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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반격(2) (255/283)

39. 반격(2)

아래로 내려간 유경우는 신지혜와 함께 습격이 있었음을 알렸다. 무사히 물리쳤지만 안전한 곳으로 피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강태주는 청람의 수거반을 기다리며 신재운의 방에 남았다. 그러는 사이, 신지혜의 인솔로 가족들은 노네임 길드로 향했다.

이원과 지호의 집 앞에 주하은이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길드장 님과 신지호 님, 두 분만이 열 수 있는 곳입니다. 제가 설계자라 비상시에 허가를 받아 열 수 있고요. 나가면 들어올 방법이 없으니 머무르는 동안 필요하신 일 있으면 절 불러 주시고, 곧 길드장님이랑 신지호 님 오실 테니 잠시 기다려 주세요.”

주하은은 친절한 설명과 함께 문을 열어 주고 돌아갔다. 균열 예측기의 발명가로서 엄청나게 유명한 주하은을 신기하게 보던 가족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을 살펴보며 감탄했다.

청람은 청람 길드의 발족과 함께 대한민국의 대기업 중 하나로 성장했다. 단순히 호화로운 것에 놀라진 않지만… 집 안은 어지간한 각성자들도 상상치 못한 신비로 가득했다.

집 안을 흐르는 수로와 가운데의 연못. 수로의 물은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는 게 아니라 거꾸로 솟아오른다.

게다가 천장에는 벽 대신 탁 트인 밤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단순한 환상이 아니다.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과 함께 청량한 공기와 상쾌한 숲의 내음이 그들을 반겼다.

“어머, 지호랑 이원이가 신혼집을 아주 잘해 놓고 사네.”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지호의 어머니였다. 옆에서 감탄하던 지호의 아버지가 벌컥 화를 냈다.

“신혼은 무슨 신혼이야!”

“이원이가 우리 지호를 아주 끔찍이 아끼잖아요. 이런 신붓감 어디서 찾을 수 있겠어요?”

“신부는 무슨……. 사내놈이야, 사내놈!”

아주 자연스럽게 넘어간 아내를 두고 신중호는 당장에라도 넘어갈 듯이 목덜미를 잡았다. 그러나 남편이 건강 그 자체라는 걸 아는 이순희는 코웃음 쳤다. 그러자 신중호도 맘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찼다.

서로 화내는 일이 없는 잉꼬부부다. 겉으로만 냉각된 척 구는 두 사람을 단번에 화해시킬 수 있는 사람은 그들의 사랑스러운 막내아들과 손주뿐이었다.

“에이, 할아버지. 이원이 형이 삼촌 목숨도 구해 주고 우리 목숨도 구해 줬잖아요.”

“에잉, 쯧…….”

“그리고 할머니. 이원이 형은 신붓감이 아니라 신랑감 아니에요?”

“으응?”

“둘 다 신랑인 거죠.”

“맞네, 그렇구나.”

이순희가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분위기는 금세 누그러졌다.

한편, 제 아들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화해시키는 동안 신지형은 심각한 얼굴로 침대 옆에 서 있었다. 한참 침묵하며 어딘가를 노려보던 지형은 문 두드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서 신지형을 한심하게 쳐다보는 건 신지혜였다.

“대체 뭐해, 오빠?”

“아니…….”

변명하기도 전에 신지혜의 눈이 신지형의 앞에 놓인 서랍 달린 협탁과 휴지통을 훑었다. 신지혜가 기분 나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미쳤어? 오빠가 무슨 삼류 찌라시 기자야? 왜 애들 사생활을 캐려고 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얼른 나와, 멍청아.”

“뭐, 뭣. 멍청이?”

“변태 새끼라고 해 줄까?”

말로 제 오빠를 넉다운시킨 신지혜는 신지형의 귀를 붙잡은 채 끌고 나왔다. 그러면서 속삭였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마, 오빠. 걔네가 행복하면 된 거지.”

