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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실종(4) (115/283)
  • 13. 실종(4)

    지호가 이원의 손을 쳐낸 건 처음이 아니다. 이원은 조금 놀란 듯 보였으나 이내 표정을 아무렇지 않은 척 갈무리했다.

    “여기로 왔네.”

    “네가 여기로 왔길래.”

    답하는 이원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더 부드러웠다. 잔뜩 성이 난 야생동물을 진정시키려는 사육사처럼. 동요를 드러내지 않는 태도가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이원.”

    “응, 자기야.”

    “너…….”

    지호는 입술을 달싹였으나 끝내 아무 소리도 토해 내지 못했다.

    네가 미르 길드원의 실종에 관여했어?

    그 간단한 질문이 목에 턱 걸렸다. 이원이 긍정해도, 부정해도, 믿지 못할 것 같아서. 이원에 대한 배신감이 밀어닥칠 것 같아서 도저히 물을 수가 없었다.

    예전이라면 물어봤을까?

    물어봤을 것 같다.

    고등학생 때의 이원이 같은 오해를 받았다면 지호는 태용이 의문을 제시했을 때부터 바로 반박했을 것이다. 주이원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만 지금의 이원은? 도저히 그가 아무 죄도 없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도망치듯 이곳으로 오고, 약을 먹은 채 잠들고…….

    조금이라도 편해지려고 포션을 마신 건데 그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안 그래도 아슬아슬하던 봉인의 빗장이 풀려 지호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기억이 완벽하게 떠오른 건 아니지만… 과거의 주이원과는 서로 못 할 말이 없었다. 마치 한 몸인 양 서로의 비밀을 알고 마음을 나눴다. 그런데 지금은… 주이원이 너무 멀어서.

    지호는 괴로움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너는 예전이랑 너무 달라졌어.”

    “…….”

    “지금은 꼭… 다른 사람 같아.”

    내가 좋아했다고 하는 주이원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을 텐데.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여전히 모든 걸 완벽히 떠올리지 못한 와중에도 그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렇게나 말을 토해 낸 지호는 뒤늦게 이원을 바라보았다. 무표정으로 서 있던 주이원은 지호와 눈이 마주치자 애써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웃는 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연기하는 것처럼 어색한 얼굴이었다.

    “미안해.”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나온 듯한 사과의 말.

    그래서 대체 뭐가 미안하다는 건데.

    지호는 답을 듣고 싶었다. 두렵지만 이원과 터놓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질문에 답을 들을 새도 없이 주이원은 도망치듯 방을 휙 나가 버렸다. 방에 덩그러니 혼자 남은 지호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망할 새끼.”

    지호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한 말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보여 준 주이원의 얼굴은 명백히 상처받은 사람의 표정이었으니까.

    * * *

    지호는 그날 아침 정상적으로 출근해서 곧장 집으로 돌아갔지만, 정작 이원은 귀가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은 곧장 이미 예정되어 있던 던전에 들어가 버렸다.

    누가 봐도 피하고 있는 것 같아서 짜증이 나지만… 지호는 이원만 생각하며 화를 내고 있진 않았다. 어차피 이원을 만날 수 없다면 그에 관해 계속 생각하며 전전긍긍하느니, 조사에 박차를 가하는 편이 낫다.

    그리고 미르 길드로부터 실종자의 정보를 받은 지호는 한 가지를 알아냈다.

    “처음에 박세진이 자주 나타났던 장소가 이하연의 스타일리스트가 사는 동네와 일치해요.”

    박세진은 미르에서 첫 번째로 실종된 인물이었다.

    길드장실로 불려온 양호진이 생각도 못한 존재의 언급에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이하연의 스타일리스트라고?”

    “네. 이름은 고혜주. 이하연의 최측근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죠.”

    지호는 이하연의 소속사 드림로드가 단순한 연예기획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하연이 이플리스의 길드장으로서 정보를 주고받은 장소가 드림로드이니만큼 꽤 긴밀한 연관이 있을 터였다.

    이플리스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는 청람과 이플리스에 이중으로 적을 둔 나소정으로부터 시작됐다.

    박건호의 조사는 자세했다. 그녀가 이하연의 소속사인 드림로드의 사장이나 스타일리스트와 빈번히 접촉했다는 것부터 실종된 스타일리스트 고혜주가 미등록 각성자 같다는 추가 보고까지 많은 걸 알아냈다. 개중에는 불법적인 느낌의 정보까지 섞여 있었다.

    그중 하나가 조사 대상들의 행동 패턴이다. 당연히 행동 패턴에 매일 보이는 집은 눈에 띌 수밖에 없어서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고혜주는 미등록 각성자로 추정돼요. 아마 이플리스 길드와도 연관이 있겠죠. 그리고 박세진이 실종되기 며칠 전부터 종적을 감췄어요. 그리고 박세진은 고혜주가 실종된 당일, 그 동네에서 모습을 보였고요.”

    “그건… 확실히 조금 기묘하구나.”

    물 흐르듯 이어지는 설명에 호진이 인상을 찌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날을 기점으로 드림로드 소속사 사장인 최상호의 외부 활동이 적어졌어요. 최상호뿐만 아니라 몇몇 직원들이 외부 활동을 극도로 꺼리기 시작했어요. 마치 무언가로부터 숨는 사람처럼 말이죠.”

    습격당한 전적이 있으니 몸을 사린다고 한다면, 그 기묘한 움직임도 완벽하게 설명됐다.

    얌전히 듣고 있던 양호진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결론은?”

    “미르와 주이원이 싸우도록 누군가가 이간질 중일 수도 있어요.”

    가정해 보자.

