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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실종(9) (120/283)

13. 실종(9)

“주, 주이원?”

놀라서 돌아본 곳에는 정말로 주이원이 서 있었다.

지호는 문득 이원이 전에 강제로 끼워 준 [영원의 약혼반지]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진작 불러 주지 그랬어.”

“이, 이런 효과가 있으면 말을 해!”

“쉽게 발동되는 효과는 아닐걸? 자기의 사랑이 만들어 낸 기적이야.”

“아무리 그래도… 아니,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저 머리 위의 거대한 드래곤이 문제다. 어떻게든 상대해야 한다고 하려는데…….

“도, 도망을 쳐?”

반격 한 번 시도해 볼 새도 없이, 저 거구의 위풍당당한 드래곤이 등을 보인 채 저 멀리 날아간다. 믿기지 않지만 도망이라고 밖엔 표현 못 하겠다.

“지호야,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주이원은 먼저 지호의 손을 놓았다. 그 순간 심장이 불안하게 쿵, 뛰었다. 지호는 이원이 가버리기 전에 반사적으로 그를 꽉 붙잡았다.

“안 돼.”

“……지호야?”

“가지 마, 저 남자랑… 또 그렇게…….”

머리가 욱신거린다. 자리에서 그대로 쓰러질 것만 같지만 도저히 이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 손을 놔 버린 결과가 그렇게…….

“…….”

지금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지호를 보며, 이원은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알았어, 같이 가.”

이원이 지호를 안아 들었다. 평소라면 이 무슨 낯 뜨거운 짓이냐고 화를 냈겠지만, 지금의 지호는 이원을 꽉 붙들 뿐 더 말하지 않았다.

이원의 시선이 먼 곳을 향했다. 이미 드래곤은 헌터인 지호의 시력으로도 작은 점만 하게 보일 정도로 줄어들어 있었지만…….

쿠우우웅!

눈 깜박할 사이에 보이지 않는 힘에 낚아챈 듯 끌려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먼 거리를 거의 음속에 가깝게 날아와 그대로 바닥에 처박힌 드래곤이 입에서 검은 피를 분수처럼 뿜어냈다. 하지만 피는 다른 곳에 튀기도 전에 눈에 보이지 않게 사라졌다.

드래곤을 마치 벌레라도 된 양 내려다보던 이원이 손을 뻗었다. 이원이 강한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처럼 실감하게 되는 순간은 처음이었다.

이원의 뒤로 거대한 공간이 열렸다. 동네 하나를 집어삼킬 만한 공간에는…….

“……바다?”

작은 바다가 파도치고 있었다.

이원은 대답 대신 조승택을 노려보고 있었다. 바닥에서 피를 토하던 조승택은 어느새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저를 죽이시려는 겁니까?”

“…….”

“침묵하셔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당신이 여기 와서 한 짓은 아무 의미도 없으니까요.”

“입 닥쳐, 세테르.”

낯선 이름을 부르는 이원의 얼굴 역시 지호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싸늘한 표정 위로 떠오른 건 분노나 경멸조차 아니었다. 그저 날파리 따위를 귀찮아하듯, 노골적으로 성가셔하는 기색이었다.

조승택인지 세테르인지 모를 남자가 이를 악물었다.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짓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당신은 어차피 침략자일 뿐인데!”

“유언은 다 남겼나?”

이원의 싸늘한 말에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입에서 검은 피를 내뿜으며 남자가 처절하게 외쳤다.

“우리는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어!”

“내가 원한 건 단 하나뿐이야.”

그 말에 남자가 지호를 험악하게 노려보았다. 마치 지호가 남자의 모든 것을 부숴 버린 적이라도 되는 양…….

“…….”

얼어붙어 있던 지호의 눈을 이원이 가렸다. 지호는 언제나 제 눈을 가리던 과한 배려를 치워 내며 정면을 똑바로 응시했다.

콰아아아…….

열린 공간에서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왜 굳이 이공간을 열어서 물을 쓰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물에는 농도 짙은 마력이 가득했고 주이원의 의지에 따라 수족처럼 움직였다.

남자는 속절없이 휩쓸려 갔다. 그저 물일 뿐인데 늪에라도 빠진 것처럼 도무지 나오지 못한 채, 점점 소용돌이 안에서 죽어 가면서…….

“어?”

남자를 주시하던 지호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지호가 평소에 보던 시스템창과 유사한 것이 수십 개, 남자의 주변을 감쌌다. 순식간에 그렇게 남자를 감싼 창은 한 번 깜박이며 그대로 남자와 함께 사라졌다.

“도망쳤네.”

이원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크게 아쉬운 기색은 아니었다. 이원은 세차게 흐르는 물을 갈무리하며 이공간으로 되돌렸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이원을 보며 지호는 묻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았다.

“주이원. 너…….”

이번에도 숨기려나?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고 그저 시답잖은 장난으로 무마하려나?

다행히도 돌아본 이원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일단 자리를 좀 옮기자. 너 치료도 해야 하고…….”

알았어. 지호는 입술을 달싹여 그렇게 대답했다.

