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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한 번 망했다-41화 (41/88)

41화

안심시키는 그 동작에 내가 발버둥을 멈추자 그는 나더러 착하다고 속삭였다. 티셔츠를 파고든 손이 피부 위를 오갈 때마다 오소소한 소름과 기이한 열기가 배 속에서 끓었다.

다리를 움찔거릴 때마다 도지완도 나에게 제 중심을 밀어붙였다. 천 너머로 느껴지는 묵직한 감각에 등줄기로 뜻 모를 감각이 치솟았다.

입을 틀어막는 것도 없는데 이상하게 숨이 가빠 헐떡이자 도지완은 혀를 내밀어 내 입술을 핥았다.

허리께의 피부를 훑던 손은 점점 올라와 가슴께에 닿았다.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그가 하는 대로 멍하니 있던 나는 갑자기 오르는 야릇한 충격에 몸을 파드드 떨었다.

“흐응……!”

뭐, 뭐지? 전기를 맞은 것처럼 야릇한 감각이 몸 전체로 확 퍼졌다. 당황하는 나를 보며 작게 웃음을 터트린 도지완이 다시 한번 돌기를 살짝 비틀었다.

“히잇……!”

아픈 것은 아닌데, 아니, 아픈가? 생소한 감각에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여기가 좋아?”

도지완이 속삭이며 나에게 입을 맞추려고 했다. 멍하니 그에게 끌려다니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나에게 다가오는 도지완의 입을 양손으로 막았다.

왜 막느냐는 듯이 못마땅한 얼굴을 한 도지완이 눈썹을 까딱이는 것을 보며 나는 외쳤다.

“자, 잠시만요!”

“…….”

“왜, 왜……. 주물러요?”

“…….”

“나, 나는 남잔데?”

남자의 가슴이 뭐가 좋다고 주무르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더불어 어째서 이러고 있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독기를 빼기로 했는데…… 왜 내 가슴을 주무르냐고요!”

내 가슴을 아무리 주물러도 그의 몸 안에 남은 마기는 빠지지 않는다! 억울해진 내가 외치자 도지완의 얼굴이 황당하다는 듯이 바뀌었다.

“무슨 소리야? 그게 진심이었어?”

그가 왜 저렇게 당황한 얼굴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나랑 키스하고 싶어서 수작 부린 게 아니었다고?”

“예? 제가 왜 도지완 씨랑 키스하고 싶어 해요?”

“뭐? 나랑 키스하고 싶지 않아?”

황당했던 내가 되물었지만 도리어 나를 황당하다는 듯 내려다보는 도지완의 눈이 의문을 가득 담은 채 잘게 떨렸다.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지 “어째서? 왜? 네가?” 하면서 횡설수설하던 그는 곧 진정을 했다.

“하……. 그래서, 입술만 대놓고 아무 짓도 안 하면서 감질나게 한 게…… 진짜 치료였다고?”

그렇게 말하는 도지완의 눈이 금방이라도 살인 파괴 광선을 쏠 것처럼 번들번들 빛났다.

“진짜 치료였다고?”

허망한 듯 다시 한번 묻는 도지완의 질문에 왠지 여기서 ‘네’라고 대답하면 눈빛만으로 나를 오체분시할 거 같은 기분이었지만 거짓말을 할 순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번들번들 빛이 나던 도지완의 눈에서 빛이 확 꺼져 버렸다.

“하아…….”

엄청…… 실망한 것 같았다. 내가 치료한 게 그리 마음에 안 든 건가? 당황해서 바라보자 나에게서 몸을 떼어 낸 도지완이 소파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언젠가 TV에서 본 것 같은 모습이었다.

‘솜사탕을 물에 씻었다가 사라진 걸 본 너구리가 저런 모습이었던 거 같은데…….’

내가 잘못한 건 없었지만 왠지 미안해져서 슬슬 다가가자 도지완이 노려보았다.

“떨어져.”

“네.”

“더 떨어져.”

“……네.”

그렇게 우리 사이에 3, 4명은 더 앉을 만한 거리로 떨어지고 나서야 도지완은 떨어지란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마기는……?’

마기를 신성력으로 조금 주물러 본 게 다라 한 톨도 바깥으로 빼내지 못했다. 도지완에게 다시 한번 말해 보려고 했지만 그가 표정으로 ‘말 걸면 죽이겠다’라고 말하고 있어서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마기는 그대로 도지완의 몸에 남게 되었다.

* * *

그날, 어색한 분위기로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부터 도지완이 또 나한테 심술을 부려서 내쫓거나 다가오지 못하게 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걱정과 다르게 도지완은 나를 가만히 두었다.

다만…….

“네가 나랑 키스할 마음이 없었다 이거지?”

“…….”

“나를 쫓아다니며 감시하면서, 키스할 마음은 없었다?”

아니, 감시랑 키스랑 무슨 상관이람? 이해되지 않았다. 못 들은 척하니 내가 대답할 때까지 스토킹은 하지만 키스는 안 하냐고 계속 묻기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하…….”

그러자 나를 정말 모자란 놈 보듯 고개를 절레절레하는 게 아닌가?

