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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블랙마켓(4) (136/283)
  • 17. 블랙마켓(4)

    이후는 이채희의 주변을 조사하고 복잡하게 얽힌 인과관계를 조사해야 한다… 고 생각했으나.

    일은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이하연. 몽마로서의 능력보다 검술을 더 열심히 수련했다고는 하나, 천 년 넘게 살아온 세월만큼의 실력은 있었다.

    이하연이 그녀의 꿈을 통해 기억을 살피기로 했다.

    침대에 누운 이채희와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은 이하연을 보며 지호는 약간의 부러움을 느꼈다.

    “이러니까 청람이 클 수밖에 없었네.”

    누나가 힘써 주는 것도 청람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겠지만, 이플리스에서부터 따라와서 뒤에서 이원을 도와주는 협력자도 너무나 강력했다. 이원은 조금 머쓱한 듯 어깨를 으쓱였다.

    “여러모로 편리하긴 하지.”

    “사람한테 편리가 뭐냐?”

    “음, 믿음직스럽다고.”

    “그래.”

    이원의 말을 정정한 지호는 집중한 이하연을 응시했다.

    “그래도… 네가 믿을 만한 사람이 많아서 다행이야.”

    이플리스에서 생판 모르는 지구까지 따라올 만큼, 이원을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하지만 이원은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듯 씁쓸하게 웃었다.

    “한 놈은 배신 때리고 튀었는데, 뭐.”

    “아…….”

    조승택은 이원이 가장 원하지 않는 방향, 즉 신지호를 제거하는 것으로 이원이 이곳에 있을 이유를 없애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아직 꿍꿍이를 품고 있을 조승택은 간발의 차로 도망쳐 숨어 버렸다. 이후 이원 측에서 총력을 다해 찾고 있음에도 아직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그때, 이하연이 천천히 이채희에게서 손을 뗐다. 그녀는 이원을 똑바로 바라보며 자신이 확인한 바를 설명했다.

    “기억에 혼선이 있습니다. 제 실력으로는 혼선이 일어난 이후 일정 기억을 정확히 알아볼 수 없으나… 피를 훔친 건 누군가의 세뇌 때문인 듯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이하연은 주하은을 힐끗 바라보았다. 이 세상에서 나름 제자로 생각하는 이채희가 무고하다니 다행이다. 주하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하은의 시선이 잠시 신지호에게로 향했다. 사실 이원의 성정이라면 세뇌당했다고 한들 이채희를 제거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지호와 함께 있을 때의 왕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너그러워져서 한숨 놓을 수 있었다.

    주하은이 생각하는 동안, 이하은은 자신이 본 것을 꼼꼼히 점검하고 신중하게 말을 이어갔다.

    “기억 일전 부분이 삭제되어 확실하진 않습니다만… 이채희 양에게 기억 혼선이 시작된 시점은 밤의 연금술사의 부길드장, 권석중을 만난 이후부터입니다.”

    “권석중?”

    또다시 뜻밖의 이름이었다.

    한국에서 제일가는 제작 길드, 밤의 연금술사의 부길드장이자 실세. 본인의 능력은 썩 뛰어나지 않지만 길드장인 권예나가 자신의 딸이기 때문에 손쉽게 전권을 잡은 사람.

    지호도 이전에 한 번 만나 본 적 있지만, 인상이 썩 좋진 않았는데…….

    설마 이런 짓까지 할 줄이야.

    이하연은 어떤 명이라도 받들겠다는 듯 허리를 숙였다.

    “건드리기 까다로운 상대이기는 합니다만, 명령해 주신다면…….”

    “그래, 땅에 묻어 버리면 되겠지.”

    “너무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마.”

    극단적인 소리를 해 대는 두 사람에게 지호가 한숨을 쉬었다.

    권석중에게 이채희를 조종할 만한 능력은 없으니 당연히 그 뒤에 배후가 있지 않겠는가. 그걸 캐 보지도 않고 권석중을 묻어 버릴 순 없었다.

