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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5. 사랑의 방법(2) (163/283)
  • 외전5. 사랑의 방법(2)

    “너나 잘해라, 너나.”

    화살을 돌리기 위해 유경우는 괜히 주이원에게 핀잔했다.

    굳이 따지자면 아직 제게 미련이 남은 신지혜를 공략해야 하는 유경우 쪽이, 상대가 사랑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주이원보다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저는 잘하고 있는데요?”

    태연한 척 대꾸했지만 주이원에게서는 살기가 줄줄 흘러넘친다. 저 사나운 기세나 어떻게 하고 대답할 것이지…….

    유경우는 살벌한 기세에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아니, 먼저 시비를 걸어 놓고 성내는 건 반칙 아닌가.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기에 상대는 지나치게 살벌한 미친놈이었다.

    ‘예전부터 지호 관련해서는 농담도 못 하긴 했지만.’

    지혜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나. 별생각 없이 지호에게 ‘지혜 닮아서 인기 많을 것 같은데. 이원이랑만 어울리지 말고 여친도 사귀지, 그래?’라고 생각 없이 말한 적이 있다.

    지혜가 애들 신경 쓰지 말라고 했을 때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그의 전처는 필요 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귀에 담아 뒀어야 했는데…….

    다음 날, 정원을 산책할 겸 걷던 유경우의 앞에 주먹만한 고무공이 떨어졌다. 어디까지나 고무공이라 맞아도 다치진 않았겠지만, 맞았으면 꽤 아팠겠다 싶을 만큼의 위력이었다.

    어디서 떨어진 거지. 무심코 위를 올려다 본 유경우는 주이원과 눈이 마주쳤다.

    주이원은 고무공을 자신이 던졌다는 걸 숨길 생각도 없는지, 공을 잡고 있던 손 모양 그대로 창밖에 뻗고 있었다.

    유경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주이원은 미소 지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착실한 모범생의 훈훈한 미소라고 여겼겠지만, 어딘가 소름끼치는 기세가 담겨 있었다.

    ‘다음에는 이거예요.’

    손을 거둔 주이원이 툭, 건드린 건 창가 근처에 세워둔 제법 커다란 화분이었다. 2층에서 슬쩍 식물 끄트머리를 볼 수 있을 만큼 커다란 화분.

    얼빠진 유경우를 두고 주이원은 훌훌 가 버렸다.

    황당한 심정이었지만 유경우는 주이원을 혼낼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일련의 과정이 지나치게 현실감이 없었을 뿐더러……. 어차피 피해당한 것도 아닌 데다가…….

    사실 외부인인 자신의 말을 이 집안사람들이 얼마나 믿어 줄까 싶기도 했고. 주이원은 굴러들어온 돌이라기엔 완벽히 이 집안의 가족이 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안다. 아마 누군가에게 말했다면 믿어 줬으리란 사실을.

    신지호를 제외한 가족은 주이원의 섬뜩한 면모에 관하여 이미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그저 가족으로 포용하였고, 실제로 지호만 곁에 붙여 주면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니 지켜보고 있을 뿐.

    그리 생각하면 확실히 주이원도 난 놈이지만, 신씨 일가 전체가 대단하다. 유경우라면 기겁하며 떼어 뒀을 것 같은데.

    어찌 보면 그때 신씨 일가의 방침은 인류를 살린 선택이었을 지도 모른다. 덕분에 주이원이 얌전히 신지호 옆에 붙어 있으며 자랐고, 신지호의 존재가 안전핀처럼 존재하는 한 계속 인류의 안녕을 위해 열심히 노력할 테니까.

    “형.”

    “응?”

    “형은 상대의 처지를 이해해서 물러나는 게 더 옳은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갑작스레 찔러 들어오는 유경우는 입을 다물었다.

    주이원과 유경우의 사랑은 대조적이었다.

    상대를 생각해서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유경우와, 상대가 어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고 다가서는 주이원.

    이미 제 안에서 결론이 나 있음에도 유경우는 신중하게 생각한 다음 입을 열었다.

    “나도 뭐가 옳고 그른지는 몰라. 너도 잘 알겠지만.”

    “…….”

    “다만 지혜는… 내 손을 놓은 거고, 지호는 그냥 기억에 혼동이 있는 거잖냐.”

    물론 유경우가 먼저 놓자고 했지만, 어쨌든 두 사람의 사이가 갈라진 건 최종적으로 합의에 의해서였다. 하지만 지호는 다르다.

    “지호가 날 잊고 싶어서 잊었을 수도 있잖아요. 다른 사람은 다 가만히 두고 나만 잊었는데.”

    “지호가 그럴 리 있겠냐. 너도 잘 알면서.”

