 줬다. 하체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답게 허벅지가 돌덩이처럼 단단했다.

“선배 엉덩이가 지금 제 거 문지르고 있는데요.”

“헉. ……아, 미안.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아랫입술을 꾹 깨문 채 자극을 견디던 임성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사과했다. 그리곤 엉덩이를 뒤로 쭉 뺐다.

“사과를 왜 해요? 오히려 난 환영인데.”

김희도는 물러나는 허리에 팔을 감고 더 깊게 당겨 배를 딱 붙였다. 멀어졌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들며 두 사람의 숨이 어지럽게 섞였다.

금방이라도 하의를 뚫고 나올 것처럼 발기한 성기가 임성의 엉덩이골을 찔렀다. 모른 척 허리를 슬쩍 쳐올리자 임성이 어깨를 옹송그리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탐스럽게 익은 귀가 드러났다.

등판의 여운이 채 가지 않은 육체는 작은 자극에도 반응을 보였다.

오랜만에 팬들 앞에서 던졌으니 더 달아올랐겠지. 역시 끝나자마자 데려온 게 정답이었어.

김희도는 더운 숨과 그 안에 배인 체취를 핥듯이 들이마셨다. 이미 잇자국과 울혈로 엉망이 된 살갗에 혀로 덧그리고 또 깨물기를 반복했다. 스스로 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야, 자국 남기지 마. 이제 시즌 시작했어.”

“그래서 안 넣잖아요.”

생각 같아선 바로 엎어 놓고 쑤셔 박는 건데. 지금 얼마나 참고 있는지 모르나?

“그리고 여기는 안 벗으면 안 보이는 부위예요. 설마 나 말고 보여 줄 사람 있어요?”

“안 벗고 옷 같아 입는 게 말이 되냐?”

“말 되는데요. 탈의실도 있고, 화장실도 있잖아요.”

“멀쩡한 로커 룸 두고 귀찮게 탈의…… 흐으, 흐. 너 전생에 개였어?”

그만 좀 깨물어. 피 나겠다. 임성이 잇새로 앓듯이 중얼거렸다. 꽤 아팠는지 살짝 식었던 땀이 다시 송골송골 맺혔다. 혀를 내어 늘어진 옆머리를 핥았다. 목구멍을 넘어간 땀이 배 속을 뜨겁게 달궜다.

“샤워는 어떻게 하라고. 그냥 가는 건 찝찝해서 싫어.”

“어떻게든 시간 끌고 싶은 모양인데요, 그거 안 통해요.”

“너 이제 선유고 야구부 아니잖아. 일주일 세 번 약속도 지킬 필요 없는 거 아니야?”

“맞아요. 이제 선유고 아니죠. 그럼 애인으로선요?”

임성이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귀엽다거나 좋아한다는 말을 했을 때 주로 짓는 표정이었다.

“나 선배 애인이잖아요. 이 정도 요구는 해도 되지 않아요?”

“그건…… 그렇지.”

우물쭈물 이어지는 말에 가볍게 코웃음을 친 김희도가 불시에 다리를 들썩였다. 허벅지에 올라타 있던 임성의 몸이 덩달아 흔들리며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했다. 헉, 놀란 숨을 내뱉은 임성이 허겁지겁 목을 끌어안았다.

만족스러운 웃음이 목구멍을 빠듯하게 채웠다. 임성과 닿아 있는 것만으로도 뇌가 녹아내리는 것 같은 만족과 지독한 쾌감을 느꼈다.

“좋아해요, 좋아해요. 선배.”

이 남자가 못 견딜 만큼 좋았다.

임성과 있을 때면 당연하면서도 새삼스럽게 깨닫는 감정이었다. 김희도는 그를 껴안은 손에 힘을 주며 젖은 머리에 뺨을 비볐다.

만약 누군가가 제게 ‘사랑’의 정의를 묻는다면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임성의 이름을 말하겠지.

“내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아?”

의심한다던가 따지는 말투는 아니었다. 오히려 순수한 의문에 가까울까? 임성은 이따금씩 ‘왜 좋은지’에 관해 묻곤 했다.

