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멸망(9)
머리가 잘린 순간 숨은 끊어졌다. 원래 육체를 지닌 존재가 아닌 만큼, 녹스의 존재 자체는 남아 있을지 모르겠지만 망령에 불과할 뿐. 더 이상 대화하는 건 불가능해졌다.
지호가 어딨는지 확인하고 죽여야지!
“저게 알려 줄 것 같아? 빨리 움직이기나 해.”
펄쩍 뛰는 서리에게 이원이 코웃음 쳤다. 하지만 가벼운 이원의 태도와 달리 서리는 바르르 떨고 있었다.
하지만 지호 기운이 안 느껴진단 말이야…….
“…….”
지, 지호 또 죽는 거야?
이원은 서리를 노려보았다. 힘줄 돋은 손이 피가 나도록 주먹을 쥔다. 이원은 숨을 훅 들이키며 서리에게서 몸을 돌렸다.
“닥쳐.”
미안해…….
서리가 귀를 눕힌 채 꼬리를 축 늘어트렸다. 이원은 그 꼴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사실 지호의 죽음을 가장 의심하는 건 자신이었다.
사실, [이플리스의 수호]가 조금 전부터 제멋대로 연결이 끊겨 있었다.
그 스킬만 있으면 이원이 지호의 죽음을 대신 받아줄 수 있다. 하지만 지호가 일방적으로 끊어 버린 건… 분명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뜻이겠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지 않다. 모르고 싶었으나 동시에 지호에 관한 일에서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지호를 찾기 전에 속단할 필요는 없다. 이원은 괜찮으리라 생각하려 애썼다.
“됐으니까 지호나 찾아봐. 중심부로 갔을 테니까.”
아, 중앙은 저쪽일 거야. 녹스가 계속 쳐다봤거든.
“쓸모가 아예 없진 않았군.”
이원은 처참하게 날아간 손경현의 머리를 밟고 서리를 들었다. 그리고 순간 이동에 가까운 속도로 중앙을 향했다.
대던전의 중심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주변은 밤처럼 어두워졌다. 게다가 저 멀리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우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조금 더 다가가니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밤처럼 어두운 그것은 수십 또는 수백만의 망령이었다. 그것들은 분노에 휩싸인 채…….
─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서로 자신의 고통이 가장 괴롭다는 듯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망령이지만 실체를 지닌 거대한 덩어리였다.
이원은 [클라우 솔라스]를 꺼내 공격을 날렸다. 그러나 공격은 아무렇지 않게 흐트러졌다.
이거… 뭐야?
서리가 털을 바짝 세운 채 경계했다. 이원은 혀를 차며 서리를 내려놓았다.
“넌 물러나.”
뭐? 나도……!
“이 안은 내가 살펴볼 테니까, 너는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지호를 찾아.”
주변을 돈다고 과연 지호가 있을까. 왜 이것들이 비명을 지르는진 모르겠지만, 분명 신지호가 뭔가 한 거다. 가장 위험한 곳으로 뛰어들길 망설이지 않는 녀석이니, 분명 이 안에.
서리는 고민하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바퀴만 둘러보고 따라갈게.
“너까지 따라오지 마. 만에 하나를 대비해야지.”
그게 뭔데…….
만에 하나의 가정 따위는 상상도하기 싫다는 듯 서리가 울상을 지었다.
* * *
이원과 서리가 망령이 자리한 곳에 도착하기 조금 전.
지호는 정신을 집중했다. 자신이 장담했던 대로 리크레스의 망령을 이곳에 묶어두기 위해 시스템을 조작했다.
시스템으로 대던전 자체를 완벽한 제어하에 두면 좋겠지만… 멸망의 대적자도 아니고, 그 정도는 불가능했다. 다만 해커가 바이러스를 심듯 더 이상 이동할 수 없도록 마비시키는 정도는 지호도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만한 대가를 바쳐야겠지만 말이다.
