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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주이원(2) (271/283)
  • 42. 주이원(2)

    전생의 주이원은 한참동안이나 지호를 붙들고 울었다. 소리조차 내지 않고 우는 남자는 하필이면 이원과 똑같이 생기는 바람에 몹시 안쓰러웠다. 지호는 연신 남자의 등을 쓰다듬으며 그를 위로했다.

    머릿속으로 주이원이 ‘자기, 나랑 바람피우는 거야?’라고 음산하게 속삭이는 건 무시했다. 굳이 따지고 보면 당사자도 아니고… 주이원을 몹시 닮은 형 정도로 느껴졌으니까.

    조용히 울던 남자가 입술을 달싹였다.

    “아인…….”

    “네?”

    “…….”

    남자는 대답 대신 아예 지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뒷모습에서조차 남자의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지호는 더 묻지 못한 채 다시 남자의 등을 두드렸다.

    남자는 한참이 지나서야 눈물을 그쳤다. 잔뜩 운 남자는 부끄럽지도 않은지 젖은 뺨 그대로 지호를 응시했다.

    “다친 건 괜찮아요?”

    “난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그보다 아까는 뭐였어?”

    아까? 남자의 말이 뭔지 생각하며 지호는 상처를 확인했다. 분명 피가 나고 살이 뜯겼는데 다쳤던 흔적 하나 없이 매끈했다.

    기이한 회복력이긴 한데… 뭐, 이쪽의 ‘주이원’도 평범한 인간은 아닐 테니까.

    천천히 손을 놓으며 지호는 남자가 속삭였던 단어를 떠올렸다.

    “어, 이름 같은 게… 또렷이 들렸거든요.”

    “…….”

    “혹시 제 전생, 이름이 아인이에요?”

    “……맞아.”

    알아들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남자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다가 이내 남자의 눈이 묘한 빛으로 반짝인다.

    하필이면 주이원과 닮아도 너무 닮은 탓에 지호는 남자의 저 눈빛이 뭘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딱, 이원이 뭔가 사고 칠 때의 눈빛이다.

    “저기요…….”

    “응?”

    “원래대로 돌려보내 주는 거 맞죠?”

    영 못 미덥고 미심쩍은 상대를 지호가 훑어보았다. 남자는 억울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안 돌려보내 주면 뭐, 내가 널 해치기라도 할까 봐?”

    “그게… 이원이가 전적이 있거든요?”

    지호가 무리할 때, 다짜고짜 이플리스로 납치하지 않았나. 게다가 거기서는 지호를 돌려보내지 않으려고도 했었지…….

    그런 사정을 지호가 설명하자, 남자는 큰 소리로 웃어젖혔다. 조금 전까지 울던 게 무색하게도 바닥까지 치면서 웃는다. 한참 뒤에야 남자는 다른 의미로 흘린 눈물을 닦으며 몸을 일으켰다.

    “과연, 내가 할 만한 짓이긴 한데…….”

    “…….”

    “아깝네, 나도 시도라도 해 볼걸 그랬나. 괜히 내숭떠느라.”

    불온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 이어졌다. 한참을 우는 것처럼 웃던 남자는 지호를 돌아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 ■■■.”

    그 말은 이전처럼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지호는 남자가 말한 게 뭔지 알 수 있었다.

    “그건 당신 이름이에요?”

    “맞아, 내 풀네임. 이건 안 들려?”

    “네.”

    남자가 거보란 듯 혀를 찼다.

    “봐. 이름도 못 알아듣는 너는 어차피 아인의 환생일 뿐이지, 내 아인이 아니잖아. 아인이라면 내 이름은 한 번에 알아들어.”

    묘하게 힐난 어린 어조에 지호는 입술을 비죽였다. 저런 식으로 나온다면 이쪽이야말로 할 말이 많았다.

    “그러는 그쪽이야말로 주이원이 아니니까요. 이원이 아닌 타인은 전혀 믿음직하진 않지만, 일단 믿어는 드릴게요.”

    닮은 건 외모뿐. 같은 사람이 아니다. 남자도 지호도 그 사실을 사무치도록 잘 알았다.

    “하하. 뭐, 그렇지.”

    남자가 어깨를 으쓱이며 동의했다. 그러더니 시계를 확인했다. 이곳 시간으로도 이미 새벽 깊은 시간이었다. 어스름하게 밖이 밝아 올 만큼, 자기엔 늦은 시간.

    남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지호를 붙잡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이불을 덮어 주며 토닥였다.

    “일단 자자.”

    “아니, 잠깐만요.”

    누가 같이 잔다고 했나? 기겁하며 일어나려는데 남자가 지호를 다시 붙잡아 눕혔다.

    “몸은 아인이잖아……. 이상한 짓은 절대 안 할 테니까.”

    덧붙인 말이 더 수상쩍다.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바닥을 펴 지호의 얼굴을 가렸다. 지호가 후다닥 뒤로 물러나자, 남자는 깊이 한숨 쉬었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 내가 아인을 두고 바람을 피울 것 같아?”

    “……아니요.”

    남자에 관해 잘은 모르지만, 남자가 주이원의 전생이라면. 연인을 따라 희박한 확률에 모든 걸 걸었다는 주이원이라면 그럴 리 없다.

    당장 지호가 아는 이원 또한, 지호와 한없이 닮은 그의 전생… 아인이 눈앞에 나타난다고 해도 그를 지호의 대체품으로 삼진 않을 테니까.