이 감정은 어디서 생기는 걸까, 무엇 때문에, 어째서. 김희도는 스스로에게 질문 해봤다.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잠을 잔다. 사람이 살기 위해 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김희도에게 임성이란 존재는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감정에 꼭 이유를 붙여야 한다면.

“선배니까요.”

단지 그게 전부였다.

“네 코가 괜찮아져도? 나보다 공 더 잘 던지는 사람이 있…… 아, 그건 지금도 많지.”

냄새 따위 상관없어진 지가 언젠데. 여전히 그의 체취를 미친 듯이 좋아하고 계속 맡고 싶지만, 고등학생 때만큼 간절하진 않았다.

지금은 뭐랄까, 임성 자체에 집착하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그가 무슨 냄새를 풍기든 상관없었다.

고등학교 때 기억이 워낙 강렬해서인지 당사자는 좀처럼 믿지 못하는 것 같지만.

“예전만큼 사람들이 역겹진 않아요. 그래도 여전히 싫지만요.”

빠듯하게 부풀어 올랐던 가슴이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임성이 깊게 들이마신 숨을 뱉어 낸 것이다.

“지금 그 말 선배들한텐 하지 마. 엄청 혼날걸.”

약간 쉰 듯한 목소리가 어깨에서 울렸다.

“뒷담화 같은 거 얼마든지 하라고 해요. 앞에서 해도 상관없어요.”

남들이 자신에 관해 뭐라고 떠들든지, 혹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었다. 선배만 날 예쁘게 봐 주면 돼.

야구도 마찬가지였다. 추계리그에서 임성과 만나지 않았더라면 ‘페어리즈 타자 김희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마음을 드러내는 걸 선배는 내켜 하지 않았지만, 열일곱 살 때부터 제 야구 인생은 그가 쥐고 흔드는 중이었다.

고등학교 때 받은 MVP와 타격왕도 선배 것, 신인왕도 선배 것, 골글도 선배 것. 앞으로 세울 모든 기록도 선배 것. 그리고 선배는…….

“내 거.”

이러면 공평하잖아.

당사자가 알면 기함할 생각을 태연히 하며 김희도는 무릎으로 엉덩이를 문질렀다.

“난 너 욕먹는 거 싫다니까.”

“왜요? 왜 싫은데요?”

상체를 살짝 물린 김희도는 눈썹을 늘어트리며 최대한 순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또 모른 척하네. 그동안 계속 얘기하지 않았냐?”

“계속 듣고 싶으니까요.”

기왕이면 직접 듣고 싶은 게 사실이었다. 겸사겸사 선배의 귀여운 얼굴도 보여 주면 좋고.

“형. 정말 말 안 해 줄 거예요?”

일부러 내뱉은 호칭에 어깨에 기대어 있는 이마가 움찔 떨렸다.

그 작은 움직임에도 자신의 성기는 단단해지며 바지가 불룩해졌다.

임성이 어떤 호칭에 더 약한지쯤은 진작 알고 있다. 자주 하면 효과가 없을까봐 결정적일 때 써먹곤 했다.

“성이 혀엉.”

“하, 너 진짜 약았다. 말끝 늘리는 것 좀 봐.”

임성이 어깨에 딱 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쳐다봤다. 제법 따가운 봄 햇볕에 살짝 그을린 뺨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화장실에서 상의를 거의 헐벗은 채 껴안고 있는 것보다 말 한마디가 더 부끄러운가 보다. 아, 진짜 귀여워.

김희도는 빙그레 웃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임성의 대답을 기다리며 점점 더 빨개지는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조,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좋은 말만 들었으면 하지.”

이런 모습은 아무도 모를 거야. 구장을 꽉 채운 관중은 물론이고, 69번 유니폼을 입은 팬들, 그를 열렬히 따라다니는 조예준이나 권재영은 절대 보지 못하는 내, 선배.

“그렇군요. 선배는 제가 좋으니까 욕먹는 게 싫은 거네요. 저를 좋아하니까요.”

“대체 몇 번을 말하는 거야. 너 지금 일부러 그러지?”

“네.”

일부러 맞아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참나. 어이없는 목소리와 함께 짧은 웃음소리가 울렸다.

