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 * *
다음 날 눈을 뜨며 본 것은 창백한 얼굴의 도지완이었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 허망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으…… 뭐예요.”
왜 그렇게 쳐다봐? 그런데 목구멍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철판을 긁어내리는 것 같은 쇳소리였다.
소리뿐만 아니라 목구멍이 헐어 버린 것처럼 까끌까끌하고 아프기까지 해서 의아했는데, 어제의 일을 생각해 내고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울고 흐느꼈으니 목구멍이 정상일 리가…….’
그렇게 혼자서 결론을 내는 사이 도지완은 나에게 목이 졸린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너한테…… 한 건가……?”
겨우겨우 내뱉은 목소리는 제대로 된 문장도 아니었다. 그것도 의문으로 끝난 것으로 보아 기억이 제대로 나는지도 미지수였다.
“어디까지 기억하시는데요?”
내 질문을 듣고 도지완은 입을 꾹 다물었다. 떨리는 눈으로 한참을 나를 바라보더니 겨우 떨림이 멎었을 때쯤 입을 열었다.
“네가…… 도망갔어.”
“네?”
“처음엔 펫시터랑 도망쳤는데……. 연호진이랑 도망가더니…… 끝내는 배 비서랑…….”
“예?”
내가 제정신이냐는 눈으로 바라보자 도지완의 얼굴이 붉어졌다. 자기도 말하다 보니 제 기억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듯했다.
“저기…… 제가 왜 도망가요?”
그것도 시터 형, 비서 형이랑 말이다. 황당해서 묻자 도지완이 머뭇거렸다.
“내가…… 못되게 굴어서?”
이것마저 의문문이었다. 물론 내가 도망갈 이유도 없지만, 혹시나 있다고 해도 그 이유도 모르면서 내 근처의 아무 사람이나 나에게 붙여 도망치려고 했다고 누명 씌우는 게 웃겼다.
‘어라? 설마 이거…… 마기 때문인가?’
나는 풀이 죽어 있는 도지완의 머리 위로 손을 얹었다. 평소라면 눈썹 까딱이며 화낼 도지완이었지만 자기가 무언가 잘못한 건 아는지 오늘만큼은 순순히 굴었다.
정수리에 손바닥을 얹고 신성력을 방출하자 도지완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하…… 지호야…….”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서는 야릇하게 내 이름을 부르기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아서 남은 손바닥으로 놈의 허벅지를 내려쳤다.
짝! 소리와 함께 도지완의 눈이 커다래졌다.
“가만히 있어!”
마치 콩설이가 사고 치려 할 때 내는 목소리로 을렀다. 그런 나를 깜짝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도지완의 머리에 남은 한 손도 올려 신성력을 강하게 방출했다.
‘있다……!’
이상하게 찾기 어려웠지만 샅샅이 뒤져 보니 머리에 파편 같은 마기가 조금 보였다. 이렇게 작았나? 싶었지만 다른 마기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하아…… 하…… 지호야…….”
신성력으로 온몸을 한차례 순환했더니 그 기분이 좋은지 도지완이 눈가에 눈물을 아롱아롱 단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뭔가 찝찝했지만 머릿속에서 소멸시킨 마기 외에 다른 마기는 보이지 않아서 나는 손을 뗐다.
그런데 그게 도지완에게는 마치 허락의 표현으로 보였나 보다. 갑자기 와락 달려들어서는 침대에 다시 나를 깔아뭉갰다.
“하아…… 신지호.”
벌겋게 달아오른 도지완이 내 얼굴에 자잘하게 입을 맞췄다. 아침이라 입 냄새가 날 것 같아서 입을 손바닥으로 가리자 내려다보는 도지완의 한쪽 눈썹이 위로 솟았다.
‘마음에 안 든다’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었으나 나는 꿋꿋하게 입을 가린 채 모른척했다. 그러자 도지완은 내 손등 위에 입을 맞췄다. 살포시 입술을 누르던 것과 다르게 좀 더 농밀한 느낌이 나도록.
츄웁, 쪽. 가볍게 빨아들이면서 두 눈으로 내 눈을 빤히 바라본 도지완은 혀끝으로 내 손등을 짧게 핥았다.
별거 아닌데 야릇함이 느껴지는 행동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걸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보는 도지완의 눈이 웃겨서인지 재미있어서인지 가늘게 접혀 휘는 게 보였다.
“지호야…….”
어느새 내 다리 사이에 허리를 끼워 넣은 도지완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내 손등에 입을 맞춘 채 한 손을 아래로 뻗었다.
아까부터 부딪치는 단단한 살덩이를 애써 무시하고 있었더니 도지완이 손으로 내 것과 그의 것을 붙잡았다.