    “이번 건은 내가 해결할게.”

    “자기가 해결한다고?”

    “응.”

    의아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이원에게 지호는 씩 웃어 보였다.

    * * *

    권석중은 늘 그렇듯 마음껏 유흥을 즐기고 있었다. 현란한 불빛과 자신에게 아양을 떠는 사람들, 모든 것이 권석중을 들뜨게 했다.

    균열이 발생하기 전 권석중의 인생은 초라했다. 하지만 그의 딸, 권예나가 각성한 이후 그에게는 두려울 게 하나도 없었다. 별 쓸모도 없는 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복덩이였다.

    요즘 들어 길드원인 이희민이 이상한 바람을 불어넣는 바람에 이상한 생각을 하는 듯했지만……. 이희민은 곧 제거될 터였다. 자신이 아닌 전문가의 손에.

    그러면 권예나도 다시 제 말만 고분고분하게 듣는 착한 딸로 돌아오겠지.

    기분이 퍽 좋았다. 지금까지 쌓아올리고 앞으로도 넘쳐흐를 부를 생각하면 흥겹지 않을 수 없었다. 권석중은 흥겹게 잔을 들었다.

    “자, 다들 한 잔씩 마시자고.”

    한껏 도취된 권석중이 웃으며 잔에 입술을 갖다 대려던 그때.

    테이블 위로 누군가가 가볍게 뛰어내렸다. 큰 키에 싸늘한 위압감을 지닌 남자는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 없을 SS급의 헌터, 주이원이었다.

    “꺄아아악!”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권석중이 다니는 곳은 법의 테두리 밖에 있는 곳이기에, 가끔 단속이 뜨긴 했으나 주이원이라는 거물이 올 줄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다들 허둥지둥 도망치는 사이, 주이원의 눈빛에 사로잡힌 권석중만이 몸을 덜덜 떨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대, 대체 무슨…….”

    “오랜만에 뵙네요.”

    테이블을 밟고 당당하게 나선 이원 대신 얌전히 문으로 들어온 지호가 권석중에게 인사했다. 이원보다 지호가 만만한지, 권석중은 지호를 보자마자 삿대질했다.

    “너, 너 이……!”

    투둑.

    그 순간, 권석중의 손가락이 꺾이면 안 될 방향으로 꺾였다. 권석중은 손가락을 잡은 채 비명을 지르며 자지러졌다.

    “으아아악!”

    “냅다 힘부터 쓰지 마.”

    “음, 주의할게.”

    “영혼 좀 담아서 말해라.”

    한숨 쉰 지호는 바닥을 기는 권석중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일부러 천천히 프린트해 둔 종이를 그의 앞으로 떨어트렸다.

    [알코올 중독자], [도박중독자], [바람둥이], [기생충]이라는 환상적인 칭호를 네 개나 달고 있는 쓰레기.

    지호는 그 칭호를 보자마자 곧장 권석중에 관해 조사했다. 예상대로 불법 도박은 물론이고 각종 지저분한 사생활이 줄줄이 끌려 나왔다.

    권석중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가, 금세 기운을 되찾고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러 온지 모르겠는데, 고발할 거야! 거래도 다 끊을 거라고!”

    다들 이걸 몰라서 그의 행각을 무시하진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권석중은 밤의 연금술사의 실세. 그를 고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만약 하더라도 권예나가 막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 막을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지호는 바닥에 내버려진 자료들 중 한 장을 들어 올려 권석중의 앞에 내밀었다. 내용을 확인한 권석중이 딸꾹질했다.

    거기에 적힌 건 권석중이 이희민을 제거하려고 불법적인 길드에 의뢰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명백한 살해 의도. 하지만 권석중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 어차피 실행하진 않았어. 그냥 화나서 잠시 말만 꺼냈던 거라고!”

