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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한 번 망했다-53화 (53/88)

53화

“저 마탄, 대체 뭐야?”

“목표와 같이 있는 사람은 분명 D급 헌터랬는데?”

D급 헌터가 그들의 공격을 막아 내니 자존심이 몹시 상해 보였다.

“너희들. 공격하고 있어 봐.”

셋 중에선 그나마 강해 보이는 자가 나섰다. 눈을 감고 섬뜩한 주문을 외우는 그의 몸에서 은은한 마기가 피어올랐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흰자가 사라지고 온통 새카매진 눈알만이 번들거렸다. 기이한 그의 시선은 그들의 공격을 피해 도망치는 차량에게로 향했다. 그가 손을 위로 까딱하자 차 바닥이 솟구쳐 올랐다.

쾅! 콰광! 쾅!

한 번이 아니었다. 여러 번 솟구쳐 올라 차량이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곤 이내 위아래가 뒤집힌 채 아스팔트 위를 길게 긁으며 앞으로 나가다 멈췄다.

“하! 드디어!”

그동안 지호가 그들의 공격을 상쇄한 것을 분풀이하듯 드러난 차량 바닥 위로 검은 구체가 유성처럼 떨어져 내렸다. 점점 차 바닥이 볼품없이 찌그러져 가는 것을 보며 그는 몸을 돌렸다.

마왕의 추종자들끼리의 분쟁에 참여할 생각은 없었다. 둘 다 자멸해 버리면 좋겠지만 한쪽이라도 없어진다면 나쁜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사고 차량으로 향하는 마왕의 추종자들과 반대로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것도 곧 멎었다. 그의 마음 한구석에 찜찜하게 남은 지호의 신성력이 그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기 때문이었다.

“설마, 혹시…….”

그는 심각한 얼굴을 하고 고개를 돌렸다. 마왕의 추종자들은 차에 다가가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석유통이 들려 있었다.

“그 사람이 용사라면?”

과거의 용사는 실패했다. 세상을 구하지 못했고 시간이 돌아가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만약 신께서 과거의 용사 대신 새로운 용사를 뽑았다면?

그래서 과거의 용사는 가지지 못했던 신성력을 새로운 용사가 가지고 있는 거라면?

그의 눈이 떨렸다. 정말 그런 거라면……. 그가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등에서 꺼낸 봉을 뒤틀자 날이 팍! 하며 튀어 올랐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사라진 그가 순식간에 마왕의 추종자들 앞에 쇄도했다.

“뭐……!”

갑자기 튀어나온 그를 보며 마왕의 추종자가 입을 벌렸지만 그의 말이 끝까지 나오는 일은 없었다. 날카로운 창 끝에 목이 꿰뚫린 그는 그륵그륵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절명했다.

“조장님!”

“너 이 자식!”

자신들을 이끄는 자가 죽자 남은 마왕의 추종자들은 깜짝 놀라더니 그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두 손에 마기를 두르고 달려드는 마왕의 추종자를 보며 죽은 시신에서 창을 빼낸 그는 그것을 횡으로 크게 휘둘렀다.

“끄악!”

그에 가슴팍이 길게 갈라진 마왕의 추종자가 쓰러졌다. 그럼에도 핏물 하나 묻지 않은 그의 창은 새하얀 빛을 은은하게 내고 있었다.

“서, 설마…… 신성력?”

남은 마왕의 추종자가 그의 창에 어린 빛을 보고 기함했다. 분명 윗분들의 말로는 신성력은 이 땅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이걸…… 알려야 한다!’

쓰러지는 동료를 보고 마왕의 추종자는 몸을 돌려 달렸다. 신성력의 등장은 그들의 계획을 크게 방해할 가능성이 컸으니까.

“어억!”

그렇게 달려가는 마왕의 추종자의 가슴팍에서 날카로운 창끝이 튀어나왔다. 어느새 그가 마왕의 추종자를 따라잡아 창을 찔러 넣었던 것이다.

푸들푸들 떨던 마왕의 추종자의 숨이 이내 멎었다. 그는 그 몸에서 창을 빼내며 창끝을 털었다. 언제 사람을 찔렀냐는 듯 창날은 핏방울 하나 묻지 않고 매끈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이윽고 차로 다가간 그는 차 문을 열고자 했지만 엉망으로 구겨진 탓인지 열리지 않았다. 결국 무기를 내려놓은 그는 양손으로 차를 붙잡아 비틀었다.

꽈지지직! 하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차가 찢어졌다. 어느 정도 누군가를 꺼낼 만큼 찢어지자 그는 안을 살폈다. 처참하게 구겨진 채 있는 두 사람.

‘이 사람은 죽겠군…….’

그는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고 생각했다. 지호와 다르게 안전벨트까지 매고 있었지만 놈들이 뒤집어진 차를 공격할 때 집중적으로 운전석을 공격한 듯했다.

유리창에 이마를 처박은 채 기절해 있는 지호보다 상태가 더 안 좋았다. 안전벨트를 뜯어내고 운전석의 사람을 밖으로 꺼낸 후 그는 지호에게 손을 뻗었다.

가벼워서 그런지 크게 힘을 주지 않아도 몸이 덜렁 들렸다. 바깥으로 빼내어 운전석의 사람 옆에 눕혀 두자 지호가 끄응, 소리를 내며 잘게 떨기 시작했다.