순간 밤처럼 어두운 주변이 낮처럼 밝아졌다. 중심에 있는 지호가 마력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었다. 빛은 어둠을 몰아낸다. 그리고 몰아낸 만큼 저들의 힘이 뻣뻣하게 굳어 멈춘다.
저들을 모두 멈추면 성공.
물론, 리크레스가 지호를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환하게 비춘 빛은 압도적인 어둠 앞에서 꺼져가는 촛불처럼 힘을 잃었다.
수많은 망령이 새카만 벌레처럼 지호에게 일제히 모여들었다. 집중하느라 움직일 수 없는 지호를 망령이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했다.
“윽…….”
생살이 뜯어먹히는 고통.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 했으나 지호는 이를 악물며 버텼다. 어찌나 세게 힘을 줬던지 입 안의 살이 너덜너덜하게 떨어졌다.
리크레스가 속삭였다.
─ 발악해도 소용없어.
─ 차라리 포기하는 게 빠르지 않겠니?
지호는 목소리를 무시했다. 그러나 망령이 몸을 갉아먹을 때마다 조금씩 새카맣게 변하는 제 몸은 무시하기 어려웠다.
새카맣게 변한 곳에는 감각이 아닌 끔찍한 통증이 대신했다. 몸이 조각조각 나 떨어져 나간 것처럼. 지호는 변한 부분이 영영 쓸 수 없도록 변했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다.
─ 편해지는 길을 택하렴.
─ 어리석은 놈. 어리석은 놈!
망령들의 아우성이 일제히 지호를 비난한다. 저런 놈들의 말 따위에 신경 쓸 가치는 없었다. 이곳에서 지호에게 와닿을 목소리는 이원이나 서리의 목소리뿐이었으니.
그들을 만나면 괜찮다고 속삭이고 안아 주고 싶다.
지호는 그게 불가능해졌음을 알았다.
‘멸망의 대적자’가 포기하지 말라고 응원합니다.
‘포기는 안 해.’
그래도 몸 정도는 내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지호는 끝없이 갉아 먹히는 걸 느끼며 계속해서 마력을 풀어냈다.
그러는 사이 지호의 몸 대부분이 검은 빛으로 변했다. 이제는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없었다. 고통조차도 사라졌다.
지호는 끔찍한 상황에 환희했다. 이건 처음부터 계획한 바였으므로.
사방에 가득한 어둠을 없앨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사실, 그들이 제 몸을 차지하는 건 오히려 원하는 바였다. 내부로 들어와야만 조금 더 효율적으로 저것들을 묶어둘 수 있을 테니까.
모래시계를 뒤집듯, 지금까지 리크레스에게 유리하던 흐름이 한순간에 뒤바뀌었다.
─ 아, 아아아아!
지호의 몸은 매개다. 저들을 이곳에 영원히 묶어둘. 의기양양하게 몸을 차지하려 들던 리크레스가 물러나려 했으나 때는 늦었다. 지호에게 닿아있던 부분부터 조금씩 망령이 얼어붙는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진 마력만으로는 힘이 부족했다. 지호는 쓸 수 있는 건 모두 끌어다가 힘을 썼다. 이미 제것이 아니게 된 육체와 마력만으로는 부족했다.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뭐든, 조금만 더…….
“…….”
의식이 점점 아득해진다. 문득, 지호는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졌다. 자기 자신조차 놓아버리며 힘을 썼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뭘 하고 있었더라.
왜 하고 있었더라.
그만둬도 괜찮지 않을까?
길을 잃자 모든 것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갈팡질팡 흔들리던 때였다.
‘신지호.’
자신을 찾는 목소리가 들린 것은.
‘지호야!’
평소의 침착함은 완전히 잃어버린 채 애가 타는 목소리. 분명 수도 없이 들어본 목소리인데 뭔가 낯설었다. 화를 내고 있기 때문일까…….
주이원.
맞아, 그래. 세상을 지키려고 했었다. 주이원이 피비린내 풍기는 길을 벗어나 행복하기를 원했다.
