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태자가 그 자리에 천천히 무릎으로 섰다. 그리고 무릎으로 걸었다. 떨고 있는 홍의에게 다다라 발목을 잡아 쑥 당겼다. 홍의가 아픈 사람처럼 신음하며 딸려 왔다. 가뿐히 홍의의 등에 복근을 붙이고 올라타 좁게 붙은 엉덩이 사이를 녹진하게 꿰뚫었다. 긴장했던 속살이 기쁜 것처럼 부들부들 경련하며 야무지게 뿌리까지 죄어 물었다.
“으으으, 으, 우욱, 으응… 흐으….”
태자는 묵묵히 홍의의 얼굴 옆을 짚고, 땅땅하게 다물린 허벅지 사이를 무릎으로 갈라 자리를 보았다. 엎드린 채 가랑이를 벌린 자세가 못내 수치스러웠던 홍의가 흠칫거리며 돌아보려 했다. 태자가 아주 엎드려 누르며 그 움직임을 차단했다.
“홍의야.”
한숨 같은 부름에 귓가에 소름이 돋았다. 홍의의 눈이 크게 뜨였다. 침상을 짚은 태자의 주먹에 문득, 혈관이 불거져 오르는 게 보였다.
“울지 마.”
그리고 아주 부드럽게, 한낮의 선잠처럼 몽몽하게, 홍의가 가장 느끼는 곳을 골라 신중하고도 집요하게 다져 주는 성은에 되레 숨이 말려들었다. 배 속이 물커지다 아주 녹아 버릴 것 같았다. 팽창할 듯 뜨였던 두 눈이 점차 초점을 잃고 풀렸다. 하악, 학, 헉, 홍의는 숨을 풀어내는 게 아니라 끌어다가 목구멍으로 삼켰다. 몇 번째일지 모를 파정에 다다라, 길게 흐느꼈다.
이내 깔린 배 밑으로 팔이 쑥 들어오고, 여전히 얼굴 옆에 놓인 태자의 주먹이 포단을 잡쥐며 부들거렸다. 그리고 그 긴 옥경이 천천히 빠져나가는데 마지막엔 밑도 함께 덜컥 빠지는 기분이었다. 태자가 가쁜 숨을 삼키며 홍의의 볼기짝을 잡아 골에 대고 씨물을 쏘았다. 아, 홍의가 놀라 돌아보았다. 꼬리뼈에 쏘아진 정액이 아래로 흘러 부어오른 주름 사이에 맺히는 느낌이 들었다. 구멍을 오므려 어떻게든 삼키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젖은 속에서 먼젓번에 부어 둔 용정마저 질질 새었다.
“아, 전하, 용정을, 넣어 주십시오…….”
갑자기 어쩔 줄 몰라 하던 홍의가 흐느끼듯 애원하였다.
태자가 멈칫했다. 난데없이 용정에 집착하는 홍의의 행동이 의아했기 때문이다.
홍의가 튼실한 허벅지를 헤저어 육덕 좋은 둔부를 바짝 치켜들었다. 태자의 정액이 홍의의 떨리는 허벅지를 타고 흘렀다. 이불에 볼을 뱌비며 돌아보는 홍의의 눈매가 나른하게 젖어 더욱 관능적이었다.
“전하, 제발…. 제 안에 가득 싸 주십시오.”
***
눈을 뜨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간밤에 얼핏 보았을 때 달무리가 번지고 별조차 드문드문하더니 이러려고 그랬는가 보다. 온통 잿빛으로 이지러진 하늘을 올려다보던 홍의는 이내 시선을 거두고 침상을 돌아보았다. 젖은 이불은 밤사이 갈아 두었으나 여전히 정사의 흔적이 여실하였다. 발바닥으로 짜르르 올라오던 통증이 아랫배에 머물렀다.
비척거리며 욕탕으로 가 홀로 뒷물을 했다. 태자가 손수 긁어 빼 주려는데 기어이 거부하고 고집스레 머금었던 간밤의 용정이 하릴없이 쏟아졌다.
“한심한 놈.”
이를 악문 홍의가 스스로를 향해 욕설했다.
“아둔한 놈.”
