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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수상한 녀석들(5) (206/283)
  • 30. 수상한 녀석들(5)

    “왜 그렇게 생각해?”

    말이 없던 상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지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저를 응시하는 상대를 노려보았다.

    “뻔뻔하시네요.”

    “영문 모를 소리나 늘어놓는데 내 입장에서도 설명이 필요하지.”

    “미리 감시를 붙였거든요. A급 이상은 전부 다.”

    게네시스와 연관된 헌터를 찾기 위해 미끼를 던지면서 모두 감시를 붙였다. 대대적인 준비를 한 후에 시작한 작업이었다.

    다만.

    “당신에게는 감시를 붙이지 않았어요.”

    딱 한 명만은 감시망에서 벗어났다. 예외로 둔 이유는 하나다. 눈앞의 상대를 감시하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내가 사라졌을 때와 내가 다시 발견됐을 때, 두 시간대 모두 행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던 사람은 당신뿐이거든요.”

    “심증뿐이라는 거네.”

    “아뇨.”

    지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애초에 보안이 철저한 현관 앞에서 쓰러져, 청람의 기밀 구역에서 깨어났을 때부터…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남의 눈을 피해 드나들 수 없는 곳이니까.

    “이지영은 뛰어난 연금술사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아무리 그런 사람이라도 청람의 기밀 구역에서 사람을 갑자기 빼내는 게 가능할까요?”

    언뜻 이지영이 허수혁을 데리고 나간 것처럼 보이지만 틀렸다. 이지영은 시야를 교란했을 뿐.

    이지영의 목적이 허수혁을 숨기는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나타난 것을 감추는 데 있었다면. 그 잠깐 사이에 허수혁과 제 몸을 함께 빼낼 만한 능력자는 누구일까.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이동술사가 아니라면 불가능했겠죠, 황혜림 씨.”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유명한 S급의 이동술사. 혜림이 아니라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황혜림이라면 이원과 지호의 집까지 온 적도 있다. 청람 길드는 더욱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한번 가 본 적 있는 장소라면 어떻게든 이동하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게다가 몇 년간 주이원의 신뢰를 얻는 데도 성공했으니.

    “재미있는 추리네.”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받아쳤으나, 혜림은 구구절절 부정하지도 않았다. 모든 것을 장난처럼 여기는 태도에 지호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왜 이원이를 배신한 거죠? 서로 협력 관계였잖아요.”

    “이원 씨랑 내가? 정확히는 이용하는 관계였지.”

    “……이용이라고 해도, 지금까지 잘 지내 왔잖아요. 굳이 배신할 이유가 있었나요?”

    “배신이고, 협력이고. 애초에 말이야…….”

    언뜻 지호에게 동조하는 듯 혜림이 나지막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나 혜림의 눈에 떠오른 건 보다 선명한 감정이었다.

    “전제부터 이상하지 않아? 왜 내가 남에게 도움받는 삶을 살아야 해?”

    분노.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으며 혜림의 얼굴은 점차 분으로 일그러졌다.

    “너도 조금은 알 텐데. 사람들이 원하는 건 내가 아니라 내 능력이지. 그러면서도 나를 파헤치길 원해. 아무 자격 없는 놈들이 내 가치를 매기려고. 내가 원해서 생긴 것도 아닌 내 능력이, 내게 어울리는지 검증하려고. 그렇게 나는 매번 사람들의 시선에 해부되어 저울 위로 올라가지.”

    황혜림의 말에 지호는 잠시 대꾸할 말을 잃었다.

    처음 주이원에게 도움을 청할 때부터 황혜림은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다. 제한 없는 공간이동이란 능력을 손에 넣길 원하는 자는 많았다.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능력. 혜림은 누구보다 자유로워진 듯 보였으나, 사회의 굴레 속에서 추격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게다가 황혜림 역시 이전의 지호와 마찬가지로 스테이터스는 S급에 미치지 않았으나 스킬의 유용성 때문에 S급으로 인정받은 이였다. 지금에 와서는 아무도 그녀가 S급 헌터임을 의심하지 않지만…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황혜림의 분노는 이해했다. 그러나 그 분노의 불길이 타인에게 옮겨붙는 감정의 갈래는 지호가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까지 해를 끼치겠다는 건가요? 게네시스가 무슨 목적인지 알기는 해요?”

