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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어디로 갔을까(1) (222/283)

32. 어디로 갔을까(1)

사건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일어났다. 그래서 지호 역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때에, 생각도 못한 보고를 받게 됐다.

“강태주 헌터랑 양호진 헌터가 실종됐다고요?”

“네.”

“둘이 같이요?”

“그렇게 판단됩니다.”

보고하는 임승주는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지호는 상대의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한 채 짧은 보고서를 여러 번 훑었다.

강태주와 양호진, 실종으로 추정.

그렇게 판단된다느니, 추정된다드니, 모호한 말을 쓸 수밖에 없는 건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갑자기 튀어나온 이번 건이 더 골치 아팠다.

“죄송합니다.”

임승주가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지호는 일단 내용이 바뀌지 않을 보고서를 내려놓고 고개를 저었다.

“사과할 필요 없어요.”

“하지만 제가 제대로 관리했다면…….”

“자책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차피 길드 내부에서도 둘은 예외인 셈 쳤으니까.”

헌터가 워낙 친숙한 이미지이긴 해도, 각성자는 일반인 속에서 잠재적인 위험 요소였다. 때문에 길드는 길드원을 관리하고 감독할 책임을 지닌다.

하지만 뭐든 칼같이 적용할 수는 없다.

강태주는 자질구레한 구속에 얽히느니 해외로 나갈 놈이다. 그리고 양호진은 아예 현재의 신분이 가짜인 데다 원래 소속은 다른 곳인, 단순한 협력 관계.

둘 다 이쪽에서 관리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독단적인 행동을 어느 정도 묵인했다.

“하지만 실종된 두 사람이 무슨 짓을 저지르기라도 한다면… 길드 쪽에서도 책임질 사람이 필요합니다.”

“전 그걸 걱정하지는 않아요.”

지호가 신경 쓰는 건 두 사람이 받을 피해, 혹은 두 사람이 남에게 줄지도 모르는 피해였다.

자발적으로 몸을 숨긴 거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혹여나 게네시스에게 넘어가버린 거라면?

평범한 헌터보다 훨씬 강한 S급 두 사람의 실종이 얼마나 큰 여파를 불러올지,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강태주라면 모를까 양호진 헌터라면… 이상한 길로 빠지진 않았을 테니 괜찮아요. 그럴 사람은 아니에요.”

“하지만 양호진은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여전히 양호진을 좋아하지 않는지 승주가 삐딱하게 되물었다. 지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인간이 아니니까 더더욱 안 그러겠죠.”

수십 년 사는 인간보다 천 년 넘게 살아 온 구미호가 훨씬 믿음직하지 않은가. 계속 살아오며 고수한 삶의 방식이 있는데 갑자기 그것을 뒤집지는 않을 테니까.

물론 지호라고 해서 불길한 상상을 완전히 배제한 건 아니었다.

“강태주가 양호진 헌터를 해쳤다면 또 모를까…….”

“그러진 않을걸요? 둘이 꽤 친하니까.”

지호의 근심에 옆에서 듣고 있던 소리가 끼어들었다.

“둘이 친해요?”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믿기지도 않았고.

그도 그럴게, 처음 봤을 때부터 둘이 거하게 싸우지 않았나. 강태주와 양호진은 딱 봐도 서로 상극이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을 성질.

물론 자신의 흥미대로 움직이는 강태주야 양호진에게 별 감정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은근히 이것저것 많이 따지는 양호진이 강태주처럼 제멋대로 사는 인간을 좋아할 리는 없었다.

“꽤 친했는데. 그렇죠, 임승주 헌터?”

“가끔 붙어 다니긴 했지만.”

“그게 친한 거죠.”

“그렇게 치면 우리도 붙어 다니는데…….”

“우리도 좀 친해진 거 아니었어요?”

허소리의 날카로운 지적. 그리고 정적.

떨떠름하게 말하던 승주는 곤란한 기색으로 시선을 피했다. 그런 승주를 소리가 두 눈 부릅뜨고 노려보았다.

그 어색한 분위기라니…….

지호는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아니, 안 본 사이에 둘이 언제 붙어 다니고 친해진 거야?

매일 으르렁거리던 허소리가 ‘우리 친해진 거 아니냐’ 따위의 말을 하고, 임승주도 반박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강태주와 양호진 역시 붙어 다닐 수도 있겠다.

“아, 이건 일단 됐고.”

일단 됐다고 넘길 문제는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얼어붙은 임승주 대신 소리가 어색한 침묵을 부쉈다.

“둘이 같이 실종됐으니, 같이 있을 확률이 높겠죠.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도 둘이 같이 있을 때였으니까. CCTV의 기록도 그렇고요.”

지호는 보고서 속에 찍힌 두 사람의 모습을 확인했다. 화질이 나쁜 영상을 캡처해 잔뜩 확대했지만 상대를 헷갈릴 정도는 아니다. 특히 강태주만 한 체격은 흔하지 않았으니까.

강태주는 캐주얼한 복장에 볼캡을 눌러 썼고, 양호진은 후드를 쓰고 마스크를 낀 차림이다. 그리고 두 사람 다 시선이 한쪽을 향하고 있다.

“뭘 보고 있는지는 확인된 게 없습니까?”

“찍힌 게 없어요. 사각지대로 몸을 잘 숨겼거나, 아니면…….”