뜨거운 눈가를 손끝으로 꾹꾹 짓눌렀다. 한참을 그리하였다.
사랑은 무르익을수록 욕심이 따라붙는 걸까. 그래서 애욕일까.
바닥에 흐르는 용정을 내려다보며 홍의는 묵묵히 눈을 껌벅거렸다.
뒤늦게 입성을 챙기고 내실로 나오자 여전히 태자는 침상에 누워 있었다. 곤히 잠든 태자의 맑은 얼굴을 보는 순간, 다시금 무던히도 무수한 감정들이 물밀어 들었다. 그것은 슬픔이었다. 억울함이기도 했고, 서러움이기도 했다. 애틋함이기도 했고 괴로움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감정들의 이름은 혹애(惑愛), 지독한 사랑이었다.
이대로 관계를 잇는 건 전하께 독이 된다. 몇 번을 생각해도 답은 하나였다. 현 시점에서 태자의 자리를 가장 확고히 하는 최선의 방법은, 당장 태손을 보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은 천지가 개벽해도 후사를 놓아 드릴 수 없다.
언제고 오지 않는 임을 그리며 망연히 담장에 갇혀 있을 어여쁜 태자비가 떠올랐다. 하찮다는 듯 쏘아보며 방자함을 지적하던 황후의 얼굴도 떠올랐다. 황후는 처음 홍의를 태자궁에 보냈을 때부터 이러한 상황을 결정지어 놓았을 터다.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은 홍의에게도 태자에게도 황후의 명을 거역할 힘이 없었다. 무엇보다, 더는 황후에게 시달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거무튀튀한 면사를 들쓴 채 반찬의 가짓수대로 내처 참견을 당하며 흙탕물처럼 시커먼 탕약을 겨우겨우 들이켜는 태자를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자신으로 인해 태자와 황후가 대립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애석하게도 지금 그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물러나는 것뿐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아침임에도 방 안은 초를 켜야 할 만큼 어두웠다. 꺼져 가는 심지에 다시 불을 붙이고, 침상 아래 무릎을 꿇고 잠시 빛나는 능선을 바라보았다. 소복하고 간잔지런한 눈썹을 손끝으로 헤아렸다. 그러자 마법처럼 태자가 눈을 떴다. 쪽물처럼 푸른 눈동자 속에 또 다른 푸름이 빛났다.
…언제 이토록 커져 버린 것일까? 평생을 다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그와 보낸 넉 달 속에 있다. 이 모든 잔인한 결정들이 진정 자신의 뜻이 아니기에 더욱 아팠다. 고운 정인을 응시하던 홍의가 차마 더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메마른 목소리가 겨울 낙엽처럼 버석거리며 흘러나왔다.
“소신, 이대로 한동안 대윤 공의 사택에서 머물려 합니다.”
“…….”
“전하께오선 금성으로 돌아가신 연후, 곧바로 정실이신 태자비 마마께 가십시오.”
태자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두 다리를 침상 아래로 내리자, 홍의가 제대로 무릎을 꿇고 부복하여 아뢰었다.
“귀숙일이 명일로 다가왔습니다. 모든 관민이 양전의 합궁을 학망하오니, 전하께오선 큰 뜻을 품고 태평성대를 이루심이 마땅합니다.”
태자는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더는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대의를 그르치는 우를 범하지 마십시오. 이는 인륜입니다. 좋고 싫고를 따지기 이전에 무조건 결행해야 마땅한 인륜지대사입니다. 양전의 합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후사가 안돈되는 그때, 소신은 다시 금성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사랑한다고 해 봐.”
“…….”
홍의는 굳었다가, 조아렸던 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태자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말해. 날 사랑한다고.”
숨이 점차 가빠지는 것 같았다. 지금과 어울리지 않는 달콤한 말을 들먹인 태자의 표정은 텅 빈 무표정이었다. 홍의는 천천히 입을 벌리고 침음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소신은 지금 대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대의에 사사로운 감상을 거론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너는 어리석은 감상에 빠져 몸을 열었나?”
“…….”
“말해 봐, 향선 홍의. 그토록 어리석고, 한심한 황태자를 달래려 스스로 몸을 데우고 발기한 좆을 음란하게 흔들며 가랑이를 벌렸느냔 말이다. 우는 놈 당과 물리듯…?”