“그것보다 이건 그대로 둘 거예요?”

발기한 성기가 그의 엉덩이에 눌리도록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껴안은 손에 힘을 주며 입술을 겹쳤다. 혀가 급하게 뒤엉키고 타액이 질척이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렸다. 흠칫흠칫 떨리는 몸이나 다급하게 헐떡이는 호흡이 더할 나위 없이 자극적이었다.

“하고 갈래요? 선배 금방 쌀 것 같은데.”

“제정신이야?”

“선배랑 이러고 있는데 제정신이겠어요?”

어깨를 으쓱한 김희도는 꽉 조여 맨 허리띠를 한 손으로 능숙하게 풀어내고 지퍼를 내렸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항이지만, 선수 복장 규정엔 허리띠도 포함이었다. 슬라이딩 시 바지가 벗겨지는 걸 방지하는 효과가 있지만 다른 쪽으로도 꽤 쓸 만했다. 이를테면 손을 묶는 용도라든가.

그사이 임성이 손가락을 부들대며 김희도의 속옷을 벗겨 냈다. 잘 벗겨지지 않고 자꾸만 중간에서 걸렸다.

“…….”

이미 한참 전에 발기해 있던 것이 기다렸다는 듯 튕겨 나왔다. 이젠 익숙해질 만도 할 텐데 임성은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곧추선 성기를 응시했다. 옆으로 길게 찢어진 눈꺼풀 안에 자리한 눈동자가 당황으로 흔들렸다.

“기분 탓인가…… 지금 더 커지지 않았어?”

“기분 탓 아니에요. 진짜 박히고 싶은 거 아니면 그만 봐요.”

슬쩍 웃으며 그의 눈가를 문질렀다. 옆으로 쓸려 가는 손길에 따라 임성이 눈을 찌푸렸다. 눈두덩이나 뺨에 비해 살이 얇은 부위라 조금만 힘주어 쓸어도 흔적이 발갛게 남았다.

만족스럽고, 부족했다.

성기 두 개를 겹쳐 잡고 처음부터 세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생살이 스치며 저릿저릿한 열기를 자아냈다.

임성은 허리를 떨다가 다시 어깨에 기댄 채 뺨을 문질렀다. 잔뜩 부풀어 오른 젖꼭지가 ‘페어리즈’ 로고에 비벼지는 모습은 상당히 외설적이었다.

선배에게 보여 주고 싶네. 김희도가 제 아랫입술을 핥으며 얄궂게 웃었다.

“선배가 직접 흔들어 봐요. 응, 그렇게.”

김희도는 제 목에 두른 손을 조심히 떼어 내 얽힌 성기 위에 갖다 댔다. 능숙하게 움직이던 저와 달리 그의 손은 서툴기 짝이 없었다. 이 어색한 손놀림이 얼마나 흥분되는지 선배는 알까?

임성의 얼굴에서 떨어진 땀이 뒤엉킨 성기 위로 떨어졌다. 코가 아릴 정도의 단내가 쏟아졌다.

“하고 싶은데, 안 돼요?”

“안 돼. 절대.”

목소리에도 달큼한 향이 나는 것 같았다. 김희도는 그를 따라 고개를 숙이며 집요하게 키스를 퍼부었다.

“알았으니까, 그럼 좀 더 세게 비벼 봐요. 그래야 빨리 싸고 돌아가죠.”

성기를 주무르는 손이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금 움직였다. 나름 힘내려고 하는 것 같지만 여전히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임성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턱을 옆으로 비틀었다. 김희도는 드러난 목에 다시금 이를 박아 넣으며 허리를 슬슬 움직였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깜짝 놀란 임성이 어깨를 꽉 붙잡았다. 자유로워진 성기 두 개가 다른 각도로 맞닿으며 새로운 자극을 전했다.

희도는 수치심에 물든 얼굴을 핥듯이 쳐다보며 양옆으로 잡아 벌렸다. 얌전히 닫혀 있던 아래가 빠끔 벌어질 정도로 강하게.

손끝으로 아래 주름을 매만지자 어깨를 짚은 자세 그대로 굳었다.

“아니. 손은 떼면 안 되지. 빨리 잡아요.”

