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파란波瀾(2)
게네시스와 강태주, 둘 다 지금으로는 신경 쓰이는 부분이지만… 지금 당장 만나기 쉬운 건 강태주 쪽이었다. 일단 그쪽은 확실하게 얼굴을 마주할 수 있으니까.
일단 하늘과 게네시스의 접점을 찾아보기로 한 채, 강태주 쪽부터 캐 보기로 했다.
조사도 좋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이해] 스킬이 있는 지호가 상대를 직접 보는 것이다. 일단 안 될 줄 알고 한번 만나자고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렇게 신랄하게 지호를 깠으니 당연히 만나 주지 않으리란 예상과 달리, 강태주는 만남을 수락했다. 오히려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고민도 없이 곧장 답변이 와서 오히려 찝찝해질 정도였다.
대신 강태주는 자신과 만날 때의 조건을 걸었다. 동행인은 딱 한 명만, 그리고 S급 헌터가 아닐 것으로.
대체 왜 그런 조건을 붙이냐는 말에 ‘너희가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몰라서’라고 대답한 건 화가 났다.
오히려 저런 조건을 내거는 강태주 쪽이 수작 부릴 확률이 높지 않은가? 하지만 일단 놈의 얼굴을 보는 게 우선이기에 맞춰 주기로 했다.
물론, 순진하게 그대로 강태주의 제안을 그대로 따를 생각은 아니었지만.
“뭐어, 그런 일이라면 내가 적절하긴 하지.”
지호가 A급 헌터로서 데려가기로 한 양호진이 웃으며 말했다. 대외적으로 A급인 양호진은 데려가기 딱 적합했다.
“나라면 지구의 사정도 잘 알고, 대외적으로는 A급인데다, 노네임의 헌터니 동행해도 이상할 것 없잖니? 다른 사람보다 훨씬 나은 동행상대지.”
하지만 양호진이 오늘따라 과하게 제 자랑을 늘어놓으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는 건…….
분명 구석에서 음침하게 이쪽을 응시하는 이원 때문일 것이다.
평소 남이 자신을 우습게 보는 걸 가만히 두지 않는 이원이다. 하지만 오늘은 호진이 하는 말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서 박히는 모양이었다. 미련이 철철 넘치는 것을 숨기지 못하고 부럽다는 듯 양호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같이 가고 싶은데…….”
“S급은 사절이라잖아.”
지호가 타이르자 이원의 입술이 댓발 튀어나왔다.
“난 SS잖아.”
“SS급이니까 더 안 되겠지.”
“아니지, S는 아니잖아?”
“뭔 어린애도 안 할 떼를 쓰고 있냐…….”
어이가 없어서, 정말. 물론 이원 본인도 자신이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겠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릴 만큼 아쉬운 것이다.
그동안 이원은 자기 자신에 대해 숨기는 등, 이런저런 사정상 지호와 자연스럽게 붙어 있지 못했다. 그러니 진실을 밝히고 난 지금은 뭐든 지호와 함께하길 바랐다.
하지만 만에 하나 이원을 데려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지호는 이원을 데려가지 않을 것이다. 이건 일단 노네임의 길드장인 신지호의 앞으로 들어온, 길드 차원의 일이다.
게다가 이원을 데려가면 아무리 생각해도 강태주와 둘이 시비가 걸릴 것 같으니까.
비슷한 의미에서 임승주도 함께할 상대로 기각이었다. 강태주의 인터뷰를 보고 화가 나서 펄펄 뛴 그야말로 사단을 낼 것 같아서…….
필요에 따라서 능수능란하게 연기하는 천 년 묵은 구미호인 양호진을 데려가게 된 것이다.
지호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지만 풀이 죽은 이원은 답지 않게 퍽 안쓰러워 보였다. 지호는 이원에게 다가갔다. 발소리를 뻔히 들었을 텐데 이원은 토라진 티를 내듯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지호는 커다란 덩치로 어울리지 않게 몸을 웅크린 이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대놓고 토라졌단 티를 폴폴 내던 이원이 움찔했다.
“뭐 어때. 너 이렇게 말해도 어차피 근처에서 다 듣고 있을 거잖아?”
“근처에 있어도 돼?”
“당연히 있을 생각 아니었어?”
“당연하지.”
