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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실종(7) (118/283)
  • 13. 실종(7)

    콰앙!

    요란한 폭음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분명 지호를 꿰뚫었어야 할 화염은 반대쪽으로 튀며 어마어마한 폭발을 일으켰다.

    지호는 자신을 가로막은 상대를 보며 안도했다.

    “감사합니다. 와 주셔서…….”

    “아닙니다. 늦지 않고 도울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조승택의 공격을 한 번에 막은 김태용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미소 지었다.

    김태용을 부를 수 있었던 건 [용궁의 보물상자] 덕분이었다. 제대로 발동되지 않는 아이템을 계속해서 사용한 건 도망치기 위함이 아닌, 미르 길드의 지원을 부르기 위함이었으니까.

    이 아이템은 미르 길드로 공간이동하는 게 기본 기능이었다.

    뭔가 더 없나 싶어서 노네임의 연금술사인 이남윤을 통해 조금 더 확인해 봤더니, 아이템이 발동하지 않을 때는 미르 길드 쪽에서 이 상자를 사용했다는 신호를 받는단 사실을 알게 됐다.

    단말기도 먹통인 상황에서 [용궁의 보물상자]만이 제 위험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물론 이 신호 또한 막힐 가능성도 있었지만…….

    아직 행운은 신지호의 편에 있었는지, 다행히 태용은 지호를 찾아왔다. 덕분에 지호는 한시름 놓았다. SS급의 태용이라면 아무리 조승택이 강하다고 해도 해 볼 만할 테니까.

    “신지호 님. 제게도 스킬을 부탁드립니다.”

    김태용은 방심하지 않고 신중하게 상대를 경계했다. 지호는 곧장 태용에게 [별의 축언]을 걸었다.

    SS급인 태용에게 건넬 수 있는 마력의 양은 추정컨대 7200.

    제아무리 조승택이 강하다지만, 김태용의 원래 스테이터스와 합하면 두세 배의 차이였다.

    “아…….”

    거대한 마력을 부여받은 김태용이 낮게 신음했다.

    천천히 태용의 머리카락이 짙푸른 색으로 변한다. 원래 검은색에 가까웠던 색이 지금은 바다만큼이나 새파랗다. 동시에 머리의 양쪽 끝에서 작은 뿔이 돋아났다.

    “기, 김태용?”

    “아… 죄송합니다, 조절이 좀 힘듭니다.”

    조금 열띤 얼굴로 대답하는 김태용의 목 뒤를 은은하게 반짝이는 검은색 비늘이 덮었다.

    안 그래도 평범하지 않은 새하얀 두루마기 차림에 뿔이며 비늘까지 돋아나니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 인간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이런 식으로 확인하게 될 줄이야…….

    김태용의 변화에 잠깐 멈칫했던 조승택이 이내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아직 뿔도 말랑말랑한 애송이가 건방지게 방해하는군.”

    ……보통 사람이 어리다는 걸 비유할 때 ‘뿔이 말랑말랑하다.’ 따위의 표현을 쓰던가?

    순간 의문이 든 지호와 달리 태용은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듯, 굳이 따지자면 어리다는 말에 발끈한 얼굴로 승택을 쏘아보았다.

    “당신이 미르 길드원을 죽였습니까?”

    “내가 죽였다면 어쩔 거지?”

    지호가 물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대답. 진지하게 답한 게 아니라 상대를 긁기 위한 답변이었다.

    슬프게도 조승택의 의도는 너무도 잘 먹혔다. 태용의 눈이 분노로 새파랗게 타올랐다. 더 이상 대화의 의지는 없다는 듯이 태용이 승택에게로 달려들었다.

    쿠웅!

    승택이 조금 전처럼 화염으로 된 창을 꺼내 들었지만, 그건 길게 자라난 태용의 새파란 손톱에 그대로 두 동강이 났다. 예기를 띤 태용의 손톱이 그대로 조승택의 목을 노렸다.

    승택은 간발의 차로 공격을 피하며 태용의 복부 쪽으로 손을 뻗었다.

    “피하지 말고 막아!”