작은 깨달음이었으나 그걸로 충분했다. 지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갈아넣어 마지막으로 리크레스를 몰아붙였다.
─ 네놈, 네 이 놈…….
─ 죽어. 죽어!
상대가 발악할수록 모든 게 끝났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진다. 지호는 이원의 목소리를 상기하면서 모든 힘을 발산했다. 그와 함께, 점점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지는 걸 느꼈다.
‘미안해.’
지호에게 붙들린 채 잠잠해지는 리크레스처럼, 지호의 의식 또한 점점 응고되어 가라앉았다. 이걸로 리크레스를 봉인해 붙잡아둔다는 계획은 절반 성공했다.
남은 건 돌아가는 것 뿐인데…….
‘이원아.’
생각이 토막토막 끊긴다. 지호는 이원을 잊지 않기 위해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고장난 기계에서 반복음이 나오는 것처럼, 지호의 사고는 같은 곳에서 맴돌았다.
주이원.
이원아.
미안해.
미안…….
……그때, 저 멀리서 이원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 *
이원은 뚜벅뚜벅 망령들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다.
“윽…….”
의외로 그것들의 무리에 섞이자 비명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죽음과도 같은 고요가 이원의 발목을 잡았다.
평범한 어린애였을 적, 갯벌을 가로지를 때처럼 힘들다. 또는 시체를 밟고 지나갈 때만큼 역겹다.
이원은 아무런 스킬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 보니 바깥의 비명은 그저 최후의 발악이었을 뿐이다. 이 안쪽은 완전히 활동을 멈췄다.
이원은 그게 더 불안했다. 지호가 뭔가를 하고 난 결과물일까 봐. 지호가 멋대로 뭔가를 해 버리고, 이제, 이제는…….
“신지호!”
이원은 불길한 망상을 떨쳐내려는 듯 고개를 마구 저었다.
이곳에 지호가 있어선 안 된다. 스킬조차 쓸 수 없는 숨 막히는 곳은 지호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지호는 분명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약할 때도 늘 아무렇지 않게 위험에 몸을 던졌으니까.
제자리에 멈춰선 것들이 이원의 발목을 잡는다. 이원은 힘겹게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이를 악물었다.
“신지호, 어서 나와. 죽여 버리기 전에.”
이원은 이를 악물었다. 정말 죽여 버리고 싶다. 걱정으로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와중에, 차라리 이렇게 될 거라면 같이 죽어 버리는 게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약속을 어기면…….”
몇 번이나 제 몸을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희망과 정반대의 상상이 이어져, 입 안이 바싹 마른다.
아니, 지호가 그런 선택을 했을 리 없다. 이원을 남겨두고 홀랑 죽어 버릴 만큼, 그렇게 책임감이 없는 애는 아니다. 고백까지 해 놓고, 감히 자신을 두고 죽었을 리가…….
“아니, 아냐. 네가 그럴 리 없어…….”
지호의 죽음이 두렵다. 그리고 이원은 아무렇지 않게 버려둔 채 죽음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면 죽고 싶었다.
“신지호, 제발.”
그때.
툭, 하얀 손이 이원의 뺨으로 떨어졌다. 이원은 눈을 깜박이며 손을 확인했다. 머리 위에 가득 찬 검은 망령들 사이에서 오로지 손만이 하얀색이었다.
반쯤 투명해진 그 손의 왼손 약지에는 눈에 익은 반지가 끼워져 있다.
이건 지호의 손이다.
“……지호야?”
흰 손은 몹시 차가웠고, 형편없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원은 허겁지겁 손을 잡아당겼다. 저 역겨운 무리로부터 지호를 빼내기 위해서.
그러나 지호의 손은 그 안에서 단단히 고정된 채 빠지지 않았다. 더 잡아당기면 조금 나온 팔이 찢어지고 영영 잃게 될까 두려워, 이원은 손을 깍지 껴 맞잡은 채 안절부절못했다.
