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 * *
지호는 우르르 들어오는 지완과 경호원들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형님?”
멍하니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 순한 얼굴을 보니 아까의 강아지가 떠올랐다. 지완은 지호의 맞은편에 앉아선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평온한 낯과 다르게 그의 내부에서 마기는 계속해서 살생을 강요했다.
‘신지호가 너를 얼마나 좋아할지 궁금하지 않아?’
‘놈 앞에서 개를 죽여.’
‘너를 많이 좋아하면 떠나지 않을 거야.’
지완에게 지호의 마음을 시험해 보라고 마기는 속삭였지만, 정말로 지호의 마음을 알기 위해 권유하는 건 아니었다. 사실 마기는 지완이 살생을 저지르고 그에 실망한 지호가 그를 떠나기를 바랐으니까.
마기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신성력을 지닌 지호였다. 그렇기에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계속해서 지완에게 말을 불어넣었지만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니, 이상한 방향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직접 죽일 필요가 있나?’
지완은 싸늘하게 미소 지었다. 지호는 자신을 쫓아다닐 정도로 좋아하니까 제 말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싫어하는 일을 시키면서 지호의 한계를 확인해 보고 싶은 비틀어진 애정이었다. 내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어? 이런 식으로 상대의 한계를 확인하는.
“연호진과는 재미있었어?”
그의 질문에 지호는 엑, 하는 얼굴이 되어 눈을 굴렸다. 어떻게 알았지? 하는 표정이었다.
“내가 좋다고 따라다닐 때는 언제고, 이제는 아닌가 봐? 걔랑 시시덕거리느라 내가 온 것도 몰랐지?”
“어…….”
“나는 너한테도 구 오빠가 된 건가? 이제 안 따라다닐 거야?”
“아니, 따라다닐 건데요…….”
지완의 말투에서 그의 기분이 상했다는 것을 알았는지 지호는 난감하다는 듯 굴었다. 이걸 어떻게 달래나 하는 표정으로 그의 눈치를 살살 보았다.
눈치를 볼 정도면, 아직 지호가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라 지완은 안도하면서도 더욱더 지호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었다.
“너 뭐든 할 수 있다고 했지?”
지완은 말을 툭 뱉으며 다리를 꼬았다. 혹시라도 지호가 제가 시킬 일에 실망하며 도망간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때는 정말 내 마음대로 하면 되니까.’
지금처럼 애지중지, 깨질까 날아갈까 마음 쓰지 않아도 될 터였다. 그는 몇 번이고 지호를 밀어냈으나 아득바득 그의 선 안으로 침범한 것은 지호였으니까.
들어오는 것은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가는 건 죽어서도 불가능했다.
지호는 무슨 요구인지 모르면서도, 요새 들어 예민하게 구는 지완이었기에 난감함이 배가 되었다.
‘다른 걸 한 것도 아니고 대화만 나눈 건데…….’
그리고 그 대화는 호진이 일방적으로 열고 일방적으로 닫고 가 버렸다. 호진 때문에 이렇게 난감한 상황을 맞게 되자 그에 대한 호감도가 또 내려가 버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있다 보니 대답을 기다리던 지완이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
“신지호.”
“아, 예. 형님.”
대답하라는 듯이 인상 쓰는 걸 보고 지호는 헤헤 웃어 보였다.
“예, 형님 말씀이면 뭐든지 할 수 있죠. 제가 형님의 개 아닙니까.”
비위를 맞추자, 비위를 맞추자.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해고하고 집에서 내쫓으면 진짜 현관에 똥 싸 버리겠다고 생각하며 지호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헤헤 웃는 지호를 보며 지완은 상자에 손을 넣더니 그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낯선 바깥의 풍경에 바들바들 떠는 주먹만 한 강아지였다. 어디서 데려온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태가 좋아 보이는 것이 유기견 같지는 않았다.
“자. 여기.”
“예?”
이걸 왜 넘기냐는 듯한 얼굴로 바라보는 지호의 품에 강아지가 파고들어 애교를 부렸다. 그 애교에 지호의 표정이 흐물흐물 녹아내릴 때 지완이 심술을 부렸다.
“죽여.”
“예?”
“죽이라고.”
두 번이나 말했음에도 지호는 알아듣지 못 한 것 같았다. 한 1분쯤 뒤에야 화들짝 놀라며 제정신이냐는 듯이 지완을 바라보았다.
‘어디까지 날 받아들일 거야?’
지완은 너무 궁금했다. 지호가 제 말도 안 되는 투정을 받아 줬으면 하는 마음과 박차고 나가 제가 멋대로 행동해도 될 명분을 만들어 줬으면 하는 마음이 가슴속에서 이리저리 소용돌이쳤다.
그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불어넣고 증폭한 마기는, 이상하게 흘러가는 일에 다시 잠들듯이 그의 몸 안에 단단하게 뭉쳤다.
지호는 강아지를 보다가 지완을 보다가 하며 망설이기만 할 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지완은 한 번 더 등을 떠밀기로 했다.
“내 개라며. 다른 개가 내 옆에 있으면 물어 죽여야지. 자리를 뺏기게 생겼잖아.”
“하지만…… 얘는 작잖아요? 그냥 물기만 하면 안 됩니까?”
“싫어?”