“시원시원하구나…….”

“이게 당연한 거지.”

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주이원과 신지호의 관계를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신지형이 한숨을 푹푹 쉬었다.

물론 신지혜가 없었더라도 정말 뒤지거나 하진 않았겠지만. 안 오는 게 나을 뻔했다고 생각하며 신지형은 한숨을 푹푹 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온 건 한 손에 고양이를 안은 지호였다. 지호의 뒤에는 주이원 그리고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람이 서 있었다.

몸을 숙여 고양이를 내려둔 지호가 가족들에게 다가갔다. 지호가 입을 열기도 전에 가족들이 지호를 덥썩 끌어안았다.

“지호야!”

“삼촌!”

“우리 아가.”

양 팔을 벌려 가족을 맞아 준 지호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 더 밝은 미소가 떠오른 채였다.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우리 아가야말로 몸 성히 와 줘서 고마워.”

그렇게 감격의 상봉을 하는 사이, 아래로 사뿐히 내려온 서리가 신지혜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지혜는 몸을 숙여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한참 만에 아들을 놓은 어머니가 지호의 손목을 잡아 당겼다.

“자, 일단 식사라도 하자꾸나.”

“아, 그게…….”

“안 그래도 마른 애가 너무 말랐어. 밥은 단단히 먹고 해야지. 뭐든 할 수 있는 거야.”

“살은 안 빠졌는데요…….”

소심하게 항변하면서도 지호는 어머니에게 끌려갔다. 어차피 아주 잠깐의 시간도 낼 수 없었더라면 집에 들리지 않았을 터. 못 이기는 척 따라가던 지호가 함께 온 동행인에게 눈짓했다.

“같이 먹죠, 둘 다.”

“당연하지.”

이원이 잽싸게 다가왔다.

“어머님, 제가 오랜만에 요리해 드릴게요. 아버님 좋아하시는 반찬도 할까요?”

“누가 아버님이냐?”

“키워 주셨으니 아버님이죠. 갈비 해 드릴까요? 고기 좋은 거 있는데.”

“이원아. 그런데 손님은?”

“먼저 앉으세요. 놀라셨을 텐데. 손님도 같이 식사해야죠. 이따 소개해 드릴게요.”

이원이 사근사근 대답했다. 평소 이원을 아는 사람이 봤다면 놀라서 입을 떡 벌리다 턱이 빠질 정도로 예의 바른 태도였다.

또 한 명의 동행인은 지호와 이원이 부모님과 식당으로 향하는 동안, 어쩔 줄 모른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가장 넉살 좋은 재운이 나섰다.

“그렇게 계시지 말고 편히 있으세요. 삼촌 손님이신데…….”

“…….”

“그, 모자랑 마스크도 벗으시고요. 답답하지 않으세요?”

상대가 망설이며 모자를 벗었다. 모자 안으로 감쌌던 분홍색 포니테일이 아래로 쏟아진다. 천천히 마스크를 벗자 드러난 얼굴은 재운에게 몹시 친숙한 얼굴, 삼촌네 길드 부길드장인 허소리였다.

순식간에 재운의 얼굴이 활짝 폈다.

“누나!”

“어, 응?”

“사인해 주세요!”

“그게, 나는…….”

“팬이에요!”

눈을 반짝이는 재운의 앞에서 소리는 결국 웃음을 흘렸다. 소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재운은 신나서 펄쩍 뛰다가, 이내 지호에게 펜과 종이를 달라며 소란을 피웠다.

“그래.”

* * *

이원은 솜씨가 좋은 동시에 매우 손이 빠른 요리사였다. 두 손을 모두 쓸 뿐만 아니라 스킬까지 동원하니, 여러 가지의 요리가 순식간에 완성되었다. 모두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란한 솜씨였다.

‘청람 길드장이 한 요리라니’라며, 다소 미묘하게 여기던 허소리도 음식에 입을 댄 순간 잡념이 모두 날아갔다.