홍의가 짐짓 시선을 피하며 아무 대답도 올리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침묵은 긍정이 될 터였다.
“언제나, 나를 닮은 괴물이 태어날까 두려웠어.”
일순 눈앞이 흔들렸다. 홍의가 고개를 들어 태자를 보았다.
“이복 남매인 어마마마와 아바마마가 합하여 나를 낳은 것처럼.”
태자의 찌르는 듯한 시선이 홍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너는 내가 무슨 마음으로 지금껏 홀로 해 왔는지, 어떤 심정으로 살아왔는지 알면서, 어떻게 내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천륜을 거스를 수는 없으니까요.”
철썩!
커다란 손에 귀뺨을 맞은 홍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한 방에 입 안이 찢어졌는지 피가 가득 고였다. 아랫입술을 감쳐물며 돌아보던 홍의는 그대로 못 박힌 듯 굳었다.
툭.
물이 떨어졌다.
투둑!
태자의 눈시울에 가득 차오른 분루(噴淚)가 받칠 새도 없이 후드득 떨어졌다. 분노에 못 이긴 감파란 두 눈이 불꽃처럼 일렁였다. 태자의 눈물에 경악한 홍의가 벌떡 일어나 다가가자, 태자가 고요히 홍의의 가슴팍을 밀었다.
얻어맞은 뺨보다 그 행동이 더 아팠다. 홍의는 왈칵 겁이 났다. 믿기지 않는 반응에 놀라 계속 다가갔다. 다시 따귀가 날아왔다. 홍의는 힘없이 바닥에 처박히듯 스러졌다.
“오지 마.”
“전하.”
“내 몸에 손대지 마.”
“…전하!”
그대로 내실을 나서려는 태자에게 필사적으로 달려가 허리를 붙들었다. 가라고 한 것은 자신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떠나려는 태자를 보자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며 땅이 쑥 꺼지는 것 같았다.
“그런,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전하! 잠시 소신의 말을 들어 보십….”
“천륜?”
“…….”
낮은 되물음에 홍의가 아아, 하며 고개를 저었다. 붉게 질린 홍의의 얼굴로 참았던 눈물이 주룩 흘렀다. 천천히 돌아본 태자가 폐허처럼 속삭였다.
“너는 내게 절대적인 사람이었어. 날 낳은 부모를 내 힘으로 바꿀 수 없고, 내가 태어난 이 나라를 외면할 수 없듯, 무엇으로도 훼손할 수 없고,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그런 존재.”
경계, 배신감, 분노. 자신을 보는 태자의 눈동자에 처음 보는 감정이 들끓고 있어, 홍의는 창자를 끄집어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헌데 넌, 그걸 사사로운 감상이라고 했지. 나와의 관계에조차 손실과 이익을 따져 가며 다른 이에게 나를 내주라고 말했어. 그것이 천륜이라고.”
“…전하, 제발.”
“목이 떨어져도 좋다고 했던가.”
“…….”
“너의 몸도 맘도 나의 것이라고, 그 죽도록 사랑스러운 입으로… 뻔뻔하고 끔찍하게.”
푸른 물빛이 허망하게 허공에 놓였다.
난생 처음으로 타인을 향해 품은 열기와, 그토록 사랑스럽고도 유치했던 다짐, 알량한 기대, 모든 것을 단숨에 배반당한 젊은 청년의 시린 회한이 창백한 실소로서 흘러나왔다.
“너.”
“…….”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홍의의 손에 천천히 힘이 빠졌다. 별안간 내실 문이 양쪽으로 열리며 화경과 병사들이 나타나 일사불란 태자를 둘러싸고 면사와 장유를 둘렀다.
태자는 홍의를 남겨 둔 채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멀어졌던 빗소리가 정수리로 쏟는 듯 세게 귀청을 때렸다. 뇌성과 벽력이 사납게 사위를 울렸다.
“…….”
강녕하시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실은, 강녕하시지 않았으면 하였다. 자신 없이도 잘 사는 태자는 보고 싶지 않았다.
홍의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태자가 나선 방향을 향하여 엎드리고는,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