    조승택에게는 스킬 [백발백중]이 있다. 반드시 공격을 명중시키는 스킬. [백발백중]과 함께 [독의 숨결] 또는 [피의 저주] 따위의 스킬을 쓴다면 김태용은 이번 전투 내내 커다란 리스크를 안고 싸울 수밖에 없다.

    슬쩍 몸을 비틀어 피하려던 태용은 지호의 말에 그대로 뒤로 훌쩍 뛰었다. 정말 기이하게도 여전히 승택의 공격이 명중하리란 확신이 든 순간… 태용이 거대한 마력을 일으켰다.

    태용의 앞에서부터 사람의 두세 배쯤 되는 높이의 거대한 파도가 일었다. 성난 해일처럼 전진하는 파도가 조승택을 완전히 밀어 냈다.

    “큭……!”

    상황이 이래서야 [백발백중] 스킬도 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이미 10여 미터쯤 간격이 벌어진 데다, 지금의 승택은 누군가를 공격할 상황이 아니니까.

    폭풍 치는 해류처럼 거칠게 휘몰아치는 물속에서 승택이 흔들렸다. 중심을 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속에서는 불가능한 시도였다.

    게다가 태용 역시 스킬 하나만 쓴 채 두 손 놓고 있진 않았다.

    조금 전부터 태용의 주변에 짙은 마력이 모여들어 푸른빛으로 가시화된다. 지호에 의해 몇 배로 강화된 태용의 마력이 모이고, 또 모여서… 어느새 점점 짙은 밤이 내려앉는 어둠 속에서 태용의 눈동자가 선명하게 빛났다.

    [뇌전.]

    미르 길드의 길드장 김태용은 물을 주로 다루는 능력자다. 그런 그를 굳이 물과 전격 관련 속성의 헌터로 부르는 건 [뇌전]이라는 스킬 때문이다.

    그저 하나라고 무시하기엔 너무도 강력한 힘을 지닌 스킬.

    쿠구궁!

    먼 하늘에서 천둥이 울었다. 원래 천둥은 번개보다 늦게 울리는 법이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마치 하늘이 죄인에게 경고하는 듯한 엄숙한 음성.

    그리고 이내 새파란 빛이 하늘을 갈랐다.

    먼 하늘 위에서 떨어진 벼락은 그대로 조승택에게 내리꽂혔다.

    “크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들리다가 결국 끊겼다. 지금 조승택은 물속에서 흠뻑 젖어 있으니 배로 치명적이었을 터. 생각보다 간단하게 끝난 것 같긴 한데…….

    “조심해요!”

    언뜻 새카맣게 탄 것처럼 보이지만 저 남자에게는 [초회복]이라는 SS급의 스킬이 있다. 그 회복력을 눈으로 확인한 적은 없지만, 분명 강력한 성능을 지니고 있을 터.

    지호의 경고에 태용은 다시 한번 뇌전을 준비했다. 워낙 큰 스킬이라 연속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 마력을 모으던 태용이 갑자기 움찔하더니 지호에게 다가왔다.

    “조심하십시오!”

    태용이 제어하던 물이 한순간에 온통 시커멓게 변해 그의 통제를 벗어났다. 이제 독으로 바뀐 물은 조승택의 발치에서 바다 위의 기름때처럼 기분 나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검은 웅덩이 한가운데의 조승택은 그야말로 숯처럼 시커멓다. 도저히 살아있으리라 생각되지 않는 꼴이건만 조승택은 천천히 눈을 떴다.

    “후…….”

    시뻘겋게 붉어진 눈동자로, 누가 봐도 이미 승기를 잡기 어려운 상황에서 조승택은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었다. 죄다 타들어 간 피부 때문에 끔찍한 형상이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하하, 이거… 어린 녀석이 제법 근성이 있는 모양인데.”

    “…….”

    “나도 장난으로 생각하면 안 되겠군.”

    수세에 몰렸다기에는 수상쩍을 만큼 지나치게 여유로운 태도. 태용은 커다란 스킬을 쓰려던 걸 멈추고 상대를 관찰했다.

    낮게 웃던 조승택의 웃음이 점차 멎어든 순간.

    퍽.

