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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실종(5) (116/283)
  • 13. 실종(5)

    호기심 어린 눈빛이 지호를 훑었다. 지호에게는 독이 되는 눈빛이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병실로 향하는 길을 터 줬지만, 지호는 저도 모르게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그때, 누군가의 손이 부드럽게 지호를 도닥였다.

    “지호야, 괜찮으니까 진정해.”

    경현의 목소리였다. 급하게 현장에 출동했다가 달려왔는지 경현의 꼴은 엉망이었지만 표정은 침착했다.

    덜덜 떨리는 지호의 손을 따뜻한 경현의 손이 붙잡자 불안한 마음이 아주 조금 진정됐다. 그제야 지호는 간신히 말을 토해 낼 수 있었다.

    “주이원은…….”

    “괜찮아. 심각한 상황 아냐. 청람 힐러들 실력 알잖아?”

    하지만 경현의 말은 지호의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피 흘린 채 실려 가던 이원의 모습만이 지호의 눈에 박혀 떨어질 줄 몰랐다.

    “지호야.”

    “…….”

    “지호야, 지금 네가 더 안 좋아 보여. 진정 좀 하고 들어가.”

    “난 괜찮아.”

    이원에게 가는 길을 막는 경현은 지금의 지호에겐 방해물로 느껴질 뿐이었다. 지호는 자신을 붙잡는 경현을 뿌리치고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병실 안은 지호가 여기 달려오기 전에 생각했던 것만큼 심각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경현의 말대로 말끔하게 치료된 이원은 겉보기에 다쳤던 티가 전혀 나지 않았다. 피를 쏟은 탓에 안색이 평소보다 훨씬 창백하긴 했지만.

    하지만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때나 멀쩡한 것이고, 지호에게는 이원이 환자복을 입고 있단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늘 이원은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제 곁을 지켜 왔으니까.

    지호는 비틀거리며 이원의 옆으로 다가갔다.

    “지호야, 이원이는 괜찮아.”

    “……누나.”

    “많이 놀랐나 보네, 괜찮아? 이러다 너 쓰러지겠어.”

    지호는 차마 누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못한 채 이원을 뚫어지도록 바라보았다. 괜찮냐는 말을 들어야 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이원이었으므로 지혜의 걱정은 부당했다. 오늘만은 지혜의 애정이 고맙다기보단 화가 났다.

    “지호야.”

    지혜가 달래듯 속삭이던 그때, 주이원이 눈을 떴다. 막 깨어나 느릿하게 눈을 깜박이며 주변을 확인하는 이원의 모습에 지혜가 혀를 찼다.

    지호는 누나의 반응에 신경 쓸 새 없이 급히 이원의 곁으로 다가갔다.

    “주이원, 괜찮아?”

    “응…….”

    이원의 목소리에는 평소 같은 힘이 없었다. 나른한 대답 뒤에 이원은 눈을 굴려 지호를 바라보았다. 힘겹게 입꼬리를 끌어 올려 짓는 미소가 오늘따라 너무도 안타까웠다.

    눈만 굴려 방 안을 훑어본 이원은 지호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명령했다.

    “지호 말고 다른 분들은 이제 그만 나가 계세요.”

    “야, 치료받아야지 무슨…….”

    지호가 정색하며 말렸지만 의료진은 내심 이원의 말을 반기는 눈치였다. 지혜 또한 이원을 반쯤 째려보고 있다가 혀를 찼다.

    “그래요, 나갑니다. 나가 드릴게요, 길드장님?”

    지혜는 큰 사고를 친 말썽꾸러기를 대하듯 빈정거리고는 의료진과 함께 병실을 빠져나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지호의 시선은 내내 이원에게 못 박혀 있었다.

    잔뜩 걱정하는 지호와 달리, 이원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얄미울 정도로 기뻐 보이는 미소가 차올랐다.

    “자기야, 울어?”

    설레기까지 한 목소리에 절로 지호의 눈초리가 뾰족해졌다.

    “보면 몰라?”

    “아니, 자기가 우니까 놀라서 물어봤지.”

    “내가 더 놀랐거든? 이 미친 새끼야…….”

    지호는 화를 내며 그제야 눈물을 닦았다. 뺨을 온통 적신 눈물 때문에 얼굴은 온통 엉망일 터였다. 하지만 세수할 정신도 없이 지호는 눈앞의 멀쩡한 이원을 제 눈에 새길 듯 응시했다.

