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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어디로 갔을까(6) (227/283)

32. 어디로 갔을까(6)

어제 지호는 주하은에게 연락해서 살아 있는 사람을 인형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지금의 이지영을 만든 근간이자 수백 년을 집착해온 상대야. 지금의 이지영은 인형술을 즐긴다고 들었는데. 거죽만 멀쩡하게 남겨 놓고 속은 다른 재료로 채워 써먹지 않을까?’

일부러 시간 빼서 찾아온 우희가 단순히 농담으로 그런 말을 꺼낸 것 같진 않았으니까.

덧붙여서 예전에 게네시스의 시설을 습격했다가 본, 인조인간과 인조 양분을 만든 기술이 쓰일 만한지도 물어봤다.

─ 원래는 인조인간에게 쓰려고 만들었겠지만… 이지영이 제대로 된 연금술사라면 충분히 산 사람을 인형으로 만드는 데도 활용할 수 있을 거예요. 꽤 쓸 만한 성분이 많이 들어있으니까… 후후후. 그래서, 누구한테 썼나요? 이미 샘플은 확보했나요? 아… 아직 아니에요?

마지막에는 잔뜩 흥분해서 말을 쏟아내긴 했지만, 어쨌든 그녀가 알려 준 정보는 유용했다.

─ 평범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상대가 S급 각성자라면 훨씬 더 까다롭죠. 정신을 완전히 망가트리면 제대로 사용하기가 어렵겠네요. 자아를 박살 내고 지성은 남겨야 한다는 건데. 물론, 어떻게 하든 기존보다 성능은 좀 떨어지겠지만…….

주하은은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S급 각성자의 정신을 망가트리고 제 꼭두각시로 만들 수 있을지, 아주 열성적으로 설명했다. 연구자로서의 호기심이 발동한 주하은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생생했다.

덕분에 지호는 겉껍데기만 그대로고 이지영의 개… 아니, 여우가 되어 충성하는 양호진의 모습을 제법 실감나게 상상할 수 있었다.

하얗게 질린 지호를 보고 뒤늦게 이원이 말렸다. 얄밉게도 놀란 지호를 보고 즐기기라도 했는지 기분 나쁘게 웃는 낯이었다.

‘그쯤 해 두고, 핵심만.’

─ 네에네에, 폐하. 제 즐거움을 앗아 가는 건 여전하시군요……. 네, 어쨌든. 이지영이 특수한 인조 양분을 만들려면… 기존에 있던 걸 그대로 활용할 수는 없고 처음부터 다시 배합해야 할 거예요. 그리고 필요한 재료를 한국에서 급하게 구하려면, 역시 밤의 연금술사만 한 곳이 없죠.

그래서 주하은의 말대로 밤의 연금술사에 방문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사정을 설명했다. 길드원이 어떤 연금술사에게 납치당했는데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는 정도로.

그 말에 한참이나 고민하던 권예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원래 구매자의 정보를 알려 드리는 건 절대 안 되는 거 아시죠.”

“어려운 부탁을 하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급해서 찾아온 거예요.”

“네, 저도 이해했어요. 위급하기도 하고, 사실… 솔직하게 말 안 하셔도 도와드렸을 거예요. 도움… 많이 주셨으니까.”

“들어주실 거면 계약을 하죠. 원하시는 게 있으시면 뭐든 요구하세요.”

지호가 인벤토리에서 계약서를 꺼냈다. 손사래를 치는 예나에게 지호는 고개를 저었다.

“밤의 연금술사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사실 뭘 드리든 부족한데, 아무 대가 없이 받을 수는 없죠.”

“전 정말 괜찮은데…….”

난처한 기색으로 한참이나 고민하던 권예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거래로 해요. 계약서 상에서 제가 제공하는 건 정보로 뭉뚱그려 적을게요.”

“네. 당연하죠.”

사실 이런 편법을 쓰고 싶진 않았지만… 실종된 두 사람의 행방이 우선이니까. 권예나가 정보를 줘서 천만다행이다.

지호의 대가는 나중에 해결하기로 하고, 정보는 즉시 제공해 주었다. 권예나가 준 자료를 토대로 양호진이 실종된 이후로 주하은이 일러 준 재료의 구매자를 조사해 역추적했다.

당연히 게네시스는 몇 번이나 전달자를 바꿔 가며, 여러 루트를 거쳐서 구매했다. 그러나 추적 전문인 박건호의 능력과, 꿈을 통해 타인의 기억을 읽는 루의 능력이면 불가능하진 않았다.