“……여긴?”

잔뜩 잠긴 목소리를 내며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던 지호는 제 곁에 서 있는 사람, 아이언맨을 보고 깜짝 놀랐다.

“윽……!”

반사적으로 일어나려 하니 온몸을 두드려 맞은 것처럼 통증이 일었다. 하지만 적인지 아군인지 아리송한 상대 앞에서 드러누워 있을 순 없다 생각한 지호가 어떻게든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조금 떨어진 곳에 시체가 보였다.

‘헉……!’

깜짝 놀라 아이언맨을 바라보자 그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아무래도 그가 벌인 일 같았다.

‘저들이 마왕의 추종자들인가?’

심증으론 그랬다. 아이언맨은 신성력을 쓰니 마기 섞인 공격을 퍼붓던 사람들은 따로 있을 것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 공격자들이 저 시체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우리를 구해 준 건가?’

‘왜?’라는 생각이 듬과 동시에 지호는 자신의 동승자를 떠올렸다. 그제야 제 옆에 누워 있는 배 비서를 알아챈 그가 몸을 질질 끌어 그에게 다가갔다.

“비서 형!”

그런데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지호도 만신창이였지만 배 비서의 모습은 더욱 끔찍했다. 팔다리가 기괴한 각도로 뒤틀려 있었고 내상까지 입었는지 코와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점점 줄어드는 배 비서의 숨소리에 지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안 돼!”

지호는 무작정 신성력을 퍼부었다. 전생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는지 아닌지는 지호에겐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그저 배 비서라는 사람은 여기에서 이런 초라한 죽음을 맞기엔 너무 좋은 사람이었다.

지호의 신성력이 배 비서의 몸으로 흘러들자 불안했던 그의 호흡이 점차 안정되었다. 뒤틀렸던 팔다리도 제 모습을 점점 찾아가는 그때였다.

지호의 곁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은 아이언맨이 배 비서의 몸에 손을 올렸다.

설마 자신들을 공격하려나 싶어 흠칫 놀라던 지호는 그가 신성력을 끌어 올려 배 비서를 치유해 주자 커다래진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그러나 그는 지호에게는 시선 하나 주지 않았다. 점차 배 비서의 얼굴이 평온해졌다. 안 좋은 의미가 아니었고, 신성력으로 몸이 고쳐지자 고통이 줄어들어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게 된 것이다.

배 비서의 치료가 끝나자 아이언맨은 이번엔 지호에게 손을 뻗었다. 그에게 붙잡힌 팔에 흘러드는 신성력은 무척 호의적이었다.

그가 왜 자신들을 돕는지 이해가 안 되어 지호가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이 개새끼야!”

저 멀리서 지완이 욕설을 뱉으며 달려오고 있었다.

이곳은 던전과 멀지 않은 길이었고, 아무래도 소란을 들은 그가 찾아온 것 같았다.

“아니…… 형…….”

상황을 보니 지완이 오해를 한 듯해 지호가 그를 말리려 했다. 하지만 통증 때문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는 데다 이미 눈이 돌아간 지완이었기에 말릴 수가 없었다.

뻔히 공격을 받아 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아이언맨은 지호에게 손을 떼고 창을 주워 지완의 공격을 막았다.

콰앙!

다시금 이 장소에 굉음이 울렸다. 여태껏 던전을 공략한 데다 여기까지 뛰어온 지완은 지쳐 있었기에 쌩쌩한 아이언맨을 이길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번과 달리 그의 공격에는 살의가 없어 보였다.

“이 씨발……!”

지완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가 자신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지완이 냉정함을 잃고 거듭 공격을 했지만 아이언맨은 가볍게 그 공격들을 피했다.

지호는 두 사람을 말리고자 했으나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아무래도 사고 때문에 갈비뼈가 부러진 듯했다.

색색거리며 숨을 내쉬다가 하는 수 없이 신성력을 끌어 올려 부상을 치유했다. 어느 정도 몸이 낫자 지호가 지완을 불렀다.

“형님!”

지호의 부름에 지완이 눈을 돌리자 그때를 맞춰 아이언맨이 뒤로 훌쩍 뛰어 거리를 벌렸다.

지완은 제 틈을 보고도 공격하지 않은 그를 노려보다가 자신을 부르는 지호를 보며 갈등했다. 계속해서 놈을 공격할지 지호에게 다가갈지 말이다.

‘저 자식이 뒤통수를 칠 줄 누가 알아?’

그렇게 견제하는 가운데 지호가 갑자기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내상을 입고 움직인 데다 배 비서를 살리기 위해 신성력을 쏟아부은 반동으로 몸이 나빠진 탓이었다.

“신지호!”

순식간에 얼굴이 탈색된 지완이 지호에게 뛰어갔다. 아이언맨은 더 이상 그의 안중에 없었다.

지완의 품에 안긴 지호가 아이언맨이 있는 방향을 확인했을 땐, 그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지완이 그와 싸우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하자 지호는 안도했다.

“형님…….”

“신지호! 정신 차려!”

“저, 좀만 잘게요…….”

“신지호!”

지호는 멀어지는 의식만큼 멀어지는 지완의 목소리를 들으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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