    화면 속에서 본 쓰러진 이원의 모습이 자꾸만 눈 앞에 아른거린다. 또 울 것 같은 지호의 눈가를 이원이 손을 뻗어 문질렀다.

    “하지만 이제 네가 날 위해서 울어 주지 않을 줄 알았거든.”

    “그럴 리가 있겠냐? 이 멍청아. 왜 잘만 깨던 던전에서 다치고 난리야?”

    지호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이원에게 사납게 쏘아붙였다. 순간 지호의 머릿속에 방에 들어오기 전에 들은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난 일부러 다친 건가 싶었다니까요.’

    하지만 작은 부상도 아니고 자칫 잘못하면 목숨이 위험할 부상인데 일부러 다쳤을 리가 있겠는가? 아무리 주이원이라도 실수 한 번쯤은 하는 거겠지. 지호는 안타까움을 가득 담아 한숨을 쉬었다.

    “조심해.”

    “미안.”

    “다치지 마, 진짜…….”

    “안아 줘, 자기야.”

    방금 가슴이 갈라진 놈이 뭐라는 건지. 지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상처 덧날라. 됐고, 잠이나 자.”

    “자기가 안아 주면 괜찮을 것 같은데…….”

    칭얼거리는 이원에게 지호는 코웃음 쳤다. 평소처럼 헛소리하는 걸 보니 확실히 괜찮은 것 같다. 한시름 놓은 지호는 이원의 가슴까지 이불을 끌어 올려 주었다.

    “나중에 안아 줄 테니까 자. 무리하지 말고.”

    “알았어…….”

    단호한 지호의 말에 결국 이원이 얌전하게 대답했다. 지호는 이원의 몸 대신 옆의 침대를 대신 토닥였다. 그게 무슨 의미냐고 이원이 투덜거렸지만, 지호는 이원의 몸에 아주 약간의 충격도 가하고 싶지 않았다.

    고집부려 침대만을 토닥인 끝에 이원이 잠들었다.

    지호는 병색이 완연한 이원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침대 쪽으로 몸을 푹 숙였다. 한숨과 울음이 다시 엉켜 나오려는 걸 간신히 꾹 참아 눌렀다.

    보통 두 사람의 상황은 지금과 정반대였다. 어릴 적에나 헌터가 된 후에나 매번 앓아 눕는 쪽은 신지호였으니까.

    그때마다 찾아와서 자신이 다친 양 속상해하던 이원의 심정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주이원이 다친 게 아프고, 차라리 대신 아프고 싶어서.

    “아프지 마…….”

    차라리 내가 아플 테니까.

    낮게 중얼거린 지호는 눈을 감았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잠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순식간에 의식이 흐려졌다. 지호는 제 손 위로 얹히는 체온을 느끼며, 수마에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맡겼다.

    지호가 잠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원이 눈을 떴다. 아무렇지 않게 몸을 일으킨 이원은 불쌍하게 엎드려 자는 지호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손을 뻗었다.

    원래 지호는 예민한 편이라 자는 중에 다른 사람이 만지면 쉽게 깨지만, 이원의 손길만은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뺨을 가볍게 문지르니 지호가 손에 기대왔다. 양순한 움직임에 외려 가슴이 더 아팠다.

    지호를 아껴 주고 싶었다. 울지 않도록, 언제나 웃음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원은 오히려 지호를 아프게 만들었다.

    최소한 잠시간의 잠자리라도 편하도록, 이원은 지호를 안아 들었다. 보이지 않는 힘이 간이 침대를 꺼냈고 이원은 지호를 그 위에 눕혔다.

    그냥 침대를 내어주는 게 마음 편하겠지만, 지호는 환자의 침대를 빼앗으면 두고두고 마음에 담아 둘 성격이라.

    주이원은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신지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분명히 사귀었다. 하지만 신지호의 기억 속에서 연애의 흔적은 모두 사라졌다.

    그러면 두 사람의 관계는 옛 연인으로 정의되어야 옳은 걸까.

    이원은 그 가정을 부정하고 있었지만, 슬슬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반쯤 체념했다.

    그래도 아직 지호가 자신을 완벽히 외면할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것만으로도 스스로 보잘것없는 몬스터에게 몸을 내던질 가치는 있었다.

    “나 버리지 마, 지호야…….”

