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 수상한 녀석들(4) (205/283)
  • 30. 수상한 녀석들(4)

    뭉게뭉게 피어오른 검은 연기가 허공에서 형태를 갖췄다. 적당히 인간을 흉내 낸 찰흙 인형처럼 어설픈 생김새.

    ─ 안녕, 신지호.

    느릿하게 움직이던 그것은 입을 열지 않은 채 말했다. 철판을 손톱을 세워서 긁는 것처럼 날카롭고 소름이 끼치는 목소리였다.

    ─ 별건 아니고, 인사하러 왔어.

    “인사?”

    ─ 사실 인사로 끝내고 싶진 않았어. 직접 얼굴 보고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당신, 이지영이지?”

    지호의 질문에 상대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잠깐의 침묵 끝에 그것은 몸을 떨며 웃었다.

    ─ 맞아, 내가 이지영이야. 그래, 서로 다 아는 뻔한 말이나 하는 건 싫다는 거지?

    “됐고, 본론이나 말해. 나한테 뭘 원해?”

    ─ 무언가를 노린 건 네 쪽이 아니었을까? 너무 대놓고 찔러 봤잖아. 다 아는 뻔한 소리는 하지 말자는 거 아니었어?

    대중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꺼리던 지호의 갑작스러운 방송 출연, 때마침 던전에 들어간 주이원, 철통같이 경호 받던 지호의 주변에 생긴 묘한 공백.

    누가 봐도 수상쩍은 짓이긴 했다. 그래서 허수혁을 찔러 보면서도 오늘 당장 성과를 거둘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이렇게 곧장 납치할 줄은 몰랐지만…….

    잠든 사이에 뭔가를 한 것 같지도 않다. 허수혁이 기분 나쁜 짓을 하긴 했지만 그게 게네시스의 목적과 이어질 리도 없다.

    정말로 이지영은 뭘 노린 걸까.

    ─ 기왕 납치한 김에 제안이나 해 볼까. 좀 가만히 있으면 안 돼?

    “헛소리하지 마.”

    ─ 더 편한 길을 제시하는 것뿐이야. 너는 그냥 네 삶을 즐기기만 해. 꼭 우리 편을 들라는 것도 아냐. 굳이 미르에게 조종당하며 싸울 필요는 없잖아? 이기는 쪽 편을 들어. 그러면 녹스도 굳이 널 교정하려 들진 않을걸.

    “…….”

    ─ 그쪽에서는 꽤 과장해서 말했겠지? 우리의 목적 말이야. 하지만 우리도 비각성자를 모두 죽일 생각은 없어. 그래서야 지적 생명체의 숫자를 유지하기 힘들고, 결국 지구가 쇠퇴의 길을 걸을 것 아니야?

    “알긴 아네.”

    ─ 그래, 우리가 왜 다 죽이겠어? 다만 지배계층이 있다면 피지배계층도 있는 법이지. 약육강식이 자연의 흐름이야.

    그냥 다 죽여 버리겠다고 하는 쪽보다 더 질이 나쁘다. 당당하게 저런 말을 지껄이는 족속들이 정말로 지배계층이 된다면…….

    단지 생존하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순 없다. 저들이 바라는 세상은 산 자들의 지옥이 될 것이다.

    지호의 일그러진 얼굴을 본 이지영이 웃었다.

    ─ 물론 싫지? 알고 있어. 하지만 다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아? 일단 기억은 해 둬.

    “당연히 기억해 둬야지. 그쪽이 할 미친 짓을 똑똑히 알았으니 그걸 반드시 막기 위해서라도.”

    ─ 그래, 마음대로 해. 어차피 이번은 납치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니까.

    “뭐?”

    ─ 곧 내 말의 뜻을 알게 될 거야.

    멋대로 대화를 마친 검은 연기가 형체 없이 흐트러지는 듯하더니 몸집을 부풀렸다. 순식간에 공간을 꽉 채웠던 그것은 서서히 허수혁을 집어삼켰다. 보이지 않게 될 정도로.

    “안녕, 지호야. 다음에 또 봐.”

    연기에 감싸여 더는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허수혁이 작별 인사를 고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검은 연기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맥없이 흩어졌다. 안쪽에 있던 허수혁 역시도 증발한 것처럼 사라졌다.

    이지영의 말이 무슨 뜻인지, 상황을 판단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갑자기 저 멀리서부터 요란한 발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누군지 몰라 잔뜩 경계하는 사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던 문이 뜯겨 나가고 빛이 쏟아졌다. 무언가를 찾기 위해 켠 랜턴의 빛이 캄캄한 어둠을 단번에 밀어 냈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당장 앞이 보이지 않았다. 지호가 가장 먼저 인식할 수 있는 건 소리였다.

    “신지호 헌터, 찾았습니다! 지하 7층의 1급 기밀 구역입니다.”

    문을 박차고 찾아온 이가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무전의 내용은 당혹스러웠다. 지호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구하러 오기로 사전에 말을 했었지만, 이렇게 요란한 방식을 쓰려던 건 아니었다.

    천천히 눈이 빛에 적응하며 상대의 모습이 보였다. 복장을 보아하니 헌터 협회 소속의 전투원이었다. 지호에게 다가오는 그녀의 얼굴에는 순수한 걱정만이 서려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아요. 그보다 이게 대체…….”

    지호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저 멀리서 절박한 외침이 들렸다.

    “지호야!”

    “……누나?”

    그곳에 있는 건 놀랍게도 신지혜였다.

    그때, 지호에게로 다가오던 신지혜가 협회의 전투원들에 의해 가로막혔다. 전투 능력은 일반인에 가까운 신지혜이건만 그녀를 막는 손길은 몹시 거칠었다. 누나의 취급을 보며 지호는 화들짝 놀랐다.

    뒤늦게 신지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급한 상황에서도 신지혜는 현장에 나서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 차림은 길드에 출근할 때와 마찬가지로 완벽한 오피스룩이었다. 그렇다는 건…….

    “신지호 헌터.”

    “네?”

    “이곳은 청람 길드의 1급 기밀 창고입니다.”

    지호의 눈이 경악으로 동그랗게 커졌다.

    실종 신고가 되었던 신지호가 31시간 만에 청람 길드의 내부 창고에서 발견된 순간이었다.


    헌터 스페이스

    제목: 주이원 왜 잡혀감?

    던전 나오자마자 헌협에서 잡아갔어;

    주이원은 얘기 듣더니 얌전히 따라감

    무슨 일 있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