    조승택의 안에서 가죽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무슨…….”

    그리고 조승택의 몸은 그대로 터져 버렸다. 하지만 이상했다. 분명히 터졌는데, 근처에는 마땅히 남아 있어야 할 조승택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까.

    당황한 태용이 주변을 둘러보던 때, 지호는 문득 올려다본 하늘을 보고 굳어 버렸다.

    지호의 시선을 따라간 태용의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경악이 떠올랐다.

    그것은 밤 속에 숨어 그림자조차 드리우지 않고 어둠 속에 떠 있었다.

    도마뱀과 비슷한 형태에 박쥐의 날개를 가진 몸체. 하지만 도마뱀에 비유하기에는 훨씬 더 흉흉하다.

    몸의 크기는 거대한 여객선을 상회했고, 여유롭게 날갯짓할 때마다 세찬 바람이 일었다.

    비늘은 마치 용암이 식어 굳어 가는 자리처럼 검고 울퉁불퉁했으며 군데군데 상처의 틈처럼 시뻘건 색이 보였다. 그러나 그건 상처 따위가 아닌 위협적인 화염이었다.

    그것이 숨을 내쉴 때마다 짙은 독무가 뿜어져 나와 공기를 더럽혔다.

    “드래곤?”

    지호가 미심쩍게 중얼거렸다.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짐승은 유럽 등지에서 전설로 내려오는 환상종, 드래곤의 형태였다.

    “아니, 저런 자는… 본 적이…….”

    떨리는 목소리로 태용이 혼란스럽게 중얼거렸다.

    미르가 생기기 이전부터 태용의 아버지는 용왕으로서 전 세계의 용과 교류했다. 서양과 동양의 용은 생김이 꽤 다르긴 하다. 하지만 그들은 연구 끝에 자신들의 근본이 유사하다는 점을 밝혀 냈고 서로가 동종임을 인정했다.

    세계 각지의 용들은 동종으로서 길게는 천여 년 전부터 꾸준히 교류했다. 개체 수가 적은 동족을 보호하기 위해 서로의 명단을 공유하기 위함이었다.

    용은 기억력이 꽤 좋은 생물인 탓에 명단 정도는 줄줄 외운다. 하지만 눈앞의 존재는 태용이 처음 보는 용이었다.

    물론 그냥 처음 보는 용이라면 그럴 수 있다. 집을 나간 해츨링이 뒤늦게 성체로 발견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

    하지만 눈앞의 존재는 그동안 모르고 지나쳤다기에는 너무…….

    “화, 황룡 님을 뵙는 것 같은…….”

    너무도 높은 곳에 선 존재였다. 이 세계의 강자 중 한 명이라 불릴 수 있는 태용이 두려움에 떨 정도로.

    태용의 말에 지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황룡이라면 분명, 미르와 관련된 SSS급 각성자다. 조승택으로 추정되는 저 드래곤이 SSS급이라면 왜 힘을 숨기고 있었던 거지? 대체 무슨 목적으로…….

    “김태용!”

    오래 고민할 틈은 없었다. 압도당한 채 넋을 놓고 있다가는 저 거대한 몸체에 깔려 죽어 버릴 테니까.

    [운차(雲車)!]

    태용이 스킬을 외치자 본인의 취향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길이 들어간 듯한 새하얀 스포츠카가 나타났다.

    곧장 차에 오른 태용이 지호를 제 무릎 위로 올리려고 했다. 그러나 태용이 지호를 올리기 전에, 이미 지호는 옆자리에 털썩 앉아 버렸다.

    “지, 지호 님. 잠깐…….”

    “뭐가 잠깐이야, 빨리 도망쳐!”

    “네, 네!”

    어째서인지 몹시 당황했던 태용은 지호의 호통에 금세 정신을 차리고 운전을 시작했다.

    운전이라고 해도 스킬로 만든 차인지라 자유롭게 쭉 하늘을 날아갔다. 태용은 두 사람을 쫓아서 날아오는 드래곤을 노려보며 만약의 상황에 대비했다.

    “어디로 가려고!?”

    “바다 쪽으로 가겠습니다. 그쪽으로 가야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을 것 같아서……!”

