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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5. 사랑의 방법(1) (162/283)
  • 외전5. 사랑의 방법(1)

    “으…….”

    아주 작은 신음에도 이원은 눈을 뜬다. 이원은 어둠 속에서도 이상하리만치 선명해 보이는 시야로 옆자리를 확인했다. 옆에서 잠든 지호가 끙끙거리고 있었다.

    오늘은 평범하게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는 별일 없었고, 하교하는 길에도 괜찮았다. 집에서 살짝 어지러워하는 듯 보여서 쉬게 했고, 저녁을 먹을 때는 괜찮아졌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라며 억지로 한 침대에 누웠다.

    이것 봐, 이러니까 눈을 뗄 수 없다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이원은 지호를 살폈다. 열은 없고, 손발이 차지도 않고, 심장이 지나치게 빠르게 뛰는 것도 아니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지만 크게 아픈 건 아니다. 이원은 과거에도 이렇게 아픈 지호를 여러 번 봤다. 워낙 몸이 약하다 보니, 마음고생 한 여파가 몸에까지 나타나고는 했다.

    병원에 갈 필요는 없으니 다행이라고 조금 안도하면서도, 속상한 마음에 이원은 지호의 경직된 뺨을 만지작거렸다.

    “쓸데없는 걱정을 왜 해.”

    지호의 걱정이야 뻔했다. 사랑하는 누나와 좋아하는 매형이 이혼을 한다고 하니 심란해하는 거겠지. 이혼하는 당사자보다도 더 심란해하는 모습을 보니 이원의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바보 같아.”

    왜 남의 일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주이원은 마냥 나쁜 기분은 아니라 피식 웃었다.

    신지호의 악몽은 단순히 두 사람의 이혼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신지호가 갖고 있던 근원적인 공포를 건드린 데 가까웠다.

    얼음처럼 차갑던 신지혜가 결혼 상대를 데려와 얼굴을 붉힐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렇게 결혼했으니 다들 잘 살 줄 알았다. 고작 3년 만에 이혼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

    아무리 사랑하는 관계라도 일순간에 깨질 수도 있다는 걱정이 바보 같은 제 소꿉친구를 건드렸다.

    “너랑 난 다르잖아.”

    주이원은 신지호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가볍게 입을 맞췄다. 슬쩍 더 건드려도 모르겠지만, 잠든 상대로는 여기까지만.

    몰래 건드릴 거였으면 진작 밀어붙여서 사귀었지, 굳이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려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귀엽기는.”

    섬세한 성격이니 오만 가지 고민을 다 하는 것도 이해는 한다. 그런 면까지 다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고.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 자체를 신지호로부터 깨달았고, 그것이 단 한 사람에게만 줄 수 있는 종류의 애정으로 자라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 네가 벗어나고 싶어도 못 벗어나니까.”

    신지호의 모든 게 좋았다. 모든 게 좋아서 모든 순간을 갖고 싶었다. 다른 누군가에게 빼앗길 수는 없다. 단순히 좋아한다기엔 질척하고, 그저 독점욕이라기에는 애틋한 마음.

    주이원은 신지호를 사랑한다. 다른 모든 것에 쏟는 마음이 신지호 하나를 향한 마음에 비해 초라할 만큼 맹렬하게.

    앞으로도 쭉, 주이원은 신지호와 함께할 것이다.

    * * *

    청람의 길드장과 부길드장, 셋이 모이는 회의는 간단하게 시작해 짧게 끝난다.

    “그럼 일정은 조정 없이 가겠습니다.”

    일처리가 완벽한 청람의 부길드장 신지혜가 조율한 일을 남은 두 사람이 확인만 하면 되니까. 신지혜의 판단은 대체로 옳았고, 길드 일에 그녀만큼의 열의가 없는 두 남자가 매번 긍정하는 것으로 간단히 마무리 됐다.

    아주 가끔 주이원이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할 때면 회의가 길어지기도 하지만.

    오늘 역시 빠르게 회의를 끝낸 신지혜가 태블릿을 들어 올렸다. 유경우가 그런 신지혜를 힐끔힐끔 쳐다봤지만, 신지혜는 그런 유경우를 무시한 채 나갔다.

    둘만 남은 방. 주이원은 유경우를 빤히 쳐다보았다.

    “유경우 부길드장님.”

    “예에…….”

    “부길드장님도 이혼할 거라고 생각하며 결혼한 건 아니겠죠?”

    “……왜 갑자기 시비야? 그보다 사적인 얘기를 할 거면 형이라고 해라.”

    “형은 왜 미련이 남았으면서 누나 안 잡아요?”

    넙죽 호칭을 바꾼 이원의 물음에 경우는 한숨을 쉬었다.

    “어른에게는 복잡한 사정이 있는 법이라…….”

    “그냥 성격 차이로 이혼했으면서 무슨 사정이에요? 게다가 누나가 스카우트하러 가자마자 자존심도 없이 넙죽 받아들였으면서.”

    “…….”

    틀린 말이 없어서 얄밉다.

    신지혜와는 대학생 때부터 만났다.

    조금 있는 집 자식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누구나 이름을 알 만한 기업의 직계일 줄은 생각도 못했고… 그런 집안에서 유경우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줄은 더더욱 몰랐다.

    어긋남 없는 결혼 생활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분명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신지혜는 그보다 일을 사랑했다. 얼굴 보기 힘든 날이 이어지며 자주 싸웠고, 그러다가 저를 보면 신지혜가 짜증스럽게 한숨을 쉰다는 걸 깨달은 순간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너 안 놓았어.’

    ‘…….’

    ‘날 놓은 건 너야, 유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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