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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수상한 녀석들(10) (211/283)
  • 30. 수상한 녀석들(10)

    지호는 태용이 가져다 준 차가운 차를 벌컥벌컥 마셨다. 어미 새가 먹이를 먹는 아기 새 보듯 지호를 바라보던 태용이 물을 다 마시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천희성의 어머니에 관해 ‘정확히’ 아는 이는 없었습니다.”

    “……정확히는?”

    “다만, 천희성의 어머니인 박정림 님과 몹시 닮은 이를 아는 자가 있었습니다. 박해림이라고 하는 분입니다.”

    박정림과 박해림. 나란히 두고 보면 동기간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만큼 닮은 이름이다.

    태용이 손바닥을 들어 올린 채 스킬을 썼다. 그러자 태용의 손 위로 정장을 차려입은 여자의 환영이 떠올랐다.

    “이 사람이 젊은 시절의 박해림입니다.”

    “……정말 닮았네요.”

    박정림은 그다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배우였다. 남은 사진이 있어 그녀의 얼굴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박정림과 박해림은 놀랍도록 닮은 얼굴이었다.

    “먼 옛날, 박대웅이라는 자가 산신인 호랑이와 혼약을 맺었습니다. 이후, 박대웅과 호랑이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특별한 주술을 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주술로서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였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전래 동화 같네요…….”

    “실제로도 그 지방에는 설화로 남아 있을 겁니다.”

    살짝 웃은 태용의 얼굴이 이내 어두워졌다.

    “박대웅의 자손들은 몇 대가 이어지는 동안 상서로운 이로 모셔지며 사람을 도왔습니다.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평화로웠습니다.”

    “아…….”

    “당시의 박 가家는 한 지방에 머무르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호랑이의 피도 옅어져 힘이 약했지만, 소소한 주술을 써 가며 마을 사람들을 도왔다고 합니다.”

    힘을 잃어 가도 사람들 사이에 섞인 채 잘 지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다만 마을 사람들 사이에 심각한 다툼이 있었고… 끝내, 주술을 쓸 수 있는 그 가족들이 삿된 것으로 몰렸습니다. 그러다가 박 씨의 장녀가 살해당했습니다.”

    “흔한 얘기지.”

    이원이 뻔하다는 듯 코웃음 쳤다. 박대웅과 호랑이, 그 자식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이었다. 하지만 현실에는 마침표가 없으므로,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가 평화롭게만 흘러가긴 어렵다.

    “하여, 당시 호랑이의 피를 이었던 아비가 복수를 위해 정말로 삿된 것을 불러들였습니다. 마을은 참혹한 최후를 맞이하였고… 복수한 남자는 남은 일가족과 함께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평생 떠돌아다녔다고 합니다.”

    다른 마을에 정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쪽을 택한 건, 같은 인간을 향한 불신 때문이었으리라.

    “떠돌아다니면서 박 씨는 주술로 벌어 먹고살았습니다. 자연히 아비의 일이 아이들에게도 대물림되다가, 그렇게 가문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이후, 그들은 힘이 약해지지 않도록 신이나 요괴의 피를 섞으며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영 좋은 느낌은 아니네요, 여러모로…….”

    “네. 처음 선조 때는 훨씬 더 이로운 주술이었으나… 삿된 것과 피가 섞이는 순간, 힘 역시 오염되었습니다. 그들이 가장 강력하게 힘을 발휘하는 분야가 바로 저주입니다.”

    태용은 무척 꺼림칙하단 얼굴로 말을 이었다.

    “현재 이들이 사용하는 주술은 피나 산 제물을 필요로 합니다.”

    “설마 가장 강력한 재료는 주술사 자신이라거나, 뭐 그런 건가요?”

    “맞습니다.”

    소름이 끼치는 이야기였다. 지호는 괜히 서늘한 기분이 팔을 쓸었다. 자신을 재료로 강력한 주술을 쓸 수 있는 박정림이 죽은 게 신지호가 태어난 다음 날이라니.

    “그래도 그때라면 녹스나 우리 쪽과는 상관없어.”

    “……아, 그러게.”

    이원의 말대로, 지호가 태어난 다음 날이라면 아직 주이원이 이곳에 오기 전이다. 때문에 지호의 그릇이 손상되어 시스템이 쪼개질 일도 없다.

    “그 시점에 신지호 님의 존재를 명확히 인지한 존재는 몇 없습니다. 아마 단독으로 저지른 일은 아닐 겁니다. 만약 정말로 박정림이 신지호 님께 뭔가를 시도했다면, 레비아탄이 사주했을 확률이 높긴 한데…….”