그때,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원의 청력으로도 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라, 이원은 제 심장 뛰는 소리마저 원망하며 귀를 기울였다.
목소리는 팔과 이어진 안쪽에서 희미하게 울렸다.
─ 미안해…….
그건 분명, 지호의 목소리였다.
“신지호!”
─ 자신, 있었는데. 조금 모자랐어. 힘이. 모두 줬어. 다 줘 버렸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어. 내가. 얼마 남았지. 몰라. 하지만…….
“지호야.”
말의 앞뒤를 신경 쓰지 않고 중얼거리는 지호의 손을 이원이 붙들었다. 아직 완전히 실체화되지 않아 힘없이 흔들거리던 손에 아주 조금 힘이 들어간다.
─ 네가, 찾아 줄 줄… 알았어…….
아무에게나 말하던 때와 달리, 이원을 향한 또렷한 목소리.
이원은 왜 이딴 꼴이 되었느냐고 지호에게 소리치며 울고 싶었다.
─ 울지 마…….
눈물이 흘러 후드득 아래로 떨어지자, 지호가 이원을 위로했다.
─ 미안해. 막을 방법이 이것뿐이었어. 그래서 줘 버렸어. 줄 수 있는 건 모두…….
몸도, 마력도, 가진 힘 전부, 목숨조차. 심지어 영혼조차 상당 부분 뜯어 먹혔다.
─ 모두 줘 버리고, 나는 조금만 남았어.
뜯어 먹히며, 간신히 막아 내며. 천천히 이성이 사라졌고, 모든 것을 잃었다.
덕분에 지호는 계획에서 성공했다. 대던전은 저 스스로 움직일 동력을 잃고 서서히 침묵했다.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해도, 전부를 바친 덕에 멈추는 건 가능했다.
상대에게 넘겨주지 않은 건 그에게서 가장 소중한 기억뿐. 버릴 생각도 없고, 영혼 깊은 곳에 각인되듯 새겨진 기억은 일부나마 지호의 의식을 붙든 동력이었다.
─ 있지, 미안해.
“…….”
─ 나를 준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어렵더라. 그래도 남은 건 줄게.
남은 게 없는 몸으로 지호가 말했다. 이원은 눈물 젖은 얼굴로 지호의 손을 노려보았다.
“무슨, 씨발.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다 준다며, 신지호. 이 개새끼야…….”
이원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희미하게 남은 여유조차 없다.
─ 초라한 나는 싫어?
“싫지, 그럼 좋겠어? 그냥 돌아오자마자 죽였어야 했어. 그걸 못해서 내가, 지금…….”
이원의 목소리가 갈수록 힘없이 떨렸다. 독기는 사라지고 금새 맥이 탁 풀렸다. 어차피 시간을 돌린다고 해도, 지호를 죽이진 못할 자신을 알았기에.
이원은 분을 꾹 눌러 참았다. 화가 나지만… 이런 답답한 면까지 신지호였고, 이원은 지호의 전부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어쩌겠어, 내 호구 새끼는 내가 책임져야지.”
이원이 지호를 꽉 붙들었다. 새하얀 손은 조금 더 실체를 갖추었다. 하늘에 붕 떠올랐던 지호를 이원이 조금씩 바닥에 내려놓는다.
“초라하지 않아. 아주 작은 조각이라도 괜찮아.”
이 다정함을 생각하며 버틴 거야. 지호는 작게 읊조렸다.
그때 툭, 거짓말처럼 신지호의 몸이 아래로 떨어졌다. 지호의 몸은 여기저기 마치 탄 것처럼 변한 채, 투명했다. 멀쩡하게 남은 부분은 정말 거의 없었다.
지호가 초점 없는 눈으로 이원을 바라보다가 서서히 눈을 감았다.
“넌 언제나 내게 가장 빛나는 별이었어.”
설령 모든 걸 잃어버리고, 만약 죽어 버린다고 해도. 지호는 늘 주이원의 삶의 이정표였다.
이원은 완전히 망가진 지호를 소중하게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