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이 의식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10만 명을 모아서 제물로 바쳤는데, 실패가 말이 됩니까?”
10만 명분의 생명을 압축시켜 만든 마법진에서는 피비린내가 진하게 났다. 이 더운 아프리카에서도 정장을 갖춰 입을 정도로 원체 깔끔 떠는 성격의 7사도였기에 피비린내를 맡는 그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결국 자신을 이 자리까지 오게 한 자를 향해 원망이 갈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9사도는 그 간단한 일 하나 제대로 못 해서……. 쯧.”
그들은 가짜 민채은, 그러니까 9사도가 실패한 일을 해결하러 온 것이었다. 원래의 시간에서는 그가 실패하지 않았기에 원래대로라면 없었을 일이었다.
“그만큼 신의 그릇이 될 몸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겐 좋은 일이나 다름없다며 3사도가 웃으며 달랬지만, 7사도의 원망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혼돈의 중심에 있을 신의 조각을 차원의 틈을 열어서 신의 그릇에게 보내느니, 방심한 신의 그릇에게 마기를 쏟아붓는 게 더 쉽고 간편하잖아요?”
“하하…….”
“그 간단한 일을 못 해서 이렇게 시간과 돈, 인력을 낭비하다니……. 참나.”
못마땅함에 입을 삐죽 내민 7사도는 계속해서 말했다.
“게다가 내가 이런 더러운 곳에 온 것도 9사도의 뒤처리를 하는 기분이라 화가 나요. 당연히 일을 그르친 자가 와서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하하,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
“9사도는 실패한 데다 얼굴까지 팔려서 수배되지 않았습니까. 그 탓에 쉽게 움직일 수 있는 몸이 아니지요.”
“……그건 그렇죠. 아무튼 정말 무능하기 짝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낼 것이지, 1사도는 왜 그런 사람을 보내서…….”
한풀 꺾였지만 여전히 투덜거리는 7사도를 3사도가 계속 달랬다.
“쉬……. 1사도도 신의 그릇의 정신력이 그렇게 강할 줄은 몰랐겠죠. 거사를 앞두고 우리끼리 분열해서는 안 됩니다.”
3사도의 말에 겨우 7사도의 투덜거림이 멎었다.
7사도가 조용해진 것은 좋았지만 그 이후 지독한 무료가 찾아왔다.
할 일이 없던 두 사람은 외계와 접신하는 주술사를 보면서 멍하니 있는 게 다였다. 처음에 뭐라도 짤랑짤랑할 때는 보는 맛이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멍하니 주저앉아 있는 것을 보는 게 다라 지루했다.
그렇게 잠시간 열심히 주술사를 살피던 두 사람이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하는 등 딴짓을 하던 도중이었다.
“……으, 컥!”
“뭐, 뭐야? 왜 그래?”
멍하니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천장만 바라보던 주술사가 갑자기 몸을 비틀자 사도들은 깜짝 놀라 엉거주춤 일어섰다.
당황 가득한 그들의 물음에도 말없이 몸을 확확 뒤틀던 주술사는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갑자기 몸을 뒤로 확 젖혔다.
“헉……!”
눈이 까뒤집혀 흰자가 보이는 상태로 얼굴에 핏줄이 불뚝불뚝 나 있는 주술사의 모습에 7사도가 숨을 삼켰다.
그렇게 꺽꺽거리며 몸을 떨어 대던 주술사는 갑자기 피를 팍! 토해 냈다.
“푸학!”
“으악!”
제 몸 위로 쏟아지는 피에 7사도가 질색을 하며 펄쩍 뛸 때 3사도는 주술사에게 다가가 귀를 가까이 대었다.
“으……어……억…….”
“대체 무슨 일입니까?”
의미 없는 신음만 흘리던 주술사는 한 단어를 중얼거리고는 절명했다. 그가 죽으니 공중에 떠 있던 뿔도 힘을 잃고 땡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렸다.
울상을 지은 채 피를 털어 내던 7사도는 주술사의 말을 듣고 얼굴이 굳어 버린 3사도에게 물었다.
“대체 저이가 뭐라고 하던가요?”
“…….”
“뭘 봤길래 저렇게 죽어요?”
“……를 봤다고 합니다.”
예? 뭉개진 발음에 제대로 듣지 못한 7사도가 의문을 가득 담고 되물었지만 주술사의 말을 듣고 머리가 복잡해진 3사도는 그의 궁금증을 풀어 줄 겨를이 없었다.
‘천사라니.’
그들에게 있어 대업을 방해하는 저주스러운 존재가 어째서 주술사의 입에서 나온단 말인가? 설마 신의 조각과 함께 그 저주스러운 존재가 넘어온 것일까?
‘큰일이군.’
자신만만하게 생각했던 일이 실패로 돌아가자 3사도의 머리는 더욱 복잡해졌다.
그는 이 사실을 교단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지 막막했다.
* * *
지호와 지완이 소집되어 던전 안으로 들어갔을 때, 채우는 1사도와 만났다.
그가 구상하고 있는 계획을 위해서 1사도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도지완의 경계가 너무 단단해요. 애초에 고립시킨다는 계획부터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1사도의 눈앞에서 네가 짜 놓은 계획이 별로였다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하는 채우에게 1사도가 느릿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사제들을 빌려 달라고?”
“맞아요. 제가 뭘 해 보려고 해도 경계가 심하니까요. 가까워지려면 근처에 있는 수밖에 없지요. 지금처럼 회사에서만 보는 게 아니라, 같이 사는 것 정도는 되어야 할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채우는 빙긋 웃었다. 지완은 그들의 일을 방해한 지호가 혼자 있으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제 집안에 그를 들여다 놓았으므로.
