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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각자의 사정(2) (239/283)
  • 36. 각자의 사정(2)

    “양호진 헌터에게는 여우 봉인술이라는 게 걸려 있네요.”

    강태주는 제 허리춤에 달라붙은 양호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참 지독해. 이지영이 그게 작정을 했데? 우리 길드장 콩알만 해졌을 때 나름 미르 길드도 가 보고 여기저기 찾아봤는데… 죄다 쓸모없었어.”

    “미르 쪽에서도 모른대요?”

    “어. 여우 봉인술 자체는 뭔지 알고 있지만, 기존과 변형한 주술이라 당장 풀 수가 없다고 하더라. 연구는 한다는데, 글쎄?”

    빈정거리던 태주가 무능한 놈들이라며 쌍욕을 내뱉었다. 그러자 소리가 앞에 따라 둔 물을 강태주에게 건넸다.

    “뭐냐.”

    “냉수 먹고 정신 차리라고요.”

    “하.”

    어이없어하면서도 강태주는 냉수를 쭉 들이켰다. 후, 한숨 쉬면서 뒷목을 잡고 머리를 이리저리 꺾던 그는 이내 차분해졌다.

    “그래서 말인데, 얘한테 [별의 축언] 좀 걸어 봐라.”

    “양호진 헌터에게요?”

    “그래. 봉인술인지 뭔지, 정석적인 방법으로 푸는 대신 아예 더 큰 힘을 받아들여서 푸는 방법도 있다던데……. 어지간한 걸로는 안 되잖아? 그러니 네가 해 보라고.”

    “알았어요.”

    해서 손해 볼 일은 아니었다. 지호는 정신을 집중한 채 마력을 모았다.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덕일까. 그리 무리하지도 않았는데 마력이 휘몰아치며 지호에게 모였다.

    “우와…….”

    이전부터 지호의 스킬을 옆에서 봐온 소리조차 새삼 감탄할 정도로.

    [별의 축언.]

    지호는 집중한 채, 조심스레 호진에게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호진의 몸이 움찔거렸다. 조막만 한 손 위로 커다란 손의 환영이 몇 번이고 겹쳐졌다. 그러나 호진의 몸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괴로워할 뿐.

    지호는 호진에게서 물러났다.

    “이 방법으로는 안 되겠어요. 제 마력을 거부하는 거 같아요.”

    “……이 녀석이 셀프로 풀어야 하는 건가? 아니, 약해졌는데 그게 가능하겠냐?”

    태주가 버럭 화를 냈다가, 이내 소용없단 걸 깨닫고 한숨만 푹 쉬었다.

    “그래, 뭐 어쩌겠냐. 보모 짓 며칠 더 하면 되겠지. 일단 도련님한테 밀린 보고도 해야 하고.”

    어린 상태의 지호는 주변의 극성 탓에 제대로 된 보고를 받지 못했다. 어린 몸에 괜한 충격을 주면 안 된다며… 주이원뿐만 아니라 허소리며 임승주에 누나까지 나서는 바람에, 꼼짝없이 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이런저런 조사? 중간 과정은 잡다해서 생략한다. 아주 많은 일이 있었지. 도련님이 들으면 기겁할 만한…….”

    “중간 과정 생략한다면서요.”

    딱 잘라 끊는 지호에게 태주는 한국인의 정이 없다느니, 괜히 툴툴거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지영의 목적은 레비아탄을 깨우는 거라더군.”

    “레비아탄은… 단순히 잠들어 있는 거 아니었어요?”

    “정확히는 동면기지. 게다가 말이지. 심해에서 처박혀 쿨쿨 잠들어 있던 새끼가 곧장 ‘아, 존나 잘 잤네. 개운하다.’ 이러고 일어나겠냐?”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다면 회복이 필요하겠죠. 배도 고플 거고.”

    “딩동댕. 정답입니다. 상품은 섹시한 남자와의 일일 데이트권.”

    강태주의 옆에서 허소리가 구역질하는 포즈를 취했다. 태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지영은 레비아탄의 먹이를 모으고 있었어.”

    “먹이… 요?”

    순간 지호의 머릿속에 오만가지 끔찍한 상상이 스쳐 지나갔다. 강태주는 그 상상을 와해하듯 손을 내저었다.

    “설마 레비아탄이 냉동 쥐 같은 걸 먹겠냐? 조금 더 신선한 걸 뽑아서 먹겠지.”

    “뽑아서?”

    “인간의 마력이나 생명력… 뭐 그런 거?”

    강태주는 목소리를 잔뜩 내리깔고 음산하게 말했다. 지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하늘 길드 지하에서 사람 하나 끌고 가더라, 천희성이. 그리고!”

    심각한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던 강태주가 지호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씩 웃었다.

    “우린 잡혔지.”

    “…….”

    “진짜 어이없어.”

    황당한 지호 대신 소리가 태주에게 마음껏 경멸의 눈빛을 보내 주었다. 강태주는 어깨를 으쓱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어쩌겠냐. 다른 데서라면 안 졌어. 걔들 구역이니까…….”

    “어쨌든 졌잖아요.”

    “어엉, 너라도 잡혔을걸? 내가 잡힐 정도면 누구든 잡혔다.”

    “한심해.”

    옆에서 소리가 경멸하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강태주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인데. 우리가 분명 그걸 영상으로 촬영했거든? 이미 내뺐겠지만, 증거가 있으면 그걸로 뭐라도 해 볼 수 있는 거 아니겠냐.”

    “그렇죠.”

    “분명 인벤토리에 넣어 뒀는데 사라졌더라. 우리가 찾은 증거랑 같이.”

    원래대로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이 세계에 또 하나의 법칙처럼 자리 잡은 시스템. 그것에 타인이 개입할 방법은 없으니까.

    “……녹스.”

    “그거 네 스토커라며.”

    시스템을 관리하는 녹스라면 어느 정도 개입하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남의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빼내는 게 가능한 건가? 그건 관리자인 지호조차도 불가능한데.

    ‘멸망의 대적자’가 그것은 기존의 규격을 한참 벗어났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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