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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2. 오늘의 동호회(1) (157/283)
  • 외전2. 오늘의 동호회(1)

    강남역 인근의 한 고급 오피스텔 9층에 위치한 집.

    그 집 안은 깔끔하다 못해 살풍경했다. 이사 온 집 주인이 인테리어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서 방치한 탓이었다. 그래도 성격은 깔끔한 편이라 어지럽혀진 건 전혀 없었지만… 그 탓에 모델하우스처럼 누군가 사는 집이란 느낌이 적었다.

    그 집에서 유일하게 생기가 도는 곳은… 바로 거실이었다.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는 집주인이 신경 써서 설치해 둔 대형 TV와 맥주 한 캔이 올라간 테이블, 그리고 고급스럽지만 약간의 사용감이 느껴지는 소파까지.

    침실을 제외하면 집주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집주인, 임승주는…….

    “아! 씨발!”

    화를 내며 리모컨을 집어 던지고 있었다.

    날아간 리모컨은 깔끔하게 벽에 박혔다. 빡쳐서 힘조절을 못한 탓이다. 잠깐 움찔했던 임승주는 이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 집이 자가라서 천만다행이지.

    물론 자가든 아니든 벽에 구멍 난 건 보통 가벼운 문제가 아니지만…….

    진짜 문제는 저 TV속 중계 화면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씨발 저걸 못 잡냐고…….”

    임승주는 부들부들 떨며 TV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일반인이라지만 저걸 못 잡는 게 말이 되나? 자신이 각성자라 다 보여서 하는 말이 아니라, 누가 봐도 저건 잡으라고 떨어지는 공 아닌가. 그걸 못 잡아서…….

    “…….”

    안 그래도 절망적이었던 점수차가 더 벌어지는 걸 보고, 임승주는 TV까지 박살 내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이쯤 되면 보나마나 결과는 뻔하다. 임승주는 응원하던 팀의 욕을 한 사발 쏟아내며 TV는 그냥 꺼 버렸다. 조금만 더 보다간 야구장으로 쫓아갈 것 같으니까.

    “후.”

    답답해서 임승주는 소파에 벌러덩 누웠다.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맘에 안 드는 경기였다. 어떻게 매 경기마다 저러고 있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임승주는 또다시 성질을 냈다.

    “올해도 끝까지 저 지랄이면 내가 야구 끊는다, 씨발.”

    매년 하는 소리였다.

    과거의 임승주는 야구 선수가 꿈이었다. 꿈이 좌절되며 야구 자체를 안 보다가, 어느 정도 회복하고 난 후에야 다시 경기를 조금씩 보게 되었는데… 바로 그 해, 임승주가 응원하던 팀은 정말로 멋진 승리를 거머쥐었다.

    임승주가 다시금 야구에 빠지게 된 순간이었다.

    그렇게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야구에 매달린 지도 약 5년.

    놀랍게도 임승주가 응원하던 팀은 다음 해부터 성적이 조금씩 추락하더니 이제는 바닥에서 놀았다. 그리고 임승주의 욕도 같이 늘어났다.

    “개… 씨발…….”

    진짜 짜증 난다.

    얼마나 짜증 나냐면, 팀의 우승을 볼 수 있다면 시간을 되돌려 길드장이 B급이던 시절처럼 야근을 할 수 있을 만큼 짜증 났다.

    물론 가장 짜증 나는 건 뻔한 경기를 붙들고 희망을 놓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었다.

    “해체해, 이 개새끼들아…….”

    이 유사 야구단 새끼들. 임승주는 요새 기도처럼 매일 외우는 말을 중얼거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성질을 내던 임승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대로라면 아무래도 밤새 열이 뻗쳐서 잠도 자지 못할 것 같으니, 아예 길드 훈련실로 가서 땀이나 뺄 생각이었다.

    강남역으로 길드 사무실이 이전한 후, 아예 근처의 오피스텔로 이사했더니 출퇴근이 무척 빨라졌다. 걸어서 금방 길드에 도착한 임승주는 훈련실 단골 붙박이와 마주쳤다.