“실재하는 존재가 아니거나.”

소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킬로 만들어낸 무언가를 쫓는 중이라면, 이런 일반적인 CCTV에는 찍히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양호진 헌터가 쫓는 건 이지영이거나, 그녀와 관련된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

“왜요?”

최남솔은 이지영의 스승이 지호의 주변에 있다고 말했다. 이지영은 수백 년을 산 연금술사고, 그런 이지영을 과거에 가르쳤다면 평범한 인간은 아닐 터.

고작 100년쯤 산 김태용이 이지영을 가르쳤을 리는 없고, 우희는 존재감이 너무 크고.

무엇보다 지금 와서 걸리는 건 예전에 게네시스의 연구소를 습격할 당시, 양호진의 반응이다.

양호진은 이지영의 이름을 듣자마자 거의 곧장 ‘아는 사람’이라고 단언했다. 당시에 이지영이란 인물이 게네시스와 관련이 있다고는 추측조차 하지 못하던 상황.

그런데도 이름을 듣자마자 확신할 정도라면, 그만큼 양호진이 이지영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뜻 아닌가. 정말로 이지영이 양호진의 제자였다면… 양호진이 그녀를 무시하기는 힘들겠지.

하지만 전부 솔직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최남솔에게 얻은 정보를 토대로 한 추리다. 계약의 대가로 받은 답이 아니니 진위를 확신할 수 없고, 정보의 출처에 대해서도 설명하기 어렵다.

“일단 추측이니까, 가능성의 하나로 생각해 주세요.”

애매한 마무리에도 제 길드장을 퍽 신뢰하는 소리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둘이 같이 게네시스를 쫓았던 건가요?”

“강태주가?”

길드장실은 다시 침묵에 휩싸였다. 열정적으로 게네시스를 추적하는 양호진, 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강태주는 어울리지 않는다. 애초에 강태주와 게네시스가 서로 연관이 없는지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돈으로 고용됐을 수도 있잖아요.”

“강태주가 돈으로만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죠.”

강태주는 꽤 제멋대로 살아 온 남자였다. 문란한 인간관계, 향정신성 물질의 남용, 거친 언행 등.

세상이 바뀌고 강태주의 가족이 모두 죽은 후에도 그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위험한 길로 접어들었다. 강태주와 사이는 안 좋았지만 정반대의 성향이었던 가족들이 그의 최후의 고삐였던 건지도 모른다.

자신이 받은 의뢰는 철저히 지킨다지만, 강태주의 직업관은 신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제 지킨 의뢰 대상에게 다음 날 무기를 겨눈 전적이 있으니까.

내일을 생각하지 않은 채 위험을 쫓는 삶. 지호도 강태주에 관해 정확히 아는 건 아니지만… 강태주가 지금까지 살아온 기록에 의하면 그는 분명 쾌락주의자였다.

“그래서 양호진의 손을 잡았을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임승주가 지적했다.

“왜, 양호진이야 어쨌든 자기 목적이 우선이잖습니까. 그러니까 돈을 써서라도 강태주를 움직일 수도 있고.”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본인이 받은 의뢰는 확실히 지키는 강태주 아닌가. 사적인 부분을 떼놓고 보면, 강태주는 능력 좋은 S급 헌터다. 물론 강태주는 의뢰비가 비싸지만… 초라하게 다니는 것과 달리 양호진은 돈이 꽤 많다. 고용하는 게 어렵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강태주는 성격이 좆같… 좀 나쁜 놈이잖습니까?”

“……그렇죠. 그러니까 더더욱 양호진 헌터를 도울 이유는 없지 않나요?”

강태주가 의뢰를 받는 기준은 알 수 없지만,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할 성격은 아니다. 뻔히 양호진이 자길 안 좋아한다는 걸 알면서도 의뢰를 받아들였을까?

하지만 임승주는 지금까지 중에 가장 확고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자신이 싫어하는 놈이 돈 주고 협력하자고 하는데, 강태주 입장에서는 꽤 즐거운 꼴 아니었을까요?”

“하긴, 길드장 꼴 보기 싫은데 꼬박꼬박 그 옆에 붙어 있었던 어느 부길드장처럼 말이죠…….”

허소리가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한때 눈앞의 길드장을 싫어한다고 온몸으로 주장한 이력이 있는 임승주가 몸을 떨었다.

……아까 말실수한 거 빨리 사과해라. 지호는 임승주를 슬쩍 흘겨보았다.

“일단 이건… 미뤄두죠. 같은 목적으로 조사하다가 동시에 헤어졌다는 전제 하에, 두 사람을 찾도록 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임승주 헌터는 박건호 헌터와 함께 두 사람의 행적을 조금 더 조사해 주시고. 허소리 헌터는 이번 일에 투입할 만한 길드원 명단을 추려 주세요. 그리고…….”

세세한 지시를 내린 지호는 보고서를 툭 쳤다.

“마지막 목격자는 제가 만나서 조금 더 이야기해 볼게요. 이 방으로 불러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을 내보낸 지호는 잠시 기다렸다. 곧,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길드장님, 절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응, 들어와.”

가벼운 대답에 문이 열렸다. 제 정중한 인사가 다소 부끄러웠던지, 상대가 머쓱하게 웃었다.

“지호야, 무슨 일이야?”

두 사람을 본 마지막 목격자는 손경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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