그의 아랫입술을 핥던 고개를 물려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내가 생각해도 미친놈 같네. 김희도가 속으로 웃으며 귓바퀴를 쓸었다.

덜덜 떨리는 손이 느슨하게 겹쳐져 있던 성기를 다시금 잡았다. 김희도는 그의 안에 박아 넣을 때처럼 허리를 뒤로 뺐다가 앞으로 쳤다. 맞닿아 있던 귀두가 기둥을 긁었다.

아, 진짜 하고 싶다. 미련이 남은 손가락이 엉덩이 쪽으로 향했다.

“……은근슬쩍 손가락 넣지 마.”

돌겠네. 선배는 지금 제가 무슨 표정으로 말하는지 모르나? 그래. 안다면 저렇게 부추기진 않을 것이다.

“너 왜 더 커져?”

“선배 때문에요. 내 모든 이유가 선배잖아.”

“으. 흣.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만 좀, 세우라고.”

“세워야 싸죠. 회의 안 갈 거예요?”

웃음기 어린 목소리에 임성은 짐짓 억울한 듯이 세게 어깨를 깨물었다. 김희도는 임성이 제 어깨를 씹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그의 손등 위에 겹쳐진 제 손을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질금질금 흐른 정액 덕분에 성기가 더욱 끈적끈적하게 마찰했다.

아마 본인은 모르는 듯했지만, 마치 무언가를 바라듯 임성의 엉덩이가 들썩이고 있었다.

“…….”

“…….”

어느 순간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보다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입술을 비볐다. 빨고 빨리는 행위는 서로의 입술을 먹는 것에 가까웠다.

눈을 감고 있는 임성과 다르게 김희도의 시선은 줄곧 그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힘주어 눈을 감느라 살짝 주름진 미간도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이 예뻤다. 새빨개진 코끝도 솜털이 바짝 선 귓등도 쾌감에 물든 눈동자까지 사랑스럽지 않은 곳이 없었다.

“허, 읏.”

호흡을 뱉어 내지 못하고 자꾸 들이마시기만 하는 게 절정에 이르렀다는 걸 알려 줬다. 김희도는 손톱으로 그의 귀두를 세게 긁었다.

탄력적으로 흔들리던 육체에 어느 순간 힘이 들어갔다. 발뒤꿈치가 들리며 종아리 근육이 파르르 떨렸다.

사정 직전에 손을 빼낸 김희도가 성기 두 개를 잡고 제 유니폼 상의에 갖다 댔다. 곧 희뿌연 액체가 뿌려졌다.

“허, 허억. 헉!”

임성이 목구멍에 걸린 숨을 뱉어 내며 어깨를 늘어트렸다. 들썩이는 상체가 맞닿으며 임성의 유니폼에 정액이 묻었다. 이러면 애써 자신의 유니폼에 사정한 이유가 없는데.

“……회의 벌써 끝났겠지? 망했네.”

한동안 넋 놓고 있던 임성이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 * *

그다음 날 김희도는 구단 전체에 피자와 음료수를 돌렸다. 보통 첫 승을 거두거나 개인 기록을 세운 선수들이 간식을 돌리는 걸 생각하면 뜬금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고급 브랜드에 새로 나온 비싼 메뉴, 음료는 심지어 기본으로 나오는 콜라가 아닌 따로 주문한 것이었다. 건물을 청소하는 직원들에겐 피자는 물론 치킨이 추가됐다.

다들 맛있게 먹으면서도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나마 격 없이 지내는 권재영이 무슨 날이냐며 물었고, 김희도는 그저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 * *

“어? 어어. 야, 김희도. 너 이거 뭐냐?”

원정 마지막 경기 전 유니폼을 갈아입던 차성연이 큰 소리를 냈다. 그라운드로 나갈 채비를 하던 선수들이 소리가 난 곳으로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검은색 언더 티만 걸친 차성연이 상반신을 탈의한 김희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요. 다들 얘 목 좀 보세요.”

“웬 호들갑이야? 문신이라도 했냐? 희도가 애도 아닌데 문신 좀 하면 어때서. 차성연이 완전 꼰대네.”