    “말만 꺼내긴, 다른 사람을 찾았잖아요? 주하은의 연구실에서 제 피를 훔치는 대가로 당신의 의뢰를 받아 줄 사람을.”

    술에 취한 권석중은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한 채 딸꾹질했다.

    딸의 돈만 쓰는 게 일인 권석중이 뭐하러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채희에게 접근해 피를 빼돌렸겠는가. 신지호의 피가 필요한 다른 누군가가 권석중에게 의뢰를 했겠지. 그다지 접점이 없으면서도 일을 수행할 만큼의 위치에 앉아 있고, 이용하기 쉬운 멍청한 인물을.

    돈이라면 청람이나 하늘만큼이나 많을 밤의 연금술사의 실세 권석중이 대가로 부를 바랐을 리는 없다. 그가 받기로 한 대가는 혼자 처리하기 힘든 불법적인 일일 확률이 높겠지.

    밤의 연금술사가 내부부터 썩어 있는 걸 본 그날부터 지호는 조사를 계속했다. 예상대로 상당히 썩은 길드였지만 외부인인 지호가 고발하기에는 권예나가 지나치게 아버지에게 지배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권석중이 제거하려고 했을 정도로 권예나는 아버지만큼이나 이희민을 믿고 있다. 그런 이희민을 제거하려고 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미 권예나 씨와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뭐, 뭐라고?”

    지호는 녹음기를 틀었다. 그러자 녹음기에서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아버지. 제, 제가 지금까지 아버지께 받은 게 많으니까… 다 이해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 이희민 씨를 죽이는 건… 안 되잖아요. 희민 씨는 이제, 저한테 오, 오빠 같은, 가족 같은 사람인데…….

    “가족은 나인데 왜 잡것을 끌어들여!”

    그저 음성인데도 권석중이 분개했다. 권예나의 말대로 그녀가 여기에 직접 왔다면 또다시 위축되어 아버지의 말대로 했을 만큼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권예나는 자리를 피했고, 지금쯤 이희민과 있을 것이다. 막히는 일 없이 술술 풀리는 상황에서 지호는 여유롭게 웃었다.

    “생각보다 저지른 일이 많으시더라고요. 개중에 밤의 연금술사 자체가 끼인 일도 있는데, 아버지를 고발하기 위해서라면 권예나 헌터가 어느 정도 손해는 감수하겠다고 하셔서…….”

    “누, 누구 맘대로 손해를 감수해?”

    “손해를 아까워하지 마세요, 이제 밤의 연금술사는 당신 것이 아니니까. 어차피 감옥 들어가면 평생 빛 보기 힘들 텐데.”

    “이것들이……!”

    밤의 연금술사에서 실질적으로 가치 있는 건 권예나다. 비리도 저질렀겠다, 협회도 권예나를 밀어줄 테니 권석중이 회생할 확률은 없었다.

    아직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권석중이 길길이 뛰었다. 지호는 그를 내려다보다가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정작 시선을 마주하자 권석중이 얼어붙었다.

    막 S급이 된, 혼자서는 별 거 아닌 보조계의 애송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차갑게 분노한 신지호에게서 권석중은 제 본능마저 까발려지는 듯한 미지의 공포를 느꼈다. 지호는 정체불명의 위압감을 내뿜는 사람답지 않게 씩 웃었다.

    “원하신다면 몇 가지 자료는 없애 드릴 수 있어요. 그러면 조금쯤은 형량이 조절되겠죠.”

    길길이 날뛰던 권석중이 혹했는지 지호를 간절하게 바라보았다.

    “어, 어떻게 하면…….”

    “당신한테 이런 짓을 시킨 사람이 누군가요? 그걸 말해 주세요.”

    “…….”

    예상대로 권석중은 입을 다물었다. 지호는 조금 기다리다가 중얼거렸다.

    “아, 천희림 아니면 천희성이구나.”

    “어, 어떻게……!”

