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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반격(5) (258/283)
  • 39. 반격(5)

    자리에 앉아 있던 지호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자.”

    “네?”

    “맷, 그 새끼 잡으러.”

    “네?”

    너무 뜬금없이 튀어나온 말에 눈만 동그랗게 뜬 소리를 지호가 재촉했다.

    “위치 알아냈어요. 빨리!”

    “대체 어떻게…….”

    “가요!”

    이유를 물으려던 임승주가 허소리의 외침에 머쓱하게 물러났다. 지호는 문 밖으로 나가려는 승주를 붙잡았다. 그리고 창문 쪽을 힐끗 눈짓했다.

    “……저기로 나가자는 겁니까?”

    “할 수 있어요. 일단 얼굴 좀 가리고.”

    맷을 놓치지 않으려면 한시가 급했다. 아마 이곳 창이 나갈 수 있을 만큼 넓게 난 건 여차할 때 뛰어내리라는 주이원의 배려가 아닐까?

    주이원이 들었다면 절대 아니라며 땅을 칠 생각을 태연하게 하며, 지호는 두 사람을 재촉했다.

    [별의 축언.]

    몸에 차오르는 힘이 백 마디 말보다 확실한 재촉이 되었다. 지호는 인식 방해 마법이 걸린 아이템을 사용했다. 잠깐이지만 저기 모인 인파가 세 사람을 인식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물론, 이만한 효과를 내는 건 지호가 아이템에 쓴 [별의 축언]이 이끌어 낸 결과였다.

    소리는 추가로 마법이 걸린 모자까지 푹 눌러썼다. 그리고 지호의 오금 사이에 팔을 끼우고 다른 한 팔은 등에 받친 채 가볍게 안아들었다.

    “실례하겠습니다.”

    각성자인 소리에게 부담될 무게는 아니지만 겉보기에는 좀 그랬다. 무슨 벌칙이라도 수행 중인 것 같고……. 임승주가 한발 늦게 나섰다.

    “내가…….”

    “승주 씨가 하면 청람 길드장님이 질투해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내려가요.”

    “넵.”

    소리가 씩 웃고는 창문 아래로 뛰어내렸다. 고층 빌딩에서의 낙하는 심장이 멎을 만큼 짜릿했으나, 강화된 육체는 충격을 너끈히 버텨 냈다.

    바닥에 가까워지기 전, 소리는 바닥을 향해 스킬을 써서 낙하 속도를 줄였다. 최소한 충격을 줄였으나 쿵, 소리를 내며 착지했다. 주변에서 시선이 쏟아졌다. 다행히 스킬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이내 시선이 흩어졌다.

    “이쪽!”

    주변을 자세히 살필 틈 없이 지호는 곧장 골목 안쪽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사람이 한둘쯤 있을 골목에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지호가 달려간 그 끝에는 정말로 맷이 서 있었다. 지호가 달려온 곳으로 향하다 멈춘 듯, 상당히 놀란 기색으로.

    “이 개새끼.”

    허소리의 욕설에 맷이 어깨를 으쓱였다. 소리는 자신을 살인범으로 누명을 씌운 남자를 당장이라도 때려 부수고 싶어 주먹을 꽉 쥐었다.

    지호는 소리의 어깨를 붙잡아 말렸다. 그리고 곧장 주변에 결계를 설치했다.

    이 또한 [별의 축언]으로 강화한 일회성 아이템이다. 순식간에 결계에 갇힌 맷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대놓고 소란을 피울 작정이었겠지?”

    어떻게든 소란을 피워서 이목을 끌고, 그 틈에 일을 벌이려는 수작이었으리라. 맷이 순순히 긍정했다.

    “그래, 내가 여기있는 건 대체 어떻게 안 거야?”

    “다 방법이 있지.”

    지호는 분한 기색이 서린 맷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맷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면 맷은 녹스가 시스템을 사용하는 원리를 모르는 거다.

    지호가 맷의 위치를 알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이 바로 시스템이 지닌 능력 중 하나였다.

    엄연히 말해 이 시스템으로 모두를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각성자가 시스템을 사용하는 순간을 포착해 위치를 추적할 수 있었다.

    녹스가 신출귀몰할 수밖에 없었다. 시스템창이 공개된 이후 모든 게 시스템을 거치게 되었으니. 심지어 포션 하나를 꺼낼 때도 인벤토리 시스템을 썼다.

    편리하다고만 생각했던 기능이 결국 녹스의 추적을 불러왔다. 하지만 여기까지 예상 못한 걸 판단 실수라고는 할 수 없었다.

    ‘관리자가 거기까지는 확인 못 해.’

    이미 이플리스에서 천 년간 관리자로서 살아온 이원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관리자는 제공된 시스템을 활용할 뿐, 시스템을 완전히 지배하는 자가 아니다.

    녹스는 명백히 제가 가진 힘의 한계를 벗어났다. 그리고 아마 녹스에게 그런 힘을 준 대상은…….

    ‘대던전이겠지.’

    세계를 지키는 관리자와 대척점에 선 존재. 절대 함께 설 수 없는 존재끼리 손을 잡았고, 그 해악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대한 규모로 몸집을 불리고 있다.

    ‘녹스.’

    게네시스의 수족을 하나하나 캐내고 붙잡는 현 상황. 항상 도망치던 놈을 잡기까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일단은 눈앞의 맷부터 잡아야겠지만.