문제는 하나.

“둘이 어디 잡혀 있을지 모르겠네.”

역추적에 성공한 후, 확실히 아니라고 제한 곳을 제외하더라도… 게네시스로 추정되는 곳이 여러 군데였다.

차례차례 습격하다가는 다른 지부가 철수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동시에 습격해야 한다. 그것은 즉, 전력의 분산을 의미했다.

“이거 자체가 함정일 수도 있는데.”

구매한 흔적을 꼼꼼하게 잘 숨겨 뒀지만, 이쪽의 전력과 비교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걸 게네시스가, 이지영이 몰랐을까? 두 사람의 납치는 단지 미끼일지도 모른다.

“아무 문제 없어. 함정이면 깨부수면 돼.”

“쉽게도 말한다.”

“위험하면 구하러 안 갈 거야?”

“……가야지.”

“아니, 자기는 가지 마.”

“뭐?”

“지호는 그냥 집에 남아 있어.”

“싫어.”

요즘 싫다는 말을 전혀 안 하더니만…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못한다. 지호가 매섭게 흘겨보자 이원이 곧장 변명했다.

“자기 주력은 [별의 축언]이잖아. 굳이 현장에 나가야해? 상대는 자기를 노리는 변태 새끼들이라고.”

“위험한 놈들이긴 해도 변태는 아니지…….”

“지호 몸을 노리는데 어떻게 변태가 아니야!”

이원이 격분했다. 아니, 이원이 말하는 이상한 의미로 노리는 건 아닐 텐데……. 이원은 혼자 심각하게 말하고는 사뭇 비장하게 말했다.

“체스로 치면 지호가 킹이라고. 폰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킹이 어디에 있어?”

“체스가 아니잖아.”

“어쨌든 남아 있어. 알았지?”

“그런데 잠깐만. 이게 진짜로 함정이라면 말이야…….”

“응.”

“너랑 떨어졌을 때마다 위험한 일이 벌어졌던 건 생각 안 해?”

“…….”

“집이 100%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있어?”

이원이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래, 못 하겠지. 지호에게 무슨 일이 닥칠 때는 항상 이원이 없었다. 저쪽에서도 이원이 규격 외의 전력인 걸 아니까 일부러 떨어트려 놓을 거다.

한참을 고민하던 이원이 결국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하긴… 내 곁이 제일 안전하지. 대신 내 손 꼭 잡고 있어야 해.”

“나한테 한눈팔지 말고 적이나 잘 보도록 해.”

“아, 물론이지. 내가 자기 위험하게는 안 하지.”

“……저기요, 이제 슬슬 양호진 헌터가 위험할 것 같은데요.”

가만히 듣고 있던 허소리가 끼어들었다. 지호는 괜히 헛기침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제 슬슬 출발하죠.”

“네, 그럼 두 분끼리 가시고.”

신지호와 주이원 두 사람 사이에 다른 사람을 끼우는 건 못 할 짓이라는 듯한 태도였다. 물론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작전에 참여하는 건 사정을 아는 노네임의 허소리와 임승주, 이원 측의 크사냑과 루, 미르의 김태용과 이라희를 비롯한 열 명의 헌터였다.

가장 많은 인원을 데려온 태용이 부족하다는 듯 무척 아쉬워했다.

“지금 당장 시간을 낼 수 있는 헌터 중에 A급 이상이신 분들을 모셔 왔습니다. 급하게 모시느라 많은 분이 모이지는 못했습니다만…….”

“이 정도면 충분하죠. 감사합니다.”

태용이 다소 못마땅하단 얼굴로 지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말을 놓기로 했었지. 유교를 숭상할 법한 저 바른 생활 청년이 왜 거기에 집착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공적인 자리니까 나중에.’

지호가 입술만 달싹이며 눈치를 주자, 다행히 태용도 알아들었는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던 이원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야, 왜 둘이 비밀 얘기해. 응? 지금 바람피우는 거야?”

“……이제 정말 출발하죠.”

지호는 이원이 더 말하기 전에 잽싸게 [별의 축언]을 모두에게 걸기 시작했다. 시간제한이 있는 스킬인지라 이원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럼 모두 조심하세요.”

누군가를 구하다가 다른 사람이 다쳐서는 안 되니까. 지호는 진심을 담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정성껏 스킬을 걸어 주었다.

* * *

이원과 지호의 목적지는 깊은 산 속에 자리 잡은 좁은 굴이었다. 예전에 찾았던 곳과 비슷하게, 작은 굴로 위장한 입구 안으로 들어가면 제대로 된 공간이 나왔다.

