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재생
완전히 망가져 죽어 버린 신지호의 몸에는 기억과 바스러진 영혼 파편이 끈질기게 머물러 있었다.
그 상태로 조심스럽게 이원의 손길로 옮겨지며, 지호는 수많은 것을 스쳐 지나가듯 보았다.
먼저, 대던전을 순조롭게 막아 내고 기뻐하는 사람들. 대던전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겠지만, 이전 같은 기세는 확실히 줄어들었다. 주기적인 토벌이 필요하겠지만 멸망에서는 확실히 멀어졌다.
세상은 대던전과 관리자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알게 되며 빠르게 개편되었다. 한데 뭉치지 못하던 헌터 협회들을 통일할 사람은 관리자인 신지호뿐이라는 데 많은 이들이 동의했다.
신지호의 이름은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 다만 2년 전과는 달리 좋은 의미로.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신지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계속해서 잠이 쏟아졌고, 몸이 무거웠다. 지호는 자신의 상태에 의문을 느끼면서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꾸벅꾸벅 졸았다. 깨어날 때마다 몸이 조금씩 가뿐해졌으나 여전히 수마가 그를 지배했다.
그러기를 몇 번, 이제 곧 더는 잠이 오지 않으리라 깨달았다. 그 생각과 함께 눈을 떴을 때…….
“…….”
불쑥, 누군가의 손이 지호를 붙잡았다. 크고 뜨거운 손. 굳이 누군지 확인하지 않아도 알아볼 수 있었다.
주이원이다.
“따뜻해…….”
한참 의식이 없어서 목소리가 갈라질 줄 알았는데 퍽 매끄럽게 흘러나왔다.
지호는 이원을 돌아보았다. 조금 수척해진 이원은 지호를 보고 미소 지었다.
“잘 잤어?”
“응.”
이원이 지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악!”
지호의 코를 아플 정도로 세게 비틀었다. 눈물이 맺힐 정도로 아팠다.
“뭐 하는 짓이야!”
지호의 항변에도 이원은 시큰둥했다.
“감각 이상 없음. 의식도 있고, 말도 제대로 하고. 이번에야말로 성공했군.”
“아니, 지금까지도 성공을 위한 발판이었습니다, 폐하! 제 일생일대의 역작을 만드는 지난한 과정이었을 뿐!”
주하은이 툭 튀어나와 열변을 토했다. 지호는 주하은의 말을 들으며 손가락을 가만히 움직여보았다.
멀쩡하게 잘 움직인다. 원래 몸과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대던전에서 몸까지 내어주며, 뒷일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늘 길드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흔하게 본 게 인조인간 아닌가. 실제로 인조인간의 몸에 옮겨질 뻔하기도 했고.
물론 지구의 기술로 몸을 만들어 옮겨야 했다면 지호도 고민해 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쪽에는 이플리스에서부터 천재 아이템 제작자였던 레일래이 애샤, 주하은이 있다. 그녀라면 인간과 다른 점 없는 육체를 만들어 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새 몸이라니. 거부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지호 님의 파장에 맞춰서 만들었으니, 처음에는 어색하더라도 금세 적응될 겁니다.”
주하은이 지호의 심정을 다 안다는 듯 설명을 덧붙였다. 지호가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무시무시한 이원의 시선이 느껴졌다. 지호는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리며 이원을 외면했다.
“신지호.”
“으, 응.”
박력 넘치는 이원의 부름에 지호가 움찔했다. 이원은 매서운 눈빛으로 지호를 노려보더니, 이내 한숨을 쉬었다.
“일단은 회복에 집중하자.”
“일단은…….”
“내가 할 말이 많거든.”
“…….”
그야 많겠지. 많을 수밖에.
계획도 말해 주지 않은 데다, 생각보다 손해가 너무 커서… 이원이 당장 화내지 않는 게 기적이었다. 하하, 어색하게 웃는 지호에게서 이원이 매서운 시선을 거두고 물러났다.
커플 사이에서 눈치 보던 주하은이 이때다 하고 잽싸게 지호에게 다가왔다.
“그럼 일단 점검 좀 해 볼게요. 제 최대의 역작…….”
“…….”
“……이 아니라 지호 님.”
지호를 무척 사랑스럽다는 듯이 보던 주하은이 잽싸게 말을 바꿨다. 그런 주하은의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있다. 어지간히 과로해서는 각성자인 그녀에게 피로가 티 나지 않을 텐데. 보나마나 이원이 구박하며 쪼아 댔을 것이다.
주하은은 흠흠, 괜히 헛기침을 하며 지호를 살폈다. 이원이 어찌나 살벌하게 노려보던지, 주하은은 손을 덜덜 떨며 지호를 재빠르게 살피고 뒤로 물러났다.
“아무 이상 없습니다. 혼이 완벽하지 않은지라 육체에 완벽하게 정착되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곧 괜찮아질 겁니다.”
“그래? 얼마나 걸리는데.”