우이씨……. 열받았지만 비위를 맞춰 줘야 하는 나로서는 그냥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 비서 형이 찾아왔다. 두 사람이 일을 하는데 방해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멍을 때리고 있었다. 비서 형이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사람을 더 뽑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사람을요?”

“네. 지금이야 세진리교가 조용하다지만…… 다시 행동을 개시하면 위험한 건 길드장님 아닙니까?”

맞는 말이라 나도 옆에서 응응, 고개를 끄덕였다. ……어라? 사람을 뽑는다고?

“그들이 길드장님을 노린 이유를 아직도 모르니까요.”

“그렇긴 하지만…….”

“되도록 24시간 붙어 있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입주 경호원을 알아볼까요?”

허억……! 24시간! 도지완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썼지만 나에게는 아주 좋은 조건이라 나는 곧바로 손을 번쩍 들었다.

“저요! 제가 할래요!”

하나로 모자란 것 같아서 양손을 번쩍 들었다. 두 사람은 조금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예?”

“제가 하고 싶습니다! 24시간 철저하게! 따라다닐게요!”

“하, 하지만…….”

비서 형이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넌 약하잖아, 라고 말이다.

하지만 S급의 헌터인 도지완에겐 어떤 사람을 붙여 놔도 약할 뿐이었다. 그야 S급의 다른 헌터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경호원으로 일할 리 없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을 경호원으로 들이든 제가 경호원으로 일하든 똑같을 거예요.”

“…….”

“그 사람이나 나나 할 수 있는 일은 잠깐의 틈을 만들어 주는 걸 테니까요.”

잠깐의 틈을 만들어 도지완이 행동할 시간을 벌어 주는 것. 누구보다 강한 것이 S급 헌터였으니까.

“저 잘할 수 있어요!”

D급이라 일반인보다 강하고, 비밀이지만 신성력도 쓸 수 있습니다! 마기를 가진 인물은 어느 정도 파악 가능하니 나에게 딱 알맞은 일이었다.

시켜 달라며 도지완에게 매달리자 그는 눈썹을 삐딱하게 세웠다. 곧 가늠하듯 생각에 잠기더니 비죽 웃으면서 나에게 속삭였다.

“그래. 좋아. 그럼…… 테스트를 해 봐야겠지?”

엥? 테스트? 그런 것도 봐야 하는 건가? 내가 의아한 얼굴을 했더니 또다시 도지완의 한쪽 눈썹이 삐딱해졌다.

“목숨이 달린 일인데 아무나 쓸 순 없는 일이잖아?”

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비서 형이면 몰라도 내 능력을 잘 알고 있을 도지완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 서운했기 때문이었다.

내 서운함을 눈치챈 도지완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당연한 거야. 여기 있는 배 비서도 그냥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그 말을 들은 비서 형이 오묘한 얼굴로 도지완을 바라보았다. 도지완은 팔꿈치로 비서 형을 살짝 치더니 물었다.

“배 비서, 스펙이 어떻게 되죠? 제 비서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어땠죠?”

“에? 아…… 그러니까, 저는 한국대학교 경영학과와 무역학과를 복수 전공 했으며…….”

비서 형의 입에서는 끊임없이 말이 나왔다. 수많은 자격증과 토익 점수, 토플 점수, JLPT 점수, HSK 점수, 인턴을 했던 경험과 봉사 활동 경험, 공모전에 참여했던 것 등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나와 비서 형을 비교했다.

‘나는…… 고졸이지? 대학 중퇴했으니까. 자격증…… 컴퓨터 활용 능력 시험 본 거 빼면 없지? 토익 본 적 없고…….’

처참했다.

“……그렇게 면접을 보아 최종적으로 제가 비서가 되었습니다.”

비서 형의 말이 끝나자 도지완이 나를 바라보았다.

“물론 이건 비서로서의 스펙이니 너에게 이 정도를 바라진 않을 거야.”

“…….”

“다만 내 말을 얼마나 잘 따르냐 정도는 테스트해야겠지.”

“저 말 잘 들어요!”

도지완이 피식 웃었다. 퍽이나 그런다는 뜻이었다.

* * *

나는 그렇게 테스트를 받게 되었다.

다음 날 나는 도지완과 함께 도문 길드로 함께 출근하게 되었다. 평소 내가 입는 옷은 안 된다며 도지완이 슈트 케이스를 내밀었다.

“으엑, 이걸 입어야 해요?”

“말 잘 듣는다며?”

“헤헤, 너무 좋아서 꿈같아서 그렇죠.”

그 한마디에 나는 비굴하게 웃으며 말할 수밖에 없었다.

방에 들어가서 도지완이 준 슈트를 입는데 당연하게도 티셔츠와 청바지보다 불편했다. 게다가 문제가 하나 있었다.

‘엥, 이거 어떻게 매는 거지?’

나는 넥타이를 들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물론이고 신지호도 미리 모양이 잡혀 지퍼만 올리면 되는 넥타이는 써 본 적이 있었으나 그냥 끈으로 된 넥타이는 착용한 적이 없어서였다.

목에 두르고 이리저리 궁리해 봤지만 어쩌지 못했다. 결국 나는 목에 넥타이를 그냥 건 채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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