    이원은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삼키며 속삭였다. 애초에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담아 뒀기에 이렇게 거리가 멀어졌는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이원은 지호에게 모든 것을 말할 자신이 없었다. 이원의 이야기를 들은 지호의 반응이 너무도 선명하게 그려졌기 때문에.

    지호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창밖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게다가 분명 침대에 엎드려 잠들었었는데 지금은 간이침대에 누워 있다. 누군가 자신을 옮겨준 기억이 없는데… 잠깐 선잠을 자려나 싶었는데 언제 이렇게 깊이 잠든 건지 모르겠다.

    “어지간하면 깼을 텐데.”

    아픈 사람 특유의 예민함일까, 지호는 자신을 건드리는 손길에 매번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나마 경계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건 익숙한 주이원의 손길 정도… 하지만 심각한 부상을 입고 누워 있는 이원이 지호를 옮겼을 리도 없고…….

    아니, 이제 다쳤다고 할 수는 없겠지. 청람의 힐러가 온 힘을 다해 치료하고, 혹시 몰라 포션까지 사용했을 테니까. 보통이라면 몸에 남아 있던 오랜 흉터마저 사라졌을 만큼 넘치는 치료를 받았을 것이다. 피가 좀 부족하겠지만 약간의 어지럼증 정도야 이원에게 별 것 아니고.

    TV를 보고 정신이 나가 달려왔을 때와 달리 한숨 푹 자고 일어난 지호는 이성을 되찾은 상태였다. 이원이 아픈 척한 게 개수작이라는 정도는 알아차릴 만큼은.

    “봐준다, 내가…….”

    평소라면 잔소리를 하든, 걷어차든 했겠지만 아팠던 건 사실이니까. 선심쓰듯 중얼거린 지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은 이원이 다른 사람을 모두 내보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 만큼 엉망이었다. 연거푸 세수한 지호는 잠시 바람이라도 쐬고올 겸 병실을 나섰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복도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물과 마주쳤다. 지호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으며 병실 안으로 들어오려던 상대를 가로막았다.

    “델타 길드장…….”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커다란 꽃다발을 든 에이드리언 애버트였다. 남자는 처음 봤을 때와 별다를 것 없이 산뜻한 미소를 지었다.

    “다시 뵙는군요.”

    “안녕하세요. 여긴 무슨 일로 오셨나요?”

    “그야 물론 병문안을 왔습니다. 많이 다쳤다고 들어서요.”

    태연한 대답에 울컥, 불쾌한 감정이 치밀었다. 하지만 웃는 낯의 에이드리언에게 보는 눈이 많은 병원에서 노골적으로 화를 낼 순 없었다.

    그리고 에이드리언은 지호의 까칠한 태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경계하지 마십시오. 저는 당신 편입니다.”

    “왜요?”

    지호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이 상황에서 의심스러우면서도 정보가 가장 드러나지 않은 상대가 바로 에이드리언이다. 겉보기에는 그저 호의만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 속내가 어떨지는 알 수 없으니까.

    지호는 상대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빙빙 돌려서 말해 봤자 소득이 없다면…….

    “제임스 휘태커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직구를 던지는 수밖에. 에이드리언은 눈을 한 번 크게 떴다가 이내 씩 웃었다.

    “그 친구가 유머 감각이 있는 편은 아니었는데, 어떤 이야기입니까?”

    “당신이 제 뒤를 봐주고 있다고요.”

    “그런 말을 하던가요?”

    “네. 거기에 주이원이 연관되어 있단 소리도 하던데요.”

    “청람 길드장이 연관되어 있다니, 재미있는 말이군요.”

    에이드리언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외의 이름이 나왔으니 놀랄 만도 한데 예상이라도 한 듯 매끄럽게 반응하니 오히려 미심쩍다. 그는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미소 지었다.

    “그걸 주이원 본인에게 물어봤나요?”

    물어봤을 리가. 에이드리언은 눈을 깜박이는 지호에게 도리어 여유롭게 받아쳤다.

    “그럼 청람 길드장에게 직접 물어봅시다.”

    “청람 길드장과는… 제가 알아서 합니다.”

    “오해받고 있는데 그냥 넘어가라고요? 그냥 깔끔하게 물어보고 끝내는 게 편하지요.”

    단순한 블러핑이 아니다. 에이드리언은 지금 당장이라도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갈 기세였다.

    왜 이래? 뭐가 이렇게 당당한 거지.

    그런데 그때…….

    시스템 관리

    경고:  위험이 눈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수많은 생명이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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