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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녹스(1) (260/283)

40. 녹스(1)

양호진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지금, 꾸물거릴 여유는 없었다. 지호는 태주가 가져온 차에 탔다. 그러나 임승주는 차에 오르는 대신 몸을 숙여 상체만 빼꼼 넣은 채 말했다.

“저는 이곳에 남아 뒤처리를 하겠습니다.”

“승주 씨가 여기 남으려고요?”

뒤에서 대기하던 소리가 깜짝 놀랐다. 부길드장 중에 남는 쪽은 보통 허소리였으니까.

예전부터 임승주는 최전선에 나서고 싶어 하는 타입이다. 원래 지호와 노네임을 싫어하던 이유도 던전을 공략할 수 없고 상대적으로 쉬운 일만 도맡아 했기 때문 아닌가.

하지만 지금의 임승주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에 하나의 일이 발생했을 때, 협회 내에서 무기를 휘두를 수 없잖습니까. 예외 사항으로 적용해 줄지 모르겠지만… 안 그래도 노네임 길드에게 불리한 일이 많았으니 책잡힐 일은 하지 않는 게 낫습니다. 그리고…….”

“야, 언제까지 시간을 끌 거냐?”

막 맷을 차에 실은 강태주가 말을 끊었다. 동시에 진지한 분위기에도 찬물이 끼얹어졌다.

어차피 몇 마디면 끝날 텐데 기다려 주면 안 되나?

그런 의미를 담은 시선이 모였지만 강태주는 “왜, 뭐. 왜.”라며 뻔뻔하게 굴었다. 결국 강태주를 보며 한숨 쉰 임승주가 고개를 저었다.

“중요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나중에…….”

“야, 그렇다고 바로 입 닥치냐? 하던 말은 끝내라.”

“본인이 못 하게 해 놓고?”

“아니, ‘나중에 이 전투가 끝나고 나서 이야기하자…….’ 이거 딱 전형적인 사망 플래그 아니냐? 그러고 뒤지는 놈이 한둘이 아니란 말이지.”

“…….”

“그러니까 마저 해라. 넌 딱 그런 헛소리 하고 뒈질 상이야. 여기서 뒈진 놈 제일 많이 목격한 게 나니까 믿어라.”

“죽기는 누가 죽는다고.”

임승주가 노려보았으나 강태주는 꿋꿋했다. 한 번 말할 기회를 놓친 터라 임승주는 굉장히 뻘쭘해 보였지만, 이내 헛기침하며 그답지 않은 소심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거기서도 힘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저는 허소리를 믿으니까. 제가 남겠다는 겁니다.”

임승주는 빠르게 말을 맺고 몸을 돌렸다. 태연한 척 했지만 귓가가 새빨개져 있다.

허소리 역시 멋쩍은 듯 괜히 헛기침했다. 그리고 태주가 더 이상 구박하기 전에 잽싸게 차에 올랐다. 차를 출발시킨 강태주가 혀를 찼다.

“야, 너네 썸 타는 거 아니지?”

“……누가 썸을 타요?”

허소리가 진심으로 어처구니없다는 듯 받아치자, 강태주는 여전히 미심쩍은 듯 혀를 찼다.

“아니면 됐는데, 보통 다음에 고백해야지, 생각하고 헤어지면 죽는단 말이지…….”

“아니라니까요! 입 닥치고 운전이나 해요.”

“어이구, 무서워라.”

버럭 외치는 소리에게 능청을 떤 태주는 운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운전하면 안 된다’라고 주장하는 듯한 난폭운전을 말릴 수도 없어서, 소리는 애써 상황을 외면했다.

그 사이 지호는 단말기만 붙들고 있었다. 소리는 단말기에 시선을 던지지 않으려 애쓰면서 지호에게 물었다.

“주이원 씨한테 보내는 중이에요?”

“길드장님? 그쪽도 마찬가지야. 이 전투가 끝나면 고백한다고 하지 마라. 그러다 죽는다.”

“……강태주 씨야말로 이상한 미신에 그만 집착하세요. 일 얘기 했으니까.”

“미신이라니, 유서 깊은 전통 같은 거지.”

지호는 대답 대신 물끄러미 단말기를 응시하다가, 이번 일이 끝나면 할 말이 있다는 문장을 지웠다.

“…….”

이원에게서는 아무런 메시지가 없었다.

중요한 상황에서 이원이 자리를 비운 건… 레비아탄을 찾기 위함이었다. 황룡과 함께 찾고 있다지만 지구의 바다는 넓고, 레비아탄 역시 죽어간다 한들 여전히 바다의 패자다. 수색은 길어졌다.

별일은 없겠지. 사실 사건 사고는 지호 쪽에 일어날 확률이 높다. 이원은 무슨 일이 생기기도 어려운 녀석이니까.

지호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단말기를 닫았다.

태주의 난폭한 운전 덕에 헌터 협회에는 금방 도착했다.

노네임 길드 간부진의 행차에 협회는 뒤집혔고, 진범이랍시고 맷을 데려가자 한 번 더 뒤집혔다. 게다가 데려온 사람 중 하나가 사라진 허소리이니 더더욱 놀라 수밖에 없었다.

“도망친 게 아니에요. 조사실에서 갑자기 습격을 받아서 잠시 피해 있었어요.”

“그 변명을 믿으라는 겁니까?”

“네.”

“CCTV는 지워져 있었습니다.”

“제게 누명을 씌울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흔적은 안 남기겠죠, 일부러라도.”

“…….”