당연하긴 뭐가 당연하다는 건가……. 지호는 기가 막혔지만 어차피 말린다고 듣는 놈도 아니기에 그냥 픽 웃고 말았다. 그러자 이원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기색이 서린다.
“꼭 옆에 있을 필요 없잖아. 근처에서 지켜봐, 그냥.”
“알았어, 자기야.”
이원이 만족스럽게 눈을 휘며 웃었다.
“자기도 걱정하지 말고 편히 있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때려 주러 갈게. 너무 걱정하지 마.”
“아니, 때리진 말고… 온건하게 부탁할게.”
“하하.”
지호가 사근사근하게 타이르자 이원은 지호를 꽉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지호의 몸이 휘청거리자, 아예 지호가 자신에게 폭 파묻힐 수 있도록 바닥에 앉자 품에 밀어 넣는다.
오늘 이원의 품에서는 바닷바람을 닮은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종종 느껴지던 피비린내가 아닌, 기분 좋은 상쾌한 향이었다. 지호는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끼며 얌전히 이원의 품에 안겨 있었다.
옆에서 양호진이 못 볼 꼴을 봤다는 듯 고개를 돌렸지만, 두 사람은 개의치 않고 잠시 그러고 있다가 일어섰다.
뒤늦게 양호진의 존재를 깨달은 지호는 얼굴이 붉어졌지만, 이원의 태도는 당당함 그 자체였다. 지호는 잠시 넋을 놓은 자신을 탓하며 허둥거렸다.
“그, 그럼 이제 출발하죠.”
“그래, 갈 때는 내 존재도 잊지 말아 주렴.”
끝까지 한 마디 하는 호진이 얄밉지만 맞는 말이었기에… 지호는 입을 꾹 다물었다.
* * *
강태주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호텔의 레스토랑을 전부 빌렸다. 무례한 인간이기에 늦을 줄 알았는데 강태주는 진작부터 도착해, 일행이 오기도 전에 거하게 한상 차려 놓고 한창 식사 중이었다. 이건 또 다른 의미로 상식 밖이었다.
“이제야 오네.”
“빨리 오셨네요.”
늦었다는 듯이 말하는 강태주에게 지호는 웃으며 받아쳤다. 지호도 약속 시간보다 10분 일찍 왔으니 결코 늦은 건 아니다.
가볍게 고개만 까딱이는 지호를 본 강태주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지호에게 다가왔다. 성큼성큼 걸어와… 남자는 지나치게 가까운 곳에서 멈췄다. 몇 센티만 가까워져도 서로 닿을 만큼, 바싹 붙은 채.
가까이에서 바라본 강태주는… 정말 커다란 남자였다.
주이원과 비슷한 눈높이인데 훨씬 커다랬다. 이원 또한 꽤 근육질의 체형인데 강태주는 훨씬 더 컸다. 거의 우락부락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과장을 좀 보태서 강태주의 허벅지가 지호의 허리 두께는 될 것 같았다.
선이 굵은 이목구비와 특히 부리부리한 눈매도 강태주를 위압적인 인상으로 만드는 데 한몫했다. 거기에 짧게 자른 머리와 낡은 가죽 재킷, 찢어진 청바지까지.
다소 시대가 지난 폭력배 같은 인상이었다.
그러나 눈매를 누그러트리며 활짝 웃는 순간, 놀랄 정도로 인상이 순하게 풀렸다. 사나운 투견이 주인을 향해 꼬리 치는 것처럼 위협적인 적대감이 사라지고 친근감이 맴돈다.
순수한 미소를 보고 지호는 그다지 순수하지 못한 소문을 떠올렸다. 강태주는 보통 저런 식으로 여자고 남자고 가리지 않고 꼬신다고 하던데.
사실 지호는 그 소문이 과장되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던전 공략 후나 입국할 때의 찡그린 얼굴만 보다가 웃으며 누그러지는 인상을 눈앞에서 보니 확실히, 맹수가 갑자기 친근하게 배를 보이는 것처럼 확 달라지는 느낌이라… 뭘 모르는 사람이 넘어갈 만도 했다.
“아, 진짜 나왔냐? 도망칠 줄 알았는데.”
말하자마자 조금 올라가던 강태주에 대한 점수가 와장창 내려갔다. 하는 말도 말이지만 말투도 시비 거는 것처럼 불온하기 짝이 없었다.