“……지호야?”

긴장이 풀린 탓일까, 지호의 몸은 그대로 맥없이 쓰러졌다.

* * *

첫 균열은 지구의 시스템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발생했다.

하지만 오차범위 안.

세상에 생기는 첫 균열만은 반드시 관리자의 앞에서 발생한다. 그것은 균열을 대비하던 자들이 치밀하게 엮어놓은 운명.

첫 번째 관리자는 바로 그 순간을 위해 선별되고 오랜 세월 잉태되어 때 맞춰 태어난 존재이므로.

균열을 보는 순간, 평범하게 살던 관리자는 자신이 평생 해 나갈 의무를 자각하고 거기에 온 힘을 쏟게 된다.

지구의 관리자인 신지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구상에 처음으로 발생한 균열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정체를 알았다.

저것은 이 세상에 위협적인 존재이며, 자신은 평생 저것을 없애야 할 숙명을 짊어졌단 사실을.

지호는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일으켰다. 단 한 번도 쓴 적 없는 마력이지만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보다 자유롭게 움직였다.

첫 번째의 균열은 꽤 거대한 규모였지만 막 힘을 각성한 관리자에게는 별거 아니었다.

아니, 분명 별것 아니었어야만 했다.

“아, 아악…….”

힘을 시원하게 쏟아붓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머리뿐만 아니라 온몸이 찢어질 듯 아팠다. 아프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어서 죽을 것 같았다.

이건… 이건 뭔가 잘못됐다.

원래대로라면 자신이 수족처럼 다뤘어야 할 힘이다. 그 힘이 오히려 지호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아니… 힘을 다루는 데는 문제가 없다.

이상은 힘을 담은 그릇에서 발생했다. 수백 톤의 물을 아주 얇은 유리병에 모두 담으려 드는 것처럼, 허용치 않은 힘을 받아들인 대가로 지호는 깨어지고 있었다.

왜?

관리자의 육체 또한 그 힘을 받아들이기에 적합한 형태로 만들어질 텐데.

“지호야!”

기겁한 이원이 부축했으나 지금은 사랑하는 연인의 손길조차 고통이었다. 하지만 고통받아도 좋으니 차라리 이원에게 매달리고 싶다.

막 각성한 지호는 제 힘을 조절하지 못했다. 지호가 세게 붙든 이원의 팔이 부러졌지만, 지호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끔찍한 고통조차 이원이 이를 악물고 참았기에.

“지호야, 괜찮아. 괜찮을 거야…….”

“괜찮기는, 이대로 두면 죽겠군요.”

옆에서 남자가 빈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원은 그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그의 이름은 세테르. 얼마 전부터 보이던 이질적인 이름을 가진 남자다. 얼마 전까지는 그가 지구의 인간인 줄 알았지만…….

남자는 이계에서 온 자였다.

지호는 지구와 다른 이질적인 마력을 보며 몸을 떨었다. 이계에서 온 건 배척해야 한다. 하지만…….

그리고 지호가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는 상대 역시… 지구인이 아니었다.

그걸 알면서도 지호는 이원에게 매달렸다.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원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지호가 뜻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저걸 살려 드릴까요?”

“지호를… 살릴 수 있어?”

“네.”

“…….”

“대가는 알고 계시겠지요.”

지호가 모르는 곳에서 어느 정도 대화가 진행되었던 듯, 아무것도 모를 대가로 이원은 순간 움찔했다.

어지간한 대가로는 지호의 목숨과 저울 달아 비교조차 하지 않을 텐데, 곧장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대가가 크다는 걸 의미했다.

“난 그딴 곳… 기억도 안 나. 내 부모님은 여기 분이시고, 내 세계는 여기야. 내가 있어야 할 곳도…….”

“지구의 무덤 옆에 계실 생각이십니까?”

세테르가 이원의 말을 가로챘다. 이러다가 신지호는 분명히 죽는다. 그는 흔들리는 이원에게 잔인하게 속살거렸다.

“평범한 의사가 치료해 줄 수 없다는 건 알고 계시잖습니까? 여기서 이 자를 치료해 줄 수 있는 건 저뿐일 겁니다.”

이원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안 돼.

가지 마.

지호는 필사적으로 이원을 붙잡았지만…….

“알겠어.”

주이원은 최악의 선택을 내렸다.

“이, 이원, 아.”

“지호야, 아파.”

이원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붙잡으려고 했는데.

지호는 이원의 말을 듣고 나서야 자신이 연인의 팔을 부러트렸음을 깨달았다. 이상한 각도로 돌아간 팔을 보고 놀라 손을 놓은 사이, 이원은 세테르에게 다가갔다.

세테르가 이원의 귀에 뭐라고 속살거린다. 지호가 멈춰 서 있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에 모종의 계약이 체결된 게 느껴졌다.

“주이원!”

가지 말라고, 나를 위해서 그런 남자와 수상쩍은 계약할 필요 없다고 하려 했지만…….

“…….”

주이원은 지호를 위해서라고 제멋대로 지껄이며 가 버렸다. 지호의 손이 닿을 수 없는 이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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