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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진짜는 누구?(1) (216/283)
  • 31. 진짜는 누구?(1)

    주이원도 이제는 꽤 지호를 배려할 줄 알게 되었는데… 남 보는 데서 달라붙는 건 아무리 타일러도 나아지질 않는다. 아무도 없는 데서 하면 별말 안 할 텐데.

    지호는 이원의 배를 팔꿈치로 퍽 쳐서 밀어 냈다.

    “자기야, 아파.”

    “아프라고 친 거야.”

    “나 걱정했는데.”

    “이 정도 던전이 뭐라고 걱정해? 나 멀쩡해.”

    지호는 가볍게 핀잔하면서 이원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대로 자리에서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얼어붙었다.

    “……자기야?”

    지호는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허공을 응시했다. 그러다가 아무것도 없는 곳을 만지작거린다. 마치 그곳에 무언가 존재하는 것처럼.

    이원의 표정이 대번에 심각해졌다.

    “지호야.”

    “잠깐, 잠깐만…….”

    이원이 다가오자 지호가 기겁하며 물러섰다. 미심쩍은 지호의 행동에 이원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신지호.”

    “어…….”

    “기다려, 힐러 좀 불러올게.”

    “야, 잠깐……!”

    엄청나게 놀란 지호가 이원을 붙들었다. 그리고 여전히 얼떨떨한 얼굴로 이원을 살펴보았다. 이원이 잔뜩 인상을 썼다.

    “주이원.”

    “응.”

    “너…….”

    너 이거 안 보여?

    그렇게 질문하는 대신 지호는 침을 꼴깍 삼켰다.

    지금 주이원의 목에는 악취미라고 할 수밖에 없는 굵은 목줄이 걸려 있다. 금속으로 된 목줄은 손가락만큼 굵은 쇠사슬로 이어진다. 은빛으로 된 쇠사슬은 여기저기 부식되고 피가 묻어 흉흉한 꼴이었다.

    죽 이어지는 쇠사슬의 끝은… 지호의 발목까지 이어진다. 지호의 발목에서 무릎까지, 쇠사슬이 몇 바퀴나 칭칭 감기고 묶여 있었다. 도저히 풀어낼 수 없을 것처럼 복잡하게.

    무게감 없는 환상이었지만 너무 강렬한 인상에 지호는 다소 압도되었다.

    지호에게는 너무도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이원에게는 전혀 안 보이는 모양이었다. 이원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하긴, 주이원이 이런 걸 걸고 나타났다면 사방에서 플래시 세례가 터졌겠지.

    일단, 이게 뭔지는 알 것 같은데…….

    지호는 숨을 고르고 당황한 낯을 멀쩡하게 고쳤다.

    “나 괜찮아.”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그럼 뭔데?”

    “…….”

    ‘네 목에 목줄이 걸려 있고 그 끝이 내 발이랑 연결되어 있어.’

    지호는 살짝 맛이 간 것 같은 말을 하는 대신 고개를 저었다.

    “잠깐 환각 같은 게 보였을 뿐이야. 지금은 멀쩡해.”

    “진짜? 여전히 보이는 것 같은데.”

    “뭐?”

    “네 시선이 가는 걸 보면 알 수 있거든. 뭔가 보고 있다는 걸.”

    “…….”

    이 쓸데없이 예민한 녀석. 지호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계속 보이긴 하는데… 이게 내 새 스킬 때문인 것 같으니까. 이제 괜찮아.”

    “정말이지?”

    “진짜야.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흐음…….”

    이원은 미심쩍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잔뜩 의심의 빛이 섞인 눈이 지금 당장이라도 지호를 몰아붙여 추궁하고 싶은 듯 했다. 하지만 이원은 지호를 몰아붙이는 대신 한숨을 쉬었다.

    “나중에 말해 줄 거지?”

    “……응, 물론.”

    이런 부끄러운 걸 말해 주고 싶진 않은데, 이원이 한발 양보하는 걸 보니 싫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보다 조사는 어떻게 된 거야?”

    “잠깐 멈췄지. 너 갑자기 던전에 빠졌대서.”

    지호가 허둥지둥 말을 돌리자 이원은 순순히 대답했다.

    “야. 뭐 어려운 던전이라고 일을 미뤄?”

    지호의 힐난에 이원이 어깨를 으쓱였다.

    “걱정되잖아.”

    “어차피 너 온다고 해서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자기, 지금 나의 정성스러운 기도를 무시하는 거야? 서방님의 무사 기원을 기도하며 사흘 밤낮으로 기도했는데?”

    이원의 닭살 돋는 말에 지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너 혼자 일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멋대로…….”

    “김태용도 걱정되니까 돌아가자고 했어.”

    “……김태용 헌터가?”

