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왜지?’
왜 도지완이 내 검사 결과를 같이 듣는 거지? 이해가 안 가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의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도지완에게 설명했다.
“음…… 조금 영양실조 증세가 있는 걸 제외하면 몸에 이상은 없습니다.”
“……영양실조?”
도지완이 당황스러워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 납득하는 얼굴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씨…… 뭔데! 뭔데 납득하는데!’
밥도 못 먹고 다니게 생겼나? 조금 성질이 났다. 아무튼 영양실조라는 말에 도지완은 건수를 잡았다는 표정이 되었다.
“들었지? 네 몸은 괜찮지 않아.”
그러니까 퇴원할 생각 하지 말라, 이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절대로 그럴 수 없었다.
“아뇨. 저 진짜 괜찮은데…….”
그러나 도지완은 아무 말 없이 의사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네가 전문의보다 전문가냐는 뜻이었다.
“몸이 괜찮은 것 같아서라는 건 빼고, 네가 그렇게 퇴원하려는 이유가 뭐지?”
“그…… 그…… 일해야 하니까요?”
물론 내가 말하는 일이란, 도지완에게 붙어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듣기에는 어시스트 일을 뜻하는 것일 터였다.
내 대답에 생각에 잠긴 도지완이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일해야 한다라…….”
“……네.”
“전에 말했던…… 돈을 많이 벌어야 하기 때문인가?”
“예……? 아, 네! 맞아요. 돈을 많이 벌어야 하기 때문이죠.”
사실은 그를 쫓아다니려고 하는 거지만……. 전의 실수를 애써 지워 냈는데 이런 말을 했다간 다시 들추는 격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내가 없으면 내 공백만큼 다른 팀원들이 일을 나눠야 해서 힘들다느니, 그런 이야기를 했다.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도지완이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던전은 클리어했고 새 던전은 아직 스케줄을 잡지 않았어.”
길드장이 사라진 동안 막혔던 일들을 처리 중이기에 새 공략용 던전을 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는 도지완의 말에 나는 조금 심통이 났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도움이 되는 게 아무것도 없네.’
다 도지완 때문이었다. 내가 퇴원하려는 것도, 퇴원 못 하는 것도. 이렇게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의사는 사라져 또다시 나와 도지완, 둘만 남았다.
도지완은 내 회복을 이유로 물러서지 않았고, 그에게 졸아 버린 나도 서둘러 퇴원을 하기 위해 물러나지 않았다.
“대체 왜 이러세요……. 낭비잖아요.”
“낭비?”
“예. 영양실조가 있다고 하지만 제가 느끼기엔 괜찮다니까요?”
시간이 지나면 나을 거고……. 그러나 내 대답에 도지완은 인상을 썼다.
“웃기는군.”
“…….”
“내가 너에게 돈을 쓰겠다는데 그게 왜 낭비지?”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도지완은 정말 진지했다.
“안 되겠어. 네가 나을 때까지 던전 공략은 없다.”
“예?”
“입원해 있는 동안 너에겐 위로금이 지급될 것이고, 네 팀원들은 다른 공격대에 잠깐 파견 형식으로 보내도록 하지. 그쪽도 어시스트는 많으면 좋으니까.”
“아니…….”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닌데요! 이야기가 이상하게 돌아가 거절하려고 했지만 이어지는 도지완의 말에 나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냥 둬선 안 되겠어. 퇴원을 안 해 준다고 멋대로 나갈지도 모르니까 내가 매일 와서 감시하도록 하지.”
“좋아요.”
매일 볼 수 있다고? 그럼 문제없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퇴원 못 해 안달했으면서 도지완의 마지막 말에 솔깃해져 바로 좋다고 승낙하는 나를 보며 도지완은 대체 이건 뭐 하는 놈인가 하는 얼굴을 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언제 오는지, 매일 몇 시간 동안 있다 가는지 궁금하여 물어보니 도지완은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그냥 네가 퇴원할 때까지 여기서 업무를 보겠다.”
병원에서 무슨 짓이냐 하겠지만 이건 도문그룹의 의료원이고, 도문그룹은 도지완 것이었다. 주인이 맘대로 쓰겠다는데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매일 내 병실로 출퇴근하겠다는 도지완의 말에 만족하며 웃던 나는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왜 반말하세요?”
“…….”
“……아니, 반말했다고 기분이 나쁘다는 게 아니고요.”
나는 나를 바라보는 도지완의 시선에 쪼그라들어 웅얼웅얼 말했다.
그렇게 말을 편히 하라고 해도 선 긋던 사람이 왜 이러나 싶었다. 결국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꼭 듣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머릿속에서 금방 털어 냈다.
* * *
지완이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병원인 걸 확인한 그는 손등을 찌르고 있는 수액 바늘을 뽑았다.
혈관을 찌르고 있던 바늘이 사라지자 구멍 난 손등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지만 지완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길드장님!”
“어디 있습니까?”
“예?”
