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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균열(2) (171/283)
  • 24. 균열(2)

    방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아라베크였다. 이원이 올 줄 알았는데. 지호는 조금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졸지에 불청객이 된 아라베크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허리 숙여 인사했다.

    “지호님, 불편하신 것은 없으십니까?”

    “이 꼴을 봐요. 없겠어요?”

    “죄송합니다.”

    사과하는 아라베크를 보며 지호는 한숨을 삼켰다.

    “무슨 일로 왔어요?”

    “식사를 차려 드리려고 왔습니다.”

    아라베크가 눈짓하자 문이 열리고 음식이 들어왔다. 족히 열두 명은 먹고도 남을 법한 양을 보고 지호는 기가 질렸다.

    “혹시 주이원이 식사하러 오나요?”

    “이원 님께서는 저녁에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뭐하다가 저녁에 와요?”

    아라베크가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주는 느낌이 영 섬뜩하다. 설마 기절하기 전 봤을 때처럼 누군가를 집어 삼키고 있을까?

    입맛이 뚝 떨어진 지호를 두고 아라베크는 정중히 인사한 후 방을 빠져나갔다.

    “하…….”

    거대한 식탁을 가득 채운 음식을 보니 낭비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남기면 누가 먹긴 하나? 식탁 위를 훑어보던 지호는 익숙한 모양의 음식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이원이 신경 쓴 걸까. 식탁 위에는 한식을 모방한 게 꽤 많았다.

    지호는 신경질적으로 자리에 앉았다. 밥을 안 먹으면서 시위한다는 비생산적인 짓은 할 생각이 없지만 영 입맛이 없었다.

    한식을 그럴싸하게 구현한 음식은 이계의 음식에 질린 지호에게 잘 맞았지만, 조금 더 먹다 보니 속이 좋지 않았다. 지호는 인상을 찌푸리며 식기를 내려놓았다.

    “…….”

    아무것도 안 하는데 지친다. 지호는 식탁에서 멀어져 소파에 털썩 앉았다. 앞으로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길을 잃은 채, 지호가 멍하니 앉아 있는데…….

    눈앞에 벌레처럼 까만 무언가가 날아다니는 걸 발견했다.

    분명 이곳 궁 안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벌레다. 지호가 그것을 노려보자, 검은 콩 같은 것이 아래로 툭 떨어져 쪽지로 변했다.

    지난번에 배 위에서 받았던 것과 같은 쪽지였다. 살짝 열어 보니 안에 문장이 쓰여 있다.

    안녕하십니까. 다시 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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