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1. 촬영장에서 (155/283)

외전1. 촬영장에서

“누나, 나 지금 어때?”

“뭐?”

“오늘 내 패션 말이야.”

“…….”

어떻냐고?

최악이다.

선태희는 동생의 끔찍한 몰골을 보며 절로 과거를 회상했다.

부모님이 7년 전에 사고로 돌아가신 이후, 집안의 가장은 선태희였다. 아주 넉넉한 형편은 아니어도 동생이 집안의 가난을 느낄 만큼 부족한 환경을 제공하진 않았다. 아니,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래 허세가 있던 선태웅에게는 그 나이 또래에 허세를 부릴 만한 옷이나 신발을 사지 못한 일들이 한으로 남은 것일까.

A급 길드장이 된 후로 선태웅은 명품을 사재끼기 시작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도배했다.

문제는 명품으로 옷장을 가득 채운 선태웅의 코디가 무척 조잡하다는 데 있었다. 큼직한 로고와 비싼 가격을 고려해 매치한 패션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오죽했으면 선태웅의 사진 몇 장이 커뮤니티에 ‘헌터계 패션 테러범’ 따위의 짤방으로 소비되고 있을까.

처음에는 선태희도 전담 스타일리스트를 두는 등 고집을 꺾으려고 노력해 봤다. 하지만 이쪽에 관해서는 자신감과 고집이 한결같아서… 뭐라고 말하든, 패션을 이해하지 못하는 보수적인 누나의 잔소리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은 공적인 자리에 갈 때는 정장을 입는 걸로 합의하고, 그 외에는 어떻게 입든 손을 놓았다.

그런데 왜 오늘따라 자기 끔찍한 꼴에 대한 평가를 묻는 걸까? 애초에 남의 의견을 순순히 듣는 성격도 아니면서.

곰곰이 고민하던 선태희는 합리적인 추론에 도달했다.

“오늘 여자 만나니?”

“뭐!?”

누가 봐도 수상쩍게 큰 소리로 펄쩍 뛴 선태웅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나 지금 일하러 가는데?”

“무슨 일인데.”

“광고 촬영…….”

“어차피 거기서 다 세팅해 줄 텐데 뭐하러 신경 써?”

“아니, 그래도 그 전에… 보이는 게 있잖아. 돌아올 때도 그렇고.”

평소와 달리 우물쭈물하는 남동생을 보며 태희의 눈에 짙은 의혹이 서렸다.

“누구랑 촬영하는데?”

“그, 그건 왜?”

“궁금하니까. 누나가 그런 것도 못 물어봐?”

대답하기 싫은지 선태웅이 입을 꾹 다물었다. 어차피 알아내려면 바로 알아낼 수 있지만, 태희는 그런 사실을 지적하는 대신 태웅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길드장이 된 이후로도 태웅은 태희의 말을 퍽 잘 들었다. 하지만 태희는 태웅이 언젠가 반발할 경우를 대비하고 있었다. 동생이 들으면 절대 그럴 일 없다고 하겠지만…….

태희의 생각에, ‘절대’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인간은 자신과의 약속조차 어기는데 다른 사람과의 맹세는 어떻겠는가.

그래서 선태희는 선태웅이 지나치게 날뛰지 않도록, 종종 이런 식으로 각인시켜 주었다. 둘 사이의 관계와 위치를. 길드장이기 이전에 태웅은 그녀의 동생이고, 그녀가 태웅의 양육자였다는 사실을.

“누구냐니까.”

“시, 신지호랑 찍는데?”

“…….”

어쩔 수 없다는 듯 털어놓은 선태웅의 말에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신지호의 이름이 태웅의 입에서 나온 건 하루이틀이 아니다. 문제는 태웅이 그런 식으로 특정 인물에게 관심을 가지는 게 처음이라는 데 있었다.

여자친구도 안 만들던 녀석이 이상하리만치 관심을 가진 대상이… 하필이면 신지호라니.

슬쩍 물어봤을 때 연애감정은 아니라며 펄쩍 뛰었으면서, 오늘 하는 꼴은 누가 봐도 썸 타는 상대에게 잘 보일 준비였다.

어쩔까 망설이던 태희는 넌지시 찔러보았다.

“신지호는 단정한 차림 좋아할 것 같은데.”

“걔한테 잘 보이기 위한 거 아니거든!?”

버럭 화를 낸 선태웅이 방으로 들어갔다. 발끈했던 주제에 다시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가는 남동생 보며, 태희는 혀를 찼다.

왜 하필이면 신지호란 말인가?

물론 신지호가 매력적인 인물임은 태희 또한 인정했다. 성격 좋지, 예의 바르지, 집안 좋지, 무엇보다 실물을 본 사람이 순간 넋을 놓을 만큼 예쁘게 생겼지.

그런데 선태웅이 신지호를 진짜 좋아한다고 해 봤자…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핫한 남자라고 볼 수 있는 주이원이 옆에 붙어 있는데, 무슨 결실이 날 수 있겠느냔 말이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동생과 주이원은 비교조차 되질 않았다. 이건 결과가 뻔해 볼 필요도 없는 게임이었다.

“뭐… 상관없겠지.”

저게 정말 연심인지 확실한 것도 아니고, 진짜 좋아한다고 해 봤자, 그냥 쓰라린 첫사랑의 추억으로 끝날 테니.

잠시 고민하던 선태희는 이내 신경을 꺼 버렸다.

* * *

촬영장에 들어가기 전, 선태웅은 화장실에서 미리 머리를 점검했다. 누나의 말대로 모범생인 신지호는 단정한 스타일을 좋아할 것 같긴 한데… 애초에 인상이 사나워서 그런가, 어딘지 양아치 같은 면모를 다 숨길 순 없었다.

“에라이.”