    권석중이 퍼뜩 놀라 제 입을 가리고 지호를 바라보았다. 술김에 제 입이 멋대로 말해 버렸나? 혼란스러워하는 권석중에게 지호는 씩 웃으며 능청스레 속삭였다.

    “그냥 찍어 봤어요.”

    “…….”

    비밀로 하려던 사실까지 털리자 진이 빠졌는지 털썩, 권석중의 몸이 무너졌다.

    “대답해 주지 않으셨으니 거래는 없던 셈 칠게요.”

    악동처럼 웃으며 지호는 권석중을 버려 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이후는 지호가 직접 처리할 필요 없었다. 경현을 통해 헌터 협회에 연락하자 협회에서 빠르게 일을 처리했다. 그간 만들어 뒀던 인맥을 발휘할 새도 없이 권석중은 구속됐다.

    일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말없이 운전하던 이원은 슬슬 하루를 시작한 차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도로를 응시한 채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았어?”

    “뭘?”

    “이번 일에 하늘이 엮인 거.”

    이원은 블랙마켓이 햇살클린과 연관되어 있다고 말했고, 지호 역시 그 말에 순순히 수긍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지호는 따로 알아볼 시간조차 없었는데 바로 하늘 길드를 의심했다.

    지호는 무표정한 이원을 차창 너머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뻔해. 그런 작은 길드가 블랙마켓 정도의 규모를 운영할 수 있겠어? 자금을 대 주는 사람이 있거나 아니면 그쪽은 꼬리일 뿐이겠지. 게다가 배후를 알아봐야 하는데 대뜸 묻어 버리자고 하는 건 이미 짐작이 가는 게 있다는 뜻이겠지.”

    “…….”

    “처음엔 청람의 조사에 의지할 만큼 넌 이 일에 관해 완벽히 파악하지 못했어. 그 정도 규모라면 국내에서는 하늘 길드밖에 없잖아?”

    “맞아. 한 방 먹었네.”

    허탈하게 웃는 이원을 지호가 쏘아 보았다.

    “한 방 먹을 뻔한 건 나겠지, 이 새끼야. 왜 입 다물고 있어. 똑바로 말 안 해?”

    “걱정되어서 그래.”

    “걱정해도 돼. 하지만 숨기지는 마.”

    이렇게 말하는 지호도 이원이 솔직해질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원래 그런 녀석이니까 앞으로도 쭉 마찬가지겠지.

    상관없다. 이원이 비밀을 만든다면 지호는 죄다 파헤치면 되니까.


    각성자의 꿈

    [베스트] 밤의 연금술사 권석중-권예나 충격적인 부녀관계

    조회수: 142,567 리플: 3012 |  20xx.04#.## 14:15

    밤연이 유명한 이유는 다들 잘 알겠지만 권예나 덕분임ㅇㅇ 유명 연금술사 많지만 권예나 미만 잡

    근데 부길드장은 아무 능력도 없는 권석중이었음

    이유는 권예나 애비라...

    근데 가족길드인줄 알았더니 가좆길드였던 거임

    일단 제보받아서 확실해진게

    1. 권석중이 권예나가 번 돈 다 가져감. 권예나는 한 달에 백만원 받음

    2. 권예나 주변에 권석중이 사람 심어둠. 몇몇 사람 빼곤 꾸준히 권예나 가스라이팅

    3. 권예나 하루에 최소 열다섯 시간 이상 일함. 그러는 동안 애비란 놈은 술집에서 처놀았음

    4. 밤의 연금술사 포션값이 높다고들 하는데 알고 보니 그 수수료 중 일정량이 고스란히 권석중 주머니로 들어갔음. 아무리 개인 길드라도 길드 수수료 주머니로 넣는건 횡령인데 그짓을 당당하게 함

    5. 그렇게 권석중이 벌어들인 돈이 최소 수백억인데 한 푼도 안남았다고 함ㅋㅋㅋㅋ 흥청망청 써대서

    6. 권예나 가끔 멍자국 있는데 애비가 때린게 아닐까 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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