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세상이 한 번 망했다-12화 (12/88)

12화

반 분위기가 싸해졌다. 여태껏 그의 묵인하에 그를 재미있게 씹어 대던 놈들의 얼굴은 새하얗게 변했다.

“자식이 둘인데 하나는 죽어 가지. 그럼 사생아라도 잘 써야 하지 않겠어? 넌 어떻게 생각해?”

상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지완은 사생아더라도 도문그룹의 자제였다. 그제야 상대는 자신이 도문그룹의 하청을 받아먹고 사는 기업의 자식이란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잘, 잘못…….”

“용서를 빌어 봤자 나는 용서를 받아 줄 생각이 없어.”

“…….”

“왜? 사생아니까 용서도 당연히 받아 줘야 할까?”

차갑게 웃는 도지완의 얼굴을 보며 상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사실 그는 재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다른 패악은 아무 말 없이 받아들이던 도지완이었기에 만만하게 본 듯했다.

결국 상대의 집안은 파산했다. 도문그룹이 하청 계약을 끊어 버린 것이다. 한 명이 그렇게 무너지자 감히 도지완에게 아무도 대거리하지 못했다.

도지완은 조용하면서도 강렬하게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진짜 인생 참 지루하네.”

그렇게 말하는 도지완의 눈은, 예전에 그의 친모를 보던 눈 같았다. 나는 말없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도지완은 아무 말도 없었다.

* * *

결국 계모와 부친은 이혼했다. 정신과 치료를 받아 제정신으로 돌아온 계모가 부친에게 이혼을 요청한 것이다.

“나도 더는 괴물이 되고 싶지 않아.”

계모는 이혼 후 동생을 데리고 외국으로 가고자 했다. 여러 가지 이권이 얽혀 있었지만 어떻게든 잘 풀어내고는 두 사람은 이혼했다.

계모는 끝까지 도지완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너도 나를 평생 용서하지 마.”

그렇게 말하고는 집을 나갔기에 이제 집에는 부친과 도지완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게 일이 다 끝난 것 같았으나 도지완의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도지완의 출생은 집안에서 쉬쉬하던 문제였지만 남의 입에 의해 드러난 지금은 집안의 치부를 넘어 도지완의 부친을 공격할 좋은 수단이 되었다.

동생을 죽이기 위해 뺑소니를 사주한 게 아니냐고 이야기가 변질되어 돌아다녔다.

도지완이 크게 화를 낸 이후로 그의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자가 없어지긴 했지만 뒤에서 도는 말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는 평소와 비슷하게 행동했기에 모두 그를 독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나만큼은 그가 동요하고 있음을 알았다.

‘성적이 내려갔네.’

등수는 여전히 1등이었지만 실수할 리 없는 문제를 틀려 점수가 살짝 위험할 뻔했다.

“역시 도지완이네.”

“피도 눈물도 없는 게 분명해. 진짜 멘탈 하나는 대단하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혀를 차면서 욕을 먹으면서도 흐트러짐 하나 없는 그에게 질려 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그가 안타까웠다.

그렇게 겨우겨우 버텨 가는 그를 조금이나마 내가 지탱해 줄 수 있다면……. 나는 그 마음을 담고 그를 끌어안았다. 그런 내 손 위에 도지완의 손이 얹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쯤부터 도지완의 행동이 변한 걸 느꼈다. 그는 그전까지 자발적 아웃사이더였지만 이제는 무리의 중심에 들어가 있었다.

도지완은 분위기 메이커처럼 같이 있으면 즐거운 사람과는 거리가 있었다. 다만 그가 지닌 무거운 분위기, 카리스마가 사람들을 이끌었다.

돈을 원하는 자에겐 돈을, 인정을 원하는 자에겐 인정을. 도지완은 사람을 쓰는 법을 익혀 나갔다.

그의 인정을 바란 자들은 그를 추앙하며 따랐고, 그의 돈을 원한 자들은 그의 힘에 무릎을 꿇었다.

이제는 도지완을 사생아라 욕하는 자들이 아무도 없었다.

“예전에는 그 사람이 왜 다 가지라고 했는지 이해 못 했거든.”

“…….”

“사실 내가 가지길 원한다고 줄지도 몰랐고.”

“…….”

“그 말이 지금 와서는 이해가 돼.”

“…….”

“힘을 가지고 있어야 사람들에게서 나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도문그룹의 일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던 도지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번도 내비치지 않았던 욕심을 부친에게 내비쳤고, 그 외에 다른 선택지가 사라진 부친은 도지완을 제 후계자라고 선포했다.

“사생아가 감히 어딜 넘봐!”

“형이 미친 게 아니면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지!”

그러자 집안 어른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사촌들 중에는 도지완을 따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완전무결하던 도지완에게 사생아라는 흠집이 생긴 순간 혹시 그를 넘을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눈을 빛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던 중 세상이 변했다. 차원의 경계가 옅어지며 타 차원의 괴수들이 이 세계로 유입된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새로운 힘을 각성하는 자가 생겨났다. 도지완도 그중 하나였다.

