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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한 번 망했다-57화 (57/88)

57화

“왜?”

“아니……. 음……. 형님. 혹시 저 사람을 영입하고 싶다, 가지고 싶다…… 그런 생각은 안 드세요?”

“뭐? 가지고 싶어?”

도지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소름 끼치는 소리를 다 듣는다는 얼굴이었다. 반응이 너무 격렬해 내가 다 머쓱해질 지경이었다.

“아니…… 뭐…… 잘생겼잖아요. 능력도 좋고.”

“잘생기고 능력 좋으면 다 가져야 해? 그리고 본인이 이미 헌터 협회 소속이라고 못 박았잖아. 도문 길드가 국내에선 대단하다지만 미국 만한 조건을 제시할 수도 없어.”

그렇게 말하는 도지완의 얼굴에는 아무런 미련도 보이지 않았다. 전생을 아는 나로서는 조금 신기할 정도였다.

‘그때와는 많이 다르네. 내가 개입한 탓일까?’

아니면 도지완이 마왕이 되지 않아서? 알 수 없었다.

연호진에 대한 정보를 전생에서보다 연예 채널의 리포터가 주절거리는 말로 더 많이 알게 될 정도로 인간계에 대해 관심이 없던 나지만 단 하나는 알았다.

전생의 도지완이 연호진에게 무지하게 집착했다는 사실 말이다.

‘관심 없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 거 같은데…….’

집착했던 계기가 있었던 것일까? 내가 의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자 도지완의 눈썹이 삐딱해졌다.

“너는 어떤데.”

“뭐가요?”

“연호진, 어떻게 생각하는데?”

갑자기 연호진에 대해서 나에게 묻는 도지완이었다. 나는 고민하다가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뭐…… 잘생겼죠?”

“……잘생겼다고?”

갑자기 도지완의 눈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좋은 느낌은 아니라 움찔 몸을 떠는데 도지완이 집요하게 물어 왔다.

“왜? 너도 연호진을 가지고 싶어?”

“예? 제가 왜 가져요?”

“너도 나한테 가지고 싶냐고 물어봤잖아. 네가 원해서 나도 그럴 거라 생각한 거 아냐?”

“아니거든요!”

도지완의 눈이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왜 저렇게 성이 난 건지 몰라 당황하던 때, 나는 깨달았다.

‘아…… 별거 아니라고 말하긴 했지만 연호진이 신경 쓰이긴 한 건가?’

집착까진 아니더라도 관심은 있는 것 같았기에 나는 도지완을 위해 연호진의 칭찬을 해 주기로 했다.

“뭐, 가지고 싶은 건 아니지만 잘생기긴 잘생겼죠.”

“…….”

“거기다 능력이 출중하기까지…… 전 세계 최초의 SS급이잖아요.”

앗, 눈썹이 꿈틀했다. 어디 더 해 봐라 하는 얼굴이기에 내 칭찬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나타난 지 얼마 안 되어 사람들의 워너비가 되기도 했고요. 앗, 그렇다고 형님이 뒤떨어진다는 건 아니고요……. 그냥 비교하기 힘들다는 거죠.”

우직. 내가 말을 마치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나는 도지완이 앉아 있는 의자의 팔걸이가 부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어? 부러졌네? 괜찮아요?”

내가 괜찮냐고 걱정을 담아 물었지만 도지완은 되레 안광을 쏘아 대었다.

“그래. 연호진보다는 떨어지지만 그래도 S급이라서 이 정도는 괜찮지.”

그러곤 내뱉는 말에 가시가 박혀 있었다. 갑자기 왜 저렇게 성을 내는지 몰라 왜 저래, 하고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으니 도지완은 혼자 씩씩거리다가 확 나가 버렸다.

나가고 바로 옆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 걸 봐서는 아무래도 비서 형에게 간 것 같았다.

‘뭐야…… 왜 저래.’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리곤 나는 다시 TV로 시선을 향했다. TV에선 여전히 연호진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어렸을 때 조실부모하여 현재는 여동생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흠…… 그랬구나.”

정말 천사 시절의 나는 냉정하기 짝이 없었던 듯했다. 그의 가족이 여동생뿐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으니.

‘어떻게 보면 같이 일하던 동료였는데 말이야.’

과거의 연호진은, 그러니까……. 신이 선택한 용사였다.

과거가 없어지고, 신이 사라진 지금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설마 용사가 아니라서 도지완이 연호진에게 관심이 없는 걸까?’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도지완이 언제부터 연호진에게 집착했는지는 몰랐다. 처음부터였는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서였는지…….

그런데 왠지 연호진에게 집착하는 도지완을 떠올리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기분도 조금 상하는 듯했다. 하지만 왜 그런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 * *

시간이 흘러 부상이 대부분 나은 나는 더 이상 병원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퇴원하겠다 말하는 나에게 도지완은 픽 웃어 보였다.

“왜? 여기가 네 두 번째 집 아니야?”

“아니거든요!”