    “저놈이 바다에 독이라도 풀면?”

    지호가 지적하자 태용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서렸다. 인간형일 때 사용한 독도 위협적이었는데, 더 강해진 듯한 지금은 얼마나 강해졌을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다른 대응을 궁리할 필요도 없었다. 조승택은 두 사람을 끈질기게 추격하는 대신, 중간에 방향을 꺾어 다른 곳으로 선회했으므로.

    “안 돼!”

    지호가 비명을 질렀다. 조승택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도시였으니까.

    태용이 차에서 뛰어내렸다.

    “어쩌려고!”

    대답 대신 태용의 몸이 연기로 휘감기더니 순식간에 부풀며 거대해졌다.

    인간형으로 상대할 수 없다고 여겨 본체로 돌아간 것이다.

    저 멀리서 난장을 피우는 드래곤과 전혀 다른 매끄러운 비늘이 밤하늘 아래 우아하게 빛났다. 상처 하나 없는 몸체는 격렬한 전쟁터보다는 신성한 성지가 어울릴 듯 우아했다.

    김태용은 느리게 몸을 움직이며 지호에게 충고했다.

    “도망치십시오.”

    “무슨 소리야, 왜 나 혼자 도망쳐?”

    “당신은 지켜야 합니다. 피해는 제가 어떻게든 막아 보겠습니다.”

    막기는 무슨, 상대도 안 된 채 개죽음당할 것이다.

    하지만 태용은 [운차]를 없애 버리고 지호를 혼자 놔둔 채 조승택을 따라 날아갔다. [운차]를 사용하는 것보다 김태용이 본체로 날아가는 쪽이 빨랐다.

    지호가 뭘 할 새도 없었다. 이내 도시 쪽에서 쿵, 하는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다. 지호는 달리면서도 저도 모르게 먼 곳을 응시했다.

    워낙 멀어서 잘 보이진 않지만, 이미 전투가 시작됐다.

    김태용이 조승택을 물어뜯고 휘감으며 벼락을 내리쳤다. 하지만 조승택에 비하면 김태용은 너무도 작고 무력해 보인다. 김태용의 몸체가 독에 당해 점점 검게 변하고 있어서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었다.

    콰앙!

    그 와중에 도시 아래를 겨냥한 폭음이 들렸다. 태용이 마법으로 간신히 막아 냈지만, 상당한 힘을 소모했는지 힘겹게 휘청거렸다.

    “저 멍청이!”

    분명 조승택은 강력하지만 움직임이 어딘가 이상했다. 뭔가를 집요하게 쫓느라 태용을 상대하는 데는 뒷전이었다.

    그러니 방심한 틈을 노린다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태용 혼자서는 가능성이 없었다.

    욕을 하며 도시를 향하던 지호는 곧 차도를 발견했다. 차도 위를 달리던 지호는 도로에 정차한 트럭을 보고 멈춰 섰다.

    트럭 운전수는 충격받은 얼굴로 도시 쪽을 바라보다가, 지호가 부르자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 신지호 아녀?”

    “저기, 제가 빨리 도시로 가 봐야 해서 그런데… 차 좀 빌려 주실 수 있으세요?”

    “아니, 저길 왜… 주, 죽어, 그러다.”

    “하지만 빨리 도와야 해요. 부탁드릴게요. 사례도 충분히 할 테니까…….”

    지호의 간절한 눈을 보던 운전수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고민하다가 이내 고갯짓했다.

    “사례는 무슨, 됐고. 이 큰 트럭을 몰아 본 적이나 있겠어? 타! 근처까지 데려다줄 테니.”

    “아, 하지만…….”

    일반인을 저쪽으로 데려가기엔 너무 위험하다. 하지만 언제 망설였냐는 듯 운전수는 오히려 성을 내며 지호를 재촉했다.

    “저거 옆까지는 안 가! 근처에 내려 줄 테니 거기서 다른 차 빌려 타구, 일단 타! 급하다며!”

    “네, 네!”

    더 사양하지 않고 지호는 냉큼 트럭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트럭은 혼란에 빠진 도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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