    “설마 그걸 모를 만큼 멍청하게 보여?”

    지호의 말이 아주 우습다는 듯 혜림이 받아쳤다.

    “그리 어려운 이야기가 아냐. 내 인생에 장애물이 있으면 치워야 하지 않겠어? 나는 남들보다 장애물이 조금 더 크고 성가신 거고. 그뿐이지.”

    그러십니까, 하고 이해하기에는 지나치게 피비린내 나는 사고였다. 지호는 한숨을 내쉬고 이내 한 발짝, 황혜림에게 다가갔다.

    “당신 생각은 잘 알겠어요. 그러면 혹시 류대건 헌터도 당신에게 협력했나요?”

    “대건 씨는 나랑 별로 상관없는데.”

    “당신이 한 짓을 죄다 뒤집어써도요?”

    “무슨 상관이야? 게다가 대건 씨는 그만큼 나에 대해 잘 알지도 않아.”

    “정말인가요.”

    지호가 낮게 속삭였다. 기이하리만치 음침한 목소리에 혜림의 몸이 움찔했다. 성큼 다가온 신지호가 황혜림의 양 손목을 도망치지 못하게끔 꽉 붙잡았다. 메마른 손이 혜림을 옭아맸다.

    “이원이를 구해 달라고는 안 할게요. 당신이 납치해 간 다른 사람이라도 돌려줘요.”

    “그게 무슨 뜻이야?”

    “모르는 척하지 마세요. 그래  자 소용없으니까.”

    신지호가 음산하게 속삭였다. 혜림이 예전에 봤던 신지호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 며칠간 한숨도 잠들지 못한 것처럼 창백했으나 눈에는 귀기가 넘실거렸다.

    소름이 끼친 혜림은 손목을 비틀어 빼려고 했으나 지호는 꽉 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바싹 고개를 들이밀어 낮게 속삭였다.

    “알려 줘요, 황혜림 씨.”

    “이거 놔!”

    신지호에게서부터 흘러오는 서슬 퍼런 냉기가 혜림의 몸을 잠식했다. 커다란 얼음 기둥을 삼킨 것처럼 내뱉는 숨조차 시리다. 머리가 아찔했다.

    황혜림은 신지호에게 굴복할 것만 같다고 느꼈다. 상상도 못 해 본 일이었다. 혜림이 본 지호는 금방이라도 이원에게 먹힐 것처럼 순진한 소년의 이미지였기에.

    하긴, 그 괴물을 제 가족처럼 옆에 끼고 거의 평생을 자라온 인간이다. 끼리끼리 논다는데, 신지호라고 멀쩡할 리 없지.

    조금 놀려 주겠다는 생각은 사라졌다. 더 이상 신지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도망치고 싶었다.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애를 쓰던 황혜림은 문득, 의문을 느꼈다.

    ‘아니, 난 왜 뿌리치려고 하고 있지?’

    신지호의 말대로 황혜림은 뛰어난 이동술사다. 그녀는 한번 가 본 곳이라면 어디든 다시 갈 수 있었다. 스킬을 써서 도망가면 여기서 도망치면 그만인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아니, 애초에…….

    “…….”

    여긴 어디지?

    혜림은 차가운 시선을 피한 채 간신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박한 가정집의 풍경. 분명 눈에 익은 곳이다. 자주 찾아갔으니까. 그러나 자신이 있던 공간은 아니다. 이 시점에서 혜림이 제 발로 찾아갈 곳은 더더욱 아니었다.

    이곳은 황혜림의 경호원인 류대건의 집이었으니까.

    “하…….”

    한 방 먹었다는 것을 깨달은 혜림이 허탈하게 웃었다. 가볍게 쓰고 버리려던 남자였는데 두고 온 게 패착이었을까.