박태영이 나서서 김희도를 두둔하자 차성연은 억울한 얼굴로 제 가슴을 퍽퍽 쳤다. 그리고 김희도의 목을 다시 손가락질하며 눈을 부릅떴다.

“저 꼰대 아니거든요. 직접 와서 보세요. 문신 같은 거 절대 아니니까.”

“하, 새끼 귀찮게 하네. 대체 뭔데 오버 쌈바야.”

차성연의 호들갑에 팀원들이 마지못해 김희도에게 걸어갔다. 김희도는 평소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가 퍽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볼 테면 보라는 듯 목을 살짝 숙이고 등을 내보이는 대담함을 보였다.

유니폼을 걸치면 살짝 말라 보이는 육체는 큰 골격과 촘촘한 근육으로 이뤄져 있었다. 야구선수하면 흔히 떠올리는 살집 있는 몸이 아니었다.

“모기 물린 거 아니야?”

눈으로 봐도 탱탱함이 느껴지는 살갗 위에 발간 반점 같은 게 있었다.

“에이, 태영이 형. 3월 말에 모기가 어딨어요. 아무리 봐도 키스마크 맞다니까, 키스마크!”

박태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최초 제보자인 차성연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키스 마크를 주장했다.

푸웁! 한쪽에서 막 뚜껑을 딴 생수를 들이켜고 있던 임성이 물을 내뿜었다.

“컥. 콜록, 콜록.”

상체를 구부린 채 기침을 쏟아 냈다. 코에 잘못 물이 들어갔는지 코끝이 찡하다 못해 따가웠다. 생리적인 눈물이 핑 돌았다.

“야, 성아. 괜찮냐? 사레 들렸어?”

괜히 옆에 있다 물벼락을 맞은 최희탁이 걱정스레 물었다. 아픈 팀원을 굽어살피는 참된 주장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신경을 꺼 주는 게 더 고마울 것 같아요. 희탁 선배.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선배 옷 젖어서 어떡해요. 죄송합니다.”

“놔두면 말라. 어차피 곧 흙 범벅 될 텐데 신경 쓰지 마.”

임성은 몇 번이나 허리를 굽혀 사과하곤 선수들이 와글와글 모인 곳을 쳐다봤다.

마침 김희도도 이쪽을 보고 있었는지 곧바로 눈이 마주쳤다. 임성이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너 아무 말도 하지 마. 절대 대답하지 마. 강렬한 눈빛을 읽었는지 아닌지 김희도는 미묘한 얼굴로 제 목 부근을 손으로 매만졌다. 눈꼬리가 얄궂게 휘어졌다.

하도 흔적을 새기니까 너도 당해 보라는 심정으로 깨물었는데, 그걸 저렇게 당당하게 보여 줄이야. 평소엔 사람들 앞에선 옷도 잘 안 벗는 놈이 오늘따라 여기 있는 게 이상하다 싶었어.

두 사람이 은밀한 눈빛을 주고받는 사이에도 팀원들은 김희도 목에 남은 흔적에 대해 열띤 토론 중이었다. 표정이 어찌나 심각한지 누가 보면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작전 회의라도 하는 줄 알겠다.

“설마 그걸 착각하겠어요? 잘 좀 보시라니까. 잇자국이잖아요. 태영이 형 모쏠이에요?”

“가려워서 긁은 거 같은데. 김희도 네가 대답해 봐. 우리 둘 중 누구 말이 맞는지.”

키스 마크도 몰라보겠냐는 쪽과 진짜 키스 마크면 대놓고 드러내겠냐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그러다 결론을 내지 못했는지 당사자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식은땀이 임성의 옆얼굴을 타고 주륵 흘러내렸다. 경기 시작도 전에 등이 축축해진 듯했다.

대답을 종용당하는 건 김희도인데 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다들 할 일도 없다. 저놈도 성인인데 어련히 알아서 하겠냐.”

쯧쯧. 혀를 찬 최희탁이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임성은 장비를 챙기는 척하며 연신 그쪽을 곁눈질했다. 힐끔힐끔 눈치를 보는 모습은 결연한 표정으로 마운드에 섰을 때완 현저히 달랐다. 김희도는 살짝 미소 지으며 입을 뗐다.