    바로 허소리였다.

    허소리는 C급 헌터에 불과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능력에 한계가 있어도 좌절하지 않고 부딪치는 사람을 임승주는 좋아했다.

    우리 팀 선수들도 허소리의 반만큼만 했어도 성적이 저 꼬라지가 되진 않았을 텐데.

    다시 욱, 화가 올라왔지만 직장이라 화는 금세 가라앉았다. 역시 여기 오는 게 답이었다.

    “퇴근하신 거 아니었어요?”

    “괜히 잡념도 많고… 해서 땀 좀 빼려고 왔습니다.”

    “역시 임승주 헌터는 대단하시네요.”

    임승주는 새삼 생긋 웃는 허소리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얼마 전까지 허소리는 임승주를 잡아먹을 것처럼 사납게 노려보고는 했으니까. 그러나 신지호와의 사이가 개선된 후, 허소리는 태도를 완전히 바꾸어 호의적으로 굴었다.

    그녀야말로 공과 사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자의 표본이다. 자신은… 그러지 못했으니까. 잘 모를 때는 솔직히 괜히 시끄럽게 군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워지고 나니 본받을 점이 많았다.

    “그런데 허소리 헌터는…….”

    평소에 입던 편한 옷보다는 조금 신경 쓴 태가 나는 스포츠 웨어가 눈에 띄었다.

    “아, 저 동호회 활동하는 날이라서요. 길드장님 한 번 데려오라는 사람이 많아서 오늘 모셔가려고요.”

    “아하…….”

    허소리는 C급 헌터지만 인맥이 꽤 넓었다. 던전에 들어가지도 않고, 균열 처리를 주도적으로 이끌지도 못하는 그녀가 헌터계의 마당발이 된 것은… 모두 저 동호회 덕분이었다.

    허소리는 헌터를 대상으로 한 스포츠 동호회를 운영하고 있었다. 보통 혼자 즐길 수 있는 스포츠보다는 팀이 모여 할 수 있는 몇몇 스포츠를 즐겼다.

    각성자는 일반인보다 신체능력이 월등하다. 그래서 일반인과는 어울려 경기하는 게 불가능했다. 하여 이전부터 움직이는 걸 좋아하던 헌터들이 하나둘씩 가입해, 이제는 헌터 사이에서 꽤 유명해졌다.

    마침 허소리와 마찬가지로 스포츠 웨어를 입은 신지호가 훈련실로 들어왔다. 신지호는 임승주가 반가운 사람처럼 활짝 웃었다.

    “임승주 헌터는 무슨 일이에요? 음, 오늘 같이 가려고요?”

    “아뇨. 저는 여길 쓰러 온 거라. 다녀오십시오.”

    시시한 재미를 위해 몸을 움직이느니 그 시간에 단련이나 하는 게 효과적이었다.

    “음, 알았어요.”

    딱히 같이 갈 거라고 기대한 건 아닌지 두 사람은 순순히 포기했다. 아직 약속 시간이 제법 남았는지 두 사람은 잠시 휴게 공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임승주는 두 사람은 신경 쓰지 않고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막 집중하려던 찰나…….

    “그런데 야구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공간도 공간이지만 장비 같은 거, 꽤 고가 아니에요? 헌터 전용 장비 써야 하니까.”

    그때 신지호가 넌지시 묻는 말이 임승주의 귀에 걸렸다.

    “그렇죠? 그런데 요샌 대여해 주더라고요. 이건 무기도 아니니까 절차도 복잡하지 않고…….”

    “아, 하늘이 대여 서비스 시작한다고 했죠.”

    “…….”

    청람과 라이벌 관계에 있는 하늘이 시작한 서비스라, 허소리가 눈치를 봤다. 신지호는 피식 웃으며 화재를 돌렸다.

    “없으면 써야죠. 그냥 한 말인데… 그런데 오늘 정말 최유호 선수 와요?”