한참 머리를 만져 보던 선태웅은 포기했다. 어차피 오늘 찍는 광고의 특성상, 최대한 착해 보이도록 메이크업해 줄 테니까.

사실 오늘 찍는 광고는 원래의 선태웅이라면 단가가 낮다고 거절했을 공익 광고였다.

몇 달 전 신지호와 선태웅이 S급 던전을 단둘이 빠져나온 덕에, 둘을 나란히 쓰려고 하는 헌터업계 쪽 광고가 물밀듯이 들어왔다.

하지만 신지호는 광고에 별 관심이 없었고, 이번 건은 찍겠다고 나선 몇 안 되는 건이었다.

그래서 선태웅 또한 오랜만에 신지호를 만나게 됐다. 태웅은 다소 긴장한 채 촬영장으로 들어갔다.

“아, 선태웅 헌터. 오셨습니까?”

이번 광고의 담당자가 태웅에게 다가와 인사했지만, 태웅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툭 물었다.

“신지호 헌터는 도착했습니까?”

“조금 늦으신다는 연락 받았습니다. 먼저 준비하고 계시겠습니까?”

그 말에 맥이 탁 빠졌다. 뭐하러 꾸미고 온 걸까……. 하지만 신지호가 없다고 실망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기에 얌전히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촬영용 메이크업은 꽤 진하게 됐지만 퍽 마음에 들었다. 날카로운 인상이 조금이나마 순해지고, 머리 스타일 또한 얌전해졌다.

‘이 정도면… 그 녀석의 맘에도 들겠지.’

SS급 헌터가 된 이후 신지호는 가끔 저와 만나서 함께 던전을 돌았다. 그러나 선태웅이 느끼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 녀석이랑 던전을 돌수록 강해지니까.’

신지호의 [별의 축언]을 받는 동안, 스킬의 위력이 강해지는 건 물론이고 평소보다 정교하게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다.

스킬의 효과가 끝나면 강화된 힘이야 원래대로 돌아오지만, 정교하게 사용하던 감각은 몸에 체득되어 남았다. 그 감각을 살려 수련하거나 실전에 적용하다 보면 스킬의 효율이 높아져 전투가 이전보다 수월해졌다.

그 덕을 보려면 선태웅은 신지호와 조금 더 가까이 지낼 필요가 있었다.

‘정에 약한 녀석이니까 앞으로도 잘 도와주겠지만.’

어쨌든 자신과 신지호는 친구 사이 아닌가? 상대의 동의를 받은 적은 없지만, 그만 한 고난을 헤치고 나왔으면 충분히 친구다.

신지호의 도착은 약속 시간을 넘겨 늦어지고 있었다.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선태웅은 너그럽게 이해해 줄 수 있었다. 친분과 이득이 걸린 문제니까.

선태웅은 시간이나 때울 요량으로 느긋하게 단말기의 게임을 켰다.

하지만 느긋한 건 선태웅의 생각이고, 겉으로 보기엔 무표정했기에 남이 보기엔 화난 것처럼 보였다. 평소 누군가 지각하면 불같이 화를 내던 선태웅인지라 스태프들은 다들 전전긍긍하며 신지호를 기다렸다.

촬영 시간이 아슬아슬해지던 때, 신지호가 급히 촬영장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오는 길에 갑자기 균열을 발견해서…….”

청량한 목소리에 단번에 시선이 집중됐다. 급히 뛰어왔는지 옅은 밀색의 머리칼이 흐트러진 채, 신지호가 머쓱하게 웃었다.

일제히 쏟아진 시선이 그대로 고정됐다. 여러 매체에서 본 바가 있어 신지호가 잘생긴 건 알았지만… 현재의 기술이 실물을 재현하지 못한 탓이었다.

보통의 인류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이목구비를 갖고 있을 뿐인데 왜 저렇게 특별해 보이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실물이 주는 독특한 분위기가 달랐다. [별의 축언]이라는 그의 스킬명처럼, 별이 신지호에게 가장 좋은 것만을 준 것처럼. 신지호에게는 존재만으로 사람을 홀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늦는다고 골이 나 있던 촬영 감독이 어느새 실실 풀린 얼굴로 다가왔다.

“아, 신지호 헌터. 균열이라면 어쩔 수 없지요, 우리 국민을 위한 일인데. 천천히 준비하시면 됩니다.”

괜찮다는 말에도 연신 사과하며 신지호를 촬영 준비를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바로 따라갔어야 했는데. 선태웅은 벽에 기대 팔짱을 낀 채 돌이 된 것처럼 서 있었다. 그의 귓가로 다른 스태프들의 속삭임이 들린다.

“봤어? 실물 대박.”

“비율 진짜 미쳤다…….”

외모에 대한 경탄을 넘어서서 찬양 수준이 되어가는 걸 들으며 선태웅은 한숨을 쉬었다.

잘난 낯짝인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새삼 충격이 컸다. 하긴 처음 봤을 때도 생긴 게 너무 충격적이라 시비를 걸긴 했는데…….

후우, 크게 한숨 쉰 선태웅은 얼굴의 열만 식으면 신지호에게 말을 걸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신지호가 준비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태웅은 말을 걸러 갈 수 없었다.

오늘따라 왜 이리 머저리처럼 구는 건지. 선태웅은 자신을 탓하면서도 다시 한번 마음을 굳혔다. 그래도 이제 촬영이 시작되면 계속 같이 있을 테니까.

그러나 태웅이 다가가 인사하기도 전에.

“꺄악!”

갑자기 환희에 찬 비명 같은 게 입구 쪽에서 들렸다. 자연스레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태웅의 고개도 돌아갔다.

입구 쪽에는… 장미가 100송이쯤 꽂혔을 법한 거대한 꽃다발을 든 주이원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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