소리의 당당한 태도에 협회원은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허소리의 위치상 협회에서는 그녀를 홀대할 수 없었다. 게다가 맷도 용의선 상에 올라 있었으니.

결국 협회 쪽에서 먼저 두 손 들었다.

“잠시 하늘 길드장의 조사가 진행될 동안 허소리 헌터를 이쪽에서 보호해도 괜찮겠습니까?”

“네, 그렇게 해요. 대신 저 인간이 깨어날지도 모르니까 같은 공간에 있도록 해 주세요.”

“그건 저희가 부탁드려야 할 일입니다.”

소리가 지호와 눈짓하고 맷을 잡은 채 협회원과 함께 들어갔다. 협회 쪽에서는 여러 가지 의혹이 있는 지호도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지만, 어차피 제대로 된 증거도 없으니 순순히 인사만 하고 물러났다.

신지호와 강태주, 둘만 남은 자리.

“야, 나 잠깐 화장실 좀.”

“네. 그럼 전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차에서 미리 말해 둔 계획대로 태주는 지호와 떨어져 따로 호진을 수색할 예정이었다. 지호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며, 호진의 위치가 파악되는 대로 태주에게 전달해 주기로 했고.

지호는 로비로 향했다. 그리고 막 계단을 내려가던 때였다.

“…….”

이상한 감각이 지호의 전신을 휘감았다. 동시에 이 공간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위화감.

지호는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분명 백색이어야 할 천장은 희미한 흑색으로 물든 채, 은은히 일렁이고 있었다.

감쪽같은 솜씨로 지금까지 있던 곳과 공간이 분리되었다. 사방에서 인기척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동시에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진다. 이대로라면 분명 의식을 잃을 게 분명했다.

지호는 이를 악문 채 인벤토리에서 단검을 꺼내 자신의 허벅지를 찍었다.

“큭…….”

허벅지에서 피가 튀며 화끈한 통증이 일었다. 대신 흐릿해져 가던 정신은 번쩍 들었다.

그러나 미처 다 지우지 못한 환청이 울렸다.

─ 지호야, 너는 나중에 이 별을 지키게 될 거야.

오래된 기억의 한 조각을 끄집어낸 환청.

─ 지호야.

목소리가 속삭이는 것과 동시에 잠겨 있던 지호의 기억은 하나하나 수면 위로 올라왔다.

─ 지호가 너무 좋아.

─ 너는 이 별을 위해 태어났어.

─ 네가 모두를 지키는 거야.

─ 그리고 나는, 그런 너를 위해 태어났어.

─ 우리는 늘 함께야.

마구잡이로 뒤섞인 목소리는 무척 다정했다. 게다가 익숙했다. 지금까지 잊고 있던 게 이상하게 느껴질 만큼… 따스한 목소리는 몹시 그리웠고 또 아름다웠다.

하지만 기억 속 목소리는 조금씩 변한다.

─ 지호야……. 저건 느낌이 좋지 않아, 멀리하는 게 나아.

─ 지호야, 응? 네게 안 좋아.

무척 불안해하며 걱정하는 목소리. 지호에게 목소리는 제 쌍둥이와 같은 존재였다. 평소라면 귀 기울여 들었겠지만 지호는 그때만큼은 그를 무시했다.

그가 ‘느낌이 좋지 않다’라고 말한 건 주이원이었다.

목소리의 말대로 이원은 위험한 존재이리라고 희미하게 짐작하면서도… 그렇게 이원에게 힘을 퍼 줬다.

─ 안 돼!

신지호의 의지였으나, 차기 관리자로서는 해서 안 될 일이었다.

그 일로 관리자의 거대한 힘을 담고 있던 지호의 그릇은 깨졌다. ‘그’를 똑바로 담고 있을 수 없을 만큼 큰 손상이 갔다. 그리고 깨진 그릇은… 지호에게 소중하고 또 중요한 존재마저 담지 못하고 놓치게 되었다.

그렇게 지호의 반쪽이나 다름없던 존재는 사라졌다. 지호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으…….”

기억의 조각이 모여 어린 날의 추억을 완성했다.

그리움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몰려든 파도가 지호의 눈을 촉촉하게 적신다. 속눈썹에 엉겨 붙었던 눈물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녹스가 그때 분리된 제 반쪽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전까지 그 사실은 지호에게 하나의 정보였을 뿐.

모든 것을 떠올린 순간, 지호가 상대에게 지닌 그리움과 친숙함은 고작 단어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함께 해온 존재.

원래대로라면 지호의 평생을 함께해 왔을 이.

그리움의 대상은 서리이자… ‘그’의 조각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녹스였다.

“왜 자해를 하고 그래.”

안타까운 목소리가 익숙하다. 기억 속의 목소리와는 다르지만… 지금까지 지호가 현실에서 몇 번이나 들어본 목소리였기 때문에.

생리적인 거부감과 그리움이 함께 섞여 지호를 어질어질하게 만들었다. 지호는 피가 흐르는 허벅지를 붙잡은 채 고개를 들었다.

“녹스…….”

“지호야.”

상대가 미소 짓는다. 뭇 사람들을 사랑하게 했던, 동시에 자신의 어둠을 가리려고 애를 쓰던 아름다운 미소였다.

“……허수혁.”

지호는 상대를, 눈앞에 뜬 창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status

이름 녹스

직업 현상수배범

등급 EX

칭호 시스템 관리 대행자

체력 9999

마력 9999

근력 9999

민첩 9999

스킬 관리자(EX), 시스템 조작(EX), 빙의(EX)

수호신 ‘테네브’와 계약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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