    지호는 맷을 똑바로 쏘아보았다.

    “천희성 피습 사건의 진범이 나왔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형을 왜 죽이겠어?”

    “됐고.”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는 맷의 말을 더 들어 줄 가치가 없었다. 지호는 곧장 시스템을 조작했다.

    시스템 관리

    대던전 대응 관리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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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호가 불러온 창은 제목 말고 나머지는 죄다 알아볼 수 없게 깨져 있었다. 그러나 가려진 너머에는 분명 시스템이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다.

    기존의 방식대로 잘 정리된 메뉴를 선택해 시스템을 조작할 수는 없었다. 마치 프로그램 언어를 짜 넣듯 천천히 시스템 내부의 마력을 훑다 보면, 조금씩 이전과는 전혀 다른 영역의 세계가 펼쳐진다.

    한발 늦었지만 이제 지호도 녹스와 같은 선상에 섰다. 녹스가 했던 일이라면 지호 역시도 할 수 있었다.

    가령,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시스템창을 띄우는 일이라거나.

    수많은 각성자들 앞에 영상이 하나 떠올랐다. 영상에는 허소리와 천희성이 대화하는 게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가짜 신지호의 시점이었다.

    잠시 언쟁이 높아지는가 싶더니… 불쑥 맷이 나타났다. 그리고 천희성을 공격하고 황혜림과 함께 유유히 사라진다.

    모든 사람이 진실을 알게 되면 좋겠지만… 피비린내 나는 영상이라 지호는 재생 대상을 전투 경험이 있는 각성자로 제한했다. 한 번 깨닫고 나니 제법 섬세한 제어가 가능했다.

    작업을 끝낸 지호는 맷을 노려보았다. 지금까지 비열한 수를 써서 이쪽을 궁지에 몰아넣은 주제에, 맷은 퍽 억울해 보였다.

    “이게 대체 무슨…….”

    “그쪽의 전유물인 줄 알았어?”

    맷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지호를 노려본다. 분노로 가득 찬 얼굴에서 지호는 맷의 본성을 엿보았다.

    그러나 맷은 이내 애써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영상을 만들었군.”

    각성자들에게 띄운 영상과 마찬가지로 지금 상황 또한 녹화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걸까. 지호는 비겁하게 도망치려드는 맷을 비웃었다.

    “곧 밝혀지겠지. 누가 진범인지.”

    지금까지 가만히 지켜보던 임승주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검을 뽑아 맷에게 겨눴다. 그리고 언젠가 지호를 도왔을 때처럼 비장하게 읊조렸다.

    “사실 진범을 밝힐 필요도 없다.”

    “네?”

    범인으로 몰린 허소리가 대체 무슨 소리냐는 듯 황당한 얼굴로 임승주를 돌아보았다. 임승주는 허소리를 돌아보며 씩 미소 지었다.

    “어차피 돌아가는 꼴을 보면 누가 범인인지 다 알 테니까.”

    “……뭐래.”

    허소리가 별 시답잖은 소리를 다 듣겠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러나 임승주의 농담에 기분이 꽤 풀린 듯이 보였다.

    그걸 보고 있던 맷이 가만히 손을 들었다. 분노를 가라앉힌 맷에게서 차가운 살기가 감돌았다.

    “됐어. 여기서 죄다 죽여 버리면 끝나는 것을.”

    “무슨 자신감이에요?”

    무려 3대 1. 게다가 허소리와 임승주는 지호의 [별의 축언]으로 강화된 상태다. 맷은 가만히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입을 손으로 가져갔다.

    인벤토리에서 또르르 굴러 나온 구슬이 맷의 입 안으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맷의 몸에서 폭발적인 기운이 새어 나왔다.

    [금우궁의 의지를 잇는 자.]

    맷은 시간을 끌지 않았다. 그의 대표적인 스킬인 [금우궁의 의지를 잇는 자]는 땅을 조종한다. 그리고 이 도시 한복판에서 맷이 조종할 수 있는 땅은…….

    “으악!”

    소리가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어올랐다. 지호 또한 간신히 피했다.

    콘크리트 바닥이 아래에서부터 송곳처럼 뾰족하게 솟아올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차되어 있던 차가 솟아나온 땅에 밀려 건물과 부딪쳤다.

    “무슨 짓이야, 미친 새끼야!”

    “미친 새끼가 이런 걸 신경 쓰겠어?”

    맷이 대답하는 와중에도 땅은 계속해서 치솟아 올랐다. 빠르고 굵게, 모든 땅을 고슴도치처럼 뾰족하게 만들 기세로.

    펄쩍 뛰며 도망치던 소리가 숨을 들이키며 바닥으로 내려왔다.

    “위험해!”

    놀란 임승주가 말리기 전에 소리는 제 주먹에 마력을 집중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앞으로 내질렀다.

    [백곡왕의 긍지!]

    수호자로서 얻은 이 스킬은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가르고 길을 뚫는다. 아직 지호가 B급 헌터에 불과하던 시절, 소리가 기꺼이 먼저 나서 줬을 때처럼.

    혼신의 일격은 그만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날붙이의 예리함이나 마법의 정교함은 없지만, 단순히 부수는 데는 허소리의 주먹을 따라갈 게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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