    고혜주는 집 근처에서 불의의 습격을 당했다. 사라졌든, 부상 당했든, 정확하게 사건을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지라 이플리스에서 상황을 조사해 보니… 때마침 당일 미르 길드원 박세진이 고혜주의 거주지 주변을 다녀갔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박세진이 마치 탐색하듯 그 주변을 자주 드나들었다는 것까지.

    그러면 이플리스에서는 누구를 의심하게 될까? 당연히 미르 길드다.

    충분히 드림로드 쪽에서는 미르 길드를 적대할 만도 하다. 주이원이 드림로드와 깊이 얽혀 있다면 거기에 손을 보탰을 확률도 높았다.

    아예… 이해가 가지 않는 이유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건… 네가 원하는 쪽의 해석 아니니?”

    호진이 정곡을 찔렀다. 지호는 굳이 그의 말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네. 하지만 주이원이…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를 해쳤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것 참…….”

    “혹시 그 미르 길드원이 왜 드나들었는지 알아요?”

    “아니, 그건 몰라. 조사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길드 분위기가 좀 자유로워서. 말이 자유롭다는 거지, 사실 길드장 말을 안 듣는단다. 그래서 매일 정보가 공유되진 않아.”

    결국 박세진이 왜 고혜주의 동네로 갔는지, 둘이 실질적인 접촉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세운 것만으로도 지호에게는 꽤 큰 소득이었다. 양호진은 못마땅해 보이지만, 어차피 원하는 쪽으로 생각하는 건 미르 길드도 마찬가지 아닌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하다보면 진실에 점점 더 가까워질 터.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결론 내리고 있지만 사실, 지호는 이원을 믿고 싶기에 추측을 만들어 낸 것에 가까웠다.

    이원이 상처받은 그 얼굴이 완전히 거짓이라고 생각하긴 싫으니까.

    그렇다고 영 말도 안 되는 소리도 아니었다. 호진 역시 못마땅해할 뿐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반박하진 못했으니까.

    대체 길드원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쉽게 나오지 않는 결론에 한동안 맴돌던 침묵을 깬 건 벌컥 열린 문이었다.

    몹시 당황한 허소리가 안으로 뛰어들어 왔다.

    “길드장님, 길드장님!”

    “무슨 일이야?”

    남과 이야기할 때 이처럼 경우 없이 끼어들 사람이 아니다. 소리는 어찌나 당황했는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대신 TV쪽을 가리켰다.

    “뉴, 뉴스…….”

    놀란 소리 대신 호진이 손을 뻗어 태연하게 TV를 켰다. 그리고 평온했던 호진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뜨였다.

    화면 속에는 피투성이가 된 채 실려 나오는 이원의 모습이 보였다.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장면이었다. 노골적인 부상을 카메라에 담는 건 방송 사고에 가까웠는지 이내 화면이 다른 쪽으로 돌아갔지만, 찰나 보인 모습이 지호의 눈에 단단히 박혔다.

    주이원의 창백하게 질린 얼굴. 들것 아래로 힘없이 떨어진 손.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대한 상처가 이원의 몸을 가로지른 채 피를 흩뿌렸다.

    “어, 어떡해요…….”

    몹시 불안한 듯 허소리의 목소리가 떨렸다.

    주이원은 늘 최전선에서 싸웠다. 가장 위험한 곳에서 몸을 아끼지 않고 싸우면서도 다친 적이 없었다. 이원의 무패는 그의 자랑거리인 동시에 일종의 상징이었다. 인류가 완전히 균열과 몬스터에게 꺾이지 않으리라는 불변의 믿음과 희망.

    초기만큼의 불안은 사라졌다지만 이원의 존재는 여전히 의미가 컸다. 그런 그가 의식을 잃은 채 실려나올 정도로 크게 다치다니…….

    허소리가 받은 충격도 당연했다.

    하지만 지호의 눈에 보이는 건 인류의 구원자니, SS급 헌터니 거창한 칭호를 단 청람의 길드장이 아니라 주이원이었다.

    마지막으로 본 순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도망치듯 달아나버린 제 하나뿐인…….

    지호는 다른 걸 생각할 새도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곧장 병원으로 달려가려던 그때 호진이 지호를 붙잡았다.

    “잠깐…….”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듣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호는 호진의 손을 냅다 뿌리친 채 곧장 바깥으로 달렸다.

    대체 어쩌다가 다쳤을까?

    S급 던전 따위 주이원에게 아무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몬스터를 사냥하며 상처는 숱하게 봐 왔는데도 이원의 상처와 피를 상상할 때마다 속이 울렁거렸다. 제 내장이 모조리 딸려 나온 것처럼 속이 허했다.

    이원은 분명 청람 병원으로 향했을 터. 주차장으로 내려온 지호는 곧장 차를 열고 출발시켰다. 이원이 준 자율주행이 되는 차라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사고를 내도 수십 번은 냈을 터였다.

    병원 앞에는 꽤 많은 취재진이 몰려 있었지만 그들을 따돌리는 건 익숙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탈 정신도 없어 계단을 뛰어오르는 동안, 지호를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숨이 차서 도착한 병실 앞에는 꽤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다. 이원의 병실 앞에는 꽤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다. 헌터 협회에서 나온 사람들이나 청람의 길드원들 그리고 병원의 관계자까지.

    다행인 건 엄청나게 심각한 분위기가 아니라는 거였지만…….

    “다칠 리가 없는 곳인데 방심하신 건지…….”

    “난 일부러 다친 건가 싶었다니까요.”

    저마다 쑥덕거리는 소리가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다친 사람을 걱정하진 못할망정 이상한 말이나 해대다니.

    지호가 이원의 병실에 들어가기 위해 앞으로 나서자 한 번에 시선이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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