도지완은 힘이 생기자 바로 사람들을 모았다.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었다. 재벌가의 자제이나 아직 물려받은 사업체가 없는 도지완을 그의 부친이 도왔다.

두 사람은 이미 한배를 탔고 한쪽이 몰락하면 같이 무너져 내리는 터라 물러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어떤 기준도 정립되지 않았을 때, 도지완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성공하는 미래를 알고 있지만 그래도 우려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말린다고 해도 멈출 수가 없는 그의 사정을 알기에 나는 그저 침묵을 택했다. 그런 나를 보더니 도지완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둑이 무너졌을 때, 그때가 가장 유속이 빨라.”

“…….”

“세상도 마찬가지야. 변화가 시작됐을 때 가장 빠른 법. 그 흐름을 타지 못하면 뒤처질 뿐이야.”

자신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고, 나를 설득하는 말 같기도 했다.

아무튼 이 흐름을 제대로 타지 못하면 뒤처지고, 그렇게 뒤처질수록 도지완에게 불리했다. 그에게는 사생아라는 페널티가 있어 다른 사람보다 한 발짝 뒤에 있으니 말이다.

나는 반대하지 않고 그의 뒤를 따랐다. 여차하는 순간에는 내가 나서서 신성력으로 그를 고쳐 주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당연히…… 이 공략에서 도지완은 크게 성공하지만.’

도지완의 큰 성공은 도문그룹의 잡음을 싹 종결시켰다. 그리고 그가 후계자가 되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마저 사라졌다.

그런 미래를 앎에도 안심이 되지 않는 것은 왜일까? 아티팩트도 아닌 강철로 된 검과 방어구를 입고 던전 안으로 들어가는 도지완을 따라 들어갔다.

첫 경험은 첫 경험인지 그 도지완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았다.

“앞에 무언가 있습니다!”

같이 들어간 길드원이 소리쳤다. 정말로 앞에 무언가 있었다. 그런데 속도가 엄청 빨라 눈 깜짝할 새에 그것이 도지완의 앞에 당도했다.

난전이 벌어졌고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피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도지완의 검이 괴수의 배를 갈랐다.

“허억, 헉!”

고작 하나 죽였는데 도지완의 몸에서 힘이 쭈욱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회복시켜 줄 게 없나 확인할 겸 도지완에게 다가가려고 발을 뗐다.

그 순간, 갑자기 세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내가 도지완을 바라보자 그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다른 길드원들은 도지완의 이상을 감지 못 하고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이건……! 이 치사한!”

계속 시간만 흐르게 두었던 트랩이 발동한 것이다. 도지완이 가장 맛있게 익었을 때, 그리고 그가 가장 심약해졌을 때. 그때를 노려 그를 삼키려고 했다.

도지완은 지금 한계까지 몰려 있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의 흠집을 보수하기 위해서. 어떤 성적이라도 내보여야 했다.

그래서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개척하려 했고, 처음으로 살생을 했다. 그것이 괴수라고 해도 평화에 젖어 살던 현대인에게는 큰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었다.

“이봐!”

“…….”

“야! 도지완!”

다가간 내가 도지완을 다급하게 흔들었지만 그는 멍하니 검은 기운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신성력을 펼쳐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길드장! 길드장님!”

“…….”

“야! 정신 차리라고! 도지완!”

머리를 쥐어뜯기도 하고 뺨을 치기도 했는데 여전히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나는 정말 울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도지완을 깨울 수 있을까? 호칭을 계속해서 바꿔 부르며 그를 깨우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단 하나를 제외하고.

“으아아아! 형님!”

얼굴의 반절만 남기고 어둠에 잠식된 그를 형님이라고 불렀을 때였다. 하나님, 부처님, 도지완 님 이렇게 불렀을 때도 아무 반응 없더니 형님이란 단어에 몸이 움찔 떨렸다.

‘이 새끼 무슨 페티시 있나?’

한 번 더 형님이라고 부르자 또 몸이 움찔거렸다. 나는 이제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밖에 없었다.

“형님! 형님! 형니이이임! 정신 차리세요!”

여러 번의 외침에 흐리게 죽어 있던 눈에 빛이 돌아왔다. 초점이 생긴 눈이 데구루루 굴러 나를 바라보더니 미간이 찌푸려졌다.

“형님?”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 검은 기운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그가 팔을 움직이자 팔에서, 다리를 움직이자 다리에서 검은 기운이 떨어져 내렸다.

“내가 왜 네 형님이야?”

양심이 있냐는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도지완이 10살일 때부터 나는 계속 이 얼굴이었고, 미래의 그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작은 도지완과 비교하면 내가 더 많았다.

정신을 차린 그를 보곤 안도하며 웃을 때였다. 갑자기 도지완의 얼굴에 당황이 번졌다.

“너……!”

“어라?”

내 손이 반투명하게 변했다. 손뿐만 아니라 몸도 마찬가지였다. 들여다보는 손바닥 너머로 도지완의 당황한 얼굴이 그대로 비쳤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