채우도 지완의 측근이기에 나쁜 일을 당했다는, 지호와 같은 조건을 만들어 같이 살기를 요구하면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뭐 거절한다 해도 어떻게든 밀어붙일 거지만.’
가령 지완의 고모할머니를 운운해서라도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일단 같이 살 수만 있다면 채우는 자신이 있었다. 멍청하고 눈치 없는 지호에게서 지완을 뺏어 내는 것 정도는 쉽다고 말이다.
‘아직 두 사람이 삽질하고 있을 때가 적기야.’
지호가 멍청하게 뻔히 보이는 지완의 마음을 착각하고 있는 이때가 채우가 끼어들기 좋을 때였다.
지호는 지완이 자신을 엔조이 상대라고 생각한다고 여길 테니 마음을 주지 않을 것이고, 지완도 그런 지호의 태도에 처음에야 인내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포기를 할 것이다.
‘아쉬운 거 없이 자라 온 도지완이니까.’
채우도 아쉬운 거 없이 자라 왔기에 자신과 같은 사람들의 인내심을 잘 알았다. 엉뚱한 지호의 태도에 신선함을 느껴 지금은 인내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매달릴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때 그 허한 마음을 내가 비집고 들어간다면 딱이지.’
채우가 킥킥 웃었다. 자신에게 지완을 빼앗겨 허망해하는 지호의 얼굴을 상상하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 채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1사도는 손톱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그들의 신이 자리를 비운 탓에 1사도가 교단을 이끌고 있지만, 사실 사도들은 평등했다. 나이가 어려도 13사도인 채우가 그녀의 명령을 들을 이유는 없다는 소리였다.
“계획이 뭔데. 사제들을 어떻게 쓸 생각이야?”
막 쓰고 끊어 버리기 좋은 교인 등급들과 달리 사제 등급의 사람들은 하위일지라도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어찌 보면 정회원이라고 봐도 무방하니 그저 쓰고 버리기에는 많이 아까운 존재들이었다.
한 명이라도 아껴서 그들의 신이 이 땅에 강림하는 날 첨병으로 써야 했으니까. 그런데 채우의 입에서 나온 말은 황당했다.
“나를 습격하게 할 거예요.”
“뭐라고?”
“배동호 때처럼요. 다만 그때와는 다르게 들켜야 하니까 도심에서 일을 벌일 생각이에요.”
황당한 말에 1사도가 입을 다물지 못했지만 채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1사도는 거절하려고 했지만 채우는 완강했다. 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사도 회의 때 이 건을 발의하겠다 으름장을 놓았다.
“당신은 신께서 부재해 우리를 임시로 이끌고 있는 거지, 우리는 서로 동등한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할 거예요.”
결국 1사도는 채우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연이은 실패와 그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벌인 탓에 그녀의 입지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프리카 쪽의 일이 곧잘 끝나서 실패를 만회하게 되겠지만……. 그래도 13사도와 틀어지는 것보다는 일단 달래 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1사도는 사제 몇을 채우에게 보냈다. 그리고 지호와 지완이 던전에서 나오는 날을 계산해, 그 예상일 2, 3일 전에 채우를 습격하기로 했다.
그나마 한적한 낮 시간에 강남 테헤란로를 주행하던 채우는 약속한 시간이 되자 제 몸에 마기를 둘러 보호했다. 습격을 할 때 진심으로 공격하라 했으니, 그 공격으로 정말 죽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속으로 카운트다운을 하던 채우는 저 멀리서 날아오는 마기를 느끼고 빙긋 웃으며 몸을 웅크렸다.
콰아아앙!
큰 굉음을 내며 테헤란로가 전쟁터처럼 변했다. 신호를 대기 중이던 차와 신호에 맞춰 주행 중이던 차들이 반파되고 뒤집어졌다. 채우가 탄 차도 그 여파에 밀려 뒤집어졌다.
그렇게 굴렀음에도 채우의 몸에는 생채기 하나 없었다. 상처는 후에 만들 생각이었기에 몸에 마기를 두른 채 공격을 전부 받아들였다.
다만 채우가 생각하지 못한 건, 신림에 생긴 던전에 목을 매고 있을 거라 생각한 헌터협회가 따로 인원을 빼서 마왕의 추종자들을 경계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뭐, 뭐야? 벌써 출동했다고?”
이제 슬슬 나가서 조금 다쳐 볼까 생각 중이던 채우는 저 멀리서 사이렌을 울리며 다가오는 헌터 협회 차량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건 사제들도 마찬가지였다.
- 꼼짝 마! 이 테러리스트들!
헌터 협회의 헌터뿐만 아니라 쉬고 있던 높은 등급의 길드 소속 헌터들도 지원을 받았는지 수가 꽤 되었다.
사제들은 공격을 하다 말고 허둥지둥 도망갔고, 그 뒤를 헌터 몇이 뒤쫓았다. 남은 인원은 지옥처럼 변한 테헤란로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괜찮으십니까?”
채우에게도 헌터가 찾아왔다. 무자비한 공격을 받아 걸레짝이 되어 버린 차를 보며, 헌터는 채우가 죽었을 거라 생각했는지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차를 찢어 채우를 꺼내 보니 생채기 몇 개를 제외하면 채우의 몸은 멀쩡했다.
“어……. 멀쩡하시네요?”
자신도 모르게 채우한테 그런 말을 한 헌터가 아차 한 얼굴을 했지만 채우도 무척 당황했기에 어설프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 그러게요? 차가 많이 튼튼한가 봐요.”
그 말을 끝으로 침묵하던 두 사람은 저 멀리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그……어…… 병원…… 가셔야겠죠?”
멀쩡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교통사고나 마찬가지니까 병원에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헌터가 물었다. 채우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구급차 하나를 타고 응급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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