무척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소리는 다시 모자와 마스크를 썼다. 바깥으로 나오는 소리의 표정이 어두웠다. 서리를 안고 있던 지호가 소리를 위로했다.

“걱정하지 마요.”

“네?”

“우리 가족들이요.”

“걱정 안 해요. 길드장님 가족들인데 신용은 확실하죠. 그냥, 제가 속인 것 같아서…….”

허소리는 현재 살인 사건의 용의자다. 아직 허소리의 신상이 언론에 퍼지진 않겠지만 조만간 알게 될 터. 살인자와 식사했다고 하면,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지호는 걱정하는 소리를 보며 씩 웃었다.

“그걸 걱정하지 말라는 거예요. 내가 데려온 사람을 우리 가족이 살인자로 의심하지는 않을 테니까.”

소리는 조금 놀라 눈을 깜박이다가 이내 불안이 걷힌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믿을게요.”

말로만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조금 전에 보고 느낀 지호의 가족들이라면 정말, 지호가 장담하는 그대로일 것 같아서.

두 사람은 비밀 계단을 통해 아래층의 노네임 길드로 내려갔다.

비밀 통로와 연결된 길드장실.

그곳에는 임승주가 초조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허소리를 보자마자 임승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허소리.”

“어, 승주 씨.”

멋쩍게 웃는 소리를 승주가 끌어안았다. 조금 당황했던 소리도 이내 손을 들어 승주를 안아 주었다.

잠시 후 임승주가 허소리를 놓아주고, 그제야 노네임의 길드장과 부길드장이 모두 모여 길드장실에 착석할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천희성의 살인 용의자로 갇혀 있어야 했던 허소리였다. 그녀가 밖을 활보하고 있지만 아직 그 누구도 그녀의 탈출 소식을 몰랐다.

그도 그럴 게, 허소리로 둔갑한 양호진이 그녀를 대신해 갇혀 있었으니까.

“정말 죄송해요. 호진 씨까지 말려들게 만들고…….”

“호진 씨 선택이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평범한 각성자인 허소리보다는 훨씬 오래 살고 각종 술법에 능한 양호진이 만에 하나의 상황에 대응하기 좋다.

“사실, 여차하면 호진 씨가 자기 정체 밝힌다고 했어요.”

“……네?”

“천희성을 찌른 게 소리 씨로 변한 호진 씨인 것처럼요.”

“왜, 왜요? 그러면 누명을…….”

“그러고 도주한대요.”

경악한 소리의 눈동자가 커졌다.

“저도 말렸는데… 듣다 보니 일리가 있더라고요. 소리 씨는 가족 때문에라도 함부로 움직이기 힘들잖아요. 하지만 호진 씨는 원래 인간이랑 섞여 살던 게 아니니까… 최악의 상황이 와도 몸을 숨기면 그만이라고 해서.”

“아…….”

소리가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은 했지만, 거기까지 상황이 흐르는 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지호는 낙심한 소리를 위로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맷을 잡아서 진실을 밝히고 호진 씨를 꺼내 주면 되잖아요? 마침 이지영도 잡았으니까.”

“……그거야말로 호진 씨가 오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정보를 캐내는 데 더 유리할 테니까. 하지만 듣고 있던 임승주가 삐딱한 태도로 끼어들었다.

“그 근성 없는 녀석은 불편한 모양이던데.”

“왜요?”

“이지영이랑 복잡한 사이였다고 들었다. 그리고 넌 양호진보다 유능해. 괜한 생각하지 마라.”

“……고마워요.”

“지금은 길드장님 말대로 그놈을 잡아야지.”

승주의 위로에 소리가 희미하게 웃었다.

“알았어요. 다들 그렇게 말하는데 힘낼게요.”

“좋아. 그래야 허소리지.”

한때 사이가 나빴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굳건한 신뢰. 지호는 믿음직한 노네임의 원년 멤버 두 명을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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