갈등하는 지호를 보며 지완은 기뻤다. 미친 소리 하지 말라며 그의 뺨을 치고 나가지 않고 망설이는 걸 보면, 지호에게 그가 중요해서일 테니까.
결국 지호는 선택했다. 지완을 말이다.
“알겠습니다. 형님. 저 그럼 밖에 좀 나갔다 오겠습니다.”
“왜?”
“에이, 여기서 죽일 순 없죠. 형님 눈 상하실라.”
헤헤헤, 비굴하게 웃으며 지호가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지완은 경호원에게 살짝 명령했다. 혹시나 도망가거나 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한참 뒤 돌아온 지호는 죄책감이 느껴지는 표정은 아니었다. 손도 깨끗한 것이 아무것도 한 것 같지 않았다.
‘그냥 놓아준 건가?’
시간이 지나며 마기가 증폭해 놓았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많이 가라앉았다. 지완은 자신의 이성적이지 못했던 말과 생각들을 떠올리며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미쳤구나.’
갑자기 뜬금없이 개를 죽이라고 명령하다니……. 사이코패스가 따로 없었다. 그런 지완을 봤음에도 도망치지 않고 다시 돌아온 지호의 모습에 지완은 또 가슴속이 빠듯해져 왔다.
온전한 내 것. 자신이 무엇을 해도 들어주는 나만의 편. 그게 지완에게는 지호였던 것이다.
빠듯해진 가슴 때문에 지완은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지호에게 달려들어 그의 몸을 으스러져라 안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삐딱해진 마음이 그를 솔직하지 못하게 했다. 지호를 더 난감하게 하고 싶은 것은 왜일까?
“시체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왔죠.”
“손이 깨끗하네.”
“에이, 형님 앞에 더럽게 뭘 묻히고 올 순 없지 않습니까.”
이 정도 했으면 봐 달라는 그 표정에 지완은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지호에게 앉으라고 하자 경호원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와 두 사람 앞에 각각 놓았다.
이렇게 넘어가나 싶어 안도하며 아메리카노를 쫍 빨아 마시던 지호는 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마시던 것을 뱉어 냈다.
“푸우웁!”
지호가 멋대로 강아지를 맡겼던 사람이 경호원의 손에 이끌려 들어왔던 것이다.
들켰다! 하는 얼굴로 시선을 잘게 떨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호를 보며 지완은 손을 내밀었다. 경호원이 내미는 강아지를 테이블에 올리고선 지완은 지호를 놀리듯 말했다.
“죽였다며.”
“…….”
“버렸다며.”
울까? 아니면 헤헤 웃으면서 얼버무릴까? 아니면 화낼까? 지완은 지호의 반응이 궁금했다.
지호는 자신을 빤히 관찰하는 지완을 팩 쏘아보았다. 그러더니 결국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저는…… 얘 못 죽여요! 으앙!”
“끼앵! 깽!”
“이렇게 귀여운데 어떻게 죽여요!”
“끼우우웅! 우웅!”
울고 짖는 둘을 보며 지완은 웃음을 삼켰다. 이제는 어떠한 부정적인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기에 도리어 자신이 둘에게 너무한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의 반응을 무엇으로 받아들인 건지 지호가 다급하게 매달렸다.
“안 돼! 나 내치면 안 돼요! 갈 곳 없어! 얘 키워 달라고 돈도 다 줬단 말이야!”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자신에게 매달리는 지호라니! 솔직히 지완이 아니더라도 지호는 갈 데가 많았다. 그의 옆집은 여전히 지호와 계약되어 있으니 그쪽으로 가도 되고, 어시스트 일을 하며 만난 사람들에게 신세를 져도 될 일이었다.
그런 지호가 오로지 자신밖에 없다는 듯이 매달리자 지완은 미칠 것 같았다.
이러다간 진짜 지호에게 나쁜 짓을 할 것 같아 간신히 끓어오르는 마음을 참아 내고 있었는데, 지호는 그것도 모르고 그에게 매달렸다.
“놔.”
“저 버리면 안 됩니다! 형님!”
“안 버리니까 놓으라고.”
그렇게 말하자 냉큼 놓아 버리는 꼴은 또 얄미웠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딱밤을 때리니, 어떻게 자신을 때리냐는 눈으로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조금 심했나 생각하며 지완은 말을 돌렸다.
“앞으로 잘 돌봐.”
이미 동물 등록까지 마치고 데려왔는데 다시 돌려보낼 수도 없는 일이고, 지호가 마음에 들어 하니 데리고 갈 수밖에 없었다.
“얘가 1호.”
“…….”
“네가 2호.”
“…….”
“이게 네 상사다. 알겠어? 잘 모셔.”
어떻게 개보다 아래에 둘 수 있냐는 표정을 하던 지호는 강아지를 들여다보고는 다시 표정이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바로 콩설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을 보니 정말로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심리 상담을 받아 봐야 하나.’
최근 들어 기분이 심하게 널뛴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은 아예 분노를 제어할 수 없었기에 그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러나 그가 정신과에 다닌다는 게 밝혀지면 휘청거리고 무너질 것들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일단 조금만 더 지켜보자.’
일시적인 것일 수도 있으니까. 콩설에게 코 뽀뽀를 하며 헤죽헤죽 웃는 지호를 보며 지완은 제 불안감을 내리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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