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진짜는 누구?(4)
최남솔의 수작에 넘어가서 질문 하나가 끝나 버렸다.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큰 효용은 없는 것 같으면서도…….
“흥미로운 질문이었지, 형?”
그래, 호기심 측면에서 꼭 듣고 싶은 질문이었단 것은 인정한다.
지호는 대꾸하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솔은 지호가 일어날 줄 전혀 몰랐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벌써 가려고?”
“용건은 끝났잖아.”
“밥까지 사 줄 정도로 친해진 동생인데 너무 빨리 일어나는 것도 좀 그렇지 않아? 조금 더 있다 가.”
“하아…….”
“형이랑 나, 계약했잖아. 지켜 줘야지, 응?”
맞는 말이다. 지호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남솔의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묘하게 정보를 퍼 주는 녀석이다. 뭔가 하나라도 더 캐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좋아. 기왕 이렇게 된 거 알고 있는 걸 말해.”
“맨입으로?”
“맨입은 아니지. 목숨은 살려 줄 테니까.”
계약에 죽이지 말라는 말은 없다. 둘만 있는 방. 이 거리에서 지호는 남솔을 확실하게 죽일 수 있다.
“와, 너무하네. 무서워라.”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는 투로 남솔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 어차피 너도 이유가 있어서 그쪽으로 유도한 거 아냐?”
결국 남솔은 자신의 의도대로 지호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물론 지호 역시, 상대의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순순히 넘어가 주기도 했지만…….
하지만 여전히 최남솔이 무슨 목적인지는 모르겠다.
최남솔은 자신이 아무런 꿍꿍이도 없다고 주장하듯 씩 웃었다.
“음, 그래서 뭐가 궁금한데?”
“박정림은 왜 굳이 반려의 운명을 천희성에게 준 건지.”
지호의 질문에 남솔이 잔뜩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바람 빠진 인형처럼 표정이 무너지며 피식 웃었다.
“에이, 형. 그 사람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어. 어린 내가 어떻게 알겠어?”
“쓸모없어.”
“너무해.”
기대도 안 했다. 지호가 혀를 차자 남솔이 우는 척을 했다. 괜히 눈물 닦는 시늉을 하던 남솔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관리자에게 안배된 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들뿐이지. 특히 반려라는 건 첫 번째 관리자에게만 주어지는 거라며? 특히나 특별하지. 박정림이 얼마나 알고 빼앗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걸 알았으니 빼앗은 게 아니겠어?”
“그게 목숨을 걸고 빼앗을 만한 거야? 반려라고 해도 결국 맺어지지 않을 수도 있잖아.”
“단순히 좋아한다는 감정으로 맺어지는 게 아니겠지. 시스템 같은 거야. 시스템도 형이 의지로 활성화할 수 있었던 게 아니잖아? 형이 무지 강해지고 나서야 다른 사람에게 보일 수 있었던 건데.”
말이야 맞는 말이다. 지호도 몰라서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다만…….
그럼 주이원은 뭔데?
주이원이 가진 집착이야 익히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최남솔의 말마따나, 아무리 주이원이라도 시스템 자체를 거스르진 못한다.
시스템이 허용하지 않은 반려의 운명.
그건 대체 왜 주이원에게 가 있는 걸까……. 그것도 원래 주인이라는 김태용보다 훨씬 더 견고하고 집요한 형태로.
“형.”
고민하는 지호를 남솔이 진지한 눈빛으로 불렀다.
“게네시스로서가 아니라. 그냥 내 입장에서 충고하자면.”
“필요 없는데.”
“반려를 본처로 두고 주이원을 첩으로 두는 거야.”
“미쳤나, 이게.”
지호가 기겁했지만 남솔은 아랑곳하지 않고 낄낄거렸다.
“왜? 원래 영웅은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 일부다부제? 어쨌든 여럿을 취할 자격이 있는 거잖아.”
‘멸망의 대적자’가 옳은 소리도 할 줄 안다고 감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