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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진짜는 누구?(5) (220/283)
  • 31. 진짜는 누구?(5)

    천희성의 말에 지호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삼촌이라고?’

    지금 지호 쪽이 찾고 있는 사람은 천희성의 어머니인 박정림의 자매, 박해림이다.

    애초에 천희성의 삼촌에 관해서는 아는 것도 없는데… 따로 주목할 만한 인물이라 여기지 않았고. 이건 천희성의 명백한 말실수다. 따로 조사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지호는 말을 아꼈다.

    지호의 침묵에 천희성이 한숨을 쉬었다. 성마른 눈빛이 거칠게 지호를 훑었다. 이전처럼 호의 따위는 조금도 깃들지 않은 눈빛이지만… 지호를 발가벗겨 해부할 것처럼 집요한 시선. 기분이 나빠진 지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네가 싫어. 똑같은 인간인 주제에 특별한 운명을 타고났다는 네놈이… 끔찍해.”

    무슨 말을 하려나 했더니. 지호는 희성의 말에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싫을 수도 있죠.”

    “나는 널 증오할 자격이 있어. 너도 이제 알겠지?”

    “그건 전혀 모르겠는데요.”

    박정림이 운명을 빼앗기 위해 목숨을 바쳐 주술을 걸었다고 해도, 그게 지호의 잘못은 아니었다. 오히려 박정림의 욕심 때문에 운명이 엉킨 사람이 천희성을 미워하면 모를까.

    그러나 천희성은 지호와 전혀 다른 생각을 지닌 모양이었다.

    그는 화가 끝까지 치민 얼굴로 지호의 멱살을 쥐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천희성 헌…….”

    “내 어머니가 너를 위해 목숨을 바쳤는데 그런 말을 해?”

    지호는 얼빠진 목소리로 네? 하고 반문하려던 걸 간신히 참아 냈다.

    표정이 이상하게 일그러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지호는 입꼬리만 비틀어 미소 지었다. 천희성에게는 굉장히 아니꼽게 보일 만한 얼굴로.

    “제가 해 달라고 한 건 아니잖아요.”

    나긋하게 속삭이는 지호의 목소리. 천희성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너만 아니었어도 어머니는 몇 달을 더 버틸 수 있었어. 아니, 계속 치료했다면 살았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너 때문에…….”

    “저 때문에?”

    “네깟 놈의 안위를 위해서…….”

    천희성이 울분을 토했다. 지호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일그러진 천희성의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슬픔이 켜켜이 쌓여 절망으로 퇴적된 눈. 지금 저 얼굴이 거짓이라면, 천희성은 연기의 길을 걷는 게 나았으리라.

    ‘아니, 정말로?’

    천희성은 박정림이 마지막으로 걸고 죽은 주술이 지호를 위한 것이리라고 생각하는 걸까. 어떻게 그런 착각을 할 수 있지.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게 착각할 법도 했다. 박정림이 목숨을 바쳐 주술을 쓸 당시, 천희성은 고작 중학생이었다. 천희성이 따로 주술을 배우지도 않았으니, 제 어머니가 어떤 주술을 걸었을지는 모를 법도 했다.

    천희성이 제대로 된 진실을 모르는 건 아마, 박정림이 일부러 다르게 말했기 때문이겠지. 그게 목숨을 던지기 전, 아들을 설득하기 더 쉬웠을 테니까.

    그도 아니라면…….

    ‘처음부터 박정림이 주술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거나.’

    아무리 박가의 주술이 신통하다 한들, 한낱 인간인 그녀가 관리자의 존재를 정확히 알고 그 운명까지 빼앗는 주술을 거는 게 쉬울 리는 없다.

    사실 처음부터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천희성의 말대로, 아무리 귀한 운명을 쥐여 준다 한들 자식이 어머니를 잃게 되는 것보다 좋을 리가 없지 않은가. 고작 남과 이어 주기 위해 제 목숨을 바친다고?

    아들을 사랑해서 한 일이라기에 박정림의 행동은 지나치게 모순되어 있다.

    주술을 건 사람은 분명 박정림이다.

    하지만 그 주술이 정말 박정림의 의도일까?

    “…….”

    과거의 박정림은 어떤 이유에서, 어떤 심정으로 주술을 걸었을까. 지금의 천희성을 보면, 당시의 그가 어머니의 죽음을 얼마나 원통히 여겼을지 뻔히 보였다.

    가족을, 어머니를 몹시 아끼는 지호에게 천희성의 절규가 마음 깊이 와 닿았다.

    ‘멸망의 대적자’가 당신이 너무 무르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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