신호를 받자마자 지호는 이원과 함께 재빨리 안쪽을 급습했다. 그러나 두 사람을 반긴 건 이미 가동을 멈춘 설비와 급히 뭔가를 빼낸 듯 휑한 공장 안이었다. 잔뜩 긴장한 게 무색하게도 힘이 빠졌다.

“말이 새어 나갔나? 아니면…….”

“정말 함정이었거나.”

“뭐, 함정이어도 소득은 있겠지. 일단 다른 쪽 상황을 확인하고 이쪽도 살펴볼까.”

“그래.”

자신만만하게 말하며 주변을 둘러보던 이원이 갑자기 멈춰 섰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발을 뗀 자세 그대로 동상처럼.

“……주이원?”

지호가 당황해서 이원에게 다가갔지만 그는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부릅뜬 눈, 깊게 침잠한 눈동자. 고장 난 로봇처럼 멈춘 이원을 당황한 지호가 흔들었다.

“야, 왜 그래. 대체…….”

이런 고약한 장난을 칠 성격은 아닌데. 어떻게든 깨워 보려던 지호가 흠칫했다. 분명 조금 전까지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느껴진 인기척 때문에.

그렇게 갑자기 나타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

“……황혜림.”

“이제 이름도 막 부르네.”

세계 제일의 S급 이동 술사. 그녀가 게네시스로 넘어갔으니, 언제든지 눈앞에 나타날 수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기서 마주할 줄이야.

[수호의 창].

사정 봐줄 상대가 아니다. 곧장 빛으로 된 창이 황혜림에게 날아갔지만, 그녀는 이미 예측한 듯 다른 곳으로 공간을 넘어 이동한 뒤였다.

완전히 주변에서 사라진 황혜림 대신 공격을 맞은 건,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시커먼 옷을 입고 있어서 처음에는 존재조차 몰랐던 남자.

그러나 남자는 [수호의 창]을 정면으로 맞고도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상대가 후드를 벗으며 씩 웃었다. 소름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싹하게 훑고 지나갔다. 지호는 저도 모르게 숨을 헐떡였다. 잊은 줄 알았던 기억이 벌레처럼 스멀스멀 지호의 몸을 타고 올라왔다.

“허수혁…….”

[수호의 창]이 통하지 않는 남자. 놀랍게도 지호에게 위해를 끼칠 생각이 전혀 없으며… 그저 비틀린 방식으로 지호를 좋아한다고 속삭이던 놈이었다.

여전히 지호는 허수혁을 공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스킬의 제약이 있는 건 지호뿐이지, 허수혁이 이원을 멈추는 건 불가능할 텐데.

“폐하가 왜 움직이지 못하는지 궁금한가?”

[수호의 창].

낮게 깔린 목소리를 듣자마자 지호는 스킬을 그쪽으로 박아 넣었다. 그러나 상대는… 한 손을 들고 마력을 상쇄시켜 공격을 막아 냈다. 지호는 인벤토리에서 검을 뽑아 들고 어둠 속을 노려보았다.

“오늘 무슨 날이야? 이렇게 모여들게.”

“곧 특별한 날이 되겠지. 무척 기념비적인 날이 될 테니까.”

오만하게 속삭이는 상대는 세테르였다.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흉흉해진 기운. 한쪽 눈에 안대를 낀 남자의 소매 한쪽이 휑했다.

“그리고 주인공은 아직 등장도 안 했거든.”

“……무슨 소리야?”

세테르가 씩 웃었다. 자신만만하게 말한 것 치고는 꽤 초조하고 고통스러운 기색이 묻어나는 얼굴로.

세테르의 빈 소매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마치 조금 전, 그 팔을 잘라내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것을 파괴할 만큼 강렬한 마력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거친 마력은 한 조각씩 인간의 형상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지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눈앞에 만들어지는 것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게 아닌 순수한 마력으로 이루어진 육신. 이미 오래전에 죽어 이 세상에서 사라졌어야 할 사람이었다.

“당신이 어떻게…….”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의 생김새 때문만이 아니라, 얼굴조차 모를 상대가 저지른 짓이 너무도 끔찍해서.

차가운 얼굴이 지호가 아닌 이원을 응시했다. 여전히 미동도 없는 주이원을, 찢어 죽이고 싶다는 듯 시뻘겋게 붉어진 눈으로.

‘멸망의 대적자’가 추락한 신을 경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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