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어디로 갔을까(2)
“경현아, 네가 마지막 목격자라고 들어서 불렀어.”
“아, 양호진 헌터와 강태주 헌터 말이지? 응, 맞아. 사실 목격했다기엔 애매하지만…….”
경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얼핏 봐서는 전혀 수상함을 느낄 수 없는 모습이었다. 다만…….
‘저놈이 수상하니까 조심해.’
이원은 몇 번이나 경현이 수상하다고 당부했다. 그래서 지호 또한 길드에 가입시킨 후 지켜보는 중이었다.
이원의 의심이야 하루 이틀이 아니다. 그래도 최근에는 아무거나 의심하며 물어뜯는 버릇은 고쳤다. 그런 이원이 경현에 관해서만은 끈질기게, 수상쩍다고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지호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어서 지켜보고는 있지만… 별다른 특이점을 찾기 힘들었다. 친한 친구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집과 회사만 오가는 심심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보고서로 간단하게 보긴 했는데…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혹시 보여 줄 수 있을까?”
“물론이지.”
경현의 스킬을 확인할 겸 던진 제안이었다. 경현은 흔쾌히 대답하고 지호에게 다가왔다. 경현의 손이 그림자를 만드는가 싶더니 천천히 지호의 눈을 가린다. 지호는 가만히 작은 어둠을 응시했다.
“눈 감아, 지호야.”
다소 간질간질한 목소리. 지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무언가 뜨거운 것이 눈가를 스쳤다. 경현은 천천히 손을 뗐다.
“이제 눈 떠도 돼.”
눈을 뜨니 경현이 만든 환각 속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건 경현이 실제로 경험했던 순간을 타인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직접 경현이 눈으로 본 게 아니라도 인지 가능한 범위가 구현된다.
경현과 계약한 수호신, ‘가면 쓴 왕’이 내려 준 스킬 중 하나였다.
지호는 잠시 정신을 집중했다. 스킬에서는 딱히 이상한 기색을 찾을 수 없었다.
‘주이원이 예민한 건가. 아니면 그만큼 잘 숨기는 건가.’
어릴 때부터 쭉 함께했던 친구를 의심하고 싶지 않으니, 전자였으면 좋겠지만……. 사실, 마지막 목격자라는 것은 흔히들 용의선상에 오르고는 한다. 여러모로 지호는 의심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일단 객관적으로 보자.’
치우친 관점은 시야를 좁게 만드니까. 지호는 일단 의심을 거두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어딨는지 도통 보이지 않는다. 경현이 웃으며 손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저쪽에 있어.”
“……머네.”
당시의 경현과는 제법 거리가 멀다. 경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반도 채 지나지 않아, 경현의 걸음이 멈췄다. 지호 역시 옆으로 다가갔으나 똑같은 선에서 멈췄다.
“더 갈 수는 없는 거야?”
“응. 이 공간의 모든 게 완벽히 구현되는 건 아니거든. 내가 확실히 인지할수록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데… 그때는 어라, 강태주 헌터와 양호진 헌터인가? 하는 정도로만 인지했었거든. 그래서 딱 이만큼이 한계야.”
경현이 손가락을 딱, 튕기자 멈춰 있던 강태주와 양호진이 움직였다.
나란히 길을 걷던 두 사람이 대화하는데 입 모양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잠시 걷다가 멈춰선 강태주가 고개를 숙여 양호진에게 뭔가를 속삭이고는… 이내 조금 빠른 걸음으로 골목 안쪽으로 들어간다.
“이게 끝이야.”
“대단한 건 없네…….”
“응, 뭔가 특이했다면 길드에 알렸을 테니까. 이제 나갈까?”
“응.”
경현이 지호의 눈을 가렸다. 환상에 빠질 때와 똑같이, 눈을 감고 나서야 원래대로 돌아왔다. 지호에게서 조금 물러난 경현이 소파에 앉았다.
“그래서 지호야.”
“응?”
“어땠어?”
“뭐가?”
“나는 유력한 용의자 같아?”
지호는 아니라고 부정하려다가, 뻔한 이야기만 하게 될 것 같아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 목격자니까 조사는 기본이지. 절차상의 문제일 뿐, 너를 진짜로 의심하진 않아. 이상한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확실하게 해 두려던 거야.”
“……그거 다행이네. 조금 긴장했거든.”
“뭘 긴장씩이나 하고 그래.”
진짜로 의심했던 지호는 괜히 찔려서 웃어 보였다. 그런 지호를 가만히 보던 경현이 불쑥 손을 내밀었다.
“왜?”
“있어 봐.”
경현의 손가락이 지호의 눈꺼풀을 아래로 밀어 낸다. 잠시 망설이던 지호는 순순히 눈을 감았다. 어둠이 내려앉았다가 다시 밝아지고, 지호가 눈을 뜬 장소는… 정말 상상도 못 한 곳이었다.
그곳은 학교였다.
분명, 지호가 고등학생 때 다니던 곳.
최근에는 깔끔하게 새로 칠을 했다고 들었는데, 눈앞의 학교는 건물 외벽의 페인트칠이 벗겨져 다소 지저분했다.
생생한 감각을 통해 습도 높은 여름의 열기가 전해졌다. 무더운 여름. 덥지도 않은지 운동장에는 공을 차는 아이들이 한가득이었다.
경현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두 사람이 자리한 벤치 너머, 풀숲에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어린 날의 이원과 지호였다. 손에는 각자 하나씩 아이스크림을 든 채로, 자리가 불편하지도 않은지 나란히 앉아 있다.
이원과 지호는 찰싹 붙어 이야기를 나눈다. 그걸 잠시 가만히 보던 지호의 얼굴이 벌게졌다.