“키스마크인지는 잘 모르겠고요, 애인은……”

“저기! 다들 그라운드 안 나가십니까? 요정TV 팀이 복도에 있답니다.”

김희도의 말은 임성이 큰 외침에 묻혔다.

갑자기 웬 요정TV? 홈경기가 있는 날은 구장 복도에서 콘텐츠를 찍는 건 그리 드문 일도 아니었다. 심지어 오늘은 출근길까지 찍지 않았나? 여기 있는 모든 선수 모두가 아는 걸 마치 새로운 것인 양 말하는 임성을 어리둥절하게 응시했다.

임성은 그 사이에서 묘한 얼굴을 한 김희도를 외면하며 남은 말을 내뱉었다.

“PD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구독자 늘었을 때 콘텐츠 바짝 찍어야 한답니다…….”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는 게 스스로 느껴졌다. 얼굴이 뜨끈한 걸 보니 분명 새빨개졌겠네.

다행히 눈물겨운 노력이 통했는지 우글우글 모여 있던 팀원들이 흩어졌다.

하. 무사 만루에 필적할 만한 긴장감이었어.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리며 막 이너를 입고 유니폼을 팔에 꿰는 김희도에게 다가갔다.

“저한테 할 말 있으세요?”

말간 얼굴로 뻔뻔하게 말하는 남자를 응시했다.

“할 말은 네가 있지 않아?”

“있어요. 할 말.”

담담하던 얼굴에 생기가 번지며 두 눈이 반짝였다. 잘생긴 얼굴이 피어나는 모습은 보기 좋았지만, 그만큼 불안하기도 했다.

임성은 언젠가 ‘내겐 브레이크가 없다. 오직 액셀만 존재한다.’ 하던 말을 문득 떠올렸다. 그땐 농담인 줄 알고 웃어넘겼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진심이잖아.

“안 돼. 하지 마.”

“먼저 물어본 건 선배잖아요.”

“표정 보니까 안 듣는 게 나을 것 같다. 너 그런 표정 지을 때마다 심장이 덜컹 한다고.”

하하. 어떻게 알았지. 짧게 웃은 김희도가 유니폼 단추를 잠그기 시작했다. 마지막 단추를 구멍에 끼워 넣으려다 고개를 기울였다. 왜 남은 구멍이 없을까.

“단추 잘못 잠갔잖아.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아이고. 혀를 찬 임성이 한 칸 밀려 잠근 단추를 풀어내고선 밑에서부터 천천히 끼우기 시작했다. 김희도가 턱을 아래로 내렸다. 선배 정수리, 사탕 같아.

김희도는 희미하게 웃으며 홀로 빠져나와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툭 건드렸다. 부드럽게 넘어갔던 머리카락은 다시 뿅 튀어 올랐다.

“가만히 있으라니까.”

김희도는 제법 엄한 목소리에 네, 하고 얌전히 대답한 뒤 능숙하게 움직이는 손을 쳐다봤다. 이런 점은 예전부터 변하질 않는구나. 중고등학교 때 별명이 괜히 ‘우리 주장’이었겠나. 양민성 패거리를 제외한 선유고 야구부원 대부분이 아직까지 임성과 연락할 것이다. 열 받게.

다른 놈들에게도 다정하게 굴면 자신은 그 이상의 것을 받아 내면 된다. 기왕이면 둘이 있을 때.

갑자기 임성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눈을 가늘게 뜬 채 쳐다보는 얼굴을 마주했다.

“왜요?”

“아니. 왠지 오싹해서.”

쓰읍. 감긴가? 지금 감기 걸리면 큰일인데. 고개를 갸웃갸웃한 임성이 제 팔뚝을 쓸었다.

눈치는 없는 편인데 감이 좋다고 해야 하나. 선배는 가끔 저렇게 날카로울 때가 있었다.

김희도는 몸을 부르르 떠는 남자의 손을 넉넉히 감쌌다. 다른 사람에 비해 살짝 높은 체온이 다정하게 감겼다.

“긴장해서 그래요. 이렇게 손잡고 있으면 좀 나을 거예요.”

“나 오늘은 더그아웃 지키는데?”