    “아. 네. 그런데 길드장님 그 선수 좋아했어요?”

    “전 야구 안 봐서. 그런데 조카가 팬이라, 꼭 좀 사인 좀 받아 달라고 해서요…….”

    이어지는 대화에 임승주의 귀가 번쩍 뜨였다.

    최유호라면 분명, 임승주가 응원하는 팀의 구 주전 투수 아닌가.

    게이트 사태 때 높은 등급으로 각성하는 바람에 팀에서 나왔고, 그 후로부터 성적이 조금 떨어지는 듯하던 팀은 아예 바닥으로 붙어 버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팬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아직도 최유호를 잊지 못한 채 질척거리고 있었다. 물론 그 팬에는 임승주도 포함됐다.

    그런 최유호가 오늘 허소리의 동호회에 온다고?

    임승주는 저도 모르게 몸을 홱 돌려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저기, 오늘 뭐 합니까?”

    “네?”

    “오늘 동호회에서 하는 종목이…….”

    “아, 야구예요.”

    순간 임승주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건데, 정말 야구라고? 최유호와, 비록 동호회에서지만 함께 야구를 할 수 있다고?

    “저도 가겠습니다.”

    “네?”

    허소리가 의아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세요, 그럼.”

    임승주는 좋아하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애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소리야!”

    “언니!”

    동호회의 약속 장소에 도착한 허소리는 자신을 보자마자 달려오는 여자와 얼싸안았다.

    상대의 이름은 주예림. A급의 전투계 헌터로 꽤 유망한 인재였다. 예림을 알게 된 것도 물론 이 동호회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각성 전부터 취미로 운동을 즐긴 주예림은 이 동호회의 초기 멤버였다. 가끔 썩 질 나쁜 헌터가 나타날 때마다 주예림이 혼쭐을 내 줘서 이 동호회는 지금까지 순항할 수 있었다.

    지금의 주예림은 동호회의 부회장이자, 허소리가 2주일에 한두 번은 만날 만큼 친한 언니 동생 사이가 되었다.

    분명 5일 전에 만났지만 5년 만에 만난 것처럼 격렬하게 인사하고서야 두 사람은 포옹을 풀었다. 그리고 주예림은 몸을 낮춰 허소리에게 속삭였다.

    “신지호 진짜 왔네?”

    “부탁하면 잘 들어줘요. 조카가 최유호 헌터 팬이기도 하다더라고요.”

    “크, 덕분에 드디어 저 얼굴 실물로 보네. 장난 아니다. 아이돌하면 딱인데.”

    얼마 전, 자신이 좋아하던 아이돌을 음주 운전과 마약 이슈로 고이 보내 준 주예림이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허소리는 잠시 아이돌이 된 신지호를 상상했다. 노래와 춤에 큰 재능은 없어 보였지만… 일단 얼굴이 되니까 반은 먹고 들어가는 거 아닐까? 저 얼굴로 방긋방긋 웃어 준다면 일단 허소리도 넘어갔을 것 같다.

    “쟤가 주이원이랑 친구라니, 세상 말세다. 말세야.”

    “하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말해 주지 않으니 어떤 인성질을 벌였는지 짐작이 가지 않지만…….

    “저 착하고 예쁜 애가. 세상 말세다, 말세야…….”

    물론 주이원 성격 나쁜 거야 허소리도 알고 있다. 하지만 어지간하면 타인에게 나쁜 말을 하지 않는 예림이 치를 떨 만큼 주이원이 뭔가를 했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야 허소리에게는 주이원은 매번 신지호에게 잘해주는 모습이 가장 익숙하니까.

    뭐, 허소리의 입장에서 주이원은 알 바 아니었다. 중요한 건 우리 길드장이 다른 헌터들의 요란한 환영을 받고 있단 점이지.

    신지호가 혼자 고군분투할 때부터 함께 해서 그런가 괜히 마음이 갔다. 아직 동호회는 시작도 안했는데 괜히 뿌듯함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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