우이씨……. 하도 입원을 자주 하다 보니 이제는 이런 걸로 놀리기까지 했다. 내가 꿍얼거리며 불만을 터트리자, 도지완도 퇴원을 해도 괜찮겠다고 판단했는지 나에게 말했다.

“좋아. 내일 퇴원하자.”

그 말을 듣고 내 얼굴이 확 밝아지자 도지완이 혀를 끌끌 차며 어이없어했다.

“여기 있으면 해 달라는 거 다 해 주는데 뭐가 싫다고 저러는지…….”

“하지만…… 심심하단 말이에요.”

그리고 도지완이 걱정되었다. 그가 날 두고 출근할 때마다 세 번째 습격 사건 때처럼 혹시라도 놈들이 막 나가며 도지완을 납치하지는 않을까…… 이런 상상 때문에 말이다.

‘물론 그 사건처럼 막 나갈 확률은 적지만…….’

그때는 도지완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 일부러 일을 크게 벌린 듯하니 그때처럼 행동해 이목을 끌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미친놈이 미친 짓을 하는 걸 범인인 우리가 이해할 수는 없었다. 머리 한구석이 미쳐 있어 또 어이없는 짓을 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 그냥 이쪽에서 조심하는 게 좋았다.

그리고 다음 날 드디어 원하는 퇴원을 하게 된 나는 아직 치료가 남아 있는 배 비서에게 인사했다.

“형. 저 가요.”

“네, 길드장님을 잘 부탁합니다.”

그는 몇 달 더 병원에 있어야 했다. 뭐 침대에서 일어나고 나서도 오랫동안 근육을 쓰지 않아 재활도 필요했고 말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면…… 역시 제 보조를 뽑아 놓을 걸 그랬습니다.”

“낫는 것만 생각하십시오. 배 비서는.”

미안해하는 그에게 도지완이 말했다. 그러고는 비서 형의 공백 기간 동안 대타로 일할 사람을 추천해 줄 수 있냐 물었지만 비서 형은 어색하게 웃었다.

“……이런 일이 일어난 탓에 더 조심할 수밖에 없어져서요.”

습격자들이 겉으로는 멀끔하게 생활하는 사람이었지만 뒤에선 사이비 종교를 믿는 교인이었던 것처럼 비서 형 자신에게 좋은 사람일지라도 뒷모습까진 모르니 추천하기 두렵다 하였다. 도지완도 동의하는지 그 말을 듣고 비서 형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있는 거라도 잘 써야겠군요.”

그러면서 힐끗 나를 보는 도지완을 따라 비서 형도 내 쪽을 바라보았다.

잉? 나? 눈을 끔뻑끔뻑하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자 비서 형은 정말 괜찮겠냐며 우려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어쩔 수 없지요. 걱정은 되어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음……. 그건 그렇죠.”

비서 형은 도지완의 말에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욕먹는 기분에 내가 인상을 구기자 두 사람은 픽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튼 나는 이렇게 병원을 탈출할 수 있게 되었다. 기쁨의 스텝을 밟으며 병원을 빠져나오는 나를 본 도지완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좋아?”

“예.”

히히, 웃으면서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도지완의 웃음이 짙어졌다.

병원을 나온 것도 나온 거지만 도지완과 함께할 수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는 게 가장 좋았다.

‘음…… 하지만 왠지 낯간지러우니 이 말은 하지 말자.’

나는 진짜 속마음은 숨긴 채 도지완을 마주 보며 웃었다.

* * *

비서 형의 부재로 그의 일을 맡게 된 나는 정신이 없었다. 솔직히 비서 형이 하는 일이 별로 없어 보여서 만만하게 보기도 했는데, 실제로는 아니었다. 그냥 그가 일을 너무 잘해서 그래 보였던 것일 뿐.

‘스케줄에 따라 일을 하는 것도 그렇지만…… 만나는 상대의 기호나 그런 것도 다 외워야 하고…… 어렵다.’

정 어려우면 새로 일할 사람을 뽑아 주겠다 도지완이 말했지만 나는 그러고 싶진 않았다.

상대를 믿을 수 없는 것도 없는 거지만…… 그냥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잠깐 맡아 둔 비서 형의 자리를 누군가가 채운다는 게 좀 그랬던 것이다.

‘난 생각보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구나.’

내 자리를 빼앗기고 싶지 않다. 내 사람의 자리를 빼앗기고 싶지 않다.

그래서 힘에 부치면서도 꽉 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조금 충격을 받았다. 천사 시절에는 이런 감정이 없었으니까.

‘역시 욕심이 많은 사람은 싫어하려나…….’

대부분의 사람은 선한 이를 좋아했고, 선하다는 기준에는 욕심 따윈 없었으니 말이다.

눈치를 보는 나에게 도지완이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나는 이유는 말하지 못하고 그저 어물거리는 것으로 피했다.

“오늘 남은 스케줄은 헌터 협회 회의인가?”

“네. 형님.”

헌터 협회 회의는 각 길드장들과 헌터 협회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모임이었다. 거기에 가면 연호진을 만나겠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 딱 도지완과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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