“짧으면 반 년, 길면 1년 정도요. 완벽하게, 의 기준이라서 지금도 큰 충격을 받지 않는 한 지장은 없습니다.”
“…….”
무언가 생각하던 이원이 손을 까딱해 주하은을 불렀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뭔가를 속삭였다. 곧 주하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건… 큰 충격에 속하지 않으니까요, 괜찮을 겁니다. 정신적인 안정이… 중요합니다……. 육체적으로도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근데 그게 그렇게 무리한 일은 아니니까.”
“무슨 말이야?”
“그냥 네 상태 관련된 거. 아, 먹을 건 가리지 않아도 돼?”
“예에……. 아무거나 다 잘 드시고, 술도 상관없습니다. 모쪼록 편한 대로 하시고요. 혹시 모르니 일주일에 한 번 검진받으러 와 주세요.”
‘나중에는 혼자 오세요.’
지호의 몸을 여기저기 더 살펴보고 싶은지, 주하은이 이원에게 들리지 않게 간절하게 입술을 달싹였다. 그런 주하은의 눈에 연구를 향한 갈망… 광기에 좀 가까운 기색이 번들거린다.
저걸 보고 나니 정말 가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럼 이제 다른 분들을 부를까요?”
이내 주하은은 아무 일도 없었던 양 태연하게 화제를 바꿨다.
“다른 분들이라면…….”
“지호 님을 기다리고 있는 분들이죠.”
주하은이 씩 웃었다. 이원은 못마땅한 얼굴이었으나 고개를 끄덕였다.
주하은이 문 밖으로 총총 나갔다. 곧 문이 벌컥 열린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호의 사정을 아는 많은 이들이.
그들을 맞이하며, 지호는 정말 자신이 무사히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세상에 나쁜 헌터는 없다』 마침
에필로그
이상형은 어떤 사람인지?
- 주이원.
예전에 비슷한 인터뷰에서는 없다고 대답하지 않았나?
- 그때는 내가 아직 부끄러워서. (웃음)
지금은 부끄럽지 않은가?
- 이원이가 하는 것에 비하면 1할도 안 하는데 부끄럽진 않다.
하지만 너무 간단한 답변이다. 구체적으로 대답해 달라.
- 정말 주이원인데. 다른 사람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굳이 따지면 세계 랭킹 1위의 헌터가 좋다.
만약에 주이원 헌터가 랭킹 1위의 자리를 뺏기면 큰일 날 것 같다.
- 남에게 뺏길 일 없으니 괜찮다. (웃음) 나중에 싸울 일이 생기면 직접 한번 랭킹 1위 자리를 뺏어 보겠다. 내가 뺏는 게 인정될지는 모르겠지만.
주이원 헌터의 어떤 점이 좋은가?
- 그냥 다 좋은데? 하나하나 나열하기가 힘들다. 잘생긴 것도 좋고, 귀여운 점도 좋고, 질투가 많은 것도 좋고, 유능한 것도 좋고, 다 좋다.
돈은? 예전에 주이원 헌터가 돈 많은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한 적이 있다.
- 돈 많은 건 별로다. 나는 내가 해 주는 게 좋아서. 지금 동거하는 집은 이원이가 죄다 지은 거라, 신혼집은 내가 짓고 있다.
다시 한번 결혼 축하드린다. 결혼을 앞뒀는데 지금 기분은 어떤가?
메리지 블루라는 게 있다던데, 나는 그냥 좋다. 어차피 지금도 같이 살고 있어서 변하는 건 많지 않겠지만, 결혼해서 법적으로도 주이원을 내 거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좋다.
결혼까지 고난이 많을 줄 알았지만 순탄했다. 소감은?
- 이원이가 그 말 들으면 멱살 잡을 텐데. (웃음) 법적인 절차가 수월했지, 사실 그 외에는 어려운 일이 많았다. 이원이가 날 포기해 주지 않은 걸 감사한다. 덧붙여 빠르게 동성결혼 합법화를 진행해 준 정부에 감사한다. 시위하는 분들은 죄송할 뿐이다. 이미 무르기엔 늦었으니 이해해 달라.
헌터 스페이스
제목: 찐이랬잖아 내가
이정도로 찐인줄은 나도 몰랐지만
댓글
-1년전에 인터뷰할 때 비웃은 사람 나와
죄송합니다
-얘네처럼 요란하게 결혼하는 애들 첨봄
➥야 결혼식 중계방송 해도 시청률 50퍼는 찍을텐데 이정도면 소박하지
➥➥정보 너무 없다고ㅠㅠㅠㅠㅠ
➥세기의 결혼인데??
➥➥ㄹㅇ 얘네만큼 결혼이 핫한 커플 찾으려면 역사 단위로 가야됨
-신지호 눈빛 봐라 주이원 곧 임신할 듯
➥임신은 지호가 하겠지
➥➥그게 중요하냐?
➥➥➥뭘 상상하든 이미 그들이 이뤄서 내가 망상할 수 있는 영역은 여기까지밖에 안남음(웃음)
☆
★
절
대
공
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