    “하지만 레비아탄도 딱히 제가 죽기를 바라는 건 아니잖아요?”

    “주술이 꼭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주술의 정체조차 모르니 골치 아프다. 분명 시스템창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양호진이 시스템창을 속였듯, 이 시스템창도 언제나 만능은 아니다.

    물론 박정림의 주술이 실패했을 가능성도 높다. 아무리 강력한 주술이라지만 지호는 이 별의 관리자니까. 그때는 그릇도 깨지지 않은 상태였으니 더더욱, 그런 것에 걸릴 리는 없다.

    다만 성공이든 실패든, 천희성이 지호에게 내보이는 노골적인 미움을 생각해 보면… 박정림의 죽음 자체는 지호와 연관되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천희성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신경이 쓰이네요. 일단 주술과 관련된 스킬은 없었는데…….”

    직접 배우지 않고 아이템의 형태로 갖고 있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야 별일 없었지만…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이 사람이 어딨는지는 아나?”

    지금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이원의 질문에 태용이 고개를 저었다.

    “행적이 끊겼습니다. 해외로 나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좋아. 그럼 박해림을 찾아봐야지.”

    곧장 의욕적으로 나서려는 지호를 이원이 붙잡았다. 지호가 인상을 찌푸린 순간, 태용까지 나서서 지호를 말렸다.

    “신지호 님께서는 남아 계시는 게 좋겠습니다. 박해림은 박정림과 같은 주술사입니다. 만약 박정림이 무언가를 해 두었다면, 박해림을 만나는 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야 그렇죠.”

    고집부릴 수는 없다. 지호가 얌전히 포기하자 이원이 흐뭇하게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자기야. 내가 금방 알아올 테니까.”

    “저도 돕겠습니다.”

    앞으로 나서는 태용을 이원이 고깝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애송이랑 같이 알아보지.”

    이 땅의 이능력자라면 태용의 도움을 받는 게 훨씬 편하다. 이원의 말마따나 지구의 이능력자들은 수준이 꽤 높아, 이방인인 이원이 다 파악하기는 힘들었으니까.

    순순히 수락한 이원과 달리, 태용은 이원의 말이 영 거슬리는지 그를 흘겨보았다.

    “애송이가 아닙니다.”

    “애송이가 애송이지, 괜히 꿈틀거리지 마.”

    “제가 애송이라면 당신은 무엇입니까? 우희 님이 그러시길, 당신이 신지호 님을 탐하는 것은 늙은이의 추태라고 하셨습니다.”

    “…….”

    “푸흡.”

    얼굴을 찡그린 이원의 옆에서 지호는 웃음을 참는 데 실패했다. 이원의 싸늘한 시선이 닿자, 지호는 황급히 변명했다.

    “아, 아니. 그냥 좀 웃겨서.”

    “너무해, 자기.”

    “넌 스물다섯 살이잖아. 김태용 헌터는 이제 스물한 살. 자, 애송이니, 늙은이니 하지 말고 잘 다녀와.”

    이 화제를 계속 끌고 가 봤자 좋을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이원과 태용 둘 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출발합시다. 흔적을 찾아 두라 하였는데, 시간을 끌면 놓칠 수 있습니다.”

    “음.”

    서두르는 태용의 말에 이원이 난처한 기색으로 지호를 돌아보았다.

    “자기야, 혼자 갈 수 있겠어?”

    “내가 애냐?”

    “허소리 불러서 같이 가. 누가 맛있는 거 준다고 해도 따라가지 말고.”

    지호는 이원을 걷어찼다. 간신히 피한 이원은 실실 웃으며 도망쳤다.

    “기념품 사 올게, 자기야.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저 멍청이 잘 부탁드린다고 하려는데, 태용이 먼저 선수 쳤다.

    “저, 저도 사 오겠습니다.”

    “…….”

    이상한 건 안 배워도 되는데.

    “네, 그러세요…….”

    다 끝나고 여유 되면 사 오겠지. 지호는 바쁘게 움직이는 두 사람을 배웅했다.

    지호는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은 여유가 있지만 곧 도로가 꽉 막힐 시간이다. 괜히 허소리를 부르느니 혼자 빠르게 돌아가는 편이 나았다.

    ‘예전처럼 대응 못 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주이원이 준 차는 걸어 다니는 요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시스템 관리

    전방 1,254m 이내에서 균열이 발생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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