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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일촉즉발(3) (245/283)

37. 일촉즉발(3)

기약없이 기다리고 있던 지호에게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숨어 있는 지금 어지간해서는 손님이 반가울 수 없지만…….

“길드장님!”

환한 얼굴로 달려드는 허소리는 지호가 마음 놓고 신뢰할 수 있는 조력자였다.

달려온 소리가 숨을 헐떡이며 지호를 꽉 끌어안는다. 걱정이 녹아내리며 복받친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포옹이었다.

다소 당황했으나 이곳에는 우정의 포옹을 치정 따위로 왜곡해서 해석할 이원이 없다. 지호는 안심하라는 듯 허소리를 가볍게 안고 등을 두드려주었다.

이내 소리는 숨을 가라앉히며 지호에게서 물러났다. 그러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주이원 씨는 여기 없나 봐요.”

“네?”

“있으면 나타나서 쨍알쨍알거렸을 테니까요.”

“쨍알쨍알…….”

대체 이원의 이미지는 어떻게 되어 있는 걸까. 소리가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이런 때에 어디 갔대요, 대체… 아.”

호진의 눈초리를 받은 소리가 입을 다물었다. 지금 이원이 나타나지 않아 가장 심란한 사람이 지호일 터였다.

“괜찮아요. 무슨 사정이 있겠죠. 최소한 본인이 위험한 건 아닐 테니까.”

“그렇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길드장님.”

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하라는 듯이 웃어 보였다.

“그보다 여긴 어떻게 온 거예요?”

“주변을 서성거리는 걸 내가 주워 왔단다.”

호진이 가볍게 손을 들고 알아 달라는 듯이 말했다. 어째 이전보다 더 친근해진 태도다. 지호가 자신을 도와줬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지호는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아. 감사합니다, 양호진 헌터.”

“호진 씨라니까. 아까는 잘 부르더니만. 그렇게 딱딱하게 고마워할 필요도 없고.”

지호가 반응하기도 전에 소리가 억울하다는 얼굴로 불쑥 끼어들었다.

“에엥? 뭐야! 저랑도 아직 허소리 헌터면서? 우리가 어떤 사이인데!”

“어떤 사이니?”

“어려운 시기를 함께 보낸 전우죠. 호진 씨보다 훨씬 오래 알고 지냈단 말이에요. 저도 이름 불러 줘요! 아니면 누나!”

지호가 그러겠다고 하기도 전에 이미 호칭을 바꾸는 게 기정사실로 되어 버렸다. 지호의 기분을 달래 주려고 일부러 가볍게 구는 걸까.

소리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호진이 코웃음 쳤다.

“누나라니. 그렇게는 안 부를걸?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더니 거절하더구나.”

소리가 노골적인 시선으로 호진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대놓고 같잖단 듯이 피식 웃었다.

“에이… 호진 씨가 형이라니, 할아버지나 조상님쯤 되는 거 아니에요?”

“외모로 따지렴. 그렇게 치면 우리 도련님도 할아버지란다.”

“어, 미르 길드장님이요? 그분은 호진 씨랑 달리 세상에 찌들지 않은 풋풋함이 있어서…….”

궤변이지만 묘하게 납득된다. 호진도 그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제 스스로를 가리킨다.

“나는?”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

“실제로 달려 있긴 하다만……. 그래도 마음만은 젊단다.”

“그렇게 말하면 진짜 늙어 보이거든요?”

아니, 지호의 기분과 별개로 그냥 떠들고 있는 걸까. 유치한 싸움이지만 사이가 좋다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 맞다.”

소리가 갑자기 말을 끊고 지호를 돌아보았다.

“지금 이 할아버지가 중요한 게 아닌데…….”

“할아버지라니?”

“됐고, 길드장님. 혹시 길드 채팅 보셨어요?”

“봤어요.”

“앗, 봤어요? 괜찮죠!”

기쁜 티를 폴폴 내며 소리가 환하게 웃었다. 한때 길드장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깎아내리던 시절을 함께 보냈던 허소리였다. 그녀 또한 이 상황이 퍽 감개무량했다.

“보시면 알겠지만 분위기 꽤 괜찮아요! 승주 씨가 일단 남아서 길드 관리하기로 했어요. 사실 본인이 길드장님 따라오고 싶어 했는데.”

씩 웃으면서 소리가 손으로 브이 자를 만들어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제가 가위바위보에서 이김.”

“그런 식으로 결정하는 거니?”

가만히 듣던 호진이 한마디 했지만 소리는 여전히 의기양양했다.

“승주 씨 몫까지 제가 돕기로 했어요. 필요한 게 있으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당장… 뭐, 제가 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고마워요. 허소리 헌…….”

“누나.”

잽싸게 소리가 정정했다. 지호는 결국 적당히 타협했다.

“……소리 씨.”

“나는?”

“호진 씨… 아무튼.”

“앗, 부끄러워한다.”

지호는 붉어진 얼굴을 가리며 괜히 헛기침했다.

“……알아본 건 있어요?”

“알아보긴 했는데 뉴스에서도 나오던걸? 꽤 본격적으로 움직이더구나.”

호진의 말대로였다. 하늘 길드는 언론을 통해 대응하며 사실을 밝히겠다고 나섰다.

급하게 기자회견을 진행한 천희성의 얼굴은 부정을 저질렀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신뢰가 넘쳤다. 정작 길드장인 천희림은 제대로 말한 것 없이 곁을 지키기만 했다. 게네시스와 손을 잡은 천희성이 하늘 길드를 완벽히 장악한 것 같았다.

“뻔뻔한 사람이야.”

소리가 불평을 늘어놓으려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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