긴 세월의 껍데기가 완전히 사라진 어린 날의 주이원은 그야말로 온몸으로 지호에 대한 애정을 외치고 있었다. 표정, 눈빛, 목소리까지, 모든 것에 애정이 듬뿍 담긴다.
사실 노골적인 건 이원만이 아니었다.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자신의 모습 또한 꽤 부끄러웠다.
손경현은 대체 이걸 왜 보여 주려는 걸까.
그때, 이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먹은 아이스크림 막대를 지호 몫까지 들고 쓰레기통으로 다가온다. 그곳은 바로, 과거의 경현이 앉아 있었을 벤치 옆이었다.
쓰레기를 버리며 이원이 몸을 숙였다. 풀숲 너머의 지호가 보이지 않을 만큼 먼 거리. 그리고 환상 속의 지호에게는 너무도 가까운 거리에서, 이원은 과거의 경현에게 속삭였다.
─ 죽여 버리기 전에 곱게 꺼지지, 그래.
“…….”
이원의 인성을 진작 알고 있었지만, 지나치게 과격한 협박이었다. 저게 지금의 주이원도 아니고 과거의 어린 주이원이란 걸 생각하면 더더욱.
싸늘한 낯의 주이원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치 다른 사람처럼 다정한 목소리로 지호를 부르며 돌아갔다.
뺨에 닿는 손길에 지호가 흠칫 놀랐다. 알 수 없는 미소를 띤 경현의 손이었다. 조금 찜찜했지만, 지호는 얌전히 경현의 손 아래에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주이원은 예전부터 날 싫어했어.”
“경현아.”
“그리고 지금도 싫어하지.”
“…….”
“이원이는 내게 계속 못되게 말할 거야. 예전에 내가 너를 좋아했으니까, 내가 네 근처에 있는 게 싫겠지.”
갑자기 찔러 들어온 말에 지호는 달싹이던 입술을 꾹 다물었다.
“더 이상 그런 꿍꿍이는 없는데 주이원이 믿어 주질 않네. 그냥 친구로 지내고 싶은데 그게 나쁜 거야?”
“경현아, 난.”
“주이원이었으면 그런 확인은 안 했을 거잖아.”
“…….”
“똑같이 대해 달라는 말은 아니야. 그냥 좀… 믿어 줬으면 좋겠어, 날.”
지호는 쉽게 말하지 못한 채 경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척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한편,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어둑한 창고 안.
그 한가운데에는 관 하나가 놓여 있었다. 평범한 관은 아니다. 스킬로 수십 겹의 봉인하고, 그로도 모자라서 던전산 사슬로 몇 번이나 감아 둔 특이한 모습이었다.
망자가 그 안에 들어 있어도 놀랄 일이겠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건 멀쩡하게 살아 있는 사람 둘이었다.
강태주와 양호진.
건장한 성인 남성인 두 사람은 한 사람 몫으로 마련된 관 안에 살을 부대끼며 서로를 극도로 혐오하는 중이었다.
“야, 좀 어떻게 해 봐. 너 변신술 할 수 있다며.”
“지금도… 줄일 만큼은 줄였단다. 더 줄이는 건 힘들어.”
지금의 호진은 원래보다 머리 두 개쯤 작아진 채였다. 열네댓 살로 보이는 호진은 강태주의 품에 쏙 안긴 채였고, 그 또한 서로에게 심각한 불쾌감을 유발했다.
“너 나랑 살 비비고 싶어서 그러냐?”
“네 그 쓸데없는 근육이나 줄이지 그러니?”
“난 줄이는 스킬이 없잖냐. 더 줄이라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태주를 보며 호진이 한숨을 쉬었다.
“이 안에서는 스킬을 쓰기 힘들다는 걸 알고 있잖니? 이 상태의 변신술은 완벽하지 않단다. 지금보다 더 줄이면 이성이 육체에게 지배당할 뿐이야.”
“지배당하면, 죽냐?”
“죽진 않는데.”
“그럼 줄여.”
호진이 웃었다. 당연히 기분이 좋아서 만들어 낸 웃음은 아니고… 몹시 짜증이 난 미소였다.
“아, 그래. 바라는 대로 해 줄게.”
“진작 그럴 것이지.”
호진의 몸이 더욱 작아졌다. 성인 남자 하나가 대여섯 살로 줄어드니, 좁은 관이라도 운신의 여유가 생겼다.
스킬이고 인벤토리고 다 봉인당한 상태에서 움직이기조차 못하면, 뭘 해 볼 수도 없는 거 아닌가?
뭐라도 수를 찾아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
태주는 어려진 호진과 눈이 마주쳤다. 숨기는 법을 모르는지 풍성한 꼬리를 드러낸 어린 호진은,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을 매달고 태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불길한 예감이 태주를 스쳤다.
“우…….”
“야, 잠깐.”
“흐윽, 끕…….”
“미안하다, 야. 다시 원래대로…….”
“흐아아앙!”
“아, 씨발.”
말려도 소용없었다. 육체가 이성을 지배한다는 그 말답게, 호진은 정말 다섯 살 어린아이처럼 빼앵 울음을 터트렸다. 뭘 해 봐야겠다는 생각과 달리, 태주는 눈을 질끈 감고 귀를 틀어막았다.
‘내가 받은 의뢰 중에 최악이다.’
차라리 총알이 비처럼 쏟아지는 전쟁터를 뒹굴고 말지.
‘그만 한 거물이 버티고 있는 줄 알았으면 돈 더 받았지.’
열 배는 더 뜯어 낼 걸 그랬다. 태주는 호진이 원래대로 돌아오길 빌며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