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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대비(2) (184/283)

27. 대비(2)

감동의 시간은 길다면 길지만 짧게 끝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식사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지호는 가지 맛이 나는 감자죽 비슷한 음식을 힘겹게 먹어 치우고 이원을 똑바로 앉혔다.

“자. 이제 자백해.”

“어떤 플레이야, 이건?”

“헛소리하지 말고. 그래서 지금 네 상태가 어떤지 정확히 말해.”

또 얼마나 탈탈 털어야 말해 줄까 걱정한 게 무색하게도, 이원은 쉽게 입을 열었다.

“음, 지구로 치면 B에서 C급 정도?”

“…….”

지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정말 믿을 수 없었지만 이런 걸로 농담할 녀석은 아니다. 게다가 의외로 순순히 대답한 게, 본인도 지금 상태가 심각하기는 심각한 걸 알고 있으니 공유 차원에서 말한 것 같다.

“대체 얼마나 다치면…….”

“그것도 있지만 급하게 차원 이동해서 그래. 놓칠까 봐 서두르느라.”

“…….”

“이제 멀쩡하잖아, 그렇지?”

“아니… 하나도 안 멀쩡하잖아.”

다시 울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조금 전에 있는 대로 펑펑 쏟아 내서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B급에서 C급이라고 한 걸 봐서는 C에 가까울 거다. 그 정도 등급이면 이곳의 몬스터를 제대로 상대하기도 어렵다.

“아니, 자기야. 내가 경험이 있는데 능력치가 그 급이라고 진짜 B급 수준밖에 안 되겠어? 그보단 더해.”

자존심이 상한다는 듯 정정하는 이원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이걸 어째야하나, 고민하던 지호는 문득 다시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차원을 넘은 이원이 썼던 마법은 아무리 봐도 B급 수준이 아니었다. 이원이 강력하다고 주장하는 건 전투의 요령이지 힘의 세기가 아니다. 하지만 그때 쓴 마법은 최소 A급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위력이었다.

“그때 지호 붙잡고 있었잖아.”

“……아.”

지호는 조금 늦게 이원의 말을 알아차렸다. SSS급이나 되지만 평소에는 활용할 일이 많이 없었던 스킬, [수속성 강화].

잘만 활용한다면 어마어마한 위력을 낼 수 있는 스킬이지만, 갑자기 자신의 한계보다 훌쩍 강해진 능력을 제대로 제어하는 사람이 없어서 방치됐다.

하지만 평소 EX급이던 주이원이라면 SSS급 위력을 제어하는 게 어렵지 않을 터였다.

“나는 수속성 마법이 특기거든. 자기랑 붙어 있으면 적은 마력으로도 위력을 낼 수 있으니까, 어중간한 수준은 괜찮을 거야.”

“그건… 다행이네.”

이원의 가장 큰 장점은 어떤 속성의 스킬이든 자유자재로 사용한다는 점이지만, 하나의 속성만 써도 그를 이길 자는 몇 없다.

“자기랑 붙어 지내면서 거머리처럼 마력만 빨아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도움이 되네.”

“뭐?”

이원이 작게 중얼거린 말에 지호가 정색했다. 이원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그 [수속성 강화]스킬 말이야. 내가 관리자로서 가진 스킬이 물과 관련되어 있잖아? 그런 나랑 계속 붙어 있다 보니 생긴 거거든.”

“아니, 거머리니 뭐니 한 거.”

“아.”

정말 무의식중에 한 말이었는지 이원이 그제야 실수했다는 얼굴을 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상태가 좋지 않은 지금, 이원은 이전처럼 완벽하게 자신을 단속할 수 없을 테고… 저건 결국, 치장하지 않은 이원의 본심에 가까운 말일 테니까.

“……미안해. 그냥 피해만 줬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돌고 돌아서 도움이 하나쯤은 되었구나 싶어서 한 말이야.”

굳이 따지자면 지호가 여기 떨어진 것도 이원 때문이지만. 이원은 거기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지호는 속상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말하지 마.”

“으응. 그런데 안심한 것 같아서 미안한데, 자기야.”

“응?”

“대던전이 올 거거든.”

“…….”

지호도 알고 있었다. 이원이 쓰러져 있는 동안 홀라당 까먹고 있었을 뿐. 

지호는 시스템창을 열어 다시 한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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