“으……읏……!”
“하…….”
지호야, 지호……. 내 이름을 속삭이며 도지완은 손을 움직였다. 그러면서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 이제는 잊지 않겠다는 뜻 같았다.
“으응…… 읏…….”
입을 틀어막았던 양손은 어느새 침대 위로 떨어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도지완이 내 입술을 삼켜 버렸다.
“응, 으읍…… 아…… 흡!”
도지완은 아예 내 얼굴 채로 삼킬듯이 입을 크게 벌리고 내 입술을 놓아주지 않았다.
아래서 오는 쾌감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도지완은 내 숨마저 앗아 가고 있었다. 참다 참다 가슴을 때리니 그제야 입을 떼어 줬는데, 숨이 통하는 것이 꽤나 큰 쾌감이었는지 배 안에서 꿀렁거리던 것이 팍 터지고 말았다.
“으응……!”
헐떡이며 몸을 바르르 떨고 있자 도지완이 서운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왜 혼자 가. 응?”
“으응, 잠…….! 나, 방그음……! 흣!”
방금 끝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지완은 계속해서 손을 움직였다.
민감해진 살덩이에 재차 자극이 가자 부푸는 건 금세였다. 머릿속이 다시 질척질척해졌다. 헥헥거리는 내 입에 제 입술을 문지르며 도지완은 계속해서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다시 한번 눈앞이 번쩍했다. 이번에는 혼자 끝낸 것이 아닌지 도지완도 내 곁에 누워 나를 끌어안았다.
“지호…… 신지호…….”
탈력감에 헐떡이고 있는 내 목과 뺨에 도지완은 자잘하게 입을 맞추며 내 이름을 속삭였다.
이상하게 가슴이 간질거렸다.
* * *
그 일이 있고 다시 깨어나니 내 방이었다. 몸은 깨끗한 상태였고 옷까지 입고 있었다.
꿈이었나 싶었는데 허벅지 사이가 아릿해서 꿈은 아니란 걸 깨달았다.
‘음…….’
뭔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미약하게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나가도 되나 망설이다가 나가니 거실에서 콩설이와 손장난을 하는 도지완이 보였다.
그는 약간 초조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었다.
“지호야.”
헉……. 숨이 멎을 뻔했다. 도지완이…… 웃는다! 그것도 매번 보던 비웃는 얼굴이 아니라 다정하게 사르르 웃으면서 성을 뺀 내 이름을 불렀다.
맨날 혼나듯이 신지호! 이렇게 불렸던 적만 기억나 나는 조금 소름이 돋았다.
“일어났어? 배는 안 고파?”
“배……고파요.”
“그래? 뭐 먹을까? 먹고 싶은 거 있어?”
“음……. 닭죽?”
이어지는 뒷말들도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계속해서 소름이 돋는 팔을 문지르며 나는 먹고 싶은 걸 대강 말했고, 도지완은 사르르 웃으며 그대로 주방으로 사라졌다.
‘왜 저래…….’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콩설이와 함께 놀았다. 손가락을 사냥하듯 따라다니는 콩설이와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어느새 밥이 다 되었다면서 도지완이 나를 불렀다.
주방에서 뚱땅거리는 소리가 나긴 했는데…… 도지완이 요리를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내가 물었다.
“이걸…… 어디서 가져오셨는데요?”
“만들었는데?”
재료는 집에 있으니까. 하고 덧붙이는 도지완의 얼굴에선 이상하게 광채가 돌았다.
“요리도 할 줄 아셨어요?”
“아니. 인덕션 불 켜고 재료 다듬은 것 정도밖에는? 하지만 그리 어려운 음식이 아니었으니까.”
찹쌀을 물에 불려서 닭고기랑 같이 푹 끓이는 것뿐이었으니 어려운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맞은편에 앉아 얼른 먹어 보라며 싱글싱글 웃었다.
거듭 느껴지는 오싹함에 머뭇거리며 숟가락을 들어 죽을 한 입 떠먹은 나는 깜짝 놀랐다.
“맛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이제는 음식까지 잘하는 도지완의 모습에 내가 얼떨떨해하며 올려다보자 도지완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레시피 대로 하면 실패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 말이 맞기는 하여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밥을 먹고 우리는 거실로 향했다.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있기에 딱히 할 필요가 없었다.
먼저 소파에 앉았는데 도지완의 행동이 이상했다. 비어 있는 곳이 그렇게 많은데 굳이 내 등 뒤를 비집고 들어와 앉았다.
왜 이러나 싶어 그를 바라보자 그는 생글생글 웃으며 “왜?” 하고 상냥하게 물었다. 또다시 소름이 돋았다.