다짜고짜 어디 있냐는 말에 비서는 지완이 찾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지만 딱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핸드폰을 찾으시나?’
갑자기 쓰러졌다 일어났으니 핸드폰을 찾나 싶어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지완의 핸드폰을 꺼내 내밀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눈빛이었다.
“걔…… 어디 있습니까?”
“네?”
“……신지호. 신지호 어디 있습니까.”
신지호가 누군지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는 비서의 모습에 지완의 싸늘한 눈빛이 더욱 강해졌다.
움찔 떤 비서가 그제야 지완이 말한 신지호가 누군지 감을 잡았다.
“아…… 그 어시요?”
“…….”
“요 아래층 일반 병실에 입원했…… 길드장님!”
비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완은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몸이 조금 휘청거렸지만 금세 균형을 찾았다.
뛰어서는 안 된다는 상식은 남아 있었던지라 빠르게 걸어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다급하게 따라온 비서가 헉헉거렸다.
“몇 호실이죠?”
“잘 모르겠…….”
쯧, 혀를 짧게 찬 지완은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얼마 안 가 지호의 이름이 적힌 6인 병실 문을 찾아낸 그는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병실 안은 꽉 차 있어 들어온 지완을 모두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봤지만 지완의 시선은 그들을 향하지 않았다.
지호의 침대를 찾은 지완은 그 옆에 앉았다. 그런 그의 표정이 너무나 좋지 않아 모두가 숨을 죽인 건 덤이었다.
“왜 누워 있죠?”
“예?”
심각한 얼굴로 지호가 왜 누워 있는지 묻기에 비서는 당황했다. 그야 기절했으니까 누워 있는 것인데……. 지완이 정말로 그 당연한 걸 몰라서 묻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게…… 기절했으니까?”
“그래서, 깨지 않는 이유는 뭐죠?”
“예……?”
비서의 얼굴엔 자기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는 의문이 떠올랐다. 결국 비서가 쓸모없다 생각되었는지 지완은 입을 열었다.
“의사 부르세요.”
그 한마디에 회진 시간도 아닌데 의사가 병실에 당도했다. 모두가 지완의 행보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
“에…… 그게 문제는 없습니다. 미약한 영양실조 기미가 있는 것을 제외하면 검사 결과는 깨끗했으니까요.”
“문제가 없는데 왜 아직도 깨어나지 않나요?”
“그게…… 그냥 피로해서 자는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그러니까. 똑같이 들어갔다가 똑같이 나왔는데 왜 저는 깨고 이자는 안 깬 겁니까?”
지완의 따가운 눈빛에 의사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대답했다.
“그야…… 길드장님께서는 S급이고 신지호 환자분은 D급이니까요.”
“…….”
“이능에 영향을 받는 기초 체력이나 체력 회복 차이는 고려하셔야 합니다.”
지완은 그제야 납득하며 의사를 돌려보냈다. 의사는 지완이 다시 자신을 잡을까 두려워하며 빠르게 병실을 벗어났다.
그의 애끓는 속도 모르고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지호를 보며 지완은 못마땅한 얼굴이 되었다.
‘약해 빠져서는…….’
던전의 함정에서 함께 구른 전우이기 때문일까. 지완은 지호가 많이 신경 쓰였다.
눈앞에서 타인이 죽어 나가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그가 이렇게 타인을 신경 쓰는 것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한동안 지호의 근처에 앉아 있는 지완 곁에서 비서가 안절부절못했다. 그가 깨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는지 회사에서 전화가 오기 시작한 탓이었다.
눈치 빠른 지완이 비서의 행동을 모를 리 없었건만 그는 묵묵히 지호의 곁을 지켰다. 그러나 영원히 그럴 수는 없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결국 일어선 지완이 비서에게 말했다.
“신지호 씨, 1인실로 옮기세요.”
지호가 도문 길드의 어시로 일하고 있긴 하지만 완전한 도문 길드 소속은 아니었다. 지호가 소속된 회사가 도문 길드의 하청으로 파견을 보내 주는 형식이었기에 지완이 지호의 입원에 100원 한 장 쓸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비서는 의아해했지만 그의 명령에 재깍재깍 대답 안 하면 지완의 기분이 좋지 않아질 것이기에 의문을 지닌 채 알겠다고 대답했다.
비서의 대답에 만족한 듯 발걸음을 옮기려던 지완이 갑자기 멈춰 섰다. 곧 의아하게 바라보는 비서에게 덧붙였다.
“그리고…….”
“네.”
“……피치 못한 사정으로 일을 못 한 만큼 시급에 해당하는 돈을 줬으면 하는데. 명목은 위로금 정도가 괜찮겠군요.”
“예? 누구한테요?”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묻는 비서에게 돌아오는 것은 누구겠냐는 표정뿐이었다. 주는 것이야 어렵진 않지만 지완이 그래야 하는 이유를 비서는 알 수 없었다.
‘어차피 산재로 보험금이 나올 텐데…….’
이럴 때 쓰라고 들어 둔 보험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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