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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이세계(1) (175/283)

25. 이세계(1)

지호는 자꾸만 감기는 눈에 힘을 주려 애썼다. 어지러워서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들다. 단순히 칼에 찔려서 이 정도로 상태가 나빠질 것 같진 않은데… 독이라도 묻어 있었던 걸까.

누워 있을 때는 그나마 나았는데 몸을 일으키니 더더욱 고통스러웠다. 쓰러지지 않은 건 그저 오기에 가까웠다.

“그냥 항복하는 게 어때? 여기서 더 흠집 내면 상품 가치 떨어지는데.”

지호는 갑자기 노네임의 길드원들이 보고 싶어졌다. 이 자리에 허소리가 있었다면 시원하게 손가락 욕 정도는 날려 줬을 텐데.

지호가 대꾸 없이 검을 고쳐 쥐자 상대가 여유롭게 이죽거렸다. 지호가 들고 있는 것보다 조악한 단검을 들고 있지만, 이길 자신이 있다는 듯.

“안 오면 내가 먼저 간다?”

씩 웃는 여자의 환영이 순식간에 흐릿해졌다. 상당히 가벼운 차림이라고 생각했는데 속도가 장점이었던 듯. 여자가 휘두른 검을 지호는 간신히 받아쳤다.

“윽!”

쳐낸 후 뒷걸음질 치는 지호를 보며 여자의 눈에 이채가 서린다.

“운이 좋은데?”

비웃는 듯하면서도 여자는 방심하지 않고 신중하게 뒤로 물러섰다. 여자의 말대로 운이 좋았지만, 운만으로는 검을 막아 낼 수 없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듯 여자가 신중하게 숨을 골랐다.

곧장 다시 쇄도하는 검. 일직선으로 찔러 들어오는 듯 보이지만 사실 마력은 오른쪽을 향하고 있다.

상대가 방심하지 않고 곧장 스킬을 써 줘서 다행이다. 눈으로 보고 피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지구를 떠나면서 둔해졌던 감각이 돌아오며 마력을 예민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으니까.

흐릿한 시야를 포기하고 아예 눈을 질끈 감았다.

짧은 순간이지만 지호는 과거의 기억을 되짚는다. 그가 아주 오랫동안 봐 온 검의 궤적이 있었다. 그가 자신을 싫어할 때부터 계속, 옆에서 함께 싸우며 어떤 식으로 휘두르는지 봐왔다.

감금당해 할 일 없이 시간을 때우는 동안 지호는 과거 임승주가 보여준 검의 궤적을 따라 해 보았다. 아라베크가 잔소리해서 조금은 지호의 몸에 맞게 고쳐졌지만, 오래 봐 왔고 그만큼 익숙한 검술이다. 이제는 머리로 기억하는 것뿐 아니라, 몸에 체득할 수 있을 정도로.

카앙!

흰빛을 뿜어내는 지호의 검이 상대의 단검을 그대로 날려 버렸다. 눈을 뜨자 희미하게 경악한 상대의 얼굴이 보인다. 지호는 파들거리는 팔에 힘을 주고, 단검을 날려 버린 검을 회수하듯 당겼다.

“아아아악!”

고통스러운 비명에 오히려 긴장할 때보다 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상대를 제대로 확인하기도 전에 눈 앞에 잔뜩 노이즈가 낀 창이 깜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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