할 일이 없어 TV를 보는데 도지완은 나를 롤러코스터의 안전바처럼 끌어안았다. 그러곤 꼼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의 나를 이리저리 주물렀다.
티셔츠 안으로 손바닥을 넣어 배를 손바닥으로 문지르거나 내 어깨를 앙앙 물어 대었다.
달라진 도지완의 행동이 소름이 돋았고 이유도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기분은 좋아 보여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뭐 소름이 돋는다고 해도 나쁜 의미로 소름이 돋는 건 아니니까.’
그냥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아 생기는 소름이었으니.
그렇게 나를 물고 빨고 주무르던 도지완은 TV를 보다가 나에게 물었다.
“우리 여행 갈까?”
“여행이요?”
“응. 저기 어때?”
TV에서는 에메랄드빛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해변이 나오고 있었다. 하얀 백사장은 마치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눈처럼 반짝였다.
“좋네요.”
신지호도 나도 저런 곳에는 가 본 적이 없어 화면에 빨려 들듯 집중했다. 파란 하늘과 바다는 어디가 물이고 하늘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청명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함이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언제 갈까?”
“음…….”
그냥 지나가듯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세진리교가 더 이상 형님을 노리지 않으면 갈까요?”
내 말에 도지완은 잠시 말이 없더니 그러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또 입을 다물고 있다가 나에게 슬며시 말했다.
“근데…… 계속 형님이라 부를 거야?”
“……예?”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몰라 나는 눈만 껌뻑였다. 형님이라 안 부르면? 자기가 그렇게 부르라고 하고선 또 마음이 바뀐 건가?
‘어쩌라는 거야…….’
또 단어 맞추기를 해야 하나 싶어 목소리가 불퉁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뭐라고 불렀으면 좋겠는데요?”
“그……. 자, 자……. 자…….”
“자?”
계속 ‘자, 자’라고만 하는 도지완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화가 난 건가 싶어서 놀랐지만 그건 아닌 듯했다. 잠시 우물쭈물하던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그냥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말한 뒤 한숨을 쉬었다.
싱겁게…….
* * *
주말 내내 도지완은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평소에도 나를 챙기긴 했는데 이제는 나를 모시는 모습이 되어 버린 그를 보자 아무리 눈치 없는 나라도 혹시나 하게 되었다.
‘혹시 우리 사귀는 건가?’
내 얄팍한 상식 안에서 그…… 보통, 사람들은 사귀고 나서 이것저것 했으니까. 그 이것저것 안에는 야한 일도 포함이었다.
‘서로의 은밀한 곳을 만지는 건 보통 야한 일이지.’
나도 도지완의 것을 만졌고, 도지완도 내 것을 만졌으니 야한 일이 맞았다. 그러나 헷갈리는 게…… 우리는 사귀자고 협의하지 않은 채 야한 일부터 했다는 것이다.
‘그럼 이 경우에는 사귀는 건가, 아닌 건가…….’
나는 머리를 굴려 봤지만 결론을 낼 수가 없었다. 신지호의 기억 속에선 누군가와 가볍게 사귀긴 했지만 야한 일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러니 야한 일을 먼저 하고 누군가와 사귄 적도 없었다.
그럼 이 일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고 답을 얻어야 하는데…….
‘일단 도지완은 제외.’
‘우리 사귀는 거예요?’ 하고 물었다가 무슨 헛소리냐, 왜 미친 소리 하냐는 말을 들을까 봐 두려웠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도지완은 제외였다.
‘아픈 비서 형도 제외.’
비서 형은 남의 연애에 참견하고 싶지 않다고 몇 번씩이나 이야기한 데다가 지금 아파서 입원 중인데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든 좋게 말해 줄 착한 정호 형도 제외하면 나에게 현실적으로 말해 줄 사람이 단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바로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했다.
[금요일 밤에 도지완이랑 야한 거 했는데요. 그럼 우리 사귀는 걸까요?]
이런 문자를 보낸 상대는 다름 아닌 사채업자였다. 이 일을 물어보며 예전에 돈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알려 달라고 했던 건 취소하려고 했는데 문자를 받고 몇 분 뒤 전화가 왔다.
문자로 답해 줘도 되는데 왜 전화를 할까? 하면서 받았더니 여보세요, 하고 말하기도 전에 고함이 터져 나왔다.
“여…….”
- 이 미친 새끼야!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예?”
- 너의 범죄에 나를 끌어들이지 말란 말이다!
그러면서 확 끊어 버렸다. 전에 내가 하는 일을 스토킹으로 오해하더니 아무래도 이번 일도 오해한 듯했다. 그러나 다시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기에 해명할 수 없어 결국 나는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렇게 고민하며 주말을 보내고 출근을 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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