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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정산하고 갑니다(4) (110/283)
  • 12. 정산하고 갑니다(4)

    “일단 비각성자는 여기서 대기하는 게 좋겠군. 나는 고정된 결계를 설치할 수 있지만 움직이는 결계는 설치할 수 없으니까.”

    조승택의 말에 지호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지금은 주이원과 있었던 시시콜콜한 일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던전에 자기들끼리만 남아 있어야 한다는 말에 세 사람은 창백하게 질렸다.

    “그, 그럼 저희는 여기서 계속 기다려야 하나요?”

    “중간에 안전지대가 확보되면 데리러 오지.”

    “저도 여기서 기다리면 안 되나요?”

    끼어들어서 묻는 지호에게 승택이 어림도 없다는 듯이 웃었다.

    “하하. 농담도.”

    “농담 아닌데요. 제가 있으면 이분들도 안심될 거 아니에요.”

    지호의 말에 세 사람이 열렬하고도 간절한 시선을 보냈다.

    만약에 몬스터가 나타나 주위를 기웃거리면 결계가 몬스터로부터 몸을 지켜 줄 수는 있다. 하지만 던전을 경험한 적 없는 일반인에게는 몬스터에게 노출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울 만하다. 실제로 던전에서 살아나온 생존자 중에 PTSD에 시달리는 경우도 숱하게 많았다.

    지호는 보조계라 어차피 전투에서 주 전력이 될 수 없다. 그래도 이 자리에 남으면 비각성자보다야 수월하게 몬스터를 대처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남겠다는 건 아니에요. 일단 주변을 둘러보고 이 던전의 수준을 파악한 다음, 조승택 헌터 혼자서도 충분할 난이도라면 그때부터 곁에 남을게요.”

    “기준을 그렇게 잡으면 결국 놀게 될 텐데.”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말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그만큼의 능력을 지닌 남자이기는 했다.

    결국 처음은 주변을 둘러보는 것으로 하고 세 사람의 주변에 결계를 설치한 채 통로로 나섰다.

    이번 던전은 불을 켜지 않으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었다. 불을 밝히니 어스름하게 보이는 풍경은 마치 오래된 유적지 같았다. 섬세한 부조가 벽과 기둥에 빼곡히 새겨져 있는데, 큰 충격을 받은 듯 상당히 많은 부분이 훼손되어 있다.

    감상에 사로잡힌 채 지호는 스태프를 들었다. 곧장 조승택에게 스킬을 걸어 줄 생각이었는데, 스킬을 쓰기 전에 조승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난 스킬을 걸어주지 않아도 괜찮네.”

    “조승택 헌터가 강한 건 저도 알겠지만……. 만전을 기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힐러도 없는데.”

    “자만하는 게 아니라……. 어차피 강화계의 스킬은 나에게 먹히지 않거든. 어차피 그 스킬도 안 먹힐 테니 마력을 아끼란 뜻이지.”

    “안 먹힌다고요? 설마…….”

    미심쩍어하면서도 지호는 아주 약간의 마력으로 [별의 축언]을 사용했다. 그러자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시스템 관리

    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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