“약속해 놓고 안 나올 이유가 있나요?”
“왜, 안 무서워?”
강태주가 씩 웃으면서 지호의 얼굴에 주먹을 휘둘렀다. 지호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다가 물끄러미 강태주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상대의 공격에는 살기가 없었다. 뻔한 도발에 넘어갈 이유는 없어서 양호진 또한 움직이지 않았다. 지호는 의외란 눈으로 바라보는 강태주에게 픽 웃었다.
“거기서 한 대 때렸으면 재밌는 일 생겼을 텐데 아쉽네요.”
“무슨 재밌는 일?”
“뭐긴요, 강태주 헌터가 한국 교도소에서 폭행죄로 10년쯤 썩는 거지.”
“나 정도를 그만큼 썩히려고?”
“어차피 한국에 도움도 안 되는데 남 주느니 가둬 놓자는 사람 많을걸요?”
물론 강태주가 정말로 구속된다면, 그를 가둬 놓기보다는 일을 시키자는 의견이 더 많겠지만.
……사실 강태주가 멀쩡히 구속될 확률보다 이원이 제멋대로 쓱싹해 버리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지호는 뻔한 도발에 넘어가는 대신 테이블로 손짓했다. 씩 웃으며 원래 자리로 돌아간 강태주의 맞은편에 지호가 앉고, 두 사람의 사이에 양호진이 앉았다.
지호는 가만히 강태주를 응시한 채 미리 알아 둔 정보를 복기했다.
강태주. 올해 서른두 살. 원래 중산층 가정에서 부유하게 자라 왔지만… 그때부터 공부하기보다는 질 나쁜 무리와 어울리며 제법 방탕하게 자라왔다.
그리고 그 덕에 강태주는 살아남았다. 다른 가족이 모두 함께한 가족 여행에서 강태주만이 불참했기에, 균열에 휘말려 살해당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강태주는 가족이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각성했다. 강태주가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났더라면, 그때 각성해서 가족들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라고 많은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그 말을 듣고 강태주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이후 강태주는 한국에 머무르는 대신 해외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그게 가족에 대한 속죄의 의미인지, 아니면 자신을 향해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넌더리 났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이게 지호가 자세히 아는 정보의 끝이다. 한국에서의 행적은 자세하지만 이후는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어느 던전을 공략했는지만 간간이 정보가 남아 있을 뿐. 행적을 추적하다 보면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채 비어 있는 부분이 꽤 많다.
“그러는 그쪽이야말로 무슨 생각으로 여기 나온 겁니까?”
“그냥, 내가 깠던 놈 얼굴 보고 싶어서.”
“애초에 저는 왜 깠던 건데요?”
“너 얼굴 보려고.”
“…….”
강태주는 시종일관 장난치듯이 말을 했다. 애초에 대화할 의지가 있긴 한 건가? 정말 그냥 한번 얼굴이나 보려고 나오진 않았을 텐데.
“난 대화하려고 했거든?”
불량한 눈빛으로 강태주가 양호진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그런데 먼저 약속을 어겼잖아. 내가 분명 S급 헌터는 데리고 나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강태주가 대수롭지 않게 던진 말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분명 양호진은 대외적으로 A급의 전투계 헌터다. 한눈에 강태주가 그 사실을 간파했다는 건 미리 알고 있었거나, 아니면 누군가에게 정보를 들었거나. 둘 중 하나인데…….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강태주는 홀로 여유롭게 미소지었다.
“너무 긴장할 건 없는데? 스킬 있어서 알거든.”
곧장 지호는 강태주의 시스템창을 확인했다.
status
이름 | 강태주 |
직업 | 프리 헌터 |
등급 | S |
칭호 | 검제, 칠주의 지배자, 던전의 미친개, 키다리 아저씨, 프라가라흐의 주인 |
체력 | 2005 |
마력 | 898 |
근력 | 2534 |
민첩 | 2378 |
스킬 | 무기의 달인(SS), 에고 소드(S), 무기 소환(S), 무형검(S), 본능적 감지(S), 방랑자의 꿈(A), 동귀어진(A), 고속 이동(A), 솔로 플레이어(A), 생존의 귀재(B), 도련님(B), 악몽의 씨앗(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