    둘을 모르는 사람도 한 시간만 지켜보면 알 수 있을 만큼, 주이원과 신지호는 서로를 좋아했다.

    “한 번 놓아 버린 사람으로서 말하는데… 포기하지 마.”

    퍽 진지한 조언에 주이원은 별 헛소리를 다 들었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당연한 거 아니에요? 내가 걜 왜 놔줘. 누구 좋으라고.”

    “……대체 왜 물어본 거냐?”

    “저도 가끔은 남에게 확신을 얻고 싶은가 봐요. 내 길이 옳다고 생각했는데… 아닐 때가 많았거든요. 이번에도 실수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평소에는 자신감 넘치는 놈이 지호와 관련해서는 왜 이렇게 걱정이 많은지. 너도 걱정이라는 걸 하는구나, 라고 놀리기에는 지나치게 절박한 면이 있어서 그저 안쓰러웠다.

    “아직 어린놈이 노인네처럼 말하긴.”

    “…….”

    “어차피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일이잖냐. 감정이라는 게… 나 혼자 따져 봤자 상대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고, 생각이 변할 수도 있는 거고.”

    워낙 제 생각이 확고한 놈이라 경우가 뭐라 한들 크게 변화는 없을 것이다. 알면서도 연장자로서, 그를 오래 봐 온 형으로서 최선을 다해 조언했다.

    진지한 낯으로 경청하던 주이원이 이내 못된 장난꾸러기처럼 씩 웃었다.

    “그래서 바뀌기만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얌마.”

    “어쨌든 알았어요.”

    유경우는 한숨을 쉬고 일어나 이원의 등을 위로하듯 툭 쳤다… 정확히는 치려고 했다. 정색하며 피하는 놈을 보며 인상을 찌푸린 유경우는 길드장실을 나왔다.

    이원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다시 제 문제가 경우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누나가 날 싫어하는 건 아닌데.’

    주이원의 추진력의 절반만 있었어도 진작 신지혜에게 접근해 작업을 걸든 뭘 하든… 했을 것이다. 평소와 비슷하게 생각하던 유경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아니, 그만한 추진력이 없어도…….’

    지혜를 위해서, 라며 그저 물러나 있는 게 아니라… 시도라도 해 보는 게 나은 걸까? 가능성이 있다면. 자신을 위해서… 라는 선택이 어쩌면, 망설이던 타인을 감화시킬 수도 있으니까.

    ‘날 놓은 건 너야, 유경우.’

    만약 두 사람에게 망설임이 있다면 손을 뻗어야 하는 건 유경우였다.

    ‘……식사라도 하자고 해 볼까.’

    전처와 같은 길드에서 일하는 최고의 장점은 그 역시 그녀의 일정을 꿰고 있단 거였다.

    오늘이야말로 매번 쓰고 지웠던 메시지를 보내리라 결심하며, 유경우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 * *

    유경우가 나가고 혼자가 된 방에서 주이원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일이잖냐.’

    유경우가 말한 대로… 지호에게 계속 접근할지 말지에 관한 건,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주이원에게 옳고 그름이란 사회적인 합의로 인정된 기준이 아닌, 자신이 세운 기준으로 결정됐으니까.

    자신이 선택한 쪽이 옳았고, 선택하지 않은 쪽이 틀렸다. 주이원은 자신에 세워 둔 기준에 따라 움직였다.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다면 과정이나 주변에 미칠 파장 따위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저 같은 놈에게 걸린 신지호가 가끔은 불쌍하기도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나를 사랑했으니, 우리는 연인이 되어야지.”

    지호에게라면 이원의 기준은 느슨해진다. 결과만이 아닌 과정조차 지호를 위해 조정한다.

    다만 사랑에 관해서는 이원 또한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자신과 관련 없는 놈은 물론이고 심지어 매번 적까지 이해해 주려 하는 주제에,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다니 말이 되는가?

    이원은 마른 입술을 핥았다. 오랫동안 지호를 갈망해왔으나 제대로 축여지지 않아 갈증은 심했다. 할 수 있다면 지호의 목에 이를 박아 넣고 피로 목을 축이고 싶을 정도로.

    “지호야. 날 사랑해 줘…….”

    여전히 닿지 않을 말을 속삭였다. 빨리 사랑해 줬으면. 내가 견디지 못해 너마저 강압하기 전에…….

    “…….”

    주이원은 맥없이 웃었다.

    주이원의 방식은 늘 쟁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지호를 마주하는 순간, 자신은 또다시 무력해지란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제 방식마저 바꾸고 무력하게 만드는 신지호가 밉다. 하지만 미움 따위는 매번 밀려드는 감정에 바다 깊숙한 곳으로 잠겨 버릴 만큼… 사랑하고 있었다.

    지난 오랜 세월 간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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