    “……그냥. 얼굴이라도 확인하고 싶어서 그래.”

    지호의 기색이 누그러지며 약해지자, 남자는 지호의 손을 가볍게 토닥였다. 사심은 전혀 느낄 수 없는 담백한 손길이었다.

    “아인의 동생쯤으로 생각할게.”

    하긴. 태연한 척 굴고 있지만, 그는 오늘 연인을 잃은 남자였다. 결국 지호는 남자에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세요.”

    “응.”

    남자가 꺼질 듯 작게 속삭였다. 그리고 이내 스르르 눈을 감았다. 전원이라도 끈 것처럼 빠르게 잠들었다.

    “후우…….”

    반면에 지호는 좀처럼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아인을 잃고 제 가슴을 후벼 파던 남자의 모습이 남 같지 않아서. 아마 지호가 죽게 된다면 이원도 분명 같은 꼴이겠지.

    ‘빨리 돌아가야지…….’

    다행히 남자가 돌려보내 준다고 하는 말이 이원보다 신빙성이 높으니까.

    지호는 남자의 얼굴을 응시했다. 사무치도록 이원이 보고 싶었다. 진짜 이원의 얼굴. 지호를 볼 때 변하는 그 표정과 다정한 목소리.

    주이원을 그리며 지호는 어느새 스르르 잠들었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지호는 눈을 떴다. 근래 푹 자고 일어난 적이 없는데. 전신의 세포가 다시 깨어난 듯 상쾌한 아침이었다.

    아니, 아침보다는 점심일까. 커튼을 연 지호는 넓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해가 머리 위 가까이 떠오른 걸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기척도 없이 문이 열렸다.

    “일어났으면 씻고 밥 먹어.”

    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씻고 곧장 밖으로 나가니, 식탁 위에 제법 맛있어 보이는 요리가 가득 차 있었다. 아침으로 먹기는 다소 무거운 음식들이었지만 지호는 지적하는 대신 자리에 앉았다.

    “당신이 한 거예요?”

    “뭐? 난 요리할 줄 몰라.”

    당연히 했을 줄 알았는데. 지호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한심하단 듯 중얼거렸다.

    “주이원은 했는데.”

    “까불지 마, 아인 동생.”

    남자의 호칭에 지호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먹어 본 음식은 생각보다 간도 세지 않고 부담 없이 들어갔다.

    부지런히 먹은 지호가 그릇을 거의 다 비운 걸 확인한 남자가 허공에 창을 하나 띄웠다.

    그건 어제 있던 살인사건에 대해 보도하는 뉴스였다. 단순한 사건사고인 줄 알고 지켜보던 지호는 익숙한 장면의 묘사에 소름이 돋았다.

    피해자는 어제 아인을 습격한 자였다.

    “걱정하지 마, 흔적은 지웠어.”

    “…….”

    “일단 알고 있으라고.”

    연관되어 있으니 알고 있긴 해야겠지만… 지호는 한숨을 쉬었다. 그다지 알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입맛이 떨어져 지호는 식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진작 묻고 싶었던 것을 질문했다.

    “그런데 아인은 왜 습격당한 거예요? 원한 관계인가요?”

    “아니.”

    “그럼요?”

    “아인이 인기가 많아서.”

    예상 못 한 대답에 지호의 입이 벌어졌다. 남자가 기대도 안 했단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진짜야. 넌 이해 못하겠지만.”

    누굴 바보 취급하나? 발끈한 지호는 남자를 쏘아보았다. 다른 사람인 줄 알면서도 이원을 닮은 얼굴로 저러니, 이원이 가끔 약 올릴 때가 생각나서 무척 얄미웠다.

    “대충 이해는 하는데요.”

    저 사고방식을 마음 깊이 이해하진 못해도 어떤 원리인지는 안다.

    지호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남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턱을 까딱였다.

    “이해하면 말해 봐.”

    난데없는 명령에 시험이라도 치르는 기분이었다. 지호는 생각을 고르고 신중하게 대답했다.

    “인기가 많았다면 그걸 보는 타인의 열등감이 깊을 수도 있죠. 그, 아인의 아버지는 유명인이고 하니 더더욱… 비교하는 사람도 있었을 테고요. 의외로 별거 아닌 이유로 남을 해치는 경우도 많고…….”

    “……환생이 더 낫네, 이런 점은.”

    남자는 입을 열다 말고 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아인이 생각나 울컥 감정이 치받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울음을 참아 낸 남자는 낮게 잠긴 목소리로 답했다.

    “아인은 절대 이해 못 했어. 모두 사이좋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

    “…….”

    그건, 아무리 지호라도 이해가 안 되는 호구다. 하지만 고작 어제 죽은, 남자의 연인을 헐뜯는 대신 말을 돌렸다.

    “여기의 그… 아인은 뭘 하던 사람이에요?”

    아무런 일면식이나 원한도 없는데 죽이러 올 정도면 대단한 유명인이었으리라. 남자는 지호의 질문을 듣고 마치 똥이라도 씹은 것처럼 인상을 구겼다. 한참 후에야 남자가 못마땅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이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었다. 아이돌이라니. 뭔가 번역에 차질이라도 있는 걸까?

    “……아이돌이 뭔데요?”

    “몰라? 노래하고 춤추고 사람들한테 인기 끄는 거로 밥 벌어 먹는 직업이잖아.”

    “장난치지 말고요.”

    “진짠데?”

    남자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방 안 가득, 춤을 추고 노래하는 아인의 홀로그램 영상이 빼곡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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