    깨달음과 동시에 혜림을 붙잡고 있던 손이 퍼석 무너져 내렸다. 주변 풍경이 허물어지는 걸 보며 혜림이 입술을 달싹였다. 지호는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끝끝내 말이 이어지진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황혜림의 꿈이 깨졌다.

    “……후.”

    황혜림에게 꿈을 선사했던 루 오퀼라스는 상대의 강한 반발에 튕겨 나왔다. 루는 신지호가 교란하는 틈을 타 황혜림의 기억을 먹어 치웠다.

    “…….”

    포식한 꿈과 기억을 곱씹던 루가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뭔가가 몹시 거슬렸으나… 당장 손을 쓸 일은 아니었다.

    천천히 기억 속에서 정보를 정리한 루는 곧장 몇몇 위치를 적어 송신했다. 필요한 만큼의 기억을 모두 먹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가 할 수 있을 만큼은 했다.

    할 일을 마친 루는 충직한 신하답게, 제 주인이 가장 걱정하는 상대를 돌아보았다. 신지호는 꿈속에서보다 더 창백한 낯빛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괜찮습니까.”

    “아, 네…….”

    지호는 꿈속의 감촉을 떨쳐 내지 못한 채 손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영 기분이 좋지 않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협박하는 거 썩 좋은 기분은 아니네요…….”

    “그 정도는 협박 축에도 끼지 않습니다.”

    “……주이원은 뭘 하고 다닌 건데요?”

    지호를 위로하려다 곤란한 질문을 받은 루가 눈썹을 들어 올렸다. 더 이상의 감정 표현은 하지 않은 채, 모른 척 루가 돌아섰다. 지호는 루를 더 곤란하게 만드는 대신 땀이 밴 손을 쥐었다 폈다.

    꿈을 이용해서 지호에게 접촉한 상대는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지호 역시 거기에서 힌트를 얻어 꿈을 이용했다. 공간을 이동하는 황혜림은 진작 자취를 감춘 지 오래고, 찾는다고 해도 금세 스킬을 써서 달아날 테니까.

    물론 황혜림의 꿈에 아무런 제약 없이 침입한 건 아니다. 여기에는 그녀와 긴밀한 관계였던 다른 이의 협조가 있었다. 황혜림과 연결될 만큼 그녀와 긴밀한 기억을 공유하는 이.

    “류대건 헌터, 정신 들어요?”

    “……네.”

    제 꿈을 제공한 류대건의 낯빛은 다소 창백했다. 단순히 스킬의 후유증인지, 꿈속에서 들은 황혜림의 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보다 더 급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일단 가 보십시오.”

    잠시 망설이던 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혜림, 즉 게네시스의 목표물은 지호나 이원만이 아니었으니까. 지호는 대건에게 고갯짓으로 인사하고 방을 나섰다.

    세간의 이목이 끌린 사이, 십수 명이 아무런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실종으로 보기 힘들 만큼 완벽한 증발이었다.

    누군가가 드나든 흔적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범인으로 짐작할 수 있는 건 한 사람. 이번 신지호 납치사건의 용의자 중 한 사람인 황혜림이었다.

    범인을 눈치챘다고 해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실종인지,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에 대한 단서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꿈을 이용해서 직접 범인의 기억을 읽어냈다.

    혜림이 ‘신지호 납치사건’의 범인임을 증명하려면, 그 이전에 수많은 사람을 제자리에 돌려놓기 위해서라면, 그리고 이원이 무죄임을 증명하려면… 지금 얻은 정보를 단서로 실종자를 수색해야만 했다.

    거침없이 나아가던 지호의 발이 멈췄다. 아직 용의자 신분에서 풀려나지 못한 이원이 태평하게 서 있었다.

    임시 협조를 전제로 풀려난 것이기에 이원은 자유의 몸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에게 저런… 짐승도 쓰지 않을 법한 목줄을 걸어 두는 건 대체.

    “자기야.”

    인권 유린의 현장에서 이원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기색으로 태평하게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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