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진짜는 누구?(3)
한창 업무로 바쁠 시간인 오후. 지호는 드물게도 일을 손에서 완전히 놓은 채 사무실 책상 위에 엎어져 있었다.
“하아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 게 벌써 몇 번째인지도 모르겠다.
마침 보고하러 들어왔던 허소리가 눈 밑이 퀭한 지호를 안쓰러운 눈으로 살폈다.
“길드장님, 많이 피곤하시면 잠깐 눈 좀 붙이고 오시지 그래요?”
“아뇨, 딱히 피곤한 건 아니고요.”
“거울 좀 보세요. 지금 엄청 피곤해 보이시거든요?”
“아니…….”
“요즘 일정이 피곤할 만도 했죠.”
소리는 지호의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단정 지었다. 그도 그럴게, 허옇게 뜬 얼굴로 멀쩡하다고 주장해 봤자 아무런 설득력도 없었으니까. 게다가 지금 대답하는 것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줄도 모르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길드장을 보필하는 게 부길드장의 역할이기도 하니까. 소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지호에게 다가갔다.
“됐고, 길드장님은 좀 쉬셔야겠어요. 자, 따라오세요.”
“아니, 전… 괜찮은데요. 피곤해도 크게 지장은 없고…….”
“지장 없는 얼굴이 아니거든요? 일단 좀 쉬세요. 어차피 책상에 엎드려 있다고 일이 저절로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계속 고집을 부리다가는 안아서라도 데려갈 기세라 지호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비척비척 따라갔다.
지호의 수면실은 길드장실에 딸려 있었다. 지호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까지 덮어 준 허소리가 신신당부했다.
“자. 자는 척하다가 슬쩍 나오지 말고 한숨 푹 주무세요.”
지호의 성격을 아는 소리가 따끔하게 경고했다.
“급한 일도 없고, 어지간한 건 제가 처리할 테니까요. 아셨죠?”
“……네.”
“고민이 있을 때 정도는 쉬세요. 단단하게 받쳐 줄 사람이 많으니까.”
믿음직한 부길드장은 씩 웃고 밖으로 나갔다. 지호는 자세한 사정을 말하지 못한 채 머쓱하게 웃었다.
길드 일로 고민이 많긴 해도, 이번만은 순수하게 개인적인 문제였는데. 물론 제대로 잠을 못 잤으니 피곤하기는 하지… 지호는 한숨을 쉬며 뒤척였다.
아닌 게 아니라, 지호는 요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이게 다 [반려의 운명], 그 빌어먹을 스킬 때문이었다.
‘주이원을 볼 때마다 괜히 찔려서…….’
이 스킬이 멋대로 문어발로 상대를 짝 지어 주는 건 지호의 의지가 아니다. 그런데도 왠지 배우자를 놔두고 불륜을 저지르는 천하의 나쁜 놈이 된 기분에 밤마다 죄책감에 시달렸다.
하필이면 요즘 이원이 또 그리 바쁘지 않았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지호에게 웃어 주고 잘해 줄 때마다 지호는 혼자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게다가 계속 뒤숭숭한 꿈을 꾼단 말이지…….’
자꾸만 주이원을 놔두고 혼자 죽는 꿈을 꿨다. 꿈속의 주이원이 오열하는 걸 볼 때마다 무척 가슴이 아팠다.
못된 짓을 하면 천벌을 받는다는 계시일까 싶다가도, 역시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기에 억울했다.
‘멸망의 대적자’가 스킬은 원래 있던 운명을 보여 줬을 뿐, 자신이 나쁜 게 아니라고 억울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