등판하지 않으니까 굳이 루틴대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제가 긴장 돼요. 오늘 선발 레이먼 알레그로라면서요.”

김희도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다가 슬며시 손을 빼내려는 남자를 보며 남은 말을 내뱉었다.

“저 알레그로 상대 전적 별로인 거 알죠?”

손잡는 행위가 임성에겐 루틴이라면 제겐 루틴이자 징크스였다.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것.

표정에서 불안을 읽었는지 임성이 머뭇대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머뭇거림은 찰나로 곧 제 손을 비틀어 빼내었다.

“…….”

로커 룸에 아직 사람들이 있으니까 선배의 행동도 이해된다. 사람들에게 일부러 키스마크를 보여 줬다는 거 눈치챘을 텐데 화 안 낸 것만 해도 다행이지.

김희도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고선 복도로 걸어 나갔다.

“슬슬 나가죠.”

복도에는 임성의 말대로 요정TV 카메라와 PD가 있었다. 무슨 콘텐츠를 찍는지 모르지만, 어차피 관심 없으니 그대로 스쳐 지나가려고 했다. 팔만 붙잡히지 않았더라면.

오른쪽 어깨에 무거운 온기가 느껴지나 싶더니, 몸이 뒤로 쑥 끌려갔다. 정신을 차렸을 땐 구석에 몰린 채였고, 임성이 제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윽.”

“아, 미안. 세게 부딪혔어?”

“전혀요.”

밀쳐지기 직전 손이 등을 감쌌기 때문에 처음부터 부딪히지도 앉았다.

김희도는 제 얼굴 양옆을 짚은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처음 만났을 땐 까치발을 들고 쳐다봤어야 했는데, 어느 순간 시선이 같아지더니 이제는 턱을 살짝 숙여도 보였다. 동글동글한 정수리가.

“여기 들킬지도 몰라요.”

임성이 자신을 당긴 곳은 라커룸과 화장실 사이에 있는 좁은 공간이었다. 복도에서는 이쪽이 안 보이겠지만, 로커 룸에선 충분히 들킬 만한 위치였다.

“지금 손잡는 걸로 부족하다는 표정 같아서.”

임성이 한 발짝 다가왔다.

“아니야?”

“맞아요.”

항상 부족하지. 임성과 관계된 것은 그게 무엇이든 항상 부족했고, 갖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다소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임성이 눈을 깜빡이다가 픽 웃으며 꽉 끌어안았다. 욕망이 담긴 포옹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린애를 달래는 듯한 토닥임에 가까워서 들키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 남자와의 관계가 들키더라도 전혀 상관없었다. 오히려 당장에라도 복도로 튀어나가 요정TV에 페어리즈 임성과 사귄다고 발표할 의향이 다분했다. 요정TV 채널만으로는 부족하니까, 인터뷰에서도 말하고, 기자에게도 자랑해야지.

타 팀에 있는 등신 새끼나 군대에 있는 조예준이 알 정도로 떠들어 대고 싶었다.

하지만 선배는 아니겠지. 그걸 아니까 스트레칭을 한답시고 팀원들과 찰싹 붙어 있는 모습도 꾸역꾸역 참는 중이었다.

“이 정도면 긴장 풀렸냐?”

한참을 토닥이던 손이 떨어져 나가고 맞닿아 있던 온기 역시 흩어졌다.

이것도 나름 괜찮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손등에 부드러운 것이 닿았다.

어? 김희도가 답지 않게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눈만 끔뻑이는데, 이번엔 따끔한 감각이 스쳤다.

손등에 입맞춤을 한 것도 모자라 이로 살짝 깨물었다 놓은 임성이 말했다.

“너, 너무 세게 물었나? 아팠어?”

본인이 뽀뽀해 놓고선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각오를 다진답시고 시즌 시작 전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덕에 당황한 표정이 더 잘 보였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 아래의 눈동자가 방황하고 있었다.

알면서 이러는 거면 정말 너무한 거고, 몰라도 너무했다. 결론은 선배는 항상 너무한 사람이었다.

졸업하고 같이 지내면 좀 나아질까 했더니 어째 더 중증으로 가는 느낌이었다. 아니, 느낌이 아니라 사실인가.

“지금 키스하면 화낼 거죠?”

“응. 지금은 화낼 거야.”

“나중엔 된다는 거네요?”

“오늘 경기에서 이기면 생각해 볼게.”

“와, 이겨야 키스할 수 있다니, 그런 조건이 어딨어요. 완전 악덕 애인이잖아.”

“굳이 강요는 안 한다.”

목소리에 가벼운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진짜 악덕 맞네.”

뚱하게 내뱉으면서도 머릿속으론 오늘 페어리즈 선발이 누군지 빠르게 생각했다.

올 시즌 합류한 멜 홀리슨으로 이번이 시즌 두 번째 등판이었다. 아직 공략이 덜 됐을 것이다. 그에 비해 이쪽은 한 시즌 데이터가 쌓인 레이먼 알레그로.

썩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좋아요.”

설마 승낙할 줄 몰랐는지 임성이 눈을 살짝 깜빡였다. 아마도 그는 농담으로 한 말을 받아들일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 여전히 날 모르고.

“대답할 때까지 기다릴 거예요.”

김희도는 팔을 살짝 비틀어 손을 빼내었다. 그리고 이번엔 제가 그의 손을 맞잡고 고개를 기울여 눈을 맞췄다. 임성이 제 얼굴에 약하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하는 행동이었다.

김희도는 자신의 얼굴이 뭐 어떻게 생기든 전혀 관심 없었지만, 선배에게 먹힌다면 얼마든지.

“……그래. 마음대로, 아, 마음대로는 안 되고 대충 적당히. 키스만이라고 했다.”

마음대로라고 말했다가 된통 당했던 기억을 떠올렸는지 급하게 수습했다.

귀엽기는. 끈질기게 밀어붙여 기어코 원하는 대답을 들은 김희도가 웃으며 굽혔던 허리를 폈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 팔을 얹으며 한 걸음 내디뎠다.

“더그아웃에 있을 거죠? 열심히 응원해 주세요. 나만 해 주면 더 좋고.”

“팀이 이겨야 하는 거 아니냐?”

“아, 그랬지. 그럼 팀은 대충 응원하고 저는 크게 해 주세요.”

“잘하기나 해라. 가급적 삼진은 당하지 말고.”

“전 언제나 잘하죠. 빠따든 수비든.”

이런 뻔뻔한 말도 실력이 있어야 허세가 아니라 자신감이 되는 법이었다, 그리고 김희도는 그 말을 수긍하고도 남는 실력을 지녔고.

저 김희도잖아요. 하고 덧붙인 말에 임성이 걸음을 멈추고 쳐다봤다.

도톰한 입술 끝에 자리한 입꼬리가 보일 듯 말 듯 미세하게 올라가며 눈 밑이 볼록하게 솟아올랐다.

“그렇지. 너 김희도지.”

마운드에서나 아주 가끔 보이던 ‘재밌어 죽겠다.’라는 얼굴이었다. 대부분 상대 타자와 승부를 한 뒤 스치듯 짓는 표정이라 제게 보여 주는 건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꽤 감동적이잖아.

“진짜 긴장했어? 너 지금 얼굴 엄청 빨개.”

“아니에요. 어서 가요.”

고개를 저은 김희도는 어깨를 감싼 손에 힘을 주며 기다랗게 난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건조한 흙냄새와 바람이 느껴지는 걸 보니 곧 목적지에 도착할 것 같았다.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한눈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널따란 그라운드가 보였다.

자리에 멈춰 선 임성은 가슴이 부풀어 크게 부풀어 오를 만큼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후각이 예민하다는 게 어떤지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좋은 냄새를 맡을 때 기분은 조금 알겠어. 엄청 흥분되네.”

그 말을 반증이라도 하듯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높았으며 희미하게 떨렸다.

“지금 선배가 그라운드 공기를 맡으며 느끼는 흥분과 제가 느끼는 흥분은 완전 다르겠지만, 뭐 좋아요.”

사랑스러우니 됐다.

그렇게 결론지은 김희도는 그라운드로 향하는 남자와 발맞추어 걸었다.

<사이클링 히트> 외전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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