    좀 의아했지만, 생각해보면 태용과도 꽤 친해졌다. 김태용도 꽤 걱정이 많은 성격이었으니… 그럴 수도 있었겠지.

    “신지호.”

    “응?”

    이원의 굳은 목소리가 들렸다. 의아해서 돌아본 얼굴은 평소의 이원과 똑같았다. 그는 씩 웃으며 지호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귓가에 속삭였다.

    “그보다 던전에선 별 일 없었지?”

    “응, 괜찮았어.”

    “연하 취향이 생긴 건 아니고?”

    “아니라니까. 그냥 나이도 비슷하니까 가끔 연락이나 하기로 했어. 친구처럼.”

    “바람피우지는 마.”

    “안 피우… 아니, 애초에 피우고 말고 할 것도 없거든?”

    “하지만 지호한테 손대는 상대는 내가 죽여 버릴 테니까, 안 피우는 게 좋지 않을까.”

    “……과격한 말 좀 하지 마. 그냥 친구니까.”

    “응.”

    “쉽게 넘어가네?”

    “그건 눈이 덜 불온해.”

    “불온한 건 또 뭐야?”

    “그런 게 있어. 뭐, 어차피 예전에도 지호는 친구 많았잖아? 하나하나 다 질투하지는 않아.”

    “…….”

    거짓말쟁이. 참는 기색이 역력한 이원을 보며 지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최남솔의 태도는 담백한 축에 속한다는 거겠지. 사실 지호가 남솔을 경계하는 만큼, 남솔 또한 지호를 경계했다. 지금은 골치 아픈 계약의 상대가 되었으니 어찌해야 좋을지 궁리하면 또 모를까. 이상한 흑심 따위는 전혀 없을 것이다.

    “일단 자리 옮겨서 얘기하자. 자기도 좀 쉬어야지.”

    “응.”

    갑자기 생겨난 줄 때문에 이동에 제한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원이 멀어지면 자연스럽게 고리가 늘어나 사슬의 길이가 늘어난다. 지호는 한숨 돌리고 얌전히 이원을 따라갔다.

    차의 운전석에는 사람 대신 이원이 만든 정교한 골렘이 앉아 있었다. 운전을 떠맡긴 채, 이원은 지호와 함께 옆 좌석에 올랐다.

    “어디로 가는데?”

    “미르.”

    “……미르 길드?”

    “그쪽 정보망이 쓸 만하더라고. 음, 몇 가지 소득은 있었거든.”

    “그래? 뭔데?”

    이원은 대답 대신 지호를 잡아 눌렀다. 얼결에 반쯤 누운 지호가 저항하자, 이원은 그대로 꾹 눌러 지호의 머리를 제 허벅지 위에 얹었다.

    “일단 좀 쉬어. 막 나왔으니 피곤할 텐데.”

    “괜찮은데…….”

    “미르 길드로 가는 대신 우리 집으로 가기 전에 누워 있어. 엄청 급한 일도 아닌데 뭘 서둘러.”

    “하지만 그냥 이야기 정도는…….”

    “내가 말해 주면 또 그걸 고민할 거잖아? 잠깐이라도 쉬어.”

    “…….”

    지호를 지나치게 잘 아는 말에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결국 지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얌전히 이원의 허벅지에 머리를 기댔다.

    옛날에는 이런 일이 꽤 있었지.

    희미하게 떠오른 기억 속. 몸이 약한 지호는 어지럼증을 호소할 때가 많았다. 그러면 이원은 지호를 제 몸에 기대게 만들고 안심시켜 주었다.

    ‘괜찮아, 내가 있으니까.’

    그렇게 속삭이면서.

    아픈 사람을 계속 챙기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평소에 다정한 지호도 너무 아플 때는 저도 모르게 이원에게 짜증을 부리곤 했으니까. 하지만 이원은 단 한 번도 지호에게 화를 낸 적 없었다. 그는 늘 지호에게 다정했다.

    이원이 아니었더라면 지호는 지금처럼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조금 더 신경질적이고, 사람의 눈치를 보고, 예민한 사람으로 자라지 않았을까.

    자신을 지탱해 주는 이원의 존재 덕분에 지호는 신경을 갉아 먹는 고통에 잡아먹히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분명, 이런 결과가 나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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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의 반려

    등급EX
    설명수호신 ‘멸망의 대적자’의 고유 스킬.
    자신과 맺어질 운명의 반려를 확인할 수 있다. 반려는 스킬 사용자에게만 보이는 끈으로 서로 엮여 있으며, 끈의 상태로 반려와의 상성을 확인할 수 있다.
    반려와의 퀘스트 완료 시, 새로운